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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무역전쟁의 본질… “양국 상호 의존 발전모델은 끝났다”
등록 2019-05-20 14:13 수정 2020-05-03 04:29
2017년 11월9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7년 11월9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중 무역전쟁에서 중국 쪽 사령탑인 류허 부총리가 무역협상을 위해 5월9일 미국 워싱턴으로 향할 무렵 중국 소셜미디어에는 류허 부총리를 청나라 말 청일전쟁 패배 뒤 시모노세키 조약을 맺어야 했던 리훙장에 비유하는 글이 퍼졌다. 1895년 청일전쟁에서 패배한 청은 시모노세키조약을 통해 일본에 대만을 넘겨주고 거액의 배상금을 내야 했다. 무역전쟁을 빌미로 중국 주권을 침해하려는 미국의 ‘불평등 조약’ 요구에 굴복하는 것은 과거 ‘100년의 굴욕 역사’를 되풀이하는 것이라는 중국 내 반미 감정과 강경론이 번졌다.

미, 중 차세대 성장동력 차단 안간힘

1년 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방아쇠를 당긴 미-중 무역전쟁이 이제는 노골적 패권 경쟁과 신냉전 구도로 확전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의 차세대 성장동력과 발전모델의 ‘급소’를 겨냥하면서 중국 굴기(부상)를 막으려 하고, 중국은 ‘주권 침해’에 반발하며 결사항전의 태세로 맞 선다.

미국은 중국에 국유기업과 첨단산업 분야에 대한 보조금 지급 중단, 지식재산권 보호, 기술이전 요구 금지, 금융시장 개방, 비관세장벽 철폐 등을 요구했다. 특히 중국 당국이 미래 산업을 주도하는 대형 국유기업과 첨단산업 연구개발 분야에 대규모 보조금과 금융 특혜를 주고, 미국 등 외국 기업의 기술을 요구하는 것을 막는 데 초점을 맞췄다. 지난해 12월1일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트럼프-시진핑 정상회담에서 관세전쟁 ‘휴전’에 합의한 뒤 계속된 협상에서 중국은 미국의 요구 대부분을 수용하는 타협안에 잠정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미국은 합의안 이행을 중국 국내법 개정으로 보장하겠다는 내용을 합의문에 명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최근 워싱턴에서 열린 11차 협상을 앞두고 중국 지도부가 협상안을 검토하는 자리에서는 류허 부총리에게 “지나친 양보를 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결국 미국의 국내법 개정 요구를 주권 침해로 여긴 시진핑 국가주석이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며 잠정 합의안 가운데 3분의 1 정도를 빼도록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고를 받고 분노한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이 협상안을 뒤집었다고 비난하며, 2천억달러(약 238조원)어치 중국산 제품에 25%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트윗을 5월5일(현지시각) 날렸다. 결국 5월9~10일 워싱턴에서 진행된 협상은 ‘노딜’로 끝났고, 미국은 예고한 대로 관세를 올렸으며 나머지 중국산 수입품 전체에 해당하는 3250억달러어치에도 25% 관세 부과를 강력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압박한다. 중국 정부도 5월13일 밤 ‘6월1일부터 600억달러 규모의 미국산 제품에 5~25% 관세를 부과하겠다’며 반격에 나섰다.

중, 미 요구는 “주권 침해” 반발

미국과 중국의 ‘벼랑 끝 전술’ 기싸움이 이어지면서 세계경제도 패권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빨려 들어가고 있다. 미-중은 과연 타협할 수 있을까? 그리고 타협은 과연 패권 전쟁의 ‘종전 선언’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여기서 잠시 이번 전쟁의 출발점으로 돌아가보자.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미-중 관계는 고비를 맞고 있었다. 2001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이후 중국의 막대한 대미 무역 흑자에 대한 미국의 불만은 계속됐다. 하지만 미국을 중심으로 한 신자유주의 글로벌 경제체제가 저렴한 노동력이 있는 생산기지로서 중국을 활용하는 국제적 분업 체제가 이미 공고화된 상황이었다. 상당수 전문가들이 미-중 관계를 “싸우지만 헤어질 수 없는 부부”에 비교하면서, 양국이 경제적으로 너무나 깊고 넓게 얽혀 있어 ‘신냉전’은 불가능하다고 분석한 이유다.

