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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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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의 시리아 공격, 2003년 전쟁의 결정판

중동분쟁은 이라크전쟁이 초래한 세력 공백을 메우려는 투쟁…

이란의 영향력은 커지고 중재자로 러시아 등장
등록 2019-10-22 09:42 수정 2020-05-03 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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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9일 시작된 터키의 시리아 쿠르드족 공격은 2003년 미국의 이라크전쟁 이후 중동 분쟁의 결정판이다. 이라크전쟁이 빚은 세력 공백 속에 터져나온 여러 중동 분쟁이 모아져, 새로운 세력 판도로 넘어가는 고비일 수 있다. 지금 상황을 이해하려면 시계를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전야로 돌려야 한다.

미국이 예상치 못한 ‘반미 방파제’

2001년 조지 부시 당시 미국 행정부는 9·11 테러에 강타당하자마자, 먼저 이라크 침공을 생각했다. 부시 행정부의 대외정책을 장악했던 네오콘(공화당이 중심인 미국 신보수주의자들)은 분쟁이 끊이지 않는 중동에 미국식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이식하는 것이 근본 해결책이라는 중동개조론에 심취해 있었다.

사담 후세인 정권이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한다는 이라크 침공의 명분까지 조작하면서, 미국은 2003년 3월19일 이라크전쟁을 감행했다. 후세인 정권은 한 달 반 만에 붕괴됐고, 5월1일 부시 대통령은 미국 샌디에이고 해상에 정박한 항모 에이브러햄링컨에 전투기를 타고 착륙해 ‘종전선언’을 했다. 종전선언 연설 뒤에는 ‘임무 완수’라는 펼침막도 걸렸다. 하지만 종전이 아니라 이라크전쟁의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미국 침공에 앞서 총을 들고 집으로 돌아갔던 후세인 정권의 수니파 군인과 민간인들은 시아파가 주도할 새로운 정부에서 자신들의 설자리가 없다는 걸 곧 깨닫고 거리로 나와 반란을 일으켰다. 미국에 쫓기던 알카에다도 부활의 마당을 찾았다. 이후 미군 전투 병력이 완전히 철수한 2011년 8월31일까지 미국은 이라크 수렁에서 허우적거렸고, 전후 미국 대외정책의 최대 재앙임이 드러났다.

먼저, 후세인 정권 붕괴는 중동에 거대한 세력 공백을 불렀다. 그 공백은 네오콘이 의도했던 친미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질서가 아니라 이슬람주의 세력과 주변국들의 세력 다툼으로 채워졌다. 이라크는 시리아와 함께 중동의 핵심 지역인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 있어 지정학적 가치를 지닌다. 후세인 정권은 반미였으나, 이슬람주의 세력을 막는 방파제 구실을 하던 세속 권력이었다. 미국의 또 다른 적성국인 이란을 견제하는 역할도 했다. 후세인 정권의 붕괴는 알카에다 세력과 이란의 득세로 이어졌다.

2010년 12월 튀니지에서 불붙은 ‘아랍의 봄’은 시리아에도 전파돼, 바샤르 아사드 정권을 반대하는 시위가 내전으로 번졌다. 미국 등 서방은 차제에 반미적인 아사드 정권을 타도하려 했고, 사우디아라비아 등 걸프 지역 보수 왕정들을 내세워 반군을 지원했다. 미국은 이라크에서의 실책을 시리아에서도 반복했다. 시리아 역시 이슬람주의 세력의 방파제였고, 중동의 세력 균형에 중심추 구실을 했다. 아사드 정부가 약화되자, 시리아에서도 이라크에서 일어났던 이슬람주의 세력과 주변국의 세력 다툼이 번졌다. 시리아 내전은 이라크전쟁과 연동돼, 하나의 전장으로 바뀌어갔다.

시리아 내전 당사자들의 합작품, 이슬람국가

이란은 같은 시아파인 아사드 정부를 지원했고, 배후에 러시아가 들어섰다. 이란을 견제하려고 아사드 정권 타도에 눈이 먼 사우디아라비아 등은 반군에 ‘묻지마 지원’을 했고, 그 지원은 시리아에서 이슬람주의 세력에 자양분이 됐다. 수니파 극단주의 세력인 알카에다의 시리아 지부인 누스라전선이 최대 수혜자였다. 누스라전선은 이라크의 알카에다 세력과 결합해, 이슬람국가(IS)라는 초유의 준국가적 이슬람주의 무장세력을 탄생시켰다.

