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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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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콜로라도, 청춘의 땅이여

미국 50개 주 가운데 최초로 대마초 전면 유통 허용
금지정책 고수하는 연방정부는 “일단 지켜보겠다”
등록 2014-01-07 14:13 수정 2020-05-02 04:27

“지난 5천 년 동안 대마는 의복과 식량 등 석유제품으로 생산하는 대부분의 것들을 만드는 데 써온 원재료입니다. …마리화나는 여러분을 기분 좋게 하고 웃게 만들지만, 숙취는 없어요. 알코올과는 달리, 술집에서의 싸움이나 아내 폭행으로 이어지지도 않습니다. 이렇게 무해한 식물이 왜 불법일까요? 마리화나를 시작하면 마약의 길로 빠져드나요? 아닙니다. 술 때문에 마약중독에 빠질 가능성이 더 큰데도, 술은 무지막지하게 광고를 합니다. 내 생각에 대마가 불법이 될 만한 유일한 이유는 ‘주식회사 미국’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의회’를 쥐고 있는 ‘주식회사 미국’은 팍실·졸로프트·자낙스(이상 항우울제 계열 의약품) 등 중독성 약품을 여러분에게 팔면서 그 이익의 일부를 챙기는 게, 여러분이 집에서 대마를 재배하는 것보다 이익이라고 생각한 거죠. 정말 우스꽝스러운 정책입니다. 에너지 자원의 국외 의존도를 높이는 데도 한몫 거든 게 분명하고요.”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은퇴를 선언한 펀드매니저 앤드루 라드가 자신의 투자자들에게 남긴 편지의 일부다. 라드는 편지 대부분을 워싱턴 정가와 월가에 대한 쓴소리로 채운 뒤, 마지막에 대마초 합법화 필요성을 제기했다. 마치 그의 소원이 이뤄지기라도 한 듯이, 2014년 1월1일 미국엔 대마초의 전면적인 유통을 허락하는 주가 탄생했다. 콜로라도주다.
콜로라도주에서는 136개의 대마초 판매허가권이 발급됐고, 주도이자 최대도시인 덴버에선 18곳의 가게가 이날부터 대마초 판매를 시작했다. 말린 잎, 쿠키, 빵 등 형태도 가지가지다. 워싱턴주도 올해 안으로 같은 조처를 시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알래스카·오리건·애리조나·캘리포니아·메인·매사추세츠·몬태나·네바다 등 8개 주에선 2016년까지 합법화에 대한 투표가 실시될 전망이다. 델라웨어·하와이·메릴랜드·뉴햄프셔·로드아일랜드·버몬트 등 6개 주에서도 입법안이 추진 중이다.

캘리포니아 등 8개 주 합법화 투표 앞둬

어느 나라가 됐건, 마약 정책은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논쟁을 수반한다. 개인의 권리와 집단의 권리에 대한 철학적 고민이 배경에 깔려 있기도 하다. 과거 유럽과 미국은 이 지점에서 갈라졌다. 네덜란드는 젊은 층 사이에 대마초 사용이 광범위하게 퍼지던 1960년대 후반 대마초 비범죄화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대마초 사용이 일탈을 부추기진 않을 것’이라는 데 이르렀고 1976년 비범죄화를 결정했다. 1990년대 이후 스위스·독일·스페인·벨기에·이탈리아·포르투갈 등은 네덜란드와 같은 길을 걸었다. 영국도 2004년 ‘재분류’를 거쳤다.
반면 미국의 약물 정책은 1990년대까지 철저한 금지주의를 택했다. 마약에 대한 형사처벌을 강화했다. 국외로부터의 유입을 차단하고, 공급지를 파괴하는 등 ‘공급 차단’ 정책을 실시했다. 약물 사범에겐 어떤 관용도 허하지 않고 범죄자로 다루는 ‘수요 차단’ 정책도 나왔다. 약물 사용이 범죄와 연관되는 경우가 늘었고, 사용자들은 범죄자로 다뤄졌다. 약물은 종류에 따라 소비 패턴이 있으므로 저마다 규제 및 관리 방안이 달라야 한다는 주장은 묻혔다. 대마초를 코카인·헤로인 등과 더불어 ‘마약’으로 통칭하며 그 사용자가 범죄와 무관해도 범죄자로 다뤄지는 한국 사회의 시각은, 따지고 보면 미국식인 셈이다.
지금도 미 연방정부는 같은 태도를 고수한다. 연방정부는 어떤 목적으로도 대마초 사용을 허용하지 않는다. 식품의약국(FDA)이 신약에 대해 요구하는 엄격한 임상시험과 과학적 조사를 거쳐 승인을 얻어야 한다는 원칙론이다. 대마초가 함유한 500개 물질 가운데 일부는 약학적으로 성분이 규명돼 처방하는 경우도 있지만, 아직 안전성 면에서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러나 강경 일변도의 정책은 균열이 나기 마련이다. 1996년 캘리포니아주에서 의약용 대마초 사용을 허용하는 법안이 전체 주민투표를 통해 통과됐다. 한 주민이 에이즈 증상 완화를 위해 대마초를 흡연했던 아버지를 기리며 내놓은 입법청원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뒤이어 애리조나·워싱턴·오리건 등이 의약용 대마초의 판매와 거래, 소량 재배를 허용했다. 지금은 워싱턴DC와 20개 주가 이같은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제복 입고 대마초 피운 캐나다 경찰

