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인도네시아 대선에서 ‘조코위 신드롬’을 만들어낸 조코 위도도(57·이하 조코위) 대통령이 4월17일(현지시각) 치른 대선에서 재선에 성공하리라 예상된다. 야당 대선 후보인 프라보워 수비안토(67) 대인도네시아운동당(그린드라당) 총재가 2014년 대선 때처럼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며 패배를 인정하지 않지만, <ap> 통신 등 외신은 표본 개표 결과를 토대로 일제히 “조코위가 재임을 준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당선인은 “다시 단결하자”고 하지만
인도네시아는 선거관리위원회의 허가 아래 40여 개 여론조사기관이 표본 투표소의 투표함을 실제로 개봉하는 방식으로 표본 개표를 한다. 표본 개표는 비공식 집계로, 공식 개표 결과는 다음달 발표된다. 각종 여론조사기관이 발표하는 표본조사와 출구조사 결과는 ‘조코위의 재집권’으로 모인다. 인도네시아 최대 일간 , 여론조사기관 인도 바로미터, 싱크탱크 CSIS-Cyrus(사이러스) 네트워크 등은 기호 1번이 55% 안팎, 기호 2번은 45% 안팎을 득표한 것으로 집계하고 있다.
이날 오후 5시께, 조코위는 마루프 아민 부통령 후보와 함께 자카르타 극장에 모인 지지자와 취재진 앞에 서서 선거 승리 대신 감사와 당부의 말을 전했다. “가장 먼저 민주주의의 축제가 정직하고 공평하게 치러질 수 있게 한 선거관리위원회, 총선감독기구, 총선조직명예위원에게 감사드린다. 선거가 안전하고 질서 있게 치러질 수 있도록 한 인도네시아 국군, 경찰에게도 감사 인사를 전한다. 대선과 총선 후 다시 한 나라의 형제자매로 단결하자.” 재임 가능성이 큰 조코위의 ‘공식 일성’은 4월18일 오전까지 인도네시아 텔레비전과 인터넷 매체, 소셜미디어를 통해 반복해서 공유되고 있다.
4월17일 오전 7시께, 수도 자카르타의 국가행정국 앞마당에 마련된 감비르 제8투표소는 이른 아침부터 내외신 취재진과 경찰, 시민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전세계 최대 무슬림 국가인 인도네시아가 대통령을 포함해 대의민주제로 뽑을 수 있는 모든 대표자를 한꺼번에 결정하는 날이다.
아침 7시부터 오후 1시까지 약 1억9078만 명의 유권자가 전국에 설치된 80만9500곳의 투표소에서 5년 임기의 △대통령과 부통령 △575명의 국민대표회의 의원 △136명의 지역대표회의 의원 △2207명의 주지방의회 의원 △1만7610명의 시·군 단위 지방의회 의원까지 총 2만258명의 시민 대표를 뽑았다. 재외 유권자 약 209만 명은 이보다 앞선 4월8일부터 14일까지 전세계 130개 도시에서 투표를 마쳤다.
조코위 대통령 부부가 투표한 감비르 제8투표소는 아침부터 경비와 보안이 삼엄했다. 예상보다 이른 10시가 조금 넘은 시각, 경호원들에게 둘러싸인 채 부인 이리아나 위도도와 투표소에 도착한 조코위는 시종 편안한 모습이었다. 사진 자세와 인터뷰를 원하는 취재진, ‘셀피’를 같이 찍고 싶어 하는 시민들의 요구에 모두 응했다.
조코위는 투표 직후 소감과 계획을 묻는 인도네시아 취재진에게 특유의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낙관적이다. 몇 시간만 있으면 결과를 볼 수 있으니 기다리자”고 했다. 2014년 대선 당시와 비교해 언론을 대하는 태도에 여유가 엿보였다. 지난 5년간 쌓인 최고위급 정치인으로서의 경험과 국정 운영에 대한 확신, 거기에 꾸준한 지지율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자신감으로 보였다.
