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25일 오후 중국 관영통신사인 영문판의 짧은 속보 하나가 세계를 뒤흔들었다.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가 중국 헌법에서 국가주석과 국가부주석의 재임 이상을 제한한다는 규정을 폐지하기로 공식 제안했다는 내용이었다. 바로 뒤 중문판에 공개된 헌법수정안 전문은 총 21개 의견으로, 국가주석과 부주석의 임기 제한 폐지안은 그중 14번째로 아주 간략하게 들어 있었을 뿐이다. 이것의 함의는 분명했다. 현재 중국 최고지도자인 시진핑의 집권 연장 시도를 의미했기에 파장은 클 수밖에 없었다. 외신들과 전세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선 시진핑의 영구 독재, 종신 집권 등의 표현이 난무했고 그것을 비난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흔들리는 ‘칠상팔하’ 관행2013년 11월 공산당 제18기 중앙위원회 3차 전체회의(3중전회)부터 2017년 19차 당대회까지 시진핑 개인에게 당 권력이 집중되고 있음은 분명히 드러났지만, 개혁·개방 이후 지난 40년 동안 중국 공산당 최고지도부의 주기적인 교체는 제도화된 것이었다. 그렇기에 임기 연장 시도는 아무래도 정치적 명분이 약하다는 관측이 다수였다. 1960~70년대 중국을 뒤흔든 문화대혁명으로 고초를 겪고 집권한 덩샤오핑을 중심으로 한 개혁·개방 지도부는, 1982년 헌법을 전면 개정해 국가주석 등 주요 직위의 집권 기간을 5년으로 정하고 연임만 가능하도록 임기 제한을 뒀다. 이것으로 중국 최고지도부의 임기는 최대 10년으로 정해져 종신제가 사실상 철폐됐다. 게다가 2000년대 이후 명문화하지는 않았지만 잠재적 규칙으로 ‘칠상팔하’(七上八下·중국 최고지도부인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이 임기 교체 시점에 67살이면 5년 유임이 가능하지만 68살 이상은 은퇴해야 한다는 뜻)라는 연령 제한 관행을 지켜 노간부를 은퇴시키고 주기적인 세대교체를 해왔다. 이번에 공개된 개헌안에서 국가주석과 부주석의 임기 제한 규정 철폐는 이렇게 지켜온 중국 정치의 규범과 관행을 역행하기에 큰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중국 공산당은 이를 둘러싼 논란이 부담스러웠는지 3월1일치 당 기관지 3면에 수정안의 취지에 대한 긴 해설 기사를 실었다. 그중 국가주석 임기 규정 수정안 제출 취지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최고지도자가 중국 공산당 총서기, 국가주석,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이라는 세 직위를 겸직해 당과 국가를 이끄는 삼위일체의 지도체제가 중국 국정에 부합하는데, 현재 당헌에 총서기와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은 임기 제한이 없지만, 헌법에 국가주석 직위만 연임 이상을 제한하는 규정이 있어 제도적으로 일치하지 않는다. 그래서 새 시대에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를 전면적으로 관철하려면 제도의 통일성을 담보해 당의 안정적 통치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다만 는 “국가주석 임기제의 수정안은 당과 국가 영도간부의 은퇴제도 변경을 의미하지 않고, 영도간부의 종신제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라고 밝혔다. 공식 당 기관지에 실린 내용이니 적어도 수정안이 최고지도자의 종신 집권을 허용하는 것은 아님을 분명히 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연임 뒤 얼마나 더 집권할 수 있을지는 명확히 밝히지 않아 시진핑 국가주석이 언제까지 집권할지는 미지수다.
전인대 득표율로 민심 향배 가늠관심은 당연히 3월5일부터 열리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로 쏠린다. 중국 전인대는 한국으로 치면 의회 기능을 하는 국가기구로, 헌법 수정안은 여기서 통과돼야 효력을 발휘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번 개헌안은 무리 없이 통과될 것이 분명하다. 중국 사람들 사이에 “당이 지시하면, 전인대는 거수로 통과시키고, 국무원은 일을 하고, 전국정치협상회의는 옆에서 박수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역사적으로도 당의 결정이 전인대에서 뒤집어진 일은 없다.
