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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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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병력 경제 인력으로… 김정은 ‘개혁·개방의 길’

원산 영예군인 가방공장 등 경제현장 잇따라 현지지도…

베트남도 군이 개혁·개방 정책 든든한 전진기지 역할
등록 2018-07-31 17:10 수정 2020-05-03 04:28
정전협정 체결 65주년을 맞은 7월27일, 한국전쟁 당시 북쪽에서 숨진 미군의 유해가 강원도 원산 갈마비행장에서 경기도 오산 미 공군기지로 송환되고 있다. 연합뉴스

정전협정 체결 65주년을 맞은 7월27일, 한국전쟁 당시 북쪽에서 숨진 미군의 유해가 강원도 원산 갈마비행장에서 경기도 오산 미 공군기지로 송환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군 C-17 글로브마스터 수송기가 경기도 오산 미 공군기지 활주로를 박차고 이륙했다. 한국전쟁을 멈춘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꼭 65년째를 맞은 7월27일 오전 5시55분께다. 수송기에는 유엔사령부 관계자와 미 국방부 전쟁포로·실종자 전담요원이 타고 있었다. 이들의 행선지는 북한 땅 강원도 원산의 갈마비행장이다.

인민군 공장 등 19차례 현지지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가운데)이 강원도 원산 영예군인(상이군인) 가방공장을 현지지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가운데)이 강원도 원산 영예군인(상이군인) 가방공장을 현지지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군사적 요충지인 원산은 한국전쟁 때 격전의 현장이었다. 미군은 1951년 2월16일부터 정전협정이 체결·발효된 1953년 7월27일까지 모두 861일 동안 원산을 철저히 봉쇄했다. 함포사격과 공중 포격이 무시로 가해졌다. ‘원산폭격’이란 생경한 말이 만들어진 것도 이 때문이다. 전쟁이 끝났을 때 원산에 온전히 남아 있는 건물이 없을 정도였다. 정전협정 체결일에 맞춰 미군 수송기가 원산에 착륙한 것을 눈여겨보는 이유다.

갈마비행장은 한국전쟁 뒤 보수를 거쳐 군 전용 공항으로 사용됐다. 하지만 2013년 7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시에 따라 대대적인 확장공사를 거쳐, 2015년 9월부터 민간항공기도 이용하는 국제공항으로 탈바꿈했다. 김 위원장은 원산의 명사십리 해변(여름철)과 마식령 스키장(겨울철)을 묶은 대규모 관광특구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갈마비행장은 그 배후 공항이다.

“오래전에 벌써 세 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해양국의 체모에 맞게 세계적인 해안 관광도시를 갈마반도에 꾸릴 휘황한 설계도를 무르익히신 경애하는 최고 영도자 동지께서는 올해 신년사에서 군민이 힘을 합쳐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건설을 최단기간 내에 완공하는 데 대한 전투적 과업을 제시하시었다.”

북한 노동당 중앙위 기관지인 은 지난 5월26일치에서 김 위원장의 원산 현지지도 소식을 전하며 이같이 보도했다. 김 위원장의 방문 직후인 6월4일엔 건설공사가 한창인 명사십리 해안가에서 대규모 군민 궐기모임이 열렸다. 은 6월5일치에서 “노두철 내각부총리 겸 국가계획위원장과 관계 부문 일꾼들, 김수길 총정치국장을 비롯한 무력기관 일꾼들이 참가한 가운데,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건설을 내년 태양절(2019년 4월15일)까지 최상의 수준에서 완공하기 위한 군민 궐기모임을 진행했다”고 전했다.

당시 행사 모습을 담은 사진을 보면, 참석 인원 가운데 절반가량이 군복 차림이었다. 행사에 보고자로 나선 이도 김수길 인민군 총정치국장이었다. 그는 “군인 건설자들이 건설 돌파구의 앞장에 서서 건설물을 가장 완벽하게 구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규모 군병력을 건설공사에 투입하겠다는 뜻이다. 앞서 김 위원장이 ‘최단기간 완공’을 주문하며 ‘군민이 힘을 합쳐’라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역사적인 6·12 북-미 정상회담과 3차 방중(6월20일) 이후 김 위원장은 이른바 ‘민생 행보’에 집중하고 있다. 6월30일 평안북도 신도군 시찰을 시작으로 7월26일까지 모두 19차례나 ‘현지지도’에 나섰다. 이 가운데 △원산 영예군인 가방공장(7월26일) △인민군 제525호 공장(7월25일) △인민군 제810부대 산하 락산 바다연어 양어사업소와 석막 대서양 연어종어장(7월17일) △인민군 제1524부대(6월30일) 등이 군과 직접 관련 있는 장소였다.

