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바이든 잡으려다 트럼프가 잡히나

‘우크라이나 스캔들’ 관련 쏟아지는 트럼프에 불리한 증언들

공화당 총력 저지로 탄핵 가결은 불투명
등록 2019-10-26 15:45 수정 2020-05-03 04:29
미국 공화당 하원 의원들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조사가 비공개로 이뤄지는 청문회장 앞에 모여 있다. 이들은 청문회장을 점거하고 증인 출석을 막았다. AFP 연합뉴스

미국 공화당 하원 의원들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조사가 비공개로 이뤄지는 청문회장 앞에 모여 있다. 이들은 청문회장을 점거하고 증인 출석을 막았다. AFP 연합뉴스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 시절이던 2014년 우크라이나에서 반정부 시위가 넉 달째 격화되고 있었다. 그해 2월22일 빅토르 야누코비치 당시 대통령은 텔레비전 연설에서 의회가 자신을 대통령직에서 해임한 조처에 맞서 싸우겠다고 밝히고는 종적을 감췄다.

그는 곧 러시아로 망명했다. 친러시아 성향 야누코비치는 그 전해에 예정됐던 우크라이나의 유럽연합 가입을 되돌리면서, 광범위한 반정부 시위에 봉착했다가 결국 정권이 몰락했다.

2014년 바이든 아들, ‘우크라 부패 기업’ 입사

‘유로마이단 혁명’이라 불린 이 사태로 친서방 성향 페트로 포로셴코 대통령 정부가 들어섰다. 우크라이나의 유럽연합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가입이 눈앞에 어른거리자, 러시아는 3월 들어 크림반도를 합병하고는 우크라이나 동부 친러 세력의 분리독립을 지원하는 내전에 개입했다. 미-러 관계가 나락으로 떨어졌고, 미국 등 서방은 러시아에 강력한 제재를 발동했다.

서방의 자장 속에 들어간 우크라이나 정부는 미국 등에서 부정부패 척결 압박을 받았다. 친러 정부에서 축재했던 천연가스 회사 부리스마의 경영자 미콜라 즐로체프스키는 부패 혐의로 영국 당국의 수사를 받았다. 즐로체프스키는 4월 조 바이든 당시 미국 부통령(민주당)의 아들 헌터 바이든을 회사 이사로 채용했다. 미국 쪽에 보험을 들려는 의도였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탄핵 조사를 부른 우크라이나 스캔들과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 스캔들 등의 뿌리다.

2016년 바이든, 우크라에 ‘검찰총장 해임’ 요구

우크라이나의 부패 척결 작업에 바이든 부통령이 직접 나섰다. 바이든은 2016년 초 우크라이나 정부에 “부패가 척결되지 않으면 10억달러 원조를 중지시키겠다”고 위협했다. 바이든은 빅토르 쇼킨 당시 우크라이나 검찰총장의 해임을 요구했다. 이 문제와 관련해, 바이든은 2018년 외교위원회(CFR) 모임에서 “나는 (2016년 당시) 그들한테 말했다. 나는 6시간 안에 떠난다. 만약 그 검찰총장이 잘리지 않으면 당신들은 돈을 못 받는다. 빌어먹을 자식들”이라며 “그는 해임됐고, 그들은 강경한 사람을 임명했다”고 회고했다.

바이든의 개입은 트럼프 탄핵을 초래한 ‘우크라이나 스캔들’의 직접적 발단이었다. 트럼프 쪽에선 바이든이 아들 헌터를 채용한 우크라이나 기업 부리스마를 수사하고 있는 쇼킨 검찰총장의 해임을 요구했다고 주장한다. 반면 바이든은 당시 아들 헌터 얘기를 꺼내지 않았고, 쇼킨 해임 요구는 그가 부리스마를 제대로 수사하지 않는 등 부패 수사에 의지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반박한다. 어쨌든 쇼킨은 바이든의 개입 뒤 2016년 2월 사임했다. 새로운 검찰총장 유리 루첸코가 임명됐으나, 부리스마 사건은 기각되며 묻혀버렸다.

2019년 4월 “바이든이 아들 수사 무마” 논란

이 사건은 3년 뒤인 올해 4월 한 언론에 의해 다시 살아났다. 미국 의회 전문지 의 기사(‘조 바이든의 2020년 우크라이나 악몽’)에서 루첸코는 “바이든이 2016년 아들 헌터가 개입된 사건 수사를 중지시키려고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쇼킨을 해임하라고 압력을 넣었다”고 주장했다. 루첸코가 우크라이나 스캔들에 불을 지피고 나선 것이다. 그러나 루첸코는 회견에서는 “우크라이나 법의 관점에서 볼 때, 헌터는 어떤 것도 위반하지 않았다”고 오락가락 딴소리했다.

