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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롱은 ‘전진’할 수 있을까

극우정당 집권 저지하기 위한 ‘공화국 전선’으로 압승한 프랑스 마크롱…

6월 총선에서 동거정부, 국민전선 부상 여부 정국 변수
등록 2017-05-17 05:44 수정 2020-05-02 19:28
5월7일(현지시각) 프랑스 역사상 최연소 대통령에 당선된 에마뉘엘 마크롱이 부인 브리지트 트로뇌와 함께 파리 루브르 광장에서 열린 당선 축하 행사 무대에 올라 환호하는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들어 보이고 있다. REUTERS 연합

5월7일(현지시각) 프랑스 역사상 최연소 대통령에 당선된 에마뉘엘 마크롱이 부인 브리지트 트로뇌와 함께 파리 루브르 광장에서 열린 당선 축하 행사 무대에 올라 환호하는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들어 보이고 있다. REUTERS 연합

5월7일(현지시각) 프랑스 대선에서 39살 에마뉘엘 마크롱이 대통령에 당선됐다. 결선투표 방식으로 진행된 선거에서 마크롱은 66.06%를 득표해 상대 후보 마린 르펜을 30%포인트 이상의 표차로 멀찌감치 따돌렸다. 이런 결과는 예상된 것이었지만,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나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 등 주요 기관들의 예측을 벗어나는 충격적인 결과가 많았기 때문에 가슴을 졸이며 최종 결과를 지켜봐야 했다. 그리고 이번 대선 결과는 프랑스 국내만이 아니라 유럽 전체의 정치 변화에 큰 함의를 갖는다.

전통 정당 몰락 속 대안세력 부상

결선투표에서 마크롱이 압승을 거둔 것은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첫째, 기성 정당들의 몰락이다. 이번 대선에 앞서 집권 사회당의 성적표는 초라했다. ‘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공약으로 내세워 집권한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실업률을 낮추지 못했다. 오히려 노동시장 개혁 등 우편향적 정책을 펼치는 무리수를 거듭하며 중도좌파의 지지를 얻는 데 실패했다. 올랑드 대통령의 뒤를 이어 사회당 대선 후보로 나선 브누아 아몽은 1차 투표에서 7%에도 못 미치는 득표율을 기록했다. 이는 집권당 후보가 거둔 역대 최악의 성적이었다. 사회당과 양강 체제를 구축해온 공화당은 총리 출신인 프랑수아 피용을 후보로 내세웠다. 그러나 피용은 선거 기간 내내 세비 횡령 스캔들에 시달렸다.

전통 정당 몰락이라는 혼란 속에 부상한 것이 대안세력이었다. 첫 번째 대안은 중도 성향의 마크롱이었다. 정치 신인이나 다름없는 마크롱이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선거조직인 ‘앙마르슈’(En Marche·전진)를 창설한 것은 지난해 11월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마크롱이 대통령이 되리라고 예상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마크롱은 사회당 정부에서 경제장관을 했다는 중도좌파 경력과 금융계에 종사한 적이 있다는 우파적 이미지를 적절히 조합해 ‘중도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사회당과 공화당에 실망한 유권자가 이 중도파 후보에게 몰려들었다.

두 번째 대안세력은 ‘국민전선’이었다. 유럽 정치에서 극우파로 분류되는 국민전선과 마린 르펜 후보는 국민 주권주의를 강조하며 유럽연합과 유로화 체제 탈퇴를 주장했다. 또 경제·안보 분야에서 프랑스가 놓인 어려움을 이민이나 테러 문제와 결부하며 본인이 프랑스를 보호할 적임자임을 강조했다. 실제 르펜은 대선 2년 전부터 여론조사에서 줄곧 1~2위를 기록하며 유력한 대선 후보로 거론돼왔다.

세 번째 대안세력은 강경좌파 성향 정당 ‘불굴의 프랑스’와 장뤼크 멜랑숑 후보였다. 멜랑숑은 노동시간 단축, 부유층 과세 등 전통적인 좌파의 공약을 내세웠다. 좌파의 핵심 가치가 관철되지 않으면 유럽연합은 물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서도 탈퇴할 수 있음을 주장했다. 대중연설에 강한 멜랑숑은 수차례의 TV토론을 거치며 지지율이 급상승했다. 1차 투표 직전에는 결선투표에 르펜과 멜랑숑이 1·2위로 진출할 가능성이 있다는 예측이 나오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결선 투표에 진출한 것은 마크롱과 르펜이었다. 어느 국가나 마찬가지로, 프랑스 정치에서도 다양한 이합집산이 이루어진다. 프랑스 정치에선 ‘공화국 전선’이라는 특유의 연합 방식이 있다. 공화국 전선의 시초는 1956년 프랑스 총선에서 중도좌파가 연합 전선을 형성한 데서 뿌리를 찾을 수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유럽회의주의’ 확산

