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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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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중독·밀렵·체벌…코끼리야, 미안해

타이 북부 ‘값싼’ 트레킹 캠프 우후죽순… 코끼리도, 조련사도, 관광객도 위험천만
등록 2016-04-15 15:42 수정 2020-05-03 04:28
53살 코끼리 모탈라는 1999년 8월 버마 정글에서 불법 벌채에 동원돼 일하던 중 지뢰를 밟아 ‘세 발’ 코끼리가 됐다. 하얀 붕대를 감은 게 다친 발이다. 모탈라는 코끼리 병원 ‘아시아코끼리의 친구들’에 영구 입원 중이다.

53살 코끼리 모탈라는 1999년 8월 버마 정글에서 불법 벌채에 동원돼 일하던 중 지뢰를 밟아 ‘세 발’ 코끼리가 됐다. 하얀 붕대를 감은 게 다친 발이다. 모탈라는 코끼리 병원 ‘아시아코끼리의 친구들’에 영구 입원 중이다.

쉰세 살 코끼리 모탈라는 자신의 우리 한쪽 바에 코를 걸쳐놓고 육중한 몸을 지탱했다. 샤워 전에도 샤워 뒤에도 그런 자세를 취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17년 전 지뢰 사고로 다리 하나를 잃은 뒤 세 다리로 버티는 노하우가 생긴 듯했다. 식사가 도착했다. 말끔히 씻은 몸으로 열심히 풀을 집어올리는 모습이 햇빛에 옅게 반사된 귓불만큼이나 상쾌해 보였다.

1999년 8월, 모탈라가 지뢰를 밟은 곳은 타이 북부 딱 지방과 국경이 닿은 버마 쪽 정글이다. 수십 년간의 내전으로 지뢰밭이 된 그곳에서 모탈라는 벌채 작업에 동원됐다. 부상당한 국경에서 코끼리 병원까지는 차로 4~5시간 달리면 되는 거리다. 하지만 모탈라는 사흘 밤낮을 걸은 뒤 트럭을 타고 9시간이 지나서야 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리 부상으로 제대로 걸을 수 없었지만 걸어야 했고, 차를 탄 뒤에도 타이 관료 사회는 이 거대한 생명체의 고통 앞에서 서류 절차를 따지며 시간을 지연시켰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먹이에 마약 섞으면서 코끼리 착취</font></font>
※이미지를 누르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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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한 살 모샤 역시 ‘세 발’ 코끼리다. 일곱 달 되던 2006년 6월 버마 정글에서 벌채하는 엄마 코끼리를 따라다니다 지뢰를 밟았다. 모샤는 누워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먹이도 누워서 먹었다. 코로 풀을 집어올려 입이 아닌 머리 뒤로 던지는 모습은 마치 같은 또래 사람이 하는 밥투정 같았다.

모탈라와 모샤가 사는 곳은 방콕에서 북쪽으로 약 600km 떨어진 람빵 지방이다. 그곳에 세계 최초의 코끼리 병원 ‘아시아코끼리의 친구들’(FAE·Friends of Asian Elephant)이 있다. FAE는 환경운동가 소라이다 사왈라가 주변의 조소와 반대를 무릅쓰고 1994년부터 감행한 인생 프로젝트다. 병원은 적자에 시달리지만 무료 치료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입원할 수 있고, 외래 진료도 가능하다. 병원으로 올 수 없는 환자들을 위해서는 모바일 클리닉도 운영하고 있다.

지난 22년간 FAE가 치료한 코끼리는 4271마리다. 칼 맞은 코끼리, 총상 입은 코끼리, 그리고 마약에 중독된 코끼리도 있다. 마약에 중독된 코끼리들은 대개 불법 벌채 현장에 동원된 코끼리다. 동남아에 만연한 마약인 암페타민에 중독된 것이다. 코끼리 먹이에 마약을 섞으면서까지 인간은 코끼리의 노동력을 착취했다. 그렇게 마약에 중독된 코끼리 캄미는 FAE에서 5년여간 치료받다가 결국 2002년 안락사했다.

3월 중순, FAE에는 코끼리 5마리가 영구 입원해 있었고, 9마리는 임시 입원 중이었다.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앓는 보보도 그중 하나다. 6년 전 머리 상처로 입원했지만 치료 과정에서 PTSD가 발견됐다는 게 의사 크루똥 까이얀의 설명이다. 병원은 신경이 날카로운 보보에게 인간과 거리를 둔 공간에 집을 마련해줬다.

약 1세기 전 십만 단위에 달하던 아시아코끼리가 3대를 거치는 동안 절반가량 줄어 지금은 4만~5만 마리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된다. 1986년 국제환경단체인 ‘생태보전국제연합’(International Union for Conservation of Nature)은 아시아코끼리를 멸종위기(EN·Endangered) 동물로 지정했다. 취약(VU·Vulnerable) 등급으로 지정된 아프리카코끼리에 비해 멸종위험도가 한 단계 높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타이에만 ‘일하는 코끼리’ 1700마리 육박</font></font>
타이 치앙마이 동물원의 코끼리가 관광객을 태우고 트레킹하는 모습. 어린 야생 코끼리를 길들이기 위해 좁은 우리에 가두고 날카로운 도구로 육체적 해를 가하는 ‘파잔’ 의식은 코끼리에게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포함한 심각한 후유증을 남긴다(위쪽). 치앙마이 등 타이 전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코끼리 트레킹 홍보 사진(아래쪽).

