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시점에, 내 조국 베네수엘라의 국가수반이자 군 최고통수권자가 누구인지 알아야겠다.”
우고 차베스 대통령의 서거 소식으로 온 나라가 혼돈에 빠져든 3월5일 저녁, 베네수엘라 야권의 유력 정치인인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46) 의원은 트위터에 이런 글을 올렸다. 철강 재벌 가문 출신인 그는 2010년 10월 총선 때 야권 연대체인 민주통합연대(MUD) 후보로 미란다주에서 출마해 전국 최다 득표를 올리며 당선됐다. 그는 2012년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한 MUD 내부 경선에 출마했다가, 엔리케 카프릴레스 미란다주 주지사에게 패한 바 있다.
55 대 44, 차기 대선 전망
마차도 의원은 이튿날 따로 성명까지 내놨다. 니콜라스 마두로(50) 부통령이 대통령 권한을 대행하는 것을 두고 ‘명백한 위헌’이라고 주장한 게다. 차기 대선 출마가 유력한 카프릴레스 주지사도 이날 성명을 내어 “베네수엘라의 모든 국민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정부가 헌법에 따라 움직이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대체 뭔 소릴까?
베네수엘라 헌법 제233조는 ‘대통령 당선자가 임기 개시에 앞서 그 직을 수행할 수 없을 때는 국회의장이, 임기 개시 이후엔 부통령이 각각 권한을 대행하고, 30일 안에 선거를 치른다’고 규정하고 있다. 차베스 대통령은 건강 악화로 인해 지난 1월10일로 예정됐던 취임식을 열지 못했다. “취임 선서를 하지 않았으니, 임기가 시작된 게 아니다”란 게 야권의 주장이다. 야권의 주장을 따르면, 디오스다도 카벨로 국회의장이 대통령 권한을 대행하는 상태에서 새 대선을 치러야 한다. 하지만 지난 1월 중순 베네수엘라 대법원은 “차베스 대통령은 현직이기 때문에, 행정의 연속성을 고려할 때 (취임 선서를 하지 않더라도) 임기는 자동으로 연장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한 바 있다. 야권의 어깃장은, 결국 여당 후보로 대선에 나설 마두로 부통령의 영향력 확대에 대한 견제인 셈이다.
다른 주장도 있다. 현직 부통령의 대선 출마를 금한 헌법 제229조에 따라, 마두로 부통령은 차기 대선에 출마할 자격이 없다는 게다. 집권 사회당 쪽에선 “마두로 부통령은 대통령 권한대행이므로, 출마에 결격 사유가 없다”는 논리로 맞서고 있다. 인터넷 대안매체 는 3월7일 “차베스 대통령의 장례 절차가 마무리되는 대로, 국회에서 대통령의 궐위를 공식 선언하게 되면 마두로 부통령은 (권한대행이 아니라) 대통령직 자체를 승계하게 된다”고 전했다.
버스 운전사 출신으로 1970년대 일찌감치 노동운동에 뛰어든 마두로 부통령은 ‘제5공화국 운동’ 시절부터 차베스 대통령의 든든한 우군이었다. 1999년 제헌의회 의원을 시작으로 제도정치권에 입문한 그는 수도 카라카스를 지역구로 두 차례 국회의원을 지냈다. 이어 2006년 8월 외교장관에 임명된 그는 군 출신인 카벨로 국회의장과 함께 차베스 대통령의 후계자로 거론돼왔다. 차베스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직후 그를 부통령에 임명해, 자신의 후계자임을 공식화했다.
4월 안에 치러질 차기 대선의 전망은 어떨까? 마두로 부통령과 카프릴레스 주지사 간 맞대결을 놓고 지난 1월 실시된 현지 여론조사 결과는 ‘55 대 44’로, 지난해 10월 대선 결과와 거의 일치했다. 라틴아메리카 전문가인 마크 웨이스브로 미국 경제정책연구센터(CEPR) 소장은 3월5일 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내다봤다.