루첸코 뒤에는 트럼프 쪽이 있었다. 며칠 뒤인 4월21일 코미디언 출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가 우크라이나 대통령에 당선됐다. 나흘 뒤인 25일 바이든은 대선 출마를 선언했고, 아들 헌터는 부리스마 이사직에서 사임했다. 나흘 뒤 29일 우크라이나 주재 미국 대사 마리 요바노비치가 워싱턴으로 호출됐다. 트럼프 대통령 개인 변호사인 루디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 측근들이 젤렌스키 대통령 당선자 팀과 접촉하려 시도하고 있었다. 이미 바이든과 그 아들의 부리스마 사건 개입을 놓고 트럼프와 얘기를 나눈 줄리아니는 뉴욕에서 루첸코를 여러 차례 만나 수사를 촉구했다고 가 5월1일 보도했다. 앞서 과 루첸코의 회견 내용도 그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윌리엄 테일러 우크라이나 주재 미국 대사 대리(가운데)가 10월22일(현지시각) 의회 경찰의 경호를 받으며 미 하원 탄핵 조사 비공개회의에 출석하러 가고 있다. AP 연합뉴스

윌리엄 테일러 우크라이나 주재 미국 대사 대리(가운데)가 10월22일(현지시각) 의회 경찰의 경호를 받으며 미 하원 탄핵 조사 비공개회의에 출석하러 가고 있다. AP 연합뉴스

2019년 7월 트럼프, 우크라에 ‘바이든 저격’ 압력

요바노비치 우크라이나 주재 미 대사가 5월20일자로 갑자기 사직한다는 발표가 나왔다. 줄리아니는 6월21일 트위터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이 미국 대선에서 우크라이나 개입 수사에 여전히 침묵을 지킨다고 말했다. 당시 러시아의 개입은 주로 우크라이나에 있는 서버를 통해서 이뤄졌고, 트럼프는 러시아 스캔들이 민주당의 조작이라고 주장한다. 줄리아니가 우크라이나에 ‘민주당 조작’을 밝히라고 사실상 압력을 넣은 셈이다.

이때는 이미 로버트 뮬러 특검팀이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과 관련해 트럼프와 그 팀의 개입을 기소할 증거가 없다고 결론이 난 상태였다. 한 달 뒤인 7월24일 뮬러는 의회에서 그런 내용을 증언했다. 트럼프 팀이 러시아 스캔들에서 해방되자 민주당 유력 대선 후보 바이든을 향한 ‘역공’에 나선 것이다. 뮬러의 의회 증언 하루 뒤인 25일 트럼프는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통화했다. 트럼프가 외국에 압력을 가해 미국 대선에 개입시키려 했다는 내부고발자 신고를 촉발한 통화다.

이 통화에서 트럼프는 바이든과 그 아들에 대한 수사 촉구를 시사하는 발언을 했다. 통화 일주일 전 트럼프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원조를 보류시켰는데, 이를 압력 수단으로 사용했다. 하루 뒤인 26일 커트 볼커 미국 우크라이나 문제 특사가 고든 손들런드 유럽연합 대사와 함께 젤렌스키를 만났다. 내부고발자에 따르면, 그들은 군사 문제 등을 논의하면서 트럼프의 요구 사항을 어떻게 다룰지를 조언했다.

2019년 8월 트럼프의 ‘외국 개입 유도’ 파문

8월12일 내부고발자가 트럼프와 젤렌스키의 통화와 관련해 정보 당국 감사관에게 고발장을 제출했다. 사흘 뒤 미국 정보 당국을 총괄하는 댄 코츠 국가정보국장이 사임했다. 조지프 매과이어 국가정보국장 대리는 내부고발자의 소장을 의회에 통보해야 하는 마감 시한인 9월2일을 넘겨버렸다. 법무부와 백악관의 변호사들 조언에 따른 것이었다. 이에 감사관인 마이클 앳킨슨이 애덤 시프 하원 정보위원장에게 “매과이어가 위법을 저지르고 있다”는 급박한 우려를 통보하면서, 우크라이나 스캔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하원 정보위 등 3개 위원회는 즉각 조사에 착수한 뒤 매과이어에게 소환장을 보냈으나, 그는 거부했다. 9월19일이 지나며 스캔들의 구체적 내용이 언론에 보도됐다. 트럼프는 22일 젤렌스키와 한 통화에서 바이든 문제를 거론했다고 인정하면서도 잘못된 것은 없다고 했다. 트럼프 탄핵에 신중하던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민주당)은 매과이어에게 서한을 보내, 협조하지 않는다면 트럼프의 “심각한 헌법 의무 위배 가능성”이고 의회가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조사로 들어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2019년 9월 미국 하원, 트럼프 탄핵 절차 돌입

