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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된 이스라엘과 알카에다?

시리아의 ‘파테 110’ 미사일 겨냥해 불법 공습 벌인 이스라엘… 시리아 반군 지원하는 알카에다와 한편 된 아이러니
등록 2013-05-20 12:24 수정 2020-05-03 04:27

‘밤이 대낮같이 환해졌다.’
지난 5월5일 새벽,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 외곽에 자리한 잠라야 군사기지로 소리 없이 미사일이 날아들었다. 이윽고 귀청을 찢을 듯한 굉음과 함께 거대한 불기둥이 검은 하늘로 치솟았다. 은 이날 인근 하메 지역에 사는 한 주민의 말을 따 “폭발음이 들리더니 금세 날이 밝은 것처럼 사방이 환해졌다”고 전했다. 이스라엘의 공습이었다.
원거리 폭격 능력 과시 위한 행동
미사일이 발사된 정확한 위치는 밝혀지지 않았다. 공식적으로, 이스라엘 쪽은 공습을 단행했다는 점을 긍정도 부인도 하지 않고 있다. 비공식적으론,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는 이스라엘 정보 당국자’의 입을 통해 온갖 정보가 흘러나오고 있다. 인터넷 매체 는 5월6일 주요 외신들이 전한 내용을 종합해 이렇게 전했다.
“이번 공습에서 이스라엘은 신형 ‘스파이스 2000’ 공대지미사일을 사용했다. 사실상 성능 실험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 전폭기는 레바논 영공에 머물며 다마스쿠스를 미사일로 원거리 타격했다. 시리아 방공시스템의 위협을 피하는 동시에, 이란 쪽에 이스라엘군의 원거리 폭격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 계산된 행동이란 분석이 나온다.”
공습의 목표물은 무엇이었을까? 역시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는 이스라엘 정보 당국자’는 5월5일 <ap> 등과 한 인터뷰에서 “이란이 시리아를 통해 레바논의 헤즈볼라 쪽으로 공급하려던 자국산 ‘파테 110’ 미사일 수십 기를 파괴했다”고 주장했다. 일부에선 파괴된 미사일이 시리아산 ‘스커드 D’ 미사일이란 주장도 나왔다. 이 밖에 러시아산 대공·대함 미사일이 섞여 있었다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이스라엘은 지난 5월3일에도 다마스쿠스 공항에 미사일을 퍼부은 바 있다.
“이란 쪽은 바샤르 아사드 정권의 몰락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보고, 그 전에 헤즈볼라 쪽으로 첨단무기를 넘기기 위해 서두르고 있다. 5월3일 다마스쿠스 공항을 겨냥한 첫 번째 공습은 이란에서 최근 실려온 ‘파테 110’ 미사일이 그곳에 보관돼 있었기 때문이다. 5월5일 새벽 두 번째 공습은 이틀 전 공습을 용케 피하고 3곳으로 나눠 옮겨져 보관 중이던 남은 미사일을 겨냥한 것이다.”
<ap>은 5월6일 이스라엘 군 당국자의 말을 따 이렇게 전했다. 헤즈볼라의 로켓 공격을 빌미로 2006년 7월12일 레바논을 침공했던 이스라엘은 무지막지한 화력을 쏟아 붓고도 헤즈볼라의 저항을 꺾지 못하고, 그해 8월14일 유엔의 중재를 받아들여 교전을 중단한 바 있다. 이후 이스라엘은 전략적 균형을 깰 수 있는 이른바 ‘게임 체인저’급 첨단무기가 헤즈볼라 쪽으로 흘러드는 것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해왔다.
이스라엘 쪽이 파괴했다고 주장한 ‘파테 110’ 미사일의 사거리는 250km로 알려져 있다. 헤즈볼라의 거점인 레바논 남부에서 발사하면, 이스라엘 최대 도시인 텔아비브까지 날아갈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따져볼 일이다. 정권의 명운을 걸고 2년 넘게 핏빛 내전을 치르고 있는 시리아 정부가 수중에 있는 첨단무기를 국외로 내보낼 이유가 있었을까?