타이 치앙마이 동물원의 코끼리가 관광객을 태우고 트레킹하는 모습. 어린 야생 코끼리를 길들이기 위해 좁은 우리에 가두고 날카로운 도구로 육체적 해를 가하는 ‘파잔’ 의식은 코끼리에게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포함한 심각한 후유증을 남긴다(위쪽). 치앙마이 등 타이 전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코끼리 트레킹 홍보 사진(아래쪽).

한때 남중국과 서아시아에 이르는 900만km²의 방대한 땅에 서식했던 아시아코끼리는 이제 50만m², 18분의 1로 쪼그라든 땅에 살고 있다. 왕성한 벌채와 아시아의 인구 증가가 서식지가 줄어든 대표적 요인으로 꼽힌다. 서식지 축소는 곧 코끼리 생존에 영향을 미쳤다.

타이는 버마와 함께 오랜 세월 동안 코끼리를 벌채에 이용해왔다. 코끼리들은 삼림 훼손을 최소화하면서 잘라진 목재를 정글 밖으로 노련하게 끌어냈다. 그러다 타이 정부가 야생환경 보전을 이유로 1989년 벌채를 금지했다. 벌채 금지는 원치 않는 결과로 이어졌다. 수십 년간 벌채에 의존해 생계를 이어오던 코끼리 조련사 ‘마훗’들이 벌채 금지로 생계 수단을 잃게 되자 불법 벌채가 왕성하게 이뤄지는 버마 국경으로 이주노동을 갔다. 당연히 코끼리를 데리고 갔다.

벌채 금지가 낳은 또 다른 여파는 ‘코끼리 관광산업’ 붐이다. 벌채에 이용할 수 없는 코끼리를 트레킹, 쇼 등 관광에 이용하는 것이다. 트레킹에 제격인 북부 지방은 물론 파타야, 끄라비, 코사무이, 푸껫 등 휴양지 전역에서 코끼리 트레킹 캠프가 우후죽순 생겨났다.

세계동물보호기구(WAP·World Animal Protection)는 2010년 기준 타이 전역에 106개의 코끼리캠프 혹은 코끼리공원에서 1688마리의 코끼리가 ‘일하고 있다’고 추산했다. 여기에 동물원 등 정부 운영 시설에서 마련한 코끼리 타기와 쇼 등을 종합하면 관광에 이용되는 코끼리 수는 더 늘어난다.

트레킹, 쇼 등 코끼리 관광은 동물 학대의 대표적 유형이다. 야생 코끼리를 가축화하는 과정에서 시행하는 길들이기 의식, 즉 파잔(Pajaan)이 비판의 쟁점이다. 파잔은 2~3살에 불과한 어린 코끼리를 엄마로부터 강제로 떼어낸 뒤 좁은 우리 안에 가두고 사슬과 날카로운 도구로 움직임을 제약하며 육체적 해를 가하는, 고문과 다를 바 없는 의식이다. 이 의식이 타이와 버마에서 유독 잔인하게 시행되고 있다는 게 여러 보고서의 공통된 지적이다. 동물보호단체들은 이 절차가 코끼리들에게 PTSD를 포함해 심한 후유증을 남기는 동물 학대라고 저적해왔다.

마훗들은 코끼리에게 제대로 먹이를 줄 수도 없다. 치앙마이 동물원 꼭대기에서 코끼리 트레킹을 하는 마훗 꾸이 일행은 10년 전 ‘코끼리의 본고장’이라 불리는 동북부 수린 지방에서 이곳으로 왔다. 10년 전만 해도 동물원 자릿세는 2천밧(약 6만5천원)이었다. 현재 자릿세는 1만5200밧(약 50만원)으로 올랐다. 그러나 1회 트레킹 가격은 150밧(약 5천원)에 불과해 마훗이 생계를 꾸리고 코끼리 먹이까지 감당하기에는 수입이 턱없이 모자란다.

이 때문에 꾸이 일행의 코끼리들은 먹이를 관광객에게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었다. 오이 서너 개와 사탕수수 조각이 담긴 작은 바구니 식사가 20밧(약 650원)이다. 코끼리의 하루 평균 식사량이 100kg가량 된다는 걸 고려하면 턱없이 부족해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꾸이 일행의 수코끼리는 등에 손님을 태운 채 트레킹을 하려던 걸음을 멈추고 발아래 사탕수수를 더 먹으려 안달이 난 모습을 보였다. 과로와 배고픔은 코끼리에게 큰 스트레스다. 마훗과 관광객, 그리고 코끼리 모두에게 잠재적 위험이 될 수 있다. 돈벌이가 시원찮은 꾸이 일행은 코끼리를 데리고 또 다른 ‘관광지’로 갈까 고민 중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관광객들, 코끼리 공격 받고 숨지기도 </font></font>
아픈 코끼리를 무료로 치료해주는 코끼리 병원 ‘아시아코끼리의 친구들’ 창립자 소라이다 사왈라.

