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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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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학대 뒤엔 조련사 천대가

트레킹 하루 상품 가격은 2500밧, 고산족·소수민족 출신 조련사 월급은 5천밧… 코끼리 ‘훅’으로 건드리기만 해도 임금 삭감… 안전 위협은 누가 책임지나
등록 2016-04-21 17:51 수정 2020-05-03 04:28
타이의 값싼 코끼리 트레킹 관광산업 뒤에서 학대당하는 코끼리들 이야기(제1107호 ‘마약중독·밀렵·체벌… 코끼리야 미안해’)에 이어 코끼리 관광에 짓밟히는 이주노동자들을 만나 ‘에코투어’의 명암을 살펴봤다. _편집자
치앙마이의 한 코끼리캠프 근처 강가에서 마훗이 코끼리를 목욕시키고 있다(위쪽). 마훗이 코끼리에게 줄 먹이를 준비하고 있다. 코끼리캠프에 고용된 노동자들은 대부분 버마 이주노동자다.

치앙마이의 한 코끼리캠프 근처 강가에서 마훗이 코끼리를 목욕시키고 있다(위쪽). 마훗이 코끼리에게 줄 먹이를 준비하고 있다. 코끼리캠프에 고용된 노동자들은 대부분 버마 이주노동자다.

버마(미얀마) 카레니족 출신 카야(24·가명)는 5년 전 매홍손(타이 북서부)으로 ‘서류 없이’ 국경을 넘었다. 이후 5년간 치앙마이 지방 내 코끼리캠프를 전전하며 이주노동자로 살았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노동조건을 찾다보니 캠프를 다섯 곳이나 거쳤다. 코끼리캠프에서 일하게 된 건 도착 뒤 한 달 동안 일을 못 찾아 애가 탔을때 마훗(Mahout·코끼리 조련사) 일만 가능했기 때문이다.

카야가 현재 일하는 곳은 치앙마이 타운에서 50km 떨어진 매탱 지구의 B코끼리캠프다. 3개월 전 이곳으로 왔고, 지금의 코끼리를 만난 건 15일 됐다. 카야는 “순한 코끼리라고는 하지만 코끼리가 언제 돌변할지 몰라 긴장을 늦출 수 없다”고 말했다.

더 나은 노동조건을 찾아 이직했다는 그가 현재 받는 월급 5천밧(약 16만3300원)은 전 직장에서 받던 금액보다 2500밧이 적다. (참고로 코끼리 트레킹 하루 상품 가격은 보통 2500밧 내외다.) 그래도 직장을 옮긴 이유가 있다. 전 캠프에서는 코끼리 먹이를 마훗이 알아서 조달해야 했기 때문이다. 코끼리 노동시간을 피해 새벽 4시에 들판으로 나간 적도 있고 저녁 8시가 되어 캠프로 돌아온 적도 있다. 전 캠프 주인은 코끼리 먹이에 신경을 안 썼다. “들판의 풀은 공짜지만 옥수수는 내 돈으로 사서 먹였다. 하루 60∼100밧을 지출했다. 그 이상을 코끼리에게 먹였다가는 내가 굶는다.”

코끼리 똥 모아 종이 가방 만들어 팔기도

게다가 들판으로 나간 코끼리는 이따금 ‘야생성’을 보였다. 코끼리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떼를 썼고 카야는 그때마다 통제되지 않는 거대한 동물 앞에 위협을 느끼곤 했다. 그럴 때마다 2012년 일했던 메사캠프에서의 경험이 떠올랐다.

메사캠프는 B캠프처럼 코끼리 타기는 물론 페인팅, 쇼 등 온갖 형태의 코끼리 관광을 선보이는 곳이다. 그가 맡은 7살 암코끼리는 쇼의 ‘예비’ 멤버였다. 하루는 ‘동료 코끼리’들의 쇼를 보여주려고 쇼장으로 데리고 갔는데 쇼가 끝나고 우리로 돌아오는 길에 코끼리가 거칠어졌다. 익숙지 않은 공간에서 낯선 모습을 본 코끼리가 예민해진 듯했다.

카레니 지방에서 이주노동을 온 여성노동자 라위(31·가명)도 치앙마이에서 코끼리캠프만 돌았다. 6년 전 H코끼리캠프에서 식당일부터 시작해 현재는 코끼리 똥을 모아 종이 만드는 일을 한다. “소화가 잘된 똥을 골라 모은 뒤 여러 번 씻어낸다. 그리고 소다를 함께 넣어 8시간 끓인 뒤 다시 씻어내고 그중 상태가 좋은 것을 골라 하루 종일 볕에 말리면 종이가 된다.”

