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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든이 간첩? 오바마도 별수 없군

‘내부고발자 보호’ 공약했지만 임기 중 간첩죄 기소만 7번째… 2011년 ‘내부고발자=내부 위협’ 규정한 행정명령 발효하기도
등록 2013-07-03 14:55 수정 2020-05-03 04:27

미 국가안보국(NSA)이 부당한 방법으로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초법적 감시 활동을 벌였다고 폭로한 에드워드 스노든(30)에 대한 법무부의 기소 절차가 시작됐다. 는 6월21일 “연방검찰이 스노든이 재직했던 민간 정보업체 부즈앨런해밀턴의 본사가 있는 버니지아주 동부법원에 지난 6월14일 비공개 범죄 소장을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검찰 쪽에선 이를 근거로 이미 홍콩 당국에 스노든의 신병 확보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다.
검찰 쪽이 들이댄 스노든의 ‘범죄 사실’은 크게 3가지다. ‘정부 자산 절도’는, 연방정부가 보유한 무형의 자산인 ‘정보’를 훔쳐갔다는 얘기란다. 국가안보 관련 정보를 허락 없이 유출했다는 점과 이른바 ‘비인가자’에게 기밀정보를 의도적으로 전달했다는 점도 ‘범죄’로 규정됐다.
오바마 이전 ‘간첩행위 처벌법’ 적용은 단 3건
미 법무부는 누리집에 연방검찰의 업무용 매뉴얼(USAM)을 올려놨다. 이 가운데 형사 절차 관련 매뉴얼의 1629~1665번 항목은 ‘정부자산 보호’ 관련 사항이다. 이 가운데 1664번째 항목을 보면 “정부 문서나 관련 정보를 빼낸 피고를 ‘정부자산 절도’ 혐의로 기소하는 것은 자칫 내부고발자에 대한 부당한 기소로 이어질 수 있어 부적절하다”고 적혀 있다. 흥미를 끌 만하다.
정작 재밌는 사실은 따로 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범죄’로 적시한 혐의에 적용된 법률이 우드로 윌슨 대통령 시절이던 1917년 6월 통과된 이른바 ‘간첩행위 처벌법’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미국의 국가안보와 긴밀히 연계된 정보를 외부세력에게 돈을 받고 팔아넘기면 ‘간첩행위’가 된다. 외국 정부의 지시를 받고 활동하거나, 미국의 적성국가 또는 적대세력에게 기밀정보를 넘겨줘도 ‘간첩행위’일 게다. 스노든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리처드 닉슨 행정부는 1971년 이른바 ‘펜타곤 페이퍼’를 폭로해 미국의 베트남전 참전의 부당성을 세계에 알린 대니얼 엘스버그를 기소할 때 이 법률을 적용했다. 하지만 버락 오바마 행정부 출범 이전까지, ‘간첩행위 처벌법’에 따라 기소된 사건은 단 3건에 그쳤다. 이유는 분명해 보인다. ‘미국을 해하거나, 외국을 이롭게 할 목적’이란 범죄의 ‘의도성’이 지나치게 모호한 탓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2008년 대선 당시 ‘워싱턴 정치권에 필요한 변화’란 제목으로 정치개혁 방안을 담은 11쪽 분량의 공약집을 내놓은 바 있다. “예산 낭비를 중단하고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를 차단해, 정부가 우리 시대의 거대한 도전과 맞설 수 있게 하자”는 게 으뜸 구호였다. 이 가운데 ‘정부 효율성 강화’ 방안의 하나로 제시된 게 바로 ‘내부고발자 보호’ 조항이다. 공약집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정부의 잘못된 행태를 고발하는 이들은 적극 보호해야 한다. 내부고발은 용기 있는 행동이며, 고귀한 애국심의 발로이기 때문이다. 내부고발을 통해 무고한 생명을 살릴 수도, 예산 낭비도 막을 수도 있다. 내부고발은 적극 장려해야 할 일이지, 부시 행정부 시절처럼 억압할 일이 아니다.”