이슬람국가는 시리아 내전에서 모든 당사자들의 합작품이었다. 아사드 정부는 내전이 시작되자, 수감 중이던 이슬람주의 세력을 대거 석방했다. 내전 구도를 세속 정권인 아사드 정부 대 이슬람주의 세력으로 만들어 서방과 주변국에 양자택일을 강요하려는 의도였다. 아사드 정부군은 친서방 반군과의 전투에 주력하고 이슬람국가의 성장을 모른 척했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주변 수니파 국가들도 아사드 정부 타도에 눈이 멀어, 이슬람국가를 포함한 반아사드 세력에 ‘묻지마 지원’을 했다. 시리아와 접경한 군사강국 터키도 이슬람국가 성장을 방조했다. 이슬람국가의 영역이 주로 시리아 내 쿠르드족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터키는 자국 내 쿠르드족 무장독립 세력에게 주는 영향력을 차단하려 했다. 시리아 쿠르드족을 도륙하던 이슬람국가를 방조했고, 국경을 봉쇄해 쿠르드족으로 가는 지원도 차단했다.

내전은 정부군-친서방 반군-이슬람국가가 물고 물리는 삼파전으로 진화했다. 미국 등 서방은 아사드 정부가 아니라 이슬람국가가 더 위급한 적임을 뒤늦게 깨달았다. 대규모 미군 파병 요구가 빗발쳤지만,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미군 파병이 오히려 이슬람국가 성장을 촉진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이슬람국가에 맞설 의지와 이유를 가진 현지 세력이 필요했고, 시리아 쿠르드족이 간택됐다. 시리아 쿠르드족 민병대 인민수비대(YPG)를 주축으로 시리아민주군(SDF)이 결성돼, 이슬람국가 격퇴를 위한 지상전이 전개됐다. 이라크전쟁 이후 미국이 중동에서 취한 가장 현명한 정책이었다.

시리아민주군이 결성될 때 러시아도 2015년에 파병해, 아사드 정부를 회생시키는 주춧돌을 놓았다. 러시아 파병으로 회생한 시리아 정부군, 그리고 시리아민주군이 이슬람국가 격퇴전을 수행했다. 이라크에서도 시아파 정부가 전열을 정비해, 이슬람국가를 몰아내기 시작했다. 지난 3월23일 시리아민주군이 이슬람국가의 마지막 근거지 바구즈를 점령하면서, 이슬람국가의 물리적 영역은 소멸됐고 시리아 내전도 일단락됐다.

아사드 정부는 내전에서 살아남았으나, 영토의 3분의 1인 북동부 지역이 쿠르드족 통제로 넘어갔다. 북서부 접경지대에도 터키가 진군했고, 알카에다 잔존 세력인 ‘하야트 타흐리르 알샴’이 아직 둥지를 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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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의 침공 길 열어준 미군 철군

이라크전쟁에 이은 시리아 내전은 양대 진영의 격돌이었다. 미국이 뒤에 있는 사우디아라비아 등 수니파 국가 대 러시아와 중국이 지원한 이란-아사드 정권-레바논 헤즈볼라로 이어지는 시아파 연대의 대결이었다. 후세인 정권 붕괴와 아사드 정권 약화라는 세력 공백을 두 세력이 채우려 격돌했고, 결과는 시아파 연대의 판정승이었다. 이라크에는 시아파 정부가 들어섰고, 시리아에서는 아사드 정부가 회생했고, 그 결과 이란과 러시아의 영향력이 커졌다.

그러나 시리아 쿠르드족은 중동의 세력 공백이 완전히 채워지지 않았음을 상징한다. 쿠르드족은 시리아 영토 3분의 1을 차지했으나 그들의 미래를 어느 나라도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쿠르드족이 흩어진 터키·시리아·이란·이라크 정부 모두에 공통분모가 있다면 ‘반쿠르드’라는 것이다. 쿠르드 자치독립은 이들 나라에 영토 보전성의 파탄을 의미한다. 이라크전쟁 결과로 이라크에서 쿠르드자치정부가 수립됐고, 이라크 쿠르드족이 2018년 말 주민투표로 분리독립을 선언했다. 하지만 이라크 정부는 이란과 터키의 지원을 받고는 쿠르드족 지역에 침공해 그들 자치정부 영토의 40%를 점령하고, 자치정부의 기능과 권력을 대폭 줄였다.

