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부족사회의 오래된 전통인 취수제가 지금 기로에 서다
한반도 북방 부여족의 종주국이었던 부여에는 형사취수(兄死娶嫂)의 풍습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동아프리카 빅토리아호 연안의 냔자지방에 주로 사는 루오족 사회에 형사취수제와 유사한 취수제(娶嫂制)가 아직도 온존하고 있어 이의 존폐를 놓고 여권론자들과 전통수호론자들간의 논쟁이 끊이질 않고 있다.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형제 혹은 가까운 친척과 결혼하는 이러한 관습을 일부에서는 취수제(wife inheritance) 혹은 수혼(嫂婚, levirate)이라고 규정하는데 전통의 옹호자들은 호수제(護嫂制, wife guardianship)라는 그럴듯한 용어로 둘러댐으로써 여권론자들의 예봉을 피해왔다. 동일한 사회적 현상에 대한 상이한 명칭 사용은 이에 대한 가치판단과 인식의 차이에 기인한다.
목소리 높이는 여권론자들
취수제는 가족과 부족사회의 영역 안에서만 실시되는 일부다처제다. 미분화된 전통사회에서는 사회, 경제적 활동이 부족의 활동영역 안에만 국한되었고 남성에 대한 여성의 종속과 의존이 절대적이었다. 이러한 전통사회에서 남편을 잃는다는 것은 곧 경제적 능력의 상실로 이해되었고 죽음으로 초래된 공백을 채워주는 것이야말로 가족과 사회구성원들의 의무로 인식되었다. 아내를 물려받은 형제는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함으로써 부족사회 내의 질서와 공동체의식을 유지해왔다. 개인의 존재는 언제나 공동체의 존재를 존립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개인의 죽음으로 초래된 공백을 채움으로써 상실감을 극복하고 존재의 지속성에 대한 믿음을 확보할 수 있었다. 따라서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 취수제를 지탱하게 해온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면 취수제의 성격과 본질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 옹호론자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철폐를 주장하는 여권론자들은 취수제는 가부장적 가족제도의 전형적 유물이며 변화하는 상황에 역행하는 시대착오적 인습이라고 질타하고 이의 철폐를 위한 역량을 결집하고 있다. 또한 전통의 자의적이고 편협한 해석에 갇혀 여성의 권리와 존엄성을 유린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고 외친다. 여성의 사회참여가 점점 보편화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하면 남편이 죽은 뒤 새로운 삶을 함께 꾸려나갈 남자를 자유의지에 따라서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취수제를 존속시킴으로써 남편을 잃은 여성은 남편의 유산을 상속받을 권리를 박탈당하고 이는 결국 남성의 경제적 주도권을 지속시키려는 음험한 의도라고 파악하고 있다. 게다가 취수제가 에이즈 창궐의 주요한 요인으로 밝혀지면서 취수제 철폐논쟁은 가열되고 있다. 루오족이 주로 사는 냔자지방이 케냐에서도 에이즈 바이러스 감염률이 가장 높은 지방 중의 하나로 성인 인구 4명당 한명 꼴로 감염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이제 화두는 법적·제도적 장치
이른바 전통사회의 가치와 규범이라는 명분하에 취수제는 계속되고 있으며 이를 거부하는 여성들은 공동체사회의 저주는 물론 집단적 차별과 소외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져야 한다. 문제는 이러한 인습이 상당히 깊이 뿌리내리고 있어 모든 부족을 보편적으로 아우를 만한 중앙정부 차원의 법적, 제도적 규제가 어렵다는 점이다. 정치인들도 이러한 문제에 정면으로 나설 경우 따르는 정치적 이해득실 때문에 몸을 사린다. 법적, 제도적 규제보다 사회의 변화에 따라 전통사회의 풍습을 대체할 만한 코드를 만들어내어 순조로운 이행을 촉진하는 과제가 선행되야 할 것으로 보인다.
헨트(벨기에)=양철준 통신원 YANG.chuljoon@wanadoo.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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