코끼리 똥으로 만든 종이로 가방을 만들고 그 가방 안에 기념사진을 넣어 진열하고 판매하는 것도 코끼리캠프의 비즈니스다. 라위가 코끼리 똥을 주우러 우리에 들어갈 때마다 마훗은 어떤 코끼리가 위험하고 덜 위험한지 최대한 알려준다. 그럼에도 어쩌다 느슨해진 체인이 풀려버리거나 그렇게 자유로워진 코끼리가 공격적으로 변할 땐 속수무책이다. 실제 코끼리 체인이 풀려서 도망쳐야 했던 순간이 많았다. 3월 중순에도 경험했다. 2년여 전 H캠프에선 여성노동자 한 명이 코끼리 우리에 똥을 주우러 갔다가 코끼리에 밟혀 부상을 입기도 했다.

6년 전 첫 월급으로 3500밧을 받았던 라위는 지난해부터 6천밧을 받는다. 같은 일을 하는 노동자 중에서 가장 많다. 한 달 내내 월급을 보장받는 휴일은 없다. 지난달 생일에 쉬었더니 200밧이 깎여 나왔다. 라위는 “죽을 만큼 아프지 않으면 쉬지 않는다”고 했다. H캠프는 2년 전부터 노동자들의 출퇴근 도장을 지문 날인으로 하고 있다. 라위는 “유사시 고용주가 우리를 추적할 수 있다는 사실이 좀 두렵다”고 말했다.

타이의 여타 3D 직종이 그렇듯, 코끼리캠프의 여러 직종들은 이주노동자로 채워져 있다. 카야가 일하는 B캠프를 보자. 3월 말 현재 B캠프에는 약 40마리의 코끼리와 비슷한 수의 마훗이 있다. 타이 마훗은 대략 5∼6명이고 타이 고산족인 ‘타이 카렌’(Thai Karen)은 4∼5명, 나머지 30명 내외는 치앙마이와 국경이 맞닿은 카레니주, 샨주 출신의 버마 소수민족이다.

소수민족 조련사 월급은 타이 출신의 25%
치앙마이의 한 코끼리캠프에서 여성노동자가 코끼리 똥을 모으고 있다.

치앙마이의 한 코끼리캠프에서 여성노동자가 코끼리 똥을 모으고 있다.

하는 일은 같지만 월급은 다르다. 카야는 월 5천밧을 받는데 타이 동료들은 월 1만5천∼2만밧을 받는다. ‘타이 카렌’도 카야와 같은 5천밧을 받는다. 오랫동안 무국적자로 천대받아온 고산족을 타이 사회가 어떻게 대우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5천밧은 2013년 1월부터 타이가 도입한 하루 최저임금 300밧 기준 월급에 턱없이 못 미치는 액수다. 주 6일, 월 26일을 일한다고 보면 최저임금은 7800밧이다. 또 ‘양국의 노동자들이 성·인종·종교에 따라 임금 차별을 받지 않는다’고 명시해놓은 타이-버마 정부의 양해각서 제18조에도 위반된다. 이주노동자 운동가 마이마이는 “다른 업계와 비교해도 급여가 낮다”고 말했다.

마훗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이유 가운데는 ‘훈련 부재’도 있다. 자신의 코끼리를 캠프로 직접 데려오는 ‘타이 카렌’ 마훗은 예외로 하더라도 이주노동자들 다수는 코끼리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경우가 많다. 카야는 “고향에선 코끼리를 본 적도 없다”고 말했다. 첫 캠프에서 일주일 정도 훈련받은 게 전부고, 나머지 캠프에선 ‘경험자’라서 훈련 같은 건 없었다. “성격이 적극적인 사람은 며칠 만에 코끼리와 익숙해지고 어떤 사람은 여러 달이 걸린다. 나는 2주 정도 걸리는 것 같다.”

그러나 카야가 일하는 B캠프 관련 사이트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B캠프는 타이야이(타이 샨족), 카렌, 버마 고산족의 고용을 지원하며 이들은 코끼리보존센터(Elephant Conservation Center, 정부운영)에서 석 달간 마훗 훈련을 거치게 됩니다.” 캠프는 또 자신들이 “사실상 체인(Chain)을 하지 않는다”고 적어놨다. 이는 사실과 다르다. 오후 4시 이후 일과를 마친 B캠프 코끼리들은 체인에 발이 묶여 있었다.

유사 문구를 내건 캠프는 또 있다. ‘에코투어리스트’들에게 인기가 높은 코끼리 자연공원(Elephant Nature Park, 이하 ENP)은 ‘노 체인’(그리고 ‘노 훅’)을 표방하는 대표적 캠프다. ENP는 심지어 “난민”을 고용해 돕는다고 표방해왔다. 하지만 이들이 “버마 고산족” “난민” 운운하며 “돕는다”고 포장한 이들은 엄밀히 말해 저임금에 고용되는 이주노동자들이다. 바로 그 이주노동자들이 코끼리 사고에 더 취약하게 노출되어 있다.

“훅은 코끼리 고통 야기하는 도구 아니다”
치앙마이 동물원 ‘아시아 코끼리’ 코너에 있는 암코끼리와 마훗은 15년을 함께했다. 이곳에서 21년간 마훗으로 일한 그의 동료가 코끼리에 밟혀 죽었다. 코끼리의 야생성은 열악한 조건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의 생명을 위협하기도 한다.

