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인종 시위 배후는 총리

말레이시아 집권여당 1MDB 스캔들 묻으려 ‘인종주의’ 불붙여, 집회에서도 총리의 격려 밝혀… 출범한 신야권연대는 보스정치 구태 보여주고 정치개혁운동 ‘베르시’는 말레이계 조직 실패

제1081호
등록 : 2015-10-07 17:51 수정 : 2015-10-12 18:30

크게 작게

9월16일 ‘말레이 존엄’을 내걸고 연 레드셔츠 집회. 한 참가자는 취재진을 향해 “미친 중국 돼지”라는 막말도 서슴지 않았다. REUTERS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택시 운전을 하는 압둘 라만(70)은 최근 거리집회에 질색했다. “왜 인종 문제를 건드리는지 모르겠다. 의제도 목적도 없이 모여 중국계 탓만 하고 있다.”

압둘이 질색한 집회는 9월16일 말레이시아 연방기념일에 모였던 일명 ‘레드셔츠’(타이 레드셔츠와는 무관) 시위를 말한다. 압둘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말레이민족연합기구(UMNO·United Malay National Organisation)의 열성 당원이었다. 지구당 위원장까지 지냈으나 “투명치 않은” 당 운영을 이유로 UMNO를 떠났고 10년 전부터 범말레이시아이슬람당(PAS·Pan-Malaysia Islamic Party)을 지지하고 있다. 말레이 민족주의 정당과 이슬람 정당을 두루 거친 그는 ‘말레이 무슬림’의 한 전형이다.

1969년 인종폭동의 어두운 기억

말레이시아 연방이 출범한 1963년부터 압둘이 정당 활동을 하던 1980년을 거쳐 다시 25년이 흐른 지금에 이르기까지 말레이시아 여당은 변함없이 UMNO다. 57년간 교체되지 않은 권력은 이제 부패의 대명사가 됐다. 게다가 7월 초 탐사보도 인터넷 언론 <사라왁 리포트>(Sarawak Report)는 국영투자회사인 1MDB(1Malaysia Development Berhad)의 공금 7억달러가 나집 라작 총리의 개인 통장으로 들어갔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다국적으로 얽힌 ‘1MDB 스캔들’에 미 연방수사국(FBI)까지 수사에 나섰다는 게 <월스트리트저널>의 보도다. 나집 정권과 UMNO는 당내 분열까지 겪으며 건국 이래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바로 이때 레드셔츠가 등장했다. 야당인 인민정의당(PKR)의 티안 추아 부대표는 레드셔츠의 배후를 “의심할 여지 없이 나집”이라며 이렇게 덧붙였다. “연루된 범죄 수위가 높아 자신이 사퇴하면 측근 다수가 감옥에 가야 한다. 그걸 막기 위해 버틸 것이고 버티는 동안 인종 카드는 계속 이용될 것이다.”

레드셔츠는 8월 말레이시아 정치개혁운동인 ‘베르시(Bersih) 4’가 나집 하야의 목소리를 낼 때와 맞물려 모습을 드러냈다(베르시 1·2·3차는 각각 2007·2011·2012년). 그리고 9월6일, 섬한 문구를 담은 익명의 벽보가 쿠알라룸푸르 시내에 나붙으며 레드셔츠의 본색은 드러났다.

“베르시 중국놈들은 꺼져라/ 피바다 2탄”.


암시하는 바가 뚜렷했다. 말레이시아의 어두운 역사로 남은 1969년 5월13일 인종폭동의 기억을 끄집어낸 게다. 그해 5월10일 치른 총선에서 UMNO가 포함된 집권연정 ‘동맹’(Alliance)이 패하자 동시다발적 폭동이 일어났다. 공식 사망자 수는 137명이지만 외교가 정보는 600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절대다수는 중국계였다.

“레드셔츠는 UMNO 내 극우 정파다. 한 단체가 아니라 각기 다른 ‘보스’가 이끄는 그룹들이 모인 거다. ‘말레이 무술단’을 이끌던 전 말라카 주정부 장관 모드 루스탐 알리도 있고, (쿠알라룸푸르 외곽 타운) 성아이베사르의 UMNO 지구당 위원장 자말 유누스처럼 악명 높은 인물도 있다.”

