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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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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와의 전쟁에 휘말리는 말리

미국과 협의 뒤 말리에 지상군 투입한 프랑스… 인근 알제리서 벌어진 인질극으로 외국인 30명 넘게 숨져 국제적 후폭풍 거셀 듯
등록 2013-01-25 18:06 수정 2020-05-03 04:27

서아프리카의 내륙국가 말리가 본격적으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다. 지난해 1월 북부 아자와드 일대에서 토착민인 투아레그족이 분리독립을 요구하며 무장봉기를 일으킨 지 꼭 1년 만이다. 1960년까지 말리를 식민지로 지배했던 프랑스가 지상군을 투입할 정도로 ‘판’이 커졌다. 2006년 12월 대륙의 동쪽 끝자락 소말리아에서 시작된 아프리카판 ‘테러와의 전쟁’이 그예 서쪽으로 번져간 게다.
지난해 3월 군사 쿠데타 뒤 정국 혼란
투아레그족이 분리독립을 선언하고 나선 것은 지난해 1월17일이다. 진압을 위해 급파된 정부군은 반군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탄약이 동날 정도로 격렬한 전투를 치르고도, 기지마저 빼앗기기 일쑤였다. 불과 두 달 남짓 만에 정부군 전사자 수가 1천 명을 헤아릴 정도로 전황이 좋지 않았다. 부패한 아마두 투마니 투레 정권은 악전고투하는 정부군에 적절한 보급조차 해주지 않았다. 탈영병이 속출할 수밖에 없었다. 젊은 장교들을 중심으로 그해 3월21일 군사 쿠데타가 벌어진 것도 이 때문이다.
헌정 질서를 중단시킨 쿠데타군은 이내 ‘민주주의 회복과 국가 재건을 위한 위원회’(CNRDRE)를 구성하고, 사태를 주도한 아마두 사노고(41) 대위를 의장으로 옹립했다. 그는 미국이 아프리카 각국의 초급장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국제군사교육훈련’(IMET)에 5차례나 참여한 인물이다. ‘조속한 민정 이양’을 단행하겠다는 군부의 약속에, 쿠데타 직후 몸을 숨겼던 투레 대통령이 공식 사임한 뒤 세네갈로 망명길에 오르며 말리는 안정을 되찾을 듯 보였다.
아니었다. 그해 4월 디온쿤다 트라오레가 임시 대통령으로 취임했지만, 권력에 눈먼 군부의 국정 농단은 그칠 줄 몰랐다. 지난해 12월10일 사노고 대위를 지지하는 병사들이 총리 관저로 몰려가 체이크 모디보 디아라 총리를 강제로 사임시켰다. 군부의 여전한 ‘입김’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그새 북부에선 ‘이슬람 마그레브 지역의 알카에다’(AQIM)가 반군 세력의 주도권을 장악한 채 ‘남진’을 이어가고 있었다.
말리 북부에서 이슬람주의 무장세력이 똬리를 틀자 국제사회도 대응 수위를 높이기 시작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지난해 10월12일 결의안 제2071호를 통과시키고, 아프리카연합(AU)과 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ECOWAS)가 주도하는 ‘말리 지원군’ 구성을 촉구했다. ECOWAS는 11월 들어 부르키나파소·가나·니제르·나이지리아·세네갈·토고군 등으로 이뤄진 3300명 규모의 다국적군을 파병하겠다고 안보리에 통보했다.
이에 따라 안보리는 지난해 12월20일 다시 결의안 제2085호를 통해 아프리카 각국이 주도하는 ‘말리 지원을 위한 유엔 다국적군’(AFISMA) 파병을 결정했다. 안보리는 결의안에서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향후 1년간 △말리 정부군 재정비 △반군 장악지역 탈환 지원 △민간인 보호 △민간 주도의 인도 지원을 위한 치안 조성 △군사작전 이후 안정화 등의 임무를 수행할 것을 AFISMA에 주문했다.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새해 들어 반군의 공세는 더욱 거세졌다. 지난 1월10일엔 말리 남부와 북부의 경계선 구실을 하는 몹티에서 불과 25km 떨어진 코나가 격렬한 전투 끝에 반군 수중에 떨어졌다. 트라오레 대통령은 이튿날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프랑스군은 ‘말리 정부의 공식 요청’에 따라 이날 몹티와 코나를 중심으로 말리 북부 일대에서 대대적인 공습을 감행했다. ‘전쟁’이 시작된 게다.