다만, 헌법 수정안과 주요 국가 직위 인준 표결시 반대표나 기권표가 얼마나 나올지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물론 압도적인 찬성률로 통과될 것이 분명하기에 결과적으로 별 의미가 없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역대 전인대를 살펴보면 표결시 득표율은 어느 정도 민심을 반영한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국가 직위 인준시 득표율은 95%를 상회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1989년 6월 톈안먼 사건을 무력 진압한 책임이 있다고 여겨진 리펑 전 국무원 총리는 1998년 전인대 상무위원장 인준시 득표율이 88.8%에 그쳤다. 장쩌민은 1998년 국가주석 재선시 득표율이 97.8%(반대 36표, 기권 29표)였지만, 2003년 전인대에서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득표율이 92.5%(반대 98표, 기권 122표)로 하락했다. 이는 당시 장쩌민이 후진타오에게 당 총서기와 국가주석직은 승계했으나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직위는 계속 보유하며 수렴청정을 하겠다는 의지를 보였기 때문이다. 이것에 상당수 전인대 대표들이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 표결 결과는 일정하게 민심을 반영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시진핑은 2013년 국가주석으로 초선될 때 99.86%라는 압도적인 찬성률을 기록했다. 당시 반대표는 단 1표, 기권은 3표에 불과했다. 이번 전인대에서 시 주석이 추진하는 헌법 수정안과 국가주석 재선 득표율이 자신의 지난 득표율이나 다른 전임자들의 득표율과 얼마나 차이가 날지에 따라 중국 인민들의 여론 흐름을 탐색해볼 수 있다.
현재 중국엔 언론 자유가 제한돼 있고, 직접선거로 지도자를 뽑을 수 없기에 민심의 향방을 읽고 예측하기가 힘들다. 빛의 속도로 검열·삭제되기는 하지만 중국 SNS에 간헐적으로 올라오는 누리꾼들의 풍자와 비판, 중화권 매체를 비롯한 외신의 보도, 현지 체류 중인 사람들의 소식을 종합해보면, 일부 지식인과 도시 중산층은 시 주석의 집권 연장 시도에 비판적이지만, 노동계층을 포함한 일반 인민들은 큰 반대 의사를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간 시 주석이 강력하게 추진해온 반부패 정책이나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내건 리더십이 일정하게 인민들의 지지를 얻은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이전 시기에 비해 당으로 모든 것이 집중되는 억압적인 사회통제에도 시 주석과 당이 거둔 업적이 불만을 누그러뜨리는 상황인 것이다.
핵심 지도부 부패 땐 체제 타격그렇기에 시 주석의 집권 연장 시도가 민주주의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단면적인 이데올로기적 판단보다는, 향후 시진핑 주변 핵심 지도부의 부패나 스캔들, 경제 영역에서의 큰 위기나 불평등 심화, 국제적 지위 경쟁 실패 등의 문제가 일어난다면 이것이 민심 이반으로 이어져 현 체제에 큰 타격을 주게 될 것이다. 시진핑이 던진 주사위가 황허강과 창장강을 건널 수 있을지는 결국 인민에게 달려 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하남석 서울시립대 중국어문화학과 교수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인터넷신청▶ http://bit.ly/1HZ0DmD
카톡 선물하기▶ http://bit.ly/1UELpok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나훈아, ‘왼쪽 발언’ 비판에 “어른이 얘기하는데 XX들 하고 있어”
[단독] “윤석열, 체포 저지 위해 무력사용 검토 지시”
불교계, ‘윤석열 방어권’ 원명 스님에 “참담하고 부끄럽다”
‘군인연금 월500’ 김용현, 체포 직전 퇴직급여 신청…일반퇴직 표기
임성근 “채 상병 모친의 분노는 박정훈 대령 말을 진실로 믿은 탓”
대통령 관저 앞 집회서 커터칼 휘두른 50대 남성 체포
경호처 직원 ‘전과자’ 내모는 윤석열…우원식 “스스로 걸어나오라”
판사 출신 변호사 “경호처 직원 무료변론…불법적 지시 거부하길”
영장 재집행 않고 주말 보내는 공수처…‘경호처 무력화’ 어떻게
1월 13일 한겨레 그림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