이라크 쿠르드족의 운명은 시리아 쿠르드족 운명의 예고편이었다. 이라크 정부의 쿠르드족 탄압에 발을 담근 터키는 쿠르드족이 사는 네 나라 중 쿠르드 무장독립 투쟁이 가장 격렬한 곳이다. 터키 내 쿠르드족 분리독립을 추구하는 쿠르드노동자당(PKK)은 1978년 결성 이후 터키 정부와 무장투쟁을 벌여, 4만 명이 죽고 난민 수십만 명이 생겼다. 터키는 이슬람국가 격퇴전이 끝나던 지난해부터 시리아민주군의 주축인 쿠르드 민병대 인민수비대가 쿠르드노동자당과 연계된 테러 세력이라며, 자국의 안보 위협을 좌시하지 않겠다고 공언해왔다. 터키로서는 시리아 내전으로 확보한 시리아 내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시리아 쿠르드족을 손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미 이슬람국가 격퇴가 확실하던 지난해 12월 시리아에서 미군 철군을 발표했다.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의 사임까지 부른 반발로 그 결정은 일시 유보했다. 트럼프의 철군 결정은 그가 대선 때부터 밝힌 중동 철군의 하나고, 미국의 대외 개입에 반발하는 보수적인 중하류 백인 지지층을 의식한 조처다. 악화하는 터키와의 관계도 한몫했다.

트럼프는 터키민족주의를 내세운 ‘술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 사사건건 마찰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중요 회원국인 터키는 미국의 세계 전략에 지정학적 가치를 지닌 국가다. 에르도안은 최근 러시아제 방공망 S-400을 미국의 강력한 반발에도 도입했다. 나토의 방어체계에 구멍이 나는 사건이다.

시리아 주둔 미군은 터키가 시리아 쿠르드족을 공격하는 데 장애였다. 미국의 어느 대통령, 어느 행정부도 터키와 쿠르드 중 양자택일을 강요받는다면 터키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결국 트럼프는 솔직한 미국의 민낯을 보여줬다. 10월6일 에르도안과 통화한 뒤 전격적으로 다시 시리아에서 미군 철군을 발표했고, 터키도 곧 시리아 쿠르드족 공격을 발표했고 감행했다.

중동 대신 중국, 축소되는 미국 입지

시리아 쿠르드족 당국은 터키의 침공이 임박하자, 러시아에 시리아 정부군 지원을 중재해달라고 요청했다. 자신들을 탄압했던 아사드 정부에 투항한 것이다. 아사드 정부에는 쿠르드족이 통제하던 지역을 다시 접수할 기회인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미군이 철군한 자리에 러시아가 행보를 넓혔다. 러시아 국방부는 터키군과 시리아군의 충돌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시리아에 주둔하는 러시아군을 양쪽 군의 ‘접촉선’을 따라 배치해 정찰 활동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사드 정부를 지원하던 러시아군의 임무가 시리아 분쟁을 관리하는 쪽으로 격상된 것이다.

이라크전쟁 이후 각종 중동 분쟁은 이라크전쟁이 초래한 중동의 세력 공백을 메우려는 관련국들의 세력 투쟁이었다. 이제 쿠르드족을 희생양 삼아 마지막 세력 획정을 진행하는 단계로 돌입하고 있다. 이 분쟁을 초래하고 가장 많은 인적·물적 자원을 투입한 미국은 지금 무엇을 얻었나? 미국이 가장 막으려 했던 이란의 영향력은 커지고, 중동에서 미국이 수행하던 중재 역할은 러시아가 떠맡으려 한다.

셰일에너지 개발로 미국이 에너지 수출국으로 전환하면서, 미국에 중동의 전략적 가치는 상대적으로 작아졌다. 미국 조야는 전략적 가치가 상대적으로 약화된 중동에서 개입을 줄이고, 부상하는 중국에 대처하기 위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집중해야 한다는 데 이견을 달지 않고 있다. 하지만 미국이 정점에 있는 글로벌 분업 체계에서 중동 석유는 여전히 최대 에너지 공급처다. 미국으로서는 중동 수렁에 빠졌던 미국 개입을 질서정연하게 수습하고 영향력을 보전해야 한다. 하지만 이란과의 국제 핵협정 일방적 파기와 시리아 철군으로 상징되는 트럼프의 중동 정책은 중동 분쟁을 악화하고 미국 입지를 위축시키고 있다. 터키의 쿠르드족 침공이 그 결과고, 증거다.

정의길 한겨레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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