트럼프와 시진핑이라는 새로운 지도자가 들어서면서 ‘신시대’가 펼쳐졌다. 중국에서는 시진핑 지도부가 ‘중국제조 2025’ 전략을 내세워 첨단기술 분야와 국유기업에 대한 투자를 크게 늘리고, ‘중국몽’과 ‘일대일로’ 등의 정책을 펼치며 2050년까지 미국을 뛰어넘는 세계 최강대국이 되겠다는 의도를 과시했다. 미국에서도 더는 중국의 도전을 묵과할 수 없고, 지금이 아니면 중국의 부상을 막을 수 없다는 위기감이 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캠페인 때부터 미국인들 사이에 퍼진 중국에 대한 공포와 우려를 부추기며 지지율을 끌어올렸다.

트럼프-시진핑, ‘신냉전 불가’ 전망 뒤엎어

애초 중국 지도부는 트럼프라는 ‘장사꾼’을 만만하게 생각했다. 트럼프가 제기한 무역 적자 문제는 미국산 제품을 대량 사주는 정도의 타협책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실제 2018년 5월과 7월 류허 부총리가 이끄는 중국 대표단은 미국 제품을 대규모로 사는 것을 중심으로 미국 대표단과 원칙적인 합의를 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두 차례 모두 거부해 타협은 무산됐다. 중국은 그제야 미국의 핵심 요구는 무역 적자 축소보다 훨씬 큰 중국의 첨단 전략산업 무력화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반도체와 통신장비의 기술 우위는 누가 미래 산업의 주도권과 군사적 패권을 쥐게 되느냐와 직결된다. 인공지능과 자율주행차를 비롯한 미래 산업, 금융, 무기 시스템도 모두 네트워크와 반도체 기술이 결정한다. ‘중국제조 2025’는 중국 정부가 나서서 이 분야를 적극적으로 육성하려는 것이고, 미국은 이를 포기하라고 요구했다.

미국의 전략 목표는 첨단기술 패권 유지와 함께 중국의 발전모델 자체를 바꾸는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성장모델을 ‘국가자본주의’로 보면서, 중국 정부가 중국 국유기업에 특혜를 주고 외국 기업에 불리한 관행을 유지하고, 금융시장을 통제하고, 중국 시장에 진출한 외국 기업에 강제로 기술이전을 요구하는 식의 불공정 경쟁으로 초고속 성장을 한 모델 자체를 바꾸라는 요구다.

트럼프, 지지층 타격 최소화 관건

쇠퇴하고 있지만 여전히 막강한 미국과 부상하고 있지만 약점이 많은 도전자 중국은 이미 패권 경쟁이라는 전장에 깊숙이 발을 들여놓았다. 중단기적으로 보면, 미국과 중국 모두 조기 타협이냐 장기전이냐를 결정할 열쇠는 국내 문제다.

특별검사 보고서 위기는 넘겼지만 여전히 여러 사법 조사에 쫓기는 트럼프에게 재선은 절박하다. 트럼프는 다음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중국으로부터 큰 양보를 받아내면서도, 미국 경제가 타격 입지 않고, 지지층 손해도 최소화하는 복잡한 게임을 벌여야 한다.

지금까지 트럼프 행정부의 중국 견제 정책에 대해서는 미국 내에서도 이례적인 초당적 지지가 있었다. 재계에서도 트럼프의 중국 때리기가 중국의 불공정한 경제적 관행에 균열을 내고, 중국 시장 개방을 넓히는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미-중이 본격적인 관세 보복전에 나서면서 미국의 소비자와 기업, 특히 트럼프의 핵심 지지층인 농민들의 타격이 심해진다면, 트럼프의 고민도 깊어지게 된다.