의약용에 한해 대마초의 소량 재배 및 거래를 허용할 경우에도 고려해야 할 게 적지 않다. 캐나다는 최근 의약용 대마초 사용에 관한 의미 있는 사례를 보여준다. 2001년부터 의약용 대마초를 허용해온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에서 최근 제복 공직자의 대마초 흡연이 이슈가 됐다. 왕립기마경찰대 소속인 론 프란시스(22) 상경은 지난해 11월 말 근무복 차림으로 공공장소에서 대마초를 흡연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프란시스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 탓에 의사로부터 하루 3g의 대마초를 처방받았다. 그는 “직무 중에 얻은 질환이다. 안정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대마초 3g은 흡연시 약 6개비에 해당한다. 경찰 쪽에선 “근무 중엔 정신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약품을 허용할 수 없다. 무기 소지자나 차량 운전자도 마찬가지”라며 불허 방침을 밝혔고, 프란시스는 ‘합법적인 이용’이었다며 항의했다. 결국 그는 제복을 모두 압수당했다. 지금은 법적 절차를 준비 중이다.
보건 당국이 대마초의 말린 잎을 흡연하는 방식의 유통만 허용했던 것도 도마 위에 올랐다. 의약용 대마초의 합법적인 구매처인 빅토리아컴패션클럽의 수석제빵사 오언 스미스는 쿠키·브라우니·식용유 등 대마초를 이용한 ‘식품’을 만들었다가 ‘밀수 목적의 불법 소유’ 혐의로 기소되는 등 고초를 겪었다. 그러나 2012년 재판부는 만성 통증이나 녹내장에 좋은 대마초의 성분은 흡연보다 섭취가 적절한 방식이라는 증언을 채택하는 등의 과정을 거쳐 결국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은 주정부 항소심이 진행 중이지만, 하급심 판결 이후 브리티시컬럼비아주에서는 대마초 성분이 포함된 버터, 빵, 로션, 식용유 등이 지정 생산·유통자들을 통해 환자들에게 판매되고 있다.
캐나다 연방정부가 개별적인 소량 재배를 더 이상 허용하지 않기로 한 것도 입길에 올랐다. 연방정부는 오는 4월1일부터 소량 재배를 허용치 않고, 지정 판매자들로부터 우편 구매만 허용할 방침이다. 환자들은 정부가 통제 권한을 늘리며 비용 부담을 전가시키고 있다고 반발한다. 아들(25)이 경련 증상 완화를 위해 처방을 받아 집에서 대마초 8그루를 기르고 있다는 존 파구하슨(66)은 “직접 기르면 그램당 50센트(약 500원) 정도면 충분하지만, 구매할 경우엔 그램당 8~10달러(약 8천~1만원)나 한다. 소량 재배를 하고 있는 환자가 전국에 3만~4만 명에 이른다. 가처분 신청을 준비 중이다”라고 말했다.

주정부는 세수입·관광객 증대 기대

콜로라도의 비의약용 대마초 거래 합법화는 이 모든 논란을 잠재우며 한발 나아간 결정이다. 2012년 11월 콜로라도주는 주민투표에서 55.3%의 찬성으로 대마초 및 대마초 성분 함유 상품에 대한 ‘21살 이상 주민의 개인적 사용 및 보유, 상업적 재배, 제조, 판매’를 허용하기로 결정했다. 2013년 5월 주지사는 각종 제도적 장치를 통과시켰다.
연방정부는 일단 두고 보겠다는 입장이다. 비슷한 절차를 밟고 있는 워싱턴주와 더불어, 판매와 유통에 대해 주정부의 통제가 제대로 실시되는 한 연방법과의 충돌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각 주정부는 대마초 거래 합법화를 통해 걷게 된 세금과 대마초를 합법적으로 구입하러 오는 관광객에 대한 관심이 큰 만큼, 긁어 부스럼이 되지 않도록 예의주시하고 있다.
덴버시의 ‘대마초 가게’에 줄을 섰던 한 시민(32)은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근처 어디서든 불법 대마초를 사면 세금은 안 내도 될 것이다. 하지만 연방정부에 한번 보여주고 싶다. 대마초 합법화에 대한 지지 여론이 이 정도라는 것, 그리고 모두가 이런 현실에서 살 수 있다는 것을.”

빅토리아(캐나다)=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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