이제 시리아 내부의 반응을 들여다보자. 시리아 정부 쪽은 공습 당일 내놓은 비난 성명에서 “이스라엘이 반군 편에 서 있다는 점이 이번 공습을 통해 여실히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반군 지원설’인 셈이다. 하긴 이스라엘이 이날 파괴한 무기만큼 시리아 정부군의 무장 능력은 줄었을 터다.
‘보복’ 외친 시리아 정부 대응 없어
반군 쪽 반응은 엇갈린다. 한 시리아 반군 지도자는 5월5일 미 <nbc>과 한 인터뷰에서 “바샤르 아사드 정권이란 ‘공동의 적’을 겨냥한 이스라엘의 공습에 대해 대다수 시리아인들은 환영한다”고 말했다. 반면 반군의 지휘부 격인 자유시리아군(FSA) 쪽은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우리는 전통적으로 이스라엘을 ‘적’으로 여겨왔으며, 이스라엘이 불법 점령한 땅을 모두 해방시킬 때까지 그같은 인식이 바뀌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스라엘은 1967년 6월 이른바 ‘6일 전쟁’(제3차 아랍-이스라엘 전쟁) 과정에서 점령한 골란고원을 여전히 반환하지 않고 있다.
‘음모론’도 빠질 수 없다. 대외적으로 시리아 반군 진영을 대표하는 시리아국민연합(SNC)은 따로 낸 성명에서 “이스라엘의 공습이 반군에게 되레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단체는 “이번 공습 탓에 시리아 정부군 쪽이 저지른 학살과 만행에 대한 관심이 딴 곳으로 돌려지게 됐다. 이번 공습으로 지구촌의 관심이 다른 곳으로 쏠리면, 정부군 쪽이 추가적인 도발에 나설 것”이라고 주장했다.
공습 직후 이스라엘군 당국은 북부 시리아 국경지대에 아이언돔 방공시스템 2기를 추가 배치하는 등 보복공격 대비태세를 강화하고 있다. 북부 일대 영공은 민항기 통과도 제한하는 등 꽁꽁 틀어막았다. 여기에 5월26일엔 닷새 일정으로 ‘전환점 7’이란 작전명으로 대대적인 군사훈련을 실시할 계획이다. 이스라엘군 쪽은 “통상적인 훈련”이라고 밝혔지만, 등 현지 언론들은 “시리아와 이란, 레바논의 헤즈볼라가 미사일 공격을 퍼붓는 상황에 대한 대응 훈련”이라고 전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 내부 분위기는 여유가 있어 보인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5월5일 오전 비상안보장관회의를 주재한 직후 예정대로 중국 방문길에 올랐다. ‘별일’ 없을 것으로 확신했다는 얘기다. 실제 ‘보복’을 외쳐댔던 시리아 정부는 지금까지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외교안보 전문매체 는 5월7일 인터넷판에 올린 ‘이스라엘의 3가지 도박’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상황을 이렇게 분석했다.
“보복공격에 나선다면, 아사드 정권은 이스라엘과 전면전도 불사해야 한다. 반군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는 터에 전선을 확대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 이스라엘의 첫 번째 도박은, 지금으로선 성공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상황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 위기로 내몰리면, 무슨 짓이든 벌일 수 있다.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것은 분명 극단적인 상황이지만, 아사드 정권은 이미 극단적인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이 매체가 꼽은 이스라엘의 두 번째 ‘도박’은 헤즈볼라도 보복공격에 나서지 못할 것이란 점이다. 헤즈볼라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는 최근 “시리아의 형제들(정부군)과 어깨를 겯고 싸우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시리아 상황에 집중해야 하는 처지이니, 헤즈볼라 역시 전선을 넓히기 어려울 것이란 계산인 게다.
시리아 정부군 쪽과 헤즈볼라는 이슬람 시아파, 반군 주도 세력은 수니파다. 같은 종파란 이유만으로, ‘야만적 정권’에 부역하는 것으로 비칠 만하다. 레바논은 물론 아랍권 전역에서 ‘저항의 상징’으로 영웅 대접을 받던 헤즈볼라의 위상이 급격히 추락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문제는 이스라엘의 주장처럼 파괴된 무기의 ‘소유권’이 헤즈볼라에 있는 것이라면, 헤즈볼라는 마땅히 보복대응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헤즈볼라의 위상이 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헤즈볼라로선 다시 한번 ‘이스라엘에 맞서는 영웅’의 모습을 보이고 싶은 ‘유혹’이 클 것으로 보인다.