정치평론가 웡 칭 후앗의 설명이다. 웡은 UMNO가 필요에 따라 페르사카(Persaka)나 이스마(ISMA·말레이시아 무슬림연대) 같은 극우 단체에 ‘말레이 민족주의’ 선동 임무를 부여해왔다고 말했다. 그 임무가 지금 페르사카에서 다시 UMNO 극우 정파로 이동했다는 것. 이유가 흥미롭다. 페르사카는 나집 총리 하야의 목소리를 높이며 베르시 집회에도 모습을 드러냈던 UMNO의 거물, 마하티르 모하맛 전 총리를 추종하기 때문이다. 마하티르는 베르시 집회 현장에 나타나 베르시 주장을 지지하는 건 아니라고 못박았다. 나집의 사퇴를 요구할 뿐. 마하티르가 ‘나집 타도’에 나선 건 가볍지 않은 이유를 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말레이시아 박정희’가 나집 사퇴 외치는 이유

우선 자신의 아들과 그 측근을 UMNO 주도 세력으로 키우기 위한 행보라는 지적이다. 마하티르의 아들로 케다주 장관인 무크리즈 마하티르는 케다주 공항 건설과 주정부 예산 문제를 두고 나집 총리와 갈등 관계에 있다.

PKR 티안 추아 부대표는 아들 밀어주기 시나리오를 “배제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마하티르의 행보를 설명하는 게 불충분하다”며 덧붙였다. “마하티르는 한국의 독재자인 박정희 같은 인물이다. 자신의 집권 기간에 개발독재로 이루어놓은 경제성장에 대해 스스로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나라를 부흥시킨 지도자로 기억되고 싶은데 나집이 자신의 공적을 파괴하고 있다고 보는 거다.”

레드셔츠와 나집 총리의 관계는 9·16 집회 현장에서 확인됐다. 이날 집회에는 차관급 인물이자 나집 충성파로 알려진 아맛 마슬란도 참가했다. 이날 <말레이시아 인사이더>는 또 다른 참석자인 UMNO 국회의원 아누아르 무사가 나집 총리와 아맛 자히드 하미디 부총리의 ‘감동의 연대사’까지 전했다고 보도했다.

“나집 총리로부터 방금 전화를 받았다. 모두에게 안부를 전하라신다. 총리, 부총리 모두 거대한 인파의 평화로운 시위에 가슴이 뭉클하시다고.”

그러나 시위는 평화롭지만은 않았다. 경찰은 차이나타운 바리케이드를 뜯어내려는 레드셔츠를 향해 물대포를 쐈다. ‘말레이 존엄’을 내건 한 레드셔츠 집회 참가자는 취재진을 향해 “미친 중국 돼지”라는 막말도 서슴지 않았다.

역사적 데자뷔가 하나 있다. 나집 총리의 부친이자 2대 총리를 지낸 압둘 라작 후세인은 1969년 5·13 인종폭동 당시 부총리였다. 폭동의 역사를 기록한 쿠아키아 숭은 책 <메이 13>(May 13) 43쪽에 이렇게 적었다. “외교가 기밀문서와 외신기자들의 전송기사들은 부총리였던 (시니어) 라작이 폭동 시작부터 (5월15일) 비상사태 선포시, 그리고 5·13 이후 통제권을 전면적으로 장악하고 있었다고 기술한다.”

같은 책 61쪽에는 “폭동이 발발한 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권력이 부총리인 라작에게 돌아간 건 쿠데타 음모가 있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라고 적었다.

그리하여 1대 총리 툰쿠 압둘 라만은 사임했고 통제권을 장악한 (시니어) 라작 정부는 의회를 해산하고 국가작전평의회(NOC·National Operational Council)라는 비상국가체제를 운영했다. NOC는 영국 식민시대의 유산인 ‘선동죄’를 개정해 이른바 ‘부미푸트라’(‘본토민’이라는 뜻) 보호 장치인 헌법 제153조에 대한 의문을 원천 봉쇄했다. 문제제기가 곧 선동죄가 돼버린 개정안은 1971년 재소집된 의회를 통과했다. 부미푸트라에게 혜택을 부여하는 구체적 정책안들이 ‘신경제 정책’(NEP)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것도 폭동의 후속 조치였다. 명목은 빈곤을 퇴치하고 주류 말레이 빈곤층에게 혜택을 주어 중국계에 쏠린 부의 균형을 잡겠다는 것이다.