치앙마이 동물원 ‘아시아 코끼리’ 코너에 있는 암코끼리와 마훗은 15년을 함께했다. 이곳에서 21년간 마훗으로 일한 그의 동료가 코끼리에 밟혀 죽었다. 코끼리의 야생성은 열악한 조건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의 생명을 위협하기도 한다.

그런 사고가 3월11일 ENP에서 발생했다. 사망한 이는 19살 마웅 안토니다. “타이로 국경을 넘은 지 7일 됐고 5일간 ENP에서 일했다”는 게 기자가 그의 최측근에게서 얻은 정보다. 그러나 ENP 쪽은 사고 다음날 소유주 렉 차일렛의 페이스북과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그는 ENP 직원이 아니며 왜 그곳에 있다가 변을 당했는지 알 수 없다”고 적었다.

ENP가 “매우 슬픈 소식을 전한다”며 사고 소식을 알린 건 정직하다는 인상을 심어주려는 것이겠지만 의문부호는 남아 있다. 기자는 ENP 쪽에 안토니의 고용관계에 대해 사실확인을 요청했다. 공원 쪽이 대외적으로 홍보하는 “전쟁난민 고용 및 난민가족 지원 등”에 대해서도 자세한 정보를 요청했다. 그러나 답을 얻지 못했다.

ENP는 그동안 ‘구조 코끼리 재활센터’라며 ‘노 라이딩’(No Riding), ‘노 체인’(No Chain), ‘노 훅’(No Hook) 트렌드를 만들어왔다. ‘에코투어리스트’들도 이를 반겼다. 그러나 오랜 세월 마훗의 도구로 활용된 체인과 훅에 대해서는 냉정히 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높다. 2005년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와 타이삼림부(FIA)가 공동 발간한 ‘마훗 매뉴얼’ 40쪽을 보자.

“훅은 마훗의 가장 중요한 도구다. 코끼리와 있는 한 마훗은 항상 이 도구를 지니고 있어야 하며 코끼리를 해하지 않게 사용하는 법을 숙지해야 한다. 훅은 코끼리에게 고통을 야기하는 도구가 아니라 각 상황에 맞게 코끼리를 통제하기 위한 수단이다.”

‘마훗 매뉴얼’ 작성에 공저자로 참여한 수의사 프리차 푸앙쿰은 타이 최고의 코끼리 치료 전문 수의사로 여러 해 동안 마훗 교육을 담당해왔다. 그는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전통적 방식의 잔인한 면을 비판하면서도 ’노 체인’ ‘노 훅’에 현혹되지는 말라고 했다. “코끼리는 애완동물이 아니다. 엄청난 거구에 본래 야생동물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예측 불허의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적절한 도구 없이 어떻게 컨트롤할 것인가?”

‘체인 프리’는 코끼리 서식 환경을 복원하는 문제와 맞물려 있다. ENP의 구호가 위선적인 것은 관광객에게 선보이는 코끼리 외에는 체인으로 종일 묶어두고 있으며 ‘관광객용’ 코끼리도 일과 뒤엔 체인으로 묶어두기 때문이다.

관광객이 불만 제기하면 임금 삭감돼

또한 ENP의 마훗은 ‘훅’을 안 쓰는 대신 다른 도구를 사용해왔다. 코끼리 트라우마 전문가인 카롤 버클리가 세운 단체 EAI(Elephant Aid International)는 2010년부터 2011년 사이 8주간 ENP를 모니터한 결과 보고서에서 “마훗이 바늘, 새총, 막대기 그리고 여타 무기를 사용하는 것을 금하라”고 권고했다. 보고서는 또 “마훗의 절대다수가 버마어만 알 뿐 영어나 타이어를 이해하지 못해 (무리지어 오는) 관광객과 의사소통이 안 되는 건 안전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노 체인’ ‘노 훅’ 구호는 카야에게도 영향을 주고 있다. 동물 학대 인식이 확산되면서 마훗이 코끼리를 훅으로 건드리기만 해도 불만을 제기하는 관광객이 있고, 이는 임금 삭감으로 이어진다. “종래에는 불만 제기 한 건당 1천밧이 깎였는데 최근(3월 하순) 2천밧으로 삭감액을 올렸다.” 카야가 말했다. 훅이 없다면 신변에 위협을 느끼느냐고 묻자 카야는 주저 없이 “100% 그렇다”고 말했다.

코끼리 학대에 눈물 흘리고 코끼리를 보듬는 인간의 모습은 분명 아름답다. 그러나 아름다운 컷을 ‘연출’하겠다고 인간이 희생될지도 모를 환경을 만드는 건 아닌지, 동물 학대 관광을 격하게 비판해온 이들 모두 진지하게 던져야 할 질문이다.

치앙마이·방콕(타이)=글·사진 이유경 국제분쟁 전문기자 Lee@Penseur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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