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에서 미국과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특히 국방에서 건강하지 못한 관계를 맺는 나라가 3개국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이스라엘 그리고 한국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이스라엘, 한국의 차이를 꼽자면 한국만 민주주의국가다.”
지난 5월2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첫 해외 순방지로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했다. 의외라고? 선택의 이유는 분명했다. 거기 ‘호갱’이 있기 때문이다. 사우디는 자국을 방문한 트럼프 대통령에게 1100억달러(약 123조350억원) 규모의 미국 무기를 구매하고, 앞으로 10년간 3500억달러의 무기를 더 사겠다고 밝혔다. 미국 방산업체인 록히드마틴, 보잉, 레이시온, 노스롭 등은 이 한 건의 계약으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재임 기간 무기 판매 기록을 넘어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야말로 기록적인, 미국 방산업체의 ‘영업왕’이다.
“한국의 무기 거래 양상 조사하고 싶다”
이 거래는 정당하고, 또 상호적인 것일까. 글쎄, 국제 무기 거래는 부패의 온상이다. 세계 무역 거래에서 발생하는 부패의 40%가 무기 거래에 몰려 있다. 사우디 왕가가 미국과의 무기 거래를 통해 엄청난 리베이트를 챙긴다는 건 국제사회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사우디의 실체를 고발한 책 을 쓴 로버트 베어 전 미 중앙정보부(CIA) 국장은 사우디를 “21세기에 존재하는 9세기의 나라”라고 평한다. 사우디 왕가는 중동의 위협과 위험을 근거로 끊임없이 무기 보유량을 늘려왔다. 제값보다 비싸게 무기를 사들이고, 차액을 뒷돈으로 받아 챙긴다. 때때로 무기를 ‘블랙마켓’에 재판매한다. 중동의 테러리스트를 막겠다며 들여온 무기가 어이없게 테러리스트에게 넘어가는 ‘역류’(blowback) 현상이다. 무력 분쟁을 막겠다며 무기 보유량을 늘렸지만 그 무기가 오히려 무력 분쟁을 부채질하는 악순환. 막대한 무기 거래가 만들어내는 이 파괴적 질서에서 어쨌든 누군가는 천문학적 돈을 번다. 평화학에선 이들을 ‘전쟁 수혜자’라고 부른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전직 국회의원 앤드루 파인스타인이 다큐멘터리영화 (감독 존 그리몬프레즈, 94분, 2016) 상영회와 강연회를 위해 지난 6월14일 한국을 방문했다. 국내에선 다소 낮선 이름이지만, 그는 ‘은밀한 무기 거래에서 비롯되는 부정부패와 이에 영향받는 외교정책’을 추적한 저서 (The Shadow World: Inside the Global Arms Trade)을 통해 잘 알려진 평화운동가다. 2013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명’에 뽑혔고, 2015년 국제투명성기구가 수여하는 ‘올해의 내부고발자’(Whistle-blowers of the Year)로 선정됐다.
현재 파인스타인은 영국 런던에 근거지를 둔 국제반부패단체 ‘코럽션 워치’(Corruption Watch)에서 활동하며 전세계에 국제 무기 거래의 심각성을 알리고 있다. 그는 6월16일 과의 인터뷰에서 “현재 중동의 무기고 역할을 하는 사우디에 무기를 수출하는 유럽 국가와 업체를 고발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며 “무기 거래가 한국 사회에 미친 영향력에도 관심이 많고 한국의 무기 거래 양상을 조사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번 방문은 파인스타인에게 “만델라 대통령 시절 국회의원을 했던 1995년 이후 두 번째 한국 방문”이다. 직접 온 것은 두 번째지만 꽤 오래전부터 한국에 관심을 가져왔다. “한국은 세계 10위권의 군비 지출국이고, 록히드마틴을 비롯한 국제 방산업체로부터 집중적으로 무기를 구매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가 국제 무기 거래의 부패를 추적할 때마다 한국은 자주 직간접적으로 등장했다. 특히 그의 관심을 모은 건 ‘와일드캣’이라고 불리는 해상 헬기와 ‘F35’였다. 와일드캣은 전세계에서 가장 부패한 방산 기업으로 뽑히는 ‘핀 메카니카 레오나르도’의 자회사인 ‘아우구스타 웨스트랜드사’에서 만들었고, F35는 사드(THAAD)를 만든 록히드마틴사의 차세대 전투기다. 최윤희 전 합참의장은 와일드캣을 도입하며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됐고, F35 전투기 선정은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에 발간한 책 에서 “비리들이 존재한다고 추정되는 부분이 있다”고 적은 대표적 방산 비리 사례다.