“집권 사회당은 700만 당원을 자랑한다. (차베스 대통령이 쿠바에서 암수술을 받고 치료 중이던) 지난해 12월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사회당은 차베스 대통령의 지원 유세 없이도 전체 23개 주 가운데 기존보다 5개 주나 늘어난 20개 주지사 선거에서 압승을 거뒀다. (차베스 대통령 없이도) 사회당은 독자 생존이 가능하다고 보는 게 맞다.”
“혁명은 한 인간보다 거대하다”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다. 차베스 대통령의 ‘부재’가 길어지던 지난 1월7일 현지 좌파 매체 는 “그간 마두로 부통령은 차베스 대통령 같은 강력한 카리스마와 지도력을 보여주지 못했다”며 “(차베스 대통령의 부재 속에) 장기적으로 사회당의 국정 장악력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마두로 대통령’이 넘어야 할 산이다.
‘차베스 없는 라틴아메리카’는 어떨까? 미국이 주도하는 미주자유무역지대(FTAA) 논의에 맞서, 차베스 대통령은 2004년 말부터 이른바 ‘볼리바르대안연대’(ALBA) 구축을 주도해왔다. 볼리비아·에콰도르·니카라과·도미니카·쿠바 등 8개국이 참여하고 있는 ALBA는 최근까지도 역내 개발은행 창설과 함께 공동화폐 발행까지 검토해왔다. 사실상 라틴아메리카의 정치·경제적 통합을 지향한 게다.
“혁명은 한 인간보다 거대하다.” 라파엘 코레아 에콰도르 대통령과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은 최근 이렇게 입을 모았다. 차베스 대통령의 사후에도 그의 유지를 받아, ALBA를 확대·강화해나가겠다는 뜻을 밝힌 게다. 코레아 대통령은 지난 2월 재선에 성공했다. 모랄레스 대통령은 내년에 3선 도전에 나선다. 마두로 부통령이 당선된다면, ALBA 역시 적어도 당분간은 크게 흔들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스페인어로 ‘새벽’을 뜻하는 ALBA의 시작은 아바나를 방문한 차베스 대통령이 2004년 12월 피델 카스트로 당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과 맺은 양국협정이다. 중남미 최고 수준인 쿠바의 의료·교육 서비스를 제공받는 대신, 베네수엘라가 막대한 양의 원유를 싼값에 공급해주기로 한 게다. 베네수엘라는 현재 하루 9만 배럴의 원유를 쿠바에 공급해주고 있으며, 4만여 명의 쿠바 출신 의료진과 교사가 베네수엘라에서 활동하고 있다. 옛 소련 붕괴 뒤 쿠바판 ‘고난의 행군’인 이른바 ‘특별 시기’를 지나온 쿠바로선 천군만마를 얻은 셈이었을 게다. 이는 고스란히 ‘차베스 없는 쿠바’의 고민일 게다.
미국과의 관계는 어떨까? 차베스 대통령 서거 소식 발표에 앞서 베네수엘라 정부는 카라카스 주재 미국대사관 무관 등 2명의 외교관에게 추방령을 내렸다. “야권과 결탁해 체제 전복을 획책했다”는 게다. 사실 여부를 떠나, 두 나라 관계의 현주소를 극명히 보여준 사건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차베스 대통령의 상태가 위중해진 지난해 12월 이후에도 베네수엘라 정부를 ‘권위주의 정권’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차베스 대통령의 사망에 즈음해 발표한 성명에서도 ‘애도’를 표하는 대신, “새 정부와 건설적인 관계를 맺고자 한다”고만 밝혀 베네수엘라 정부의 반발을 불렀다. 관계 개선은, 쉽지 않아 보인다.
추모의 비통함이 잦아든 뒤
“코만단테 차베스는 살아 있다. 우리의 투쟁은 계속된다.” 차베스 대통령 서거 소식이 전해진 직후 카라카스의 거리에서 울려퍼진 구호다. 미국 싱크탱크 남아메리카문제연구위원회(COHA)는 3월5일 내놓은 자료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없는 베네수엘라는 분명 이전과 다를 것이다. 차베스 대통령 없는 라틴아메리카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얼마나 많이 달라질 것이냐다.” 추모의 비통함이 잦아든 이후, 그 윤곽이 서서히 드러날 게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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