군 ‘무력’이 아니라 ‘생산력’으로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은 인민군 1524부대 시찰 때 김 위원장이 “군부대의 콩농사 실태를 요해”했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은 이어 “이 군부대처럼 외진 곳에 떨어져 있는 전투 단위들에는 콩 가공설비도 잘 차려주어 군인들에게 콩 음식을 다양하게 해먹이는 데도 관심을 돌려야 한다”며 “다수확 우량품종의 농작물과 남새 작물(채소)을 병영 주변에 많이 심고 도입해 덕을 보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군의 주 업무인 ‘확고한 전투태세’ 등에 대해선 언급이 전혀 없었다.

인민군 제810부대 산하 락산 바다연어 양어사업소는 북한이 동해에서 연어 양식에 처음 성공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석막 대서양 연어종어장은 락산 양어사업소에 치어를 보내는 종어기지다. 군이 연어 양식을 주도한다는 뜻이다. 은 인민군 제525호 공장에 대해선 “맛 좋고 영양가 높은 띄운콩”을 생산하는 곳이라고 소개했다. 역시 군이 ‘무력’이 아니라 ‘생산력’이란 얘기다.

눈여겨볼 대목은 또 있다. 김 위원장은 7월17일 함경북도 경성군에 자리한 온포휴양소 현지지도 때 부실한 시설 관리 등을 질책한 뒤 “인민들의 편의와 높아가는 문화·정서적 요구가 최상의 수준에서 구현된 휴양지로 특색 있게 잘 꾸려보자. 인민군대가 다음 해에 멋들어지게 건설해 우리 인민들에게 선물하게 하겠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같은 날 방문한 함경북도 경성군 중평리에선 군 비행장을 이전한 부지에 대규모 남새 온실농장 건설 계획을 밝히며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하는 거창하고 방대한 규모의 남새 온실농장 건설이므로, 인민군대가 전적으로 맡아 불이 번쩍 나게 해제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군함을 도맡아 건조해온 청진조선소를 방문해선 “새로 계획하고 있는 현대적인 화객선(여객선)을 건조하는 사업을 이곳 조선소에 맡길 것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이렇게 지적했다.

“김 위원장의 잇따른 현지지도는 이른바 ‘인민대중 제일주의’를 강조하기 위한 행보로 보인다. 노동당 중앙위 7기3차 전원회의(4월20일)에서 ‘핵·경제 병진노선’에서 ‘경제건설 제일주의’로 돌아선 이후 특히 눈에 띄는 움직임이다. 김 위원장은 3차례 중국 방문으로 대외정책에 자신감이 붙은 것으로 보인다. 체제 안전 보장은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해결하겠다고 공언한 만큼 이제는 경제적 성과를 내는 게 가장 중요하다. 북한의 군대는 단순한 ‘무력 단위’가 아닌 ‘생산과 건설의 단위’이기도 하다. 베트남 등 앞서 개혁·개방으로 나아간 사회주의국가에서도 경제발전 초기 군의 역할이 컸다.”

구 교수의 지적처럼 ‘베트남 모델’은 북한 개혁·개방의 중요한 지침으로 삼을 만하다. 두 나라 모두 미국과 전쟁을 벌였고, 장기간 외교적 봉쇄에 직면해야 했다.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으로 ‘새로운 북-미 관계’를 모색하는 북한에, 미국과 외교관계 복원(1995년 7월) 이후 개혁·개방 정책이 더욱 탄력을 받은 베트남의 경험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베트남이 개혁·개방 초기 군을 앞세워 경제적 성과를 냈다는 점도 마찬가지다.

“베트남 인민군은 1944년 12월22일 창군 이래 ‘전투의 군대, 생산의 군대, 사업의 군대’ 구실을 해왔다. 지난 역사에서 베트남 인민군은 민족해방과 통일을 위해 맡겨진 사명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이제 베트남은 평화의 시기에 접어들었다. 경제를 개발하는 게 사활적 사명이 됐다. 따라서 생산과 사업이란 군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2001년 8월 말 일본 도쿄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행사에서 응우옌 응옥 탄 베트남 국방대학교 부총장(육군 소장)은 ‘군의 새로운 역할’이란 제목으로 이런 발표를 했다. 그는 “베트남 인민군은 ‘생산의 군대’란 측면에서 국가경제 발전을 위한 노력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왔다”며 “자연환경 때문에 생산활동이 어려운 지역에 군이 뛰어들어 건설을 했고, 군이 운영하는 공장에서 소비재 상품을 생산해 인민의 삶의 질을 높였다”고 덧붙였다.

‘사업의 군대’란 측면에선 어떨까? 그는 “베트남 인민군은 정기적으로 대민 지원사업을 펼쳐왔다. 수색·구조 작업을 비롯한 재난 구호활동과 자연재해 예방활동은 물론, 지역 정부와 함께 빈곤과 문맹 퇴치 사업도 적극적으로 벌였다”고 강조했다. 군이 개혁·개방 정책의 든든한 전진기지였다는 뜻이다.

