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1MDB, 말레이시아를 통째로 흔들다

나집 총리와 57년째 집권 여당의 기반을 흔들고 있는 1MDB 스캔들… 강압적 통치에 억눌렸던 시민사회가 목소리를 드높이는 것도 눈여겨볼 만
등록 2015-08-07 15:59 수정 2020-05-03 04:28

말레이시아의 1MDB 시한폭탄이 결국 터졌다. 1MDB(1 Malaysia Development Berhad·말레이시아 개발 유한회사)는 2009년 1월 나집 라작 총리의 주도로 설립된 자산 규모 450억링깃(약 14조8500억원)의 말레이시아 국영투자회사다. 말레이시아 정부의 지급보증으로 유치한 국내외 자본을 발전소 건설, 석유 탐사 등 발전사업과 부동산 개발사업에 투자해 차익을 도모하는 것이 회사의 설립 목적인데, 최초 설립 때부터 현재까지 나집 총리가 1MDB 고문단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말레이시아 나집 라작 총리가 설립 때부터 고문위원장으로 활동한 1MDB의 시한폭탄이 터지고 말았다. 나집 총리가 쿠알라룸푸르에 있는 모스크에서 사람들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AP 연합뉴스

말레이시아 나집 라작 총리가 설립 때부터 고문위원장으로 활동한 1MDB의 시한폭탄이 터지고 말았다. 나집 총리가 쿠알라룸푸르에 있는 모스크에서 사람들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AP 연합뉴스

특별조사팀의 조사가 의심스러워

1MDB는 불투명한 경영 행태와 자금 집행, 그리고 높은 부채 탓에 정·재계 요주의 대상이었다. 말레이시아 안에서는 야권의 비판과 시민사회의 비리 의혹 제기가, 나라 밖에서는 투자자와 채권시장의 부실 우려가 계속됐다. 그런데 올해 들어 나집 총리 본인과 측근에게 회사 자금이 흘러들어간 정황을 설명하는 개인 전자우편과 계좌 송금 내역이 말레이시아 뉴스 포털 (sarawakreport.org)와 등 외신을 통해 밝혀졌다. 이로 인해, 2010년 초부터 무수한 의혹을 뿌렸던 1MDB 스캔들이 나집 총리는 물론 57년째 집권 여당인 통일말레이국민조직(UMNO)의 기반을 흔들고 있다.

현재 말레이시아 경찰, 검찰, 중앙은행과 반부패위원회(SPRM) 등 4개 기관이 참여한 ‘1MDB 비리 의혹 특별조사팀’이 구성돼 있는데, 말레이시아 시민사회 초미의 관심사는 조사팀의 독립성과 투명성이다. 총리의 스캔들 대응 방식을 비판한 나집의 내각과 여당 내 2인자 무히딘 야신이 부총리직에서 해임됐고, 특별조사팀에 참여한 검사 압둘 가니 파타일이 신병을 이유로 사임했다. 이 때문에 특별조사 과정의 독립성과 투명성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이런 우려에 대해 자라인 모하멧 하심 주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대사는 7월30일 시사주간 (Tempo)와의 인터뷰에서 “일단 조사팀이 혐의 내용을 조사해 밝히도록 하자. 매우 독립적인 조사팀이다. 근거 없는 의심과 비판을 제기해서 혼란을 만들고 민주적으로 선출된 총리를 밀어내려 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민중정의당(PKR), 무소속, UMNO를 거치며 초선 국회의원을 지냈던 자라인 대사는 와의 인터뷰 중 부총리 해임 건에 대해 “한 내각 안에 다른 목소리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1MDB 비리 의혹을 보도한 경제 매체 (The Edge)의 주간과 일간 신문을 3개월 발행 정지한 정부 조처에 대해선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를 중상모략으로 흔드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상품서비스세(GST·Goods and Service Tax)를 적용하겠다는 정부 발표가 나오자마자 1MDB 때문이라는 말들이 나왔다. 나집 정부 들어 경제 사정도 안 좋고…. 정부가 뭘 하겠다면 일단 의심부터 하게 되는 게 사실이다.”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 남쪽 위성도시 수방자야 주민 초웨이홍(31)의 말이다.

상품서비스세도 1MDB 투자 실패 때문?

상품서비스세는 부가가치세의 일종으로 나집 정부가 2011년에 도입을 시도했다가 여론의 반대로 미뤄져 2015년 4월1일부터 적용된 6% 세율의 새로운 소비세다. 도입 명목은 국제 유가 인상 등에 따른 정부 재정적자 해소지만, ‘1MDB가 투자사업 과정에서 진 빚을 못 갚아 메워야 할 돈을 시민들 주머니에서 갹출한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있다. 자라인 대사는 최근 쏟아지는 1MDB와 나집 총리, 집권 여당을 둘러싼 각종 의혹에 대해 “말레이시아에서는 일단 의심부터 하려고 드는 게 문제”라면서 “오랫동안 (시민사회 안에) 쌓인 증오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1MDB는 한국과도 관련이 있다. 이 회사가 단독으로 혹은 아부다비 정부의 국제석유투자공사(IPIC)와 공동으로 지급보증해 발행한 총채권 17조5천억달러(약 1조7500억원) 가운데 한국의 대형 보험사와 연기금 등이 2012년 10월부터 2013년 6월까지 사들인 채권은 모두 8억4300만달러(약 8430억원) 규모다.

2013년 9월15일 보도를 보면, 1MDB 채권을 매입한 국내 보험사는 동부화재(2200억원), LIG손해보험(1천억원), 메리츠화재(550억원), 교보생명(500억원), 현대해상(330억원) 등이다. 같은 신문의 2013년 9월23일 보도를 보면, 교원공제회(500억원), 사학연금(500억원), 대우증권(500억원) 등도 1MDB 채권에 투자했다.

1MDB 비리 의혹과 함께 말레이시아 시민사회도 목소리를 드높이고 있다. 57년간 이어진 집권 여당과 정부의 불통적 리더십 관행이 비판의 초점이 되고 있다. 정부는 집권당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과 의혹을 정치적 음모론으로 몰아세우고, 국가보안법·선동방지법 등으로 시민들을 위협해왔다.

각자 담아뒀던 말들을 꺼내다

이는 22년간 집권하며 ‘닥터 엠’(Dr. M)으로 불려온 마하티르 모하맛 전 총리가 남긴 정치적 유산이기도 하지만, 그는 지난 4월부터 나집 총리의 퇴진을 직접 압박하고 있다. 이에 대해 공정선거운동 베르시2.0 대표 마리아 압둘라 친은 “시민사회의 변화 열망 속에서는 존속할 수도 없고 살아남을 가치도 없는 UMNO를 살리기 위해 마하티르가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평했다.

“정부가 내 만화에 금지령을 내릴 수는 있어도, 내 생각에 금지령을 내릴 수는 없다.” 정부에 비판적인 만화를 그린 뒤 선동방지법에 따라 체포돼 43년형에 기소된 풍자만화가 주나르의 말이다. 말레이시아 시민들은 그동안 각자 담아뒀던 말들을 모두 꺼내놓고 있다.

자카르타(인도네시아)=이슬기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