프랑스의 대선과 총선은 모두 결선투표 형식으로 진행된다. 1차 투표에서 1·2위 당선에 실패한 후보는 자신과 성향이 가장 비슷한 후보에 대해 공개 지지를 선언한다. 이 관행은 국민전선 후보가 결선투표에 진출했을 때 특히 선명하게 나타난다. 극우정당의 집권을 저지하기 위해 모든 후보가 힘을 모으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2002년 대선이다. 좌파의 분열 속에 국민전선의 장마리 르펜이 2위를 기록해 간발의 차이로 사회당 현직 총리 리오넬 조스팽을 제치고 결선투표에 진출했다. 그러나 사회당 유권자들이 대거 공화당의 자크 시라크 대통령을 지지했다. 시라크는 역대 최고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했다. 마크롱의 압승은 ‘공화국 전선’이 프랑스 정계는 물론 시민사회에도 여전히 작동함을 보여주는 사례다.

그러나 마린 르펜이 1차 투표에서 얻은 득표율은 마크롱에 2.4%포인트 뒤진 것에 불과했다. 결선투표 득표율도 2002년 자신의 아버지가 얻은 득표율의 두 배에 달했다. 국민전선의 약진은 프랑스 사회가 예전보다 자기중심적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로 꼽힌다. 2002년 대선 때 프랑스와 유럽의 경제 상황은 장밋빛 전망이 우세했다. 막 유로화를 도입했고, 중동부 유럽 10개국은 유럽연합에 가입하기 위해 줄을 선 상황이었다. 현재 프랑스는 유럽발 경제위기 뒤 장기간 계속되는 저성장과 실업, 이민에 따른 사회 통합 문제, 테러 위협 등으로 시름하고 있다. 이런 변화가 극우정당이 활동하기 좋은 정치 토양을 제공했다. 이는 정도 차이는 있지만 여러 유럽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되는 현상이다.

최근 수년 동안 유럽연합 체제는 많은 도전에 직면해왔다. 가장 큰 문제는 유럽회의주의(Euroscepticism)의 확산이다. 유럽회의주의는 유럽 통합에 회의적인 영국의 입장을 지칭하기 위해 나온 용어였다. 이후 언론과 학계가 즐겨 사용하는 ‘공식 용어’로 자리잡았다. 영국을 제외한 유럽에선 중도 좌우파가 친유럽연합적 성향을 보인다. 유럽연합을 통해 얻는 정치·경제적 성과에 긍정적 견해를 가진 것이다. 마크롱이 당선됐다는 것은 유럽연합 체제가 힘을 받는다는 걸 의미한다.

이제 관심은 6월 총선(1차 11일·결선 18일)으로 옮아갔다. 이원집정부제인 프랑스 정치체제의 특성상 하원 다수당에서 총리가 배출된다. 창설 1년이 채 못 된 앙마르슈가 하원 다수당이 될 가능성은 낮다. 따라서 어떤 형식이든 공화당 또는 사회당과 연정을 꾸릴 수밖에 없다. 총리가 다른 정당에서 배출된다면 동거정부의 출범을 뜻한다. 프랑스의 동거정부 운영은 한국의 여소야대 현상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다. 극단적인 경우 대통령은 국방·외교 등 대외 정책에만 역할이 한정될 수도 있다. 경제 등 국내 정책에선 다수당과 총리의 동의가 필수적이다. 이는 마크롱의 입지를 약화할 것이다.

국민전선, 하원 의석 확보할 수도

마지막 남은 변수는, 총선에서 국민전선이 어느 정도 성적을 거둘지다. 결선투표의 특수성으로 인해 현재 국민전선의 하원 의석은 2석에 불과하다. 이번 총선에서 국민전선은 대선의 인기를 등에 업고 의석을 확보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프랑스 정계에 큰 변화를 의미한다.

유럽연합에도 여전히 많은 도전이 남아 있다. 프랑스 대선의 결과는 재도약을 위한 휴식기에 불과하다. 앞으로 유럽 시민이 만족할 만한 결과를 내지 못하면 유럽연합 체제에 대한 불안감이 계속될 수 있다.

강유덕 한국외국어대 LT(Language and Trade) 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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