본격적 개혁·개방 위해선 군축 불가피
북한이 군병력을 대거 투입한 평양 여명거리 완공식이 열린 4월13일 주민들이 주거단지를 둘러보고 있다. 로이터

북한이 군병력을 대거 투입한 평양 여명거리 완공식이 열린 4월13일 주민들이 주거단지를 둘러보고 있다. 로이터

베트남 공산당은 1986년 12월 열린 제6차 당대회에서 이른바 ‘사회주의적 시장경제’를 내세운 ‘도이머이’ 정책을 공식 채택했다. 당시 베트남군의 정규군은 126만 명으로, 중국·인도·소련·미국에 이어 병력 규모 면에서 세계 5위였다. 여기에 예비군과 국경수비대, 특수전 병력까지 포함하면 전체 인구의 8%에 가까운 500만 명이 군 소속이었다.

개혁·개방 정책 채택 직후부터 정규군 병력이 빠른 속도로 줄었다. 경제활동 참여 인구를 늘려야 했기 때문이다. 불과 6년 만에 정규군 병력은 50만 명 이하까지 줄었다. 1989년엔 법령 정비로 군이 운영하는 공장 등에 국영기업과 똑같은 법적 지위를 부여했다. 또 1998년 말엔 군병력이 주둔하는 모든 지역에 ‘경제군사 지역’을 지정했다. 칼라일 세이어 오스트레일리아 국방대학교 교수는 2000년 내놓은 ‘베트남 인민군의 경제 및 상업적 역할’이란 논문에서 이렇게 전했다.

“베트남 서남부군 제9관할구역(MR9) 사례를 보자. 베트남 인민군의 경제활동은 크게 두 가지 형태로 이뤄진다. 첫째, 경제적 생산활동을 전담하는 부대다. 군이 운영하는 기업과 국영농장, 국영 육림조합 등이다. 이들 조직은 자체적으로 회계 업무뿐 아니라 군 인력의 생계와 투자 및 해당 지역 국방예산까지 떠맡았다. 1989년에만 제9관할구역에서 17개 부대가 여기에 해당됐다. 둘째, 정규군 병력이 소규모 농업생산을 하는 형태다. 부대 인근에서 작물을 재배하거나, 생산활동을 전담하는 부대와 제한적인 형태로 협력하는 방식이다.”

인민군 제810부대(연어 양식)와 인민군 제525호 공장(띄운콩 생산)이 전자에 해당한다면, 김 위원장이 콩 농사와 남새작물 재배를 강조했던 인민군 제1524부대는 후자에 가깝다. 북한에서도 이미 초기적 형태의 ‘베트남 모델’이 시행되고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따로 있다.

국방부가 2년마다 발행하는 최신판(2016년 12월)을 보면, 북한 정규군 병력은 △육군 110만여 명 △해군 6만여 명 △공군 11만여 명 △전략군 1만여 명 등 모두 128만여 명에 이른다. 여기에 교도대·노농적위군·붉은청년근위대 등 예비 병력이 762만여 명이다. 유엔 경제사회국(DESA)이 펴낸 ‘2017년 세계인구전망’ 보고서를 보면, 2016년 말을 기준으로 북한 인구는 2536만여 명이다. 북한 인구 3명 가운데 1명 이상이 ‘군인’이란 뜻이다. 북한의 본격적인 개혁·개방을 위해선 군축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갈마비행장에 도착한 미군 수송기는 한국전쟁 당시 숨진 미군 유해 55구를 싣고 오전 11시께 오산으로 복귀했다. 백악관 쪽은 수송기가 원산에서 이륙한 직후 대변인 성명을 내 “싱가포르에서 열린 역사적 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한반도의 완벽한 비핵화와 북-미 관계 전환, 항구적인 평화를 이루기 위한 대담한 첫 발걸음을 내디뎠다”며 “오늘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미군 전사자 유해를 송환했다. 북한의 유해 송환과 긍정적인 변화의 움직임이 고무적”이라고 밝혔다.

미군 유해 송환은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합의한 내용이다. 당시 북-미 두 정상이 내놓은 공동성명 제4항은 “북-미는 신원이 확인된 전쟁포로, 전쟁 실종자의 유해를 즉각 송환하는 것을 포함해 전쟁포로, 전쟁 실종자들의 유해 수습을 약속한다”고 명시했다. 북-미 공동성명이 본격적인 이행 국면으로 접어들었다는 얘기다.

‘잠시 멈춤’ 전쟁에 마침표 찍어야 할 때

앞서 미군 유해 송환이 이뤄진 것은 2007년 4월이다. 당시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주 주지사가 평양을 방문해 유해 6구를 싣고 나왔다. 교전 당사자 간 유해 송환은 신뢰 구축의 밑거름이 된다. 11년 전 미군 유해 송환에 즈음해 미국은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 계좌에 묶여 있던 북한 자금의 일부에 대한 제재를 풀었다. 그해 7월엔 영변 핵시설의 가동이 중단됐고, 6자회담이 재개돼 북한의 핵시설 신고 시한을 정했다. 10·4 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던 동력이었다. 11년 만에 다시 기회가 만들어졌다. 북한은 변했다. 미국은 어떤가? 65년째 ‘잠시 멈춤’ 상태인 전쟁에 마침표를 찍어야 할 때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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