유착 없이 설명 안 되는 무기 거래파인스타인은 와일드캣과 F35 도입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짚었다. 와일드캣의 경우 “한국 상황에서 기술적으로 필요한 기능이 전혀 없는 전투기”라며 “북한의 잠수정을 관찰하는 목적이라면 최소 2시간 이상 상공 체류가 가능해야 하는데, 와일드캣은 최대 39분밖에 상공에 못 머문다. 샀어도 안 되고 사는 걸 고려할 필요도 없는 기종이 도입된 것은 최윤희 합참의장의 유죄판결에서도 드러났듯 오로지 부패 때문”이라고 단언했다. 최윤희 전 합참의장의 재판에서도 와일드캣을 도입할 때 “기기를 시험하고 평가하는 정상적인 과정이 뇌물을 쓴 이들에 의해 가짜로 만들어졌다”는 것이 밝혀졌다. 하지만 그 부패는 아이러니하게 “무기를 더 구매해야 하는 이유”로 이어졌다. “원래 한국은 북한 잠수함을 관찰할 헬기 1대가 필요했지만, 와일드캣의 상공 체류 시간이 짧다보니 2대를 사게 됐다”며 한국의 와일드캣 구매를 “무기 거래가 국가 안보를 위한 선택이 아닌 뇌물 때문에 구매한 대표적인 경우”로 꼽았다. 이르면 내년 한국에 들어올 F35에 대해서도 “가장 비싸고 가장 최악인 전투기”라며 “한국이 F35를 산 이유는 안보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 아니라 미국의 정치적 압력 때문일 것”으로 규정했다. 구체적 증거가 있느냐는 질문에는 “무기 거래의 특성상 바로 밝혀지지 않고 진실이 규명되는 데 시간이 걸릴 뿐”이라며 “그 문제를 추적하고 싶다”고 말했다.
록히드마틴은 세계 최대 군수업체이자 전세계에서 가장 불투명한 기업이다. 그는 이 회사를 “가장 부패한 기업”이라고 칭했다. 그런데 한국은 유독 록히드마틴의 무기를 선호한다. 이에 대해 파인스타인은 “유착 없이는 설명이 안 되고 이해할 수도 없다”고 했다. 록히드마틴은 보통 “받아야 할 무기의 값이 100이라고 하면 150을 얘기한다. 그 중간 어딘가에서 무기 값이 형성되면 100을 넘은 금액은 리베이트로 전달”되는 방식이다. 이는 국제 무기 거래에서 록히드마틴이 “일반적으로 취하는 방식”이라고 파인스타인은 단언했다. 이 돈은 당연히 국민 세금에서 나온다.
정상적인 민주주의국가라면 국회나 시민사회가 이 비용 지출의 타당성을 검증하고 견제해야 옳다. 한국 사회는 그러지 못했다. 예컨대, 옛 새누리당 국방위원들이 국방부 장관(당시 김관진), 방위사업청장(당시 이용걸) 등에게 F35 구매를 사실상 종용했던 2013년 9월3일 국회 국방위원회 회의에 야당 의원은 전원 불참했다. 당시 새누리당 의원들은 주도적으로 여론몰이를 하며 원래 도입하기로 했던 F15SE가 아닌 F35 도입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 과정에 야당이 없었고, 독립적 전문가들의 검토도 없었고, 시민은 물론 기자들의 접근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민주주의국가 중 유일한 미국의 ‘호갱님’파인스타인은 한국 사회의 이런 과정이 “무기 거래의 부패를 심화하고 민주주의를 저해했을 것”이라고 봤다. 그간 한국 사회는 무기 거래 정보 접근권이 허용되지 않았고, 국회의원들조차 이 문제에 무지하고 무관심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첫 해외 순방지로 미국을 택했다. 미국 방산업체의 기록적인 무기 영업왕 트럼프 대통령의 ‘상술’을 잘 방어할 수 있을까. 무기 거래를 둘러싼 내막은 즉각 공개될 수도 있고, 훗날 드러날 수도 있다. 파인스타인은 국제 무기상 사이에 “미국 정부가 한국에 미치는 영향력은 백악관이 워싱턴DC에 미치는 영향력과 비슷한 수준이란 말이 있다”고 했다. 한국은 지구에 존재하는 민주주의국가 가운데 유일하게 미국의 ‘호갱님’으로 남은 국가다.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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