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립대 조교들의 노조 결성 열기… 연방 노동위원회의 최종 판결에 관심 집중
대학원생의 대부분은 조교라는 명목으로 공식적으로는 교수의 수업업무를 보조하고 연구에서도 큰 몫을 한다. 그러나 위계적 문화가 강한 한국에서는 교수의 사적인 심부름꾼 노릇도 조교의 몫인 경우가 허다하다. 박사과정을 하다 보면 30대 중반을 넘기기 일쑤인데, 공부하면서 먹고사는 것을 걱정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한국의 대학원생들은 자신들에 대한 합당한 처우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볼 여력조차 거의 없다. 대학에서 가방끈의 길이는 곧 개인의 운명이 학제와 교수에 의해 결정되는 정도와 비례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한국의 상황과는 대조적으로 미국에서는 현재 학교당국과 대학원생이 동등한 자격으로 테이블에 마주 앉아 협상을 벌이기 위한 시도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북동부 지역의 몇몇 명문 사립대학들을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대학원 조교들의 노동조합 결성 움직임이 바로 그것이다.
뉴욕대 조교들의 투쟁이 도화선

사실 미국에서 대학원 조교노조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미국 내 여러 주립대학들에서는 이전부터 조교노조가 있던 곳도 꽤 있다. 논리는 한국의 국립대학 조교들에게 공무원 신분을 보장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르다면 미국에서는 공무원들이 노조를 결성할 정당한 권리를 가진다는 것뿐이다. 하지만 최근에 일고 있는 사립대학들에서의 조교노조 결성 움직임은 이전부터 있어왔던 주립대학들의 노조와는 성격이 사뭇 다르다. 무엇보다 그 과정에서 대학원 조교가 노동자인가 아닌가가 주요 쟁점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사립대학인 뉴욕대의 조교노조 결성 시도에 대해 처음으로 ‘대학원 조교는 연구와 행정업무, 실험실 작업, 강의, 채점 등의 서비스 제공에 따라 응당의 보상을 받는 피고용인’이라는 유권해석을 내린 미국 노동관계위원회의 판결은 대학원 조교노조 결성의 흐름에 커다란 기폭제가 되었다. 그 이후 뉴욕대에서는 대학 쪽이 연방 노동위원회에 제소까지 했으나 패소해 결국 대학원 조교들에 의한 직접투표를 거쳐 합법적인 조교노동조합이 서게 되었다. 그 결과 지난 2월에 있었던 단체협상에서는 현재 1만1천달러이던 박사과정 조교의 연간수당을 4년간에 걸쳐 1만5천달러까지 상향조정하고, 연간 1200달러를 지불해야 하는 학생 의료보험의 절반을 학교가 책임지게 하는 등의 놀라운 성과를 올리기도 하였다.
이러한 뉴욕대의 사례는 다른 학교들에서 조교노조 결성의 열의를 북돋우고 있다. 뉴욕대의 결과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보였던 이들은 브라운이나 예일·컬럼비아대 등 전통적으로 보수적인 학제를 유지해오던 북동부의 사립대학 조교들이었다. 예일대는 이미 오래 전에 유사노조기구를 설립하였으나 아직까지 노동위원회로부터 ‘조교는 노동자’라는 판결을 받아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고, 브라운대와 컬럼비아대는 각각 지난 가을과 겨울 주노동위원회로부터는 판결을 받아 노조 결성 찬반투표까지 마쳤으나 현재 대학 쪽에서 상급기관인 연방노동위원회에 재판결을 요청한 상태여서 투표함을 열지 못하고 대기하고 있다.
