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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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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들어 죽어가는 가자지구

석 달 새 1만3천여 명 다치고 128명 목숨 잃어
등록 2018-06-12 16:47 수정 2020-05-03 04:28
‘봉쇄의 나날.’ 지난 6월5일 가자지구와 이스라엘의 경계지점에서 무장한 이스라엘 병사들이 무인기(드론)을 날리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봉쇄의 나날.’ 지난 6월5일 가자지구와 이스라엘의 경계지점에서 무장한 이스라엘 병사들이 무인기(드론)을 날리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집단학살’(제노사이드).

유대계 폴란드인 법률가 라파엘 렘킨이 1944년 란 책에서 처음 사용한 말이다. 그는 “집단학살이란, 특정 민족 집단의 삶을 지탱하는 필수적인 기초를 파괴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조율된 계획을 일컫는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해당 민족 집단이 마치 식물이 말라죽듯 시들어 죽어가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삶의 조건 손상도 집단학살</font></font>

유엔도 1948년 12월9일 ‘집단학살 범죄 방지와 처벌을 위한 협약’을 총회 결의 제260호로 채택했다. 협약은 ‘집단학살’을 “파괴의 의도를 가지고 특정 민족·인종·종교적 집단 전체 또는 일부를 겨냥해 저질러지는 일련의 행위”라며, 대표적인 사례도 나열했다.

첫째, 특정 집단 구성원을 겨냥해 살해하는 행위다. 둘째, 해당 집단 구성원에게 심각한 신체적 또는 정신적 위해를 저지르는 행위다. 셋째, 그 집단 전체 또는 일부의 물리적 파괴를 위한 계산 아래 고의로 그들 집단의 삶의 조건에 손상을 가하는 행위다.

2007년 이슬람주의 정치 세력 하마스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선거로 집권한 직후 이스라엘 정부는 가자지구를 봉쇄했다. 식료품값이 천정부지로 뛰었고, 생필품 부족이 만성화했다. 외부 자재 반입이 중단되면서, 일자리도 줄었다. 2007년 2분기와 2008년 2분기 사이에만 실업률이 26.4%에서 45.4%로 치솟았다.

‘가자지구 식료품 소비-한계선’. 이스라엘 인권단체 ‘이동의 자유를 위한 법률센터’(GISHA·이하 기샤)가 3년6개월에 걸친 법정투쟁 끝에 입수해 2012년 10월 공개한 문건의 제목이다. 이스라엘 당국이 봉쇄 초기인 2008년 1월 가자지구 주민들의 일상적인 식료품 소비 행태를 분석해 작성한 자료다.

문건에서 이스라엘 쪽은 가자지구에 필요한 식품 반입량을 ‘주 5회, 하루 트럭 106대 분량’이라고 밝혔다. 기샤 쪽은 “봉쇄가 시작된 2007년 7월부터 2008년 6월까지 가자지구에 들어간 식료품 트럭은 하루 평균 65대에 그쳤다. 문건에서 지적한 식료품 반입 최저 한계선이 고스란히 실제 반입량과 일치한다”고 밝혔다.

상황은 계속 나빠졌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2015년 9월 내놓은 자료에서 “이스라엘이 정책을 급격하게 바꾸지 않는 한, 가자지구의 회복은 불가능하다. 현 정책을 유지한다면, 2020년이 되면 가자지구는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부상자 속출, 의약품 재고량 0</font></font>

지금은 나아졌을까?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이 6월5일 내놓은 ‘점령된 팔레스타인 지역의 인도주의적 상황 월간 보고서’ 최신판을 보자. 지난 3월 말 시작된 가자지구 시위 사태로 5월31일 현재 128명(어린이 15명 포함)이 목숨을 잃었고, 1만3375명이 다쳤다. 2014년 이스라엘의 침공으로 발생한 사상자 규모를 웃돈다. 사상자가 속출하면서 가뜩이나 열악한 가자지구 의료체계는 마비 상태다. 이미 4월 중에 각급 병원의 필수의약품 절반 이상이 ‘재고량 0’을 기록했다.

봉쇄도 여전하다. 이스라엘로 통하는 에레츠 검문소를 통과한 가자 주민은 지난해 전년 대비 51% 줄었다. 이집트로 통하는 라파 검문소는 지난해 329일 동안 폐쇄됐다. 가자지구의 인구밀도는 1km2당 5203명, 마카오·모나코·싱가포르·홍콩에 이어 세계 5위다. 그곳에 갇혀, 가자 주민이 ‘메말라 시들고’ 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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