북한 정보 언론에 유출한 한국계도 기소
공군 장교 출신으로 2001년 9월11일부터 NSA 신호정보국 간부로 활동했던 토머스 앤드루스 드레이크(56)의 사연을 들어보자. 그는 2010년 4월 사법방해와 위증, 국가기밀 누설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적용된 법률은, 최대 징역 35년형에 처해질 수 있는 ‘간첩행위 처벌법’이다.
당시 등의 보도를 종합하면, 드레이크가 폭로한 내용은 크게 2가지다. 첫째, NSA가 자체 개발한 것보다 성능이 한참 떨어지고 가격은 터무니없이 비싼 민간업체가 개발한 데이터 수집 프로그램을 도입했다는 점이다. 둘째, 프로그램에 내장돼 있던 사생활 보호 기능을 삭제했다는 점이다. 그는 이같은 내용을 2005년 11월 을 통해 고발했다.
기소 이후 재판이 시작되기까지는 1년가량이 걸렸다. 논란의 초점은 드레이크가 해당 정보를 폭로한 ‘의도’로 모아졌다. 치열한 법정 공방 끝에 2011년 6월 초 검찰 쪽은 형량 협상에 나섰다. 드레이크가 정부 자산인 NSA의 컴퓨터를 사적 용도로 사용했다는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하는 대가로 실형을 구형하지 않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결국 그는 집행유예 1년과 사회봉사명령 선고를 받고 풀려났다. 드레이크는 스노든의 폭로가 알려진 직후인 지난 6월12일 에 보낸 기고문에서 이렇게 썼다.
“NSA는 9·11 동시테러 직후부터 이른바 ‘스텔라 윈드’라는 개인정보 수집용 프로그램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스노든이 폭로한 ‘프리즘’ 프로그램의 초기 모델일 것이다.”
유대계 변호사로 연방수사국(FBI)에서 히브리어 감청 내용의 분석 업무를 맡았던 샤마이 케딤 레이보위츠 사건도 눈여겨볼 만하다. 그의 주된 업무는 워싱턴 주재 이스라엘 대사관 도청 내용을 영어로 옮기는 일이었다. 전미과학자협회(FAS)가 2010년 5월25일 전한 내용을 보면, ‘간첩행위 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그는 법정 진술에서 이렇게 밝혔다.
“도청 내용을 푸는 과정에서, ‘이 정도 사안이면 법적으로 문제가 될 것’이란 판단을 내렸다. 이같은 사실을 여러 차례 상관에게 전달했음에도 지속적으로 무시당했다. 결국 외부로 알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가 리처드 실버스타인이란 유명 블로거를 통해 폭로한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첫째, 이스라엘이 이란 핵시설에 대한 독자적 선제 타격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둘째, 이스라엘 대사관 쪽이 미 연방 상·하원 의원들에게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런 점을 알게 된 것은 미 정보 당국이 이스라엘 대사관을 지속적으로 도·감청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그는 재판에서 징역 20개월형을 선고받았다.
농무부는 ‘간첩 식별법’ 인터넷에 올리기도
이뿐이 아니다. “중앙정보국(CIA)이 러시아 출신 과학자를 이란으로 침투시켜 이란 핵개발 프로그램을 지연시키려 했다”는 내용을 기자에게 누설했다는 혐의(간첩행위 처벌법 위반)로 2010년 12월 기소된 CIA 출신 제프리 스털링의 재판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역시 CIA 출신으로 물고문을 포함해 이른바 ‘강화된 심문기법’을 동원해 수감자를 고문한 CIA 요원들의 신상정보를 공개한 혐의(간첩행위 처벌법 위반)로 2012년 1월 기소된 존 키리아쿠는 1년여 재판 끝에 징역 30개월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이 밖에 국무부 정보분석관으로 북한 관련 기밀 정보를 쪽에 전달한 한국계 미국인 스티븐 진우 김 사건도 재판이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전세계를 발칵 뒤집었던 ‘케이블 게이트’를 제보한 브래들리 매닝 일병이 있다. ‘위키리크스’의 폭로가 잇따르던 2010년 5월 체포돼 20여 가지 혐의로 기소된 매닝 일병에게 적용된 법률 역시 ‘간첩행위 처벌법’이다. 그의 재판은 지난 6월3일에야 시작됐다. 체포된 이후 무려 3년1개월이나 재판 없이 구금돼 있었던 게다.