이 경고는 현실이 되어갔다. 이틀 뒤인 24일 펠로시는 트럼프에 대한 공식적인 탄핵 조사를 발표했다. 하원 다수인 218명이 탄핵 조사를 찬성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등 트럼프 행정부의 여러 인사가 우크라이나에 압력을 넣는 과정에 관여한 것으로 확인되지만, 줄리아니가 가장 앞장선 것으로 드러났다. 줄리아니는 폼페이오에게 바이든 사건을 브리핑했고, 우크라이나 문제에서 공식 외교 채널을 무력화한 ‘주범’으로 부각됐다. 우크라이나 스캔들이 불거지기 전에 경질됐던 마리 요바노비치 우크라이나 주재 전 대사는 의회 조사에서 줄리아니와 그 측근들이 “명백히 의심스러운 동기를 가진 사람들의 근거 없고 잘못된 주장”으로 자신을 제거했다고 증언했다. 백악관 국가안보위 최고 러시아 자문관인 피오나 힐은 존 볼턴 전 국가안보보좌관이 자신에게 “줄리아니가 모든 사람을 날려버릴 수류탄”이며, 우크라이나와 관련한 그의 행동은 “마약 거래 같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트럼프의 우크라이나 스캔들의 초점은 그가 원조를 미끼로 우크라이나에 수사를 압박했다는 ‘대가성 여부’에 맞춰졌다. 믹 멀베이니 백악관 비서실장이 10월18일 대가성을 시사하는 발언을 해 폭탄을 터뜨렸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바이든 사건이 아니라 2016년 미국 대선 때 민주당 전국위 서버 해킹 사건 수사를 촉구하면서 원조를 보류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발언 파문이 커지자, 원조에 정치가 때론 개입된다면서도 바이든 사건 수사에 대한 대가성은 없다고 부인했다.

다른 실무 외교관들도 가세했다. 의회 조사의 첫 증언자가 된 커트 볼커 전 우크라이나 특사는 10월3일 트럼프의 전화 이후 우크라이나 쪽에 미국 정치에 개입하지 말라고 촉구했다고 증언했다. 윌리엄 테일러 우크라이나 주재 대사 대리와 고든 손들런드 유럽연합 주재 대사 사이에 오간 전문도 트럼프의 선거운동 때문에 우크라이나 원조가 보류되는 것을 테일러가 우려했음을 보여줬다.

2019년 10월 공화당, 물리적으로 탄핵 조사 저지

테일러 대사 대리는 10월22일 하원 비공개 증언에서 이를 밝혀 스캔들의 강도를 높이는 주역이 됐다. 그는 트럼프가 요구한 바이든 수사에 우크라이나 원조가 달려 있고, 줄리아니가 ‘2차 외교 채널’ 구실을 했다고 구체적으로 증언했다. 그는 대사 대리 부임 이후 자세한 메모를 가지고 구체적인 정황을 증언해, 트럼프 행정부의 행태에 충격받은 민주당 의원들을 망연자실하게 했다고 미국 언론들은 전했다.

트럼프는 시종일관 맞불작전을 벌여왔다. 그는 10월3일 중국과 우크라이나는 바이든을 수사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촉구했다. 테일러 대사의 증언 폭탄 전날 트럼프는 공화당 의원들을 옥죄었다. 그는 백악관에서 30여 명의 공화당 의원과 만나 공화당이 좀더 거칠게 싸워야 한다고 주문했다.

트럼프의 지지층이 없으면 당락이 불투명해지는 공화당 의원들은 테일러 대사의 폭탄 증언 하루 만에 미 의회 사상 전례 없는 모습을 연출했다. 탄핵 조사가 비공개로 진행 중인 하원 정보위 회의실로 몰려가, 회의를 물리적으로 방해하는 미국 의회 사상 초유의 사태를 빚은 것이다.

이 장면은 우크라이나 스캔들이 트럼프의 약점을 드러내고 지지도를 갉아먹기는 하겠지만, 탄핵 가결로 가기에는 장애물이 높다는 걸 보여줬다. 탄핵이 통과되려면, 하원에서 조사를 마친 뒤 상원에서 탄핵 심판이 가결돼야 한다. 민주당이 다수인 하원에서도 탄핵 통과는 물리적으로 어려울 수 있다는 전망을 낳는다.

탄핵 지지 여론은 높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반대 여론과 팽팽히 맞선다. 지난 9월 실시된 조사에서 은 47%, -입소스는 45%, 퀴니피액대는 47%가 탄핵을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10월23일 공개된 퀴니피액대 조사에서는 찬성 55%, 반대 43%였다.
물이 턱밑까지 차오르고 있지만 트럼프가 익사할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트럼프 지지층이 여전히 굳건한데다, 트럼프 지지층이 없으면 당선이 불투명한 공화당 의원들이 탄핵을 결사 저지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