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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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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시설에서 마약 놓는 사람들

캐나다 밴쿠버에 있는 공인 마약 시설 ‘인사이트’
사고·전염 막기 위해 간호사 입회 아래 스스로 주사
등록 2014-01-08 14:19 수정 2020-05-03 04:27
캐나다 밴쿠버의 정부 마약 시설 ‘인사이트’에서 정부 고용 간호사인 다니엘 쿠시노(27)가 주사실에 비치된 주사 기기 등을 정리하고 있다.

캐나다 밴쿠버의 정부 마약 시설 ‘인사이트’에서 정부 고용 간호사인 다니엘 쿠시노(27)가 주사실에 비치된 주사 기기 등을 정리하고 있다.

캐나다 밴쿠버의 이스트사이드는 흔히 말하는 ‘슬럼’이다. 이곳 이스트헤이스팅스가 139번지에는 정부의 마약 시설 ‘인사이트’(INSITE)가 있다. 밀봉된 일회용 주사기와 알코올솜, 식염수와 고무밴드 등을 무료로 제공하고, 원한다면 올바른 주사법 안내 교육도 해주는 곳이다.

일회용 주사기, 알코올솜 등 무료 제공

지난해 12월20일 오후 3시께 이곳을 찾았을 때 대기실에는 20여 명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딱딱한 나무의자 3~4개가 전부인 대기실에서, 자리를 찾지 못한 사람들은 벽에 기대서거나 바닥에 주저앉았다. 쓰러지듯 누운 이도 있었다. 대다수는 조용히 있었지만, 가방에 든 물건을 모두 늘어놓고 “이거 고치는 것 좀 도와줘!”라고 소리치는 이도 있었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휘청이는 이도 있었다. 성적 정체성인지 취향인지 남성의 몸으로 미니스커트를 입고 옆 사람에게 끊임없이 중얼대는 이도 있었다. ‘취했을’지언정 위협적이진 않았지만, 목욕은 언제 했고 세탁은 언제 했는지 퀴퀴한 냄새 곁으로 다가가기엔 내 정신이 너무 멀쩡했다.

접수대에 선 직원 2명은 몹시 긴장한 듯 보였다. 찾아오는 사람이 계속 늘고 있었다. “정부의 생계지원금이 막 지급돼서 오늘 참가자가 많네요.” 이곳에선 이용자를 ‘참가자’라고 불렀다. 직원들은 오가는 이들을 끊임없이 주시했고, 순서가 되면 이름을 불러 주사실로 안내했다. 대기줄이 긴 것을 보고 발길을 돌리는 이도 많았다. 이런 경우 대개는 접수대에 놓인 주사 기구를 한 움큼 쥐고서 떠나갔다. 직원들은 다시 주사 기구를 채워놓았다. 누구나 원하는 만큼 가져갈 수 있다. 시설은 매일 오전 10시부터 다음날 새벽 4시까지 운영된다.

2003년 설립된 인사이트는 밴쿠버가 속한 브리티시컬럼비아주의 주정부가 재원을 대고 비영리단체가 운영한다. 정부 시설이므로 경찰이 마약 사범을 잡겠다며 ‘쳐들어올’ 일은 없다. 이곳 디렉터인 러스 메이너드의 말이다. “전세계에 이런 시설이 80~90곳 있는데, 대부분 유럽에 있어요. 전세계적으로 이용 건수는 여기가 제일 많습니다. 한 사람이 2~4차례 찾아오는 경우를 포함해서 하루 700~750건(주사)에 이르죠.”

위층은 중독 치유시설 ‘온사이트’

시설 바로 위층에는 ‘온사이트’(ONSITE)라는 중독 치유 시설이 있다. 해마다 주사 시설 이용자 약 450명이 온사이트에 자발적으로 등록한다. 마찬가지로 주정부가 재정을 지원하고 있어 이용은 무료다.

“정신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 가족과 친구 등 주위 사람들이 불편해하죠. 결국 고독과 고립감 때문에 힘들어하게 돼요. 알코올이나 약물 중독 가능성도 높아지죠. 이 지역엔 직업도 돈도 없이 혼자 그런 삶을 사는 사람이 많아요. 우리는 그들의 고립과 고독을 덜어주는 구실도 하고 있습니다.”

메이너드는 자신이 일하는 비영리기구가 이 지역에서 저가 주택 1200채를 임대하고 있으며, 채산이 맞지 않아 떠났던 은행을 복귀시켜 공동체 복원에 일조했다고 덧붙였다. 인사이트 대기실 게시판에는 잃어버린 고양이를 애타게 찾는다는 사연을 손글씨로 또박또박 쓴 종이 2장이 붙어 있었다.

밴쿠버(캐나다)=글·사진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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