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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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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 취업비자 10만 개’ 약속 증발했다

2007년 협상 대표 김현종 ‘미, 취업비자 쿼터 서한 제공했다’
2021년 외교부 ‘미, 약속한 적 없다’
등록 2021-09-04 14:16 수정 2021-09-08 01:48
2007년 6월30일 김현종 당시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과 수전 슈워브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미 하원 캐넌 빌딩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문서에 공식 서명한 뒤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2007년 6월30일 김현종 당시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과 수전 슈워브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미 하원 캐넌 빌딩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문서에 공식 서명한 뒤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1년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이행 10년차다. 김종훈 당시 통상교섭본부장은 2007년 미국과 FTA를 하면 매해 1만500개 넘는 전문직 취업비자 쿼터를 받아낼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의 말이 이뤄졌다면 지난 10년간 한국인 유학생 10만여 명이 미국 정부로부터 FTA 전문직 취업비자를 받아 미국에서 취업할 수 있었을 것이다.

‘미 제공 서한, 대통령 재가 받아’

김현종 전 통상교섭본부장도 그의 책 <김현종, 한미 FTA를 말하다>에서 미국이 전문직 비자 쿼터 서한을 제공했고 ‘문구를 처음부터 끝까지 확인한 후 대통령께 재가받기 위해 서류를 전했고’ ‘대통령 재가를 받은 후’ 뉴욕행 대한항공 편이 이륙하기 직전에야 간신히 탑승했다고 썼다.(244쪽) 김 전 본부장은 자신의 책에서 이렇게 덧붙였다.

“나는 실무자에게 지시하여 전문직 비자 쿼터 관련 문구가 우리 입맛에 맞지 않으면 (한-미 FTA 협정 서명식을 위한 미국행) 저녁 비행기도 안 타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할 것을 지시했다.”(244쪽)

그의 책에 따르면 미국이 보내온 “전문직 비자 쿼터 서한 내용은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결국 그는 협정에 서명하기 위해 뉴욕행 비행기를 탔다. 뉴욕 시각으로 2007년 6월29일 밤 미국에 도착해 협정에 서명했다.

FTA 전문직 취업비자가 무엇이기에 김 전 본부장은 이렇게 최종 순간까지 미국에 요구했을까? 미국 대학에서 공부를 잘 마치고 미국 현지 기업과 취업에 합의하더라도 미국 정부로부터 취업비자를 받지 못하면 미국에서 취업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인도·한국·중국 출신 미국 유학생들에게는 취업비자가 중요하며 그 경쟁이 치열하다. H-1B 비자로 부르는 이 전문직 단기 취업비자는 취득이 하늘의 별 따기보다 더 어렵다. 한 해에 6만5천 개밖에 발급되지 않는다. 미국이 특별히 석사학위자에게 제공하는 추가 쿼터도 2021년 2만 개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미국이 제공하는 FTA 전문직 취업비자는 FTA를 체결한 특정 나라에서 온 유학생에게만 주는 특혜다. 미국은 캐나다와 멕시코 출신 학위자에게는 제한 없이,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자에게는 ‘E-3 비자’라는 이름으로 1만500개, 싱가포르인과 칠레인에게는 ‘H-1B1 비자’라는 전문직 취업비자를 각각 5400개와 1400개씩 제공하고 있다. 당연히 이 숫자는 앞에서 본 H-1B 비자 쿼터와는 별도로 특정국 국민에게만 제공한다. 그러니까 위 나라들 출신 유학생은 두 유형의 비자(E-3 또는 H-1B1 비자와, H-1B 비자) 신청을 함께 누릴 자격이 있다.

FTA 전문직 비자는 기간이 2년인데, 특별한 예외 사항에 해당하지 않으면 계속 연장할 수 있다. 그리고 배우자에게도 취업비자를, 21살 이하 미혼 자녀에게는 체류비자를 내준다. 김종훈 전 본부장이 2007년 한국이 매해 1만500개 넘는 FTA 전문직 취업비자를 받을 것이라고 숫자를 꼭 집어 말한 것은, 바로 오스트레일리아가 미국과 FTA를 체결해 받은 비자 수보다 더 많이 받을 것이라는 의미였다. 그러나 미국은 한-미 FTA 10년이 넘도록 단 한 개의 FTA 전문직 취업비자도 제공하지 않았다.

외교부가 보낸 뜻밖의 통지서

김현종 전 본부장이 미국의 FTA 전문직 비자 쿼터 서한을 처음부터 끝까지 확인한 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FTA 서명식을 위해 뉴욕행 비행기를 탔다는 2007년 6월로부터 14년이 지난 2021년 8월24일, 나는 외교부로부터 뜻밖의 통지문을 받았다. 여기 그 내용을 그대로 옮긴다.

“한미 FTA 협정상 미측이 전문직 비자 쿼터 관련 노력을 약속한 바 없으며, 따라서 (그) 약속의 이행을 (미국에) 요구한 내용의 문서 또한 없습니다.”(문서 번호: 북미유럽경제외교과-S4473)

이 통지문은 필자가 미국에 FTA 전문직 취업비자 쿼터 노력 약속을 이행할 것을 요구한 문서를 공개할 것을 청구한 데 대한 외교부의 ‘이의신청기각 결정 통지서’였다. 외교부의 문서 제목이 이의신청기각이라고 된 것은 애초 외교부가 필자가 요구한 문서에 제대로 대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애초 외교부는 미국 의회에서 ‘대한민국 동반자법’(Partner With Korea Act)이라는 이름으로 한-미 FTA 전문직 취업비자 법안이 발의된 것을 답신으로 보냈다. 그러나 필자는 알고 있다. 이 법안은 지난 10년 동안 발의 뒤 폐기를 거듭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이 법안 발의를 위해 많은 돈을 미국 의회 로비스트에게 쓰고 있지만 말이다. 필자는 정보공개법에 따라 이의신청을 해서 이 통지문을 받았다.

평가 자료부터 제대로 공개해야

김현종 전 본부장은 미국에서 FTA 전문직 취업비자 쿼터 서한을 받아 대통령의 재가를 받았다고 기록했으나, 외교부는 미국이 그런 노력을 약속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필자는 어느 쪽이 진실인지 묻지 않는다. 어느 쪽이 진실인지는 한-미 FTA를 체결할지 말지를 결정할 때 중요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그저 취업비자 하나만 갖고 한-미 FTA 10년을 돌아보려는 게 아니다. 산업통상자원부 자료에 따르면 한-미 FTA 발효 전 66개(고시 예규 포함), 발효 뒤 13개, 2018년 개정 협상 뒤 5개 등 총 84개의 법령이 개정됐다. 한-미 FTA가 한국의 자동차세 개정을 묶어 놓고 미국산 자동차에 안전 규격 예외를 열어주는 사이에 미국산 고배기량 자동차의 수입이 크게 늘었고 테슬라 전기차는 한국의 안전 규격과 관계없이 수입됐다. 넷플릭스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시장을 자유롭게 석권할 수 있었던 것도 한-미 FTA가 무규제를 규정했기에 가능했다. 2026년이면 미국산 쇠고기에 부여하는 관세는 0이 된다.

지난 10년 한-미 FTA가 보통 시민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열린 마음으로 평가할 객관적 자료가 필요하다. 정부는 평가 자료부터 제대로 공개해야 한다.

송기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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