‘누가 더 오른쪽인가’ 두고 경쟁한 후보들
조코위는 중부 자바섬의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난 가구 수출 사업가 출신 정치인이다. 지난 대선에서 시민사회의 열렬한 지지를 등에 업고 철권통치자 수하르토 전 대통령의 사위이자 군사령관 출신 프라보워를 눌렀다. 이날 정오께 자카르타 도심 거주지역인 캄풍 발리(발리 마을) 제40투표소 인근 그늘에 시민들이 모여 앉아 다과와 식사를 나누고 있었다. 투표가 끝나는 오후 1시에 곧바로 시작되는 현장 집계 결과를 함께 지켜보기 위해서다. 2014년에 이어 올해도 기호 1번 조코위를 뽑았다는 주민 트리(30)는 “그가 해온 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하려고 또 선택했다. 조코위가 5년간 만든 변화와 개혁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2014년 대선에서 조코위의 승리가 곧 시민사회의 승리로 해석됐던 것과 달리, 올해 대선에서 일어난 ‘민심 이반’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조코위가 정치적 조직 기반을 얻기 위해 엘리트 정치 공학에 편승했다는 비판이 높기 때문이다. 조코위의 새 임기 5년 내내 시민사회가 매달려온 경제적 불평등, 소수자 박해, 인권침해 문제의 해결을 외면했다는 비판이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지난 대선에서 조코위를 지지했던 캄풍 발리 주민 펜디(40)는 이번 대선에서 기호 2번 프라보워를 선택했다. 그는 “경제 사정이 전혀 나아지질 않고 있다. 물가는 오르는데 돈 벌기는 더 힘들다. 루피아 환율도 형편없고. 이렇게 자원이 풍부한 나라 사람들이 가난한 것은 리더십의 문제다. 문제를 해결하고 변화를 주려면 새로운 사람으로 바꿔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의 말에 동의하듯 오토바이 택시기사, 일용직 노동자, 임금노동자로 일하는 1만여 명이 거주하는 이곳 캄풍 발리의 빠른 집계 결과는 대부분 프라보워의 득표가 우세한 것으로 나왔다.
싱가포르 싱크탱크 ‘ISEAS-유소프 이삭 연구소’의 방문연구원인 마데 수프리아트마는 이번 선거를 ‘자유시장주의자로서 경제정책에 별 차별성이 없는 두 후보가 정체성의 정치, 즉 누가 더 이슬람 보수주의자인가를 두고 경쟁한 오른쪽으로의 질주’라고 평가했다. 그는 5차례의 대선 후보 생방송 TV토론에서도 빈곤, 소득분배, 지역 간 불평등 문제를 다루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조코위 대통령의 첫 5년 임기는 인프라 사업이 활발하게 이뤄졌다는 성과가 있지만, 실업 문제, 질 낮은 교육, 사회정의 등을 개선하지 못했고, 인권 문제는 “완전히” 외면했다고 봤다.
인도네시아 민주주의 인권운동가 마리아 수마르시(67)는 아예 “군인들이 시민들의 삶 곳곳에 침투한 수하르토의 신질서 시대로 돌아갔다. 조코위가 신질서 시대에 정당성을 부여했다”고 말한다. 5년 전 조코위를 지지했던 그는 올해 시위로서의 기권, 혹은 적극적인 투표 거부를 뜻하는 ‘골풋’(Golput·총선투표 거부자)을 택했다. 조코위가 2014년 대선 당시 “당선되면 인권침해 문제를 조사하고 ‘불처벌’을 종식하겠다”고 약속해놓고, 당선되자마자 국가폭력의 핵심 가해자인 퇴역 장성들을 정부 요직에 임명한 탓이다.
‘총선투표 거부자’ 된 인권운동가
그는 거리집회를 하며 국가폭력과 인권침해 가해자 처벌, 정의와 진실을 향한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1998년 11월13일, 대학생 아들 와완이 민주개혁 시위 중 군경의 총에 맞아 숨진 스망기 제1사건 이후 한 주도 거르지 않고 이어온 목요집회는 오늘도 오후 4시 대통령궁 앞에서 열릴 예정이다.
자카르타(인도네시아)=글·사진 이슬기 자유기고가 skidolm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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