그러니 스노든은, 오바마 대통령 집권 이후로만 따져 일곱 번째 ‘간첩활동 처벌법’ 적용 대상이란 얘기다. 내부고발을 장려하겠다던 오바마 행정부에서, 대체 이게 웬일인가? 뉴스 신디케이트 가 지난 6월21일 전한 내용을 보면, 분위기를 쉽게 짐작할 만하다.
위키리크스 사태가 터진 이후 오바마 행정부는 비슷한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에 골몰했다. 매닝 일병이 체포된 지 1년5개월여 만인 2011년 10월7일 오바마 대통령이 서명해 발효된 ‘행정명령 제13587호’가 그 결론이었다. 행정명령의 전체 내용은 백악관 누리집에 올라와 있지만, 의 보도 이전까지 이를 눈여겨본 이는 거의 없었다. 공직 제보자를 이른바 ‘내부 위협’으로 규정한 문제의 행정명령 전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헌법과 법률이 부여한 대통령의 권한에 따라, 또 컴퓨터 네트워크상에 있는 국가안보와 관련된 기밀정보의 책임 있는 공유와 보안 유지를 위해 아래와 같이 행정명령을 내린다.”
모두 7개 항으로 이뤄진 행정명령의 제6조는, 기밀정보의 내부 유출을 예방하기 위해 법무장관과 국가정보국장(DNI) 또는 이들이 지명한 2명을 공동 위원장으로 하는 범정부 차원의 ‘내부 위협 대응 태스크포스’를 구성하도록 규정했다. 태스크포스에는 국무부·국방부·법무부·국토안보부·DNI실·CIA 등이 참여하도록 돼 있으며, FBI를 포함한 대테러 관련 부서에서 직원을 파견받도록 했다. 태스크포스의 임무는 “1년 안에 내부 위협 대응 프로그램의 최저 기준과 지침을 마련해 각급 연방기관에서 각자 내부 위협 탐지·예방 프로그램을 만들어 시행하도록 하는 것”이란다.
이른바 ‘내부 위협 탐지·예방 프로그램’에는 어떤 내용이 담겼을까? 가 전한 미 교육부의 해당 프로그램 내용을 보면, “평소 신뢰할 만한 ‘정보 이용자’(공무원)도 특정한 일을 겪게 되면 ‘내부 위협’으로 변할 수 있다”고 적혀 있다. ‘특정한 일’에는 △과도한 스트레스 △이혼 등 개인적 어려움 △경제적 곤란 △동료와의 갈등 등이 포함된단다.
농무부는 직원 교육용으로 아예 ‘간첩 식별법’까지 만들어 인터넷에 올렸단다. 또 국방부에 딸린 국방보안청(DSS)이 만든 온라인 소책자에는 ‘보고해야 할 만한 의심스런 행동’으로 정규 업무 시간이 끝나고도 사무실에 남아 일하는 것까지 거론하고 있단다. ‘내부 위협’의 정황을 파악하고도 상관에게 보고하는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징계를 받도록 하는 규정도 마련돼 있단다. 그러니 이게, 대체 뭐하자는 겐가?
스노든 최종 목적지는 에콰도르
잇따른 폭로로 오바마 행정부를 궁지로 몰아넣었던 스노든은 6월23일 돌연 홍콩을 떠나 러시아행 비행기에 올랐다. 애초 그의 행방에 대해 말을 아끼던 러시아 정부도 그가 모스크바의 셰레메티예보 공항에 도착했다는 점을 인정했다. 스노든의 최종 목적지는 에콰도르인 것으로 알려졌다. 위키리크스 설립자 줄리언 어산지도 영국 런던 주재 에콰도르 대사관에서 망명 아닌 망명 생활을 하고 있다.
미 법무부는 이미 스노든의 여권을 말소시켰다. 신분증이 없는 스노든은 공항에 발이 묶인 처지가 됐다. 에콰도르 정부가 어산지의 망명 허용 결정을 내리기까지는 두 달 남짓이 걸렸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란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셰레메티예보 공항 국제선 환승구역은, 그때까지 스노든의 거처가 될 터다. 그것참.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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