아픈 코끼리를 무료로 치료해주는 코끼리 병원 ‘아시아코끼리의 친구들’ 창립자 소라이다 사왈라.

코끼리와 마훗의 과로도 문제가 되고 있다. 더운 날씨에 식사할 틈도 없이 트레킹을 해야 하는 상황은 누구에게도 안전하지 않다. 일부 캠프는 난폭해지는 발정기에도 무리하게 수코끼리를 트레킹에 투입하다 사고를 자처하기도 했다.

2014년 11월 푸껫 사고가 대표적이다. 마훗이 트레킹을 위해 코끼리 발에 묶인 사슬을 푸는 과정에서 코끼리의 공격을 받고 사망했다. 발정 징후가 있었음에도 해당 코끼리를 정글 투어에 투입했다고 경찰은 밝혔다. 지난 2월27일 끄라비에서도 사슬을 풀던 마훗이 코끼리에 밟혀 죽었다. 5일간 발정기 휴식을 취하던 코끼리였다.

수의사들은 코끼리들의 발정기가 보통 일주일에서 길게는 3주까지 간다고 말한다. 일부 동물보호가들은 코끼리 트레킹에서 (발정기를 경험하는) 수코끼리 이용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수의사들은 발정기에 들어간 수코끼리에게는 단 음식을 금지하고 그늘에서 많이 쉬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런 점이 고려되지 않는 발정기 수코끼리의 등 위로 오늘도 누군가 오르고 있을지 모른다.

이렇듯 코끼리 관광 수요가 늘어나면서 야생 코끼리가 타이로 밀수되기 시작했다. 야생동물 불법 거래를 감시·감독해온 국제시민단체 ‘트래픽’(TRAFFIC) 2014년 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 8월~2013년 3월 타이 내 여러 코끼리캠프에서 불법 거래된 것으로 판단되는 야생 코끼리는 81마리로 추정된다. 이 중 92%가 버마에서 밀수됐다. 그보다 앞선 2008년 트래픽 보고서는 250마리의 코끼리가 버마에서 타이 관광지로 밀수됐다고 밝혔다.

코끼리가 벌채에 활용될 때는 힘이 센 수컷의 가치가 높았다. 그러나 관광업이 대세가 되자 훈련이 용이한 3~5살 아기 코끼리가 고가에 거래되고 있다. 예를 들어 1990년대 초반 길들여진 ‘가축’ 코끼리가 5만밧(약 160만원)에 거래됐다면, 최근에는 길들여지기 전인 ‘야생’ 코끼리의 가격이 100만밧(약 3300만원) 수준이다. 다만 2012년부터 타이 정부가 코끼리 밀수를 단속하면서 버마에서 타이로 불법 유입되는 야생 코끼리 수는 줄어드는 추세다. 크리스 셰퍼드 트래픽 동남아 지부장은 “코끼리 밀수가 제대로 모니터링되지 않기 때문에 여전히 불법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며 “체계적인 감시체계 확립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관련 법망에도 허점이 많다. 타이는 2014년 12월27일부터 동물복지 법안을 발효해 동물 학대를 처벌하고 있다. 이듬해 1월 농카이 지방에서 한 주민이 개에게 칼을 던져 얼굴에 긴 상처를 입힌 혐의로 기소된 것이 첫 기록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이 법은 야생동물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야생 코끼리는 보호받을 수 없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코끼리와 마훗(조련사)의 ‘깨어진 우정’</font></font>

야생 코끼리와 가축 코끼리가 서로 다른 법의 적용을 받는 것은 계속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야생 코끼리는 1921년 야생보존보호법을, 가축 코끼리는 1939년 노동가축법의 적용을 받는다. 후자에 따르면 8살 이전 가축 코끼리는 등록하지 않아도 된다. 따라서 밀렵으로 포획한 8살 미만 야생 코끼리가 파잔 의식을 거쳐 가축화되면 아무런 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이런 법망의 허점으로 인해 아기 야생 코끼리가 불법 거래될 가능성이 상존한다.

코끼리 관광에 위험이 내재된 건 코끼리와 마훗 간 유착관계가 붕괴되는 데서도 기인한다. 전통적으로 마훗은 코끼리와 어린 시절부터 같이 성장하며 탄탄한 우정을 나누는 관계로, 이른바 가문의 대를 잇는 전문 직업이다. 그러나 오늘날 일부 코끼리캠프는 코끼리를 빌려서 이용하고, 해당 코끼리와 유대관계가 전혀 없는 이들을 마훗으로 고용한다. 게다가 전통적 명예는 사라진 채, 어렵고 더럽고 위험한 이른바 ‘3D’ 직업이 돼버린 마훗은 버마 이주노동자로 채워지고 있다.

치앙마이·람빵·방콕(타이)=<font color="#008ABD">글·사진</font> 이유경 국제분쟁 전문기자 Lee@Penseur21.com

<font color="#00847C">*2회에서 무분별한 코끼리 관광에 짓밟히는 타이 이주노동자 이야기가 이어집니다.</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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