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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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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리, ‘아프리가니스탄’ 되나

각국 지원 속에 말리 군사작전 일단 성공한 프랑스군…
사하라사막으로 숨은 이슬람 무장세력의 저항으로 사태 장기화 가능성
등록 2013-02-15 20:41 수정 2020-05-03 04:27

‘임무 완수.’
2003년 5월1일 조지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은 항공모함 ‘USS 에이브러햄 링컨’호에 올라 이렇게 선언했다. 침공 한 달여 만에 파죽지세로 사담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리고 이라크를 점령한 것으로 모든 게 끝났다고 여겼던 게다.
이라크 주둔 미군이 철수를 마치기까지는 그로부터 8년7개월여가 더 걸렸다. 그 기간 동안 점령군을 겨냥한 무장 저항이 불을 뿜었다. 2011년 12월18일 마지막 미군이 쿠웨이트 국경을 넘을 때까지, 이라크에선 미군 장병 4488명이 전사하고 3만3천여 명이 다쳤다.
아프리카 각국도 속속 군대 파병
‘작전 성공.’
아랍 위성방송 는 1월31일 인터넷판에서 장이브 르드리앙 프랑스 국방장관의 말을 따 이렇게 전했다. 지난 1월11일 몹티·코나 등 말리 중북부 일대에 대한 공습과 함께 시작된 프랑스군의 군사작전을 두고 한 말이다. 르드리앙 장관은 이날 파리에서 기자들과 만나 “(3주째로 접어든) 프랑스군의 군사작전은 이미 성공을 거뒀고, 이제 변화의 시점이 다가왔다”며 “말리군과 아프리카 각국이 파병한 병력이 자리를 잡고 제 기능을 수행하도록 지원하는 임무를 계속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군사 개입 초반부터 막강한 화력을 앞세워 대대적인 공습작전을 벌였던 프랑스는 1월16일 지상군 병력까지 투입했다. 말리군과 합세한 프랑스군은 이슬람 무장세력이 장악하고 있던 가오·팀북투를 비롯한 북부 지역의 거점도시를 차례로 탈환해나갔다. 산발적인 교전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압도적 무장을 바탕으로 사실상 별다른 저항 없이 북진을 이어갔다.
프랑스의 전격적인 군사 개입 이후 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ECOWAS) 회원국을 비롯한 아프리카 각국도 속속 군대를 파병하고 있다. 영국도 300명 규모의 군사훈련단 파견을 준비 중이다. 미국은 수송·공중급유를 비롯한 후방 병참 지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또 1월29일엔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말리 지원을 위한 ‘공여국 회의’가 열려, 총 4억5천만달러의 자금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아귀가 착착 맞아떨어지는 모양새다.
북진해오는 프랑스군과 말리 정부군을 피해, 이슬람 무장세력은 동쪽으로 맞닿은 사하라사막에 숨어든 것으로 전해진다. 시사주간지 이 1월28일 인터넷판 기사에서 ‘사헬리스탄’이란 신조어를 언급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 매체는 “서쪽 세네갈에서 동쪽 소말리아까지, 사하라사막을 가로지르며 총연장 7500km에 이르는 사헬 지역은 유럽 대륙 전체 면적보다 넓다”며 “사헬 지역 전체가 이슬람 무장세력의 은신처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아프리가니스탄’이란 신조어도 떠돌고 있다. 말리의 상황이 개전 13년째를 맞은 아프가니스탄과 비슷하게 흘러갈 수도 있다는 경고다. 물론, 모두가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미 외교안보 전문지 는 1월30일 인터넷판에서 “말리는 프랑스의 아프가니스탄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미국이 아프간을 침공한 것과 달리, 프랑스는 말리 정부의 요청에 따라 군사 지원에 나선 것이기 때문이란 게다.  
분리독립 원한 북부 주민의 민심 변수
초기 전세는 프랑스의 의도대로 흘러갔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사막으로 몸을 숨긴 이슬람 무장세력은 독일 면적의 2배에 이를 정도로 드넓은 말리 북부로 언제든 되돌아올 수 있다. 전통적으로 북부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투아레그족은 오랜 기간 분리독립을 염원해왔다. 정부군의 북진과 함께 상당수 투아레그 주민들이 서쪽 모리타니 국경지대로 몸을 피한 것도 이 때문이다. 프랑스군은 이른 시일 안에 말리에서 철수할 수 있을까? 상황이 생각보다 복잡해 보인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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