이는 그만큼 대학원 조교노조 결성과정에서 학교 쪽과 갈등이 있음을 시사한다. 사실 조교수당을 ‘수업과 연구 등과 관련된 노동력 제공에 대한 보상’의 차원에서 해석하고 있는 노조 추진 쪽의 입장과는 달리 학교 쪽은 ‘대학의 교육적 사명’을 강조하는 가운데 조교업무가 노동력 제공의 차원이 아닌 ‘교육과정의 일환’이라 맞서고 있다. 조교업무의 성격에 대한 해석이 상이하기 때문에 각각의 주장도 다른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
대학을 막론하고 노조를 추진하는 쪽이 주장하는 노조의 필요성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임금과 노동조건의 문제로 주당 업무시간을 정해 엄격히 지킬 것과 조교들이 제공하는 노동력에 대해 적절한 보상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의료보험 등 사회혜택과 관련된다. 현재 대부분의 학교들이 학생 본인에게만 부여하는 의료보험 혜택을 배우자나 가족에게까지 확충하는 문제, 의료보험 수혜대상에서 배제되고 있는 치과나 안과 진료 등에 이르기까지 보험혜택을 확충하는 문제, 육아문제의 해결 등이 여기에 속한다. 마지막으로는 지금까지 불투명한 채 비공식적 관계망을 따라 이루어지던 각 단위에서의 인력배분을 투명하고 공정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노조 결성 우려해 수당 올리기도
실제로 뉴욕대의 협상결과에서 드러나듯, 노조의 존재는 이러한 대학원 조교들의 이해관계를 증진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이는 뉴욕대에서만 아니라 노조가 있는 몇몇 주립대들의 과거 역사에서도 드러난다. 예를 들어, 1996년 11월, 5일간에 걸쳐 벌어졌던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조교노조의 파업은 의료보험 수혜대상을 대폭 확대시키고 학교가 보험료 전액을 책임지는 것으로 일단락되었고, 매사추세츠주립대에서는 교수채용과 장학금 지급과 관련해 대학원 학사행정의 투명성을 제고하는 성과를 일궈내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평가는 대학원 조교를 ‘피고용인’으로, 단체협상의 파트너로 전제할 때나 의미 있는 것일 뿐 학교 쪽의 견해는 또 다르다. 기본적으로 대학 쪽의 논박은 크게 두 차원을 이룬다. 하나는 대학원 조교들의 업무의 성격이 본질적으로 단체협상의 대상이 되기 어려운 학문적 문제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노조의 결성이 교수와 학생 간의 긴밀하고도 특수한 조언자 관계를 해칠 것이라는 점이다. 결국 노조 결성이 단기적으로 조교들에게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줄 수는 있어도 중장기적인 차원에서는 현재보다 못한 교육적 효과를 보이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몇몇 대학은 대학원생들의 경제적 문제와 관련해 자진해서 조교들의 연간수당을 올려주기도 했다. 컬럼비아대의 경우 바로 옆 뉴욕대에서 노조 결성과 관련한 진통이 진행되는 동안 발빠르게 조교들의 연간수당을 1만2천달러에서 1만5천달러로 올렸다. 노조가 없어도 학교 쪽에서 알아서 다 보살펴준다는 강한 제스처였다.
이러한 학교 쪽의 설득작업 때문인지는 몰라도 노조 결성에 부정적인 시각을 보이는 대학원 조교들 또한 적지 않다. 노조와 관련해 진통을 겪고 있는 대학들마다 ‘노조 결성에 반대하는 대학원생 모임’과 같은 조직들이 있다는 것이 그 증거이다. 이들은 학교 쪽의 반박에 더해 조교만이 대학원생의 전부는 아니며, 이미 존재하는 통로들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학교와 협상할 수 있음을 주장한다. 또한 조교노조의 상급단체로 기능하게 될 미국자동차노조(UAW)를 의심에 찬 눈초리로 보기도 한다. 학문의 세계와 이질적인 UAW가 대학원노조에 너무 큰 입김을 불어넣지 않을까 우려하는 것이다.
UAW는 자동차, 항공, 농업 부문에서 약 73만명의 조합원을 가지고 있는 대규모 조직이다. 동시에 현재 대학의 직원노조와 조교노조들의 상급단체이며, 뉴욕의 현대미술관을 비롯한 많은 문화예술 관련 단체의 노조들을 포괄하고 있다. 과거에는 막강한 힘을 과시했으나 지난 십년 사이 자동차 산업에서만 조합원 10만명을 잃는 등 내리막세에 있다. 따라서 UAW가 하향세를 만회하기 위해 대학원노조에 눈을 돌리고 있다는 비판도 그리 설득력 없는 것만은 아니다.
브라운·컬럼비아대를 주목하라

하지만 전반적인 분위기는 노조 결성에 호의적인 것으로 보인다. 전부터 노조가 있어왔던 대학들에서 노조의 존재가 학교 쪽의 경고와 같이 대학원의 학문활동이나 교수·학생 관계에 그다지 영향을 끼치지 않고 있다는 믿음이 크기 때문이다. 일례로 노조가 있는 대학의 교수들을 상대로 한 터프트대의 1999년 설문결과에 따르면 90%의 교수들이 노조가 교수·학생 관계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노조를 통한 대학원 조교들의 이해증진이 학교 쪽이 주장하는 ‘대학의 교육적 사명’과 크게 배치되지 않는다는 결론이다.
어쨌거나 현재 브라운과 컬럼비아대는 노조 결성 여부를 묻는 조교들의 투표를 마치고 연방노동위원회의 마지막 판결만을 기다리고 있다. 연방위원회에서도 ‘조교는 피고용인’이라는 판결이 나와야 투표함의 뚜껑이 열릴 것이다. 뉴욕대에서의 투표결과가 상대적으로 근소한 차이를 보였다는 점에서 이 두 대학에서의 결과를 섣부르게 판단하긴 어렵다. 하지만 이곳에서의 결과가 이미 꿈틀거리고 있는 미국 내 다른 대학들의 노조 결성 움직임에 중요한 고비가 될 것은 분명하다.
뉴욕=김선철 통신원 jollary@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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