시진핑 주석이 직면한 국내 상황은 훨씬 미묘하다. 현재 중국 경제의 문제는 내부에서 누적된 경제구조의 모순에서 비롯된 부분이 더 크다. 지방정부 부채를 비롯해 천문학적 부채가 쌓였고, 정부의 대규모 투자를 동력으로 하는 성장모델을 고수하기도 힘들다. 미국에 수출해 거둔 막대한 달러 외환보유고로 미국 국채를 사들여 미국 소비자가 중국 물건을 사게 하는 모델도 한계에 부닥쳤다. 이 상황에서 미국의 고관세 부과로 중국 경제가 예상보다 큰 타격을 입게 될 경우, 시진핑 지도부는 겉으로 강경한 태도를 보이면서도 실제로는 타협을 모색할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중국의 한 경제 전문가는 에 “지도부에서 미국의 중국산 제품에 대한 고율 관세가 미치는 영향을 이미 시뮬레이션을 해, 감내하기 어려울 만큼 심각한 타격이 예상된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조만간 중국이 타협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왼쪽부터) 미–중 무역협상 이틀째인 5월10일 미국 워싱턴에서 류허 중국 부총리(왼쪽)가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 대표의 말을 듣고 있다. 5월15일 미국 뉴욕 스태튼섬에서 기중기로 컨테이너를 운반하고 있다. 연합뉴스

(왼쪽부터) 미–중 무역협상 이틀째인 5월10일 미국 워싱턴에서 류허 중국 부총리(왼쪽)가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 대표의 말을 듣고 있다. 5월15일 미국 뉴욕 스태튼섬에서 기중기로 컨테이너를 운반하고 있다. 연합뉴스

시진핑, 내부 사회·경제 모순이 변수

다만 이 경우에도 내부의 정치적 상황이 변수다. 시진핑 주석이 ‘1인 체제’를 구축하고 정치·사회적 통제를 강화하지만 시진핑 지도부의 정책 방향에 대한 엘리트나 중산층, 민영기업가들의 불만은 광범위하게 퍼진 상태다. 시진핑 주석 집권 초기에는 부패 척결과 개혁 청사진으로 호응을 얻었지만, 이후 경제구조의 근본적인 개혁이나 빈부 격차 해결 등에서 눈에 띄는 성과가 없다. 이런 가운데 일상생활에 대한 감시와 통제가 심해지고, 대결적인 대외 정책으로 긴장이 높아지고 경제가 타격 입고, 국가주석 임기 제한을 철폐하고 시 주석의 권력을 강화하는 데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올해는 5·4운동 100주년, 천안문 사태 30주년 등 민감한 기념일이 줄지어 있다. 당의 권력이 확고하고 사회통제가 삼엄한 가운데 반정부 세력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거의 없지만, 중국 당국은 노동운동가와 학생운동가를 계속 체포·탄압하고 검열을 강화하는 등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중국 당국은 경기 침체가 장기화해 기업들이 문을 닫고 대량 실업이 일어나는 상황을 가장 우려할 것이다.

일단 중국 당국은 관영언론을 총동원해 미국을 비난하고 당을 중심으로 단결하자며 애국주의를 고취하는 데 힘을 쏟는다. 이런 분위기에서 시진핑 주석은 미국의 ‘불평등조약’ 압박에 굴복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는 무역협상 타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 중국 지도부는 미국에 굴복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형태의 타협안을 찾기 위해 고심할 것이다.

장기적으로 보면, 올해 미-중이 협상을 타결해 무역전쟁에서 ‘휴전’하더라도, 패권 경쟁은 수십 년 동안 첨단기술 경쟁, 대만·남중국해 등을 둘러싼 전략적 대결, 군비 경쟁 등 다양한 전선에서 계속될 것이다.

올해 잘 넘겨도 ‘패권 경쟁’ 지속될 것

아울러 ‘신냉전’을 막는 최후의 안전판으로 여겨졌던 미-중의 글로벌 분업 체제도 해체될 조짐을 보인다. 미국 정부는 미국 기업들이 생산기지를 중국에서 동남아 등 다른 곳으로 이전하거나 미국으로 돌아오도록 촉구하며 미-중 경제 의존도를 낮추려 하고 있다. 미-중이 협력하고 상호 의존하며 발전하는 ‘차이메리카’ 시대는 끝났다는 선언이 잇따른다.

중국 인터넷에서는 리뤄구 전 중국수출입은행장의 지난 1월 연설문이 주목받고 있다. “무역전쟁의 본질은 미국이 생산체인의 상당 부분을 중국 밖으로 이전하고, 중국의 현재 발전 노선을 바꾸도록 압박하려는 것이며, 이러한 제도의 전쟁, 노선의 전쟁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이다.

박민희 통일외교팀장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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