오바마 행정부 지상군 투입 검토할까
프랑스군의 파상 공세에도 이슬람 반군은 남하를 멈추지 않았다. 1월14일엔 중부 세구에서 북쪽으로 100km 떨어진 요충지 디아발리까지 진격해 들어왔다. 반군이 도시를 장악하는 데 성공하자, 병참과 공중전에 초점을 맞췄던 프랑스 쪽도 서둘러 전술을 바꿨다. 군사 개입 6일째인 1월16일 디아발리에 지상군 병력을 투입한 게다.
위성채널 는 이날 인터넷판에서 “프랑스 특전사 요원들이 수도 바마코에서 북쪽으로 약 400km 떨어진 중부 디아발리에서 대대적인 반군 소탕 작전에 돌입했다”며 “현재 800명 선인 프랑스군 파병 규모는 향후 2500명 선에 이를 것”이라고 전했다. 바마코의 세누국제공항으로 프랑스군이 속속 들어오는 동안 반군 쪽은 민간인 거주 지역으로 숨어들어 산발적인 저항을 이어가고 있다. 개전 초기뿌터 전형적인 ‘게릴라전’ 양상이다.
“극단적 이슬람주의 무장세력이 말리 전역을 장악하는 것을 막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고도 합법적인 군사작전이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1월16일 신년 공동 기자회견에서 “(말리에 대한 군사적 개입은) 유럽연합(EU)과 유엔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며 “프랑스 혼자 싸우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대 변수는, 역시 미국이다. 말리에 대한 군사적 개입에 나서기 이전부터 프랑스는 미국과 긴밀히 논의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빅토리아 눌런드 미 국무부 대변인은 1월15일 정례브리핑에서 말리에 대한 프랑스의 군사적 개입을 “동맹 차원의 대응”이자 “분업”이라고 표현했다. 아프가니스탄에 발목이 잡혀 있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조만간 직접 군사적 개입에 나설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현재로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동맹국인 ‘프랑스의 요청’을 받아들이는 형식으로 군수와 통신 등 ‘후방 지원’에 주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사태의 파장이 이미 국경을 넘어서고 있다는 점이다. 프랑스군이 지상군을 투입하던 날, 말리와 1300km에 이르는 국경을 맞대고 있는 알제리에선 이슬람주의 무장세력이 남부 인아메나스에서 천연가스전을 ‘접수’하고, 현장에서 일하던 노르웨이·프랑스·영국·미국·일본 등지 출신의 외국인 41명을 인질로 붙들었다. 모리타니의 은 AQIM 대변인을 자처한 인물의 말을 따 “(가스전 침범과 뒤이은 인질극은) 말리 북부 폭격에 나선 프랑스군에 영공을 내주는 등 협력한 알제리 정부와 프랑스에 대한 보복”이라고 전했다.
상황은 예상보다 급박하게 돌아갔다. 인질극 발생 직후 가스전 주변을 포위했던 알제리 당국이 헬리콥터를 동원해 테러범과 인질들이 타고 있던 차량을 공격했다. 이로 인해 적어도 인질 30명과 테러범 11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전해졌다. 은 알제리 보안 당국 관계자의 말을 따 “사망자 가운데는 알제리인 8명과 영국·일본인 2명, 프랑스인 1명 등이 포함됐다”고 전했다. 참사였다. 관련국 정부의 강력한 요청에 따라 알제리 정부는 일단 진압작전을 멈춘 상태다.
“이미 지난해부터 국방부를 중심으로 예멘과 소말리아 등지에서 벌이고 있는 알카에다 지도부에 대한 ‘타깃 살해’ 작전을 말리로까지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돼왔다.” 는 1월17일치에서 이렇게 전했다. 인아메나스 가스전에서 미국인 인질이 살해된다면, 오바마 행정부도 지상군 투입 여부를 재검토할 수밖에 없을 터다. 그런데 살해 주체가 이슬람 무장세력이 아닌 미국에 협조해온 알제리 군 당국이다. 상황이 복잡하다.
6년 전 소말리아에 개입하던 수순과 비슷
그러고 보니, 어딘가 닮아 있다. 2006년 12월 ‘대테러 전쟁’이 아프리카 대륙으로 옮아올 때도, 미국은 처음부터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 소말리아를 장악한 이슬람주의 세력을 수도 모가디슈에서 몰아낸 것은 미국의 지원을 받은 에티오피아군이었다. 군사 개입의 명분을 만들려고 일찌감치 유엔이 나서 ‘멍석’을 깔아둔 것도 비슷해 보인다. 6년여가 흐른 지금, 소말리아에선 극단적 이슬람주의 무장세력 ‘알샤바브’가 여전히 위세를 떨치고 있다. 말리에선 다를까?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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