출범 기자회견의 발표 내용은 딱 한 가지

9월22일 신야권연대인 ‘희망연대’ 소속 정치인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오른쪽이 수감 중인 안와르 이브라힘의 부인이자 인민정의당(PKR) 대표인 완 아지자. AP 연합뉴스

레드셔츠는 9월25일 차이나타운 짝퉁 상점을 단속하겠다며 또 다른 집회를 경고했다. 취소된 집회 자리에 나타난 건 3일 전 출범한 신야권연대인 ‘희망연대’(PH·Pakatan Harapan) 소속 정치인들이었다. 그러나 PH는 출발부터 미숙한 정치력과 보스정치의 잔해를 남김없이 보여주었다.

9월22일 8분 남짓한 출범 기자회견에서 이들이 발표한 건 딱 한 가지다. 정권이 교체되면 현재 동성애 혐의로 수감 중인 안와르 이브라힘이 차기 총리가 된다는 것. 이어진 기자들의 질문에 마이크를 독점한 건 안와르의 부인이자 PKR 대표인 완 아지자였다.

“사람들이 PH가 국민을 위한 연정이 아니라 ‘안와르 차기 총리만을 위해 모인 그룹’이라고 비아냥거리고 있다. 발표할 것도 없으면서 기자회견부터 해버렸다.” 익명을 요구한 한 PKR 당원의 쓴소리다.

PH는 정치개혁 운동의 파트너였던 시민사회 대표들을 토론에 초대해놓고 토론 없이 기자회견만 서둘렀다. 베르시의 상징적 인물인 친 마리아 압둘라와 암비가 스레네바산은 이에 대한 항의로 현장에서 퇴장했다는 후문이다. 개혁운동의 또 다른 파트너였던 말레이시아 사회당(PSM)은 초대도 받지 못했다. 이와 관련해 헌법 제153조가 다시 논란의 도마 위에 올랐다. PSM이 이 조항을 반대해서 초대받지 못했다는 발언이 야권연대의 주요 인물에게서 나왔기 때문이다. 전 PSM 사무총장 아룰셀반은 말레이시아 사회에서 제153조는 대단히 민감한 이슈이며 이를 거부하는 건 인종 갈등을 조장할 위험이 크다고 말했다.

“우리 당은 이 조항에 반대한 적이 없다. 제153조는 비본토민도 동등하게 다뤄져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해석의 문제다. 우리 당은 ‘차별 철폐’를 내건 정책이 ‘인종’에 기반한 게 아니라 ‘계층’에 기반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경제적으로 열악한 계층에 혜택을 부여하면 말레이 중간층이 진정한 수혜자가 된다.”

국회에 1석을 확보한 PSM은 지난해 2월 사회포용법안(Social Inclusion Act)을 발의한 바 있다. 국가의 ‘빈곤 퇴치 정책’을 모니터하자는 법안은 여당의 거부로 묻혔다.

“수십 년간 부미푸트라 정책을 시행해도 다수 말레이는 여전히 가난하다. 40년 넘게 이어온 정책이 실패했다면 재점검할 때가 된 거 아닌가?” 익명의 PKR 당원은 이 정책이 보호하는 건 부미푸트라가 아니라 정치 엘리트와 그 측근들이라고 꼬집었다.

정치평론가 웡 칭 후앗은 이 정책을 민주주의와 연관지어 설명한다. “말레이계는 UMNO가 정권을 잃으면 말레이 커뮤니티의 이익이 훼손될까봐 두려워하고 있다. 아이러니다. 민주주의는 숫자게임이고 보통은 소수자들이 민주주의가 다수의 횡포로 전환될까 두려워하는데.”

‘다수’ 말레이 민족주의자들의 두려움

그는 베르시 운동이 말레이 민족주의자들을 설득시켜 민주주의가 그들에게 바람직한 시스템이라는 걸 각인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정권이 바뀌더라도) 민주 권력은 다수의 이익에 봉사할 수 있으니 그 ‘숫자’를 믿어야 한다고.

그런 면에서 ‘말레이 무슬림’의 전형을 보인 택시운전사 압둘은 민주주의의 상식을 굳건히 믿고 있는 일인이다. “절대권력을 믿지 않는다. 바꿔서 잘못하면 또 바꾸면 된다. 그게 민주주의 아닌가.”

이유경 Lee@Penseur21.com

*참고서적 Kua Kia Soong, 2013, 'May 13 - Declassified Documents on the Malaysian Riots of 1969', Suaram Kommunikasi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