‘안보 위협 제거’로 둔갑한 ‘불법 공습’
가 꼬집은 이스라엘의 세 번째 ‘도박’은 주변국의 개입이 결국 아사드 정권의 붕괴로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다. 의도야 어쨌든, 이번 공습으로 이스라엘은 시리아 내전에 군사적으로 개입한 모양새가 됐다. 시리아 정부군의 무장 능력을 현저히 떨어뜨렸으니, 분명 반군 진영에 도움을 준 셈이다.
그간 시리아 정부군을 지원한 ‘외부 세력’은 이란과 헤즈볼라 정도였다. 반면 카타르와 사우디아라비아 등 수니파 국가들은 반군 쪽에 무기를 대주고 있었다. 미국과 러시아는 ‘무언의 합의’를 지키고 있었다. 미국이 반군을 직접 지원하지 않는 한, 러시아도 정부군에 무기를 공급하지 않는 방식 말이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이스라엘은 스스로를 ‘서방국가’로 규정한다. 그러니 ‘서방’이 시리아 내전에 개입한 꼴이 됐다. 5월5일 새벽 공습으로 줄잡아 100명이 넘는 시리아군 장병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전해진다. 시리아는 이스라엘을 공격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미사일을 퍼부어댔으니,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다. 개입을 원치 않는다면, 이스라엘의 행태를 비난해야 옳다.
그럼에도, 미국과 유럽연합(EU)은 별다른 말이 없다. 침묵은, 동의를 뜻한다. <afp>은 5월7일 조시 어니스트 백악관 대변인의 말을 따 “주권국가인 이스라엘은 헤즈볼라의 위협으로부터 자국을 보호할 권리가 있다. 중거리 미사일을 포함한 첨단무기가 헤즈볼라 수중에 들어가면 자국의 안보에 위협이 될 것이란 이스라엘의 우려는 정당하다”고 전했다. ‘불법 공습’을 ‘안보 위협 제거’로 둔갑시킨 게다. 이번 공습을 두고, ‘이스라엘의 미사일에 실린 미국의 메시지가 배달된 것’이란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일방적 공습은 오바마 행정부에 보내는 전쟁 초대장이다.” 미 시사주간지 은 5월6일 인터넷판에서 이렇게 해석했다. 실제 공습 소식이 전해진 직후부터 존 매케인 상원의원 등 그간 시리아에 대한 무력 개입을 주장해온 이들이 앞다퉈 오바마 행정부에 ‘행동’을 요구하고 나섰다. 은 이렇게 덧붙였다.
“이번 공습을 통해 이스라엘은 ‘원하면 언제든’ 이웃나라를 원거리 폭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음을 과시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이란을 겨냥한 게다. 시리아 에 대한 무력 개입을 주장하는 이들은 이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주장을 내놓고 있다. 이번 공습은 시리아는 물론 이란과도 ‘성전’에 나서자는 노골적인 초대장인 셈이다.”
‘테러의 온상’과 국경 맞대는 상황
시리아 내전 사태와 관련해 그간 이스라엘이 가장 크게 우려한 것은 아사드 정권 붕괴 이후 찾아올 혼란이았다. 그 와중에 헤즈볼라가 화학무기를 포함한 시리아의 막대한 무기고를 장악할 수도 있다. 반군 진영에 가담한 알카에다를 비롯한 테러단체가 아사드 정권 붕괴 이후 시리아에 똬리를 틀 수도 있을 터다. ‘테러의 온상’과 국경을 맞대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번 공습으로, 이스라엘은 시리아 반군을 지원하는 꼴이 됐다. 알카에다도 시리아 반군을 지원한다. 둘이, 한편이 된 셈이다. 이런 걸 두고 ‘아이러니’라고 하던가?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afp></nbc></ap></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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