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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공유 열정, 법에 살해당하다

‘카피레프트’ ‘오픈액세스’ 운동 주도한 에런 스워츠 자살… 최고 35년형 ‘해킹과 컴퓨터 사기’ 등 13여 죄목으로 고발당해, 재판 4월 시작 예정
등록 2013-01-25 18:01 수정 2020-05-03 04:27

‘리얼리 심플 신디케이션’(RSS). 이름 그대로다. 정말 간단하게, 인터넷에서 떠도는 수많은 정보를 손쉽게 접할 수 있게 해주는 기술이다. 주요 언론사가 쏟아내는 온갖 종류의 기사와 평소 즐겨 보는 블로거의 글이나 음성·영상으로 이뤄진 각종 팟캐스트 파일까지, 새로 만들어져 인터넷에 올라온 정보 가운데 원하는 것을 골라 ‘구독’할 수 있게 해주는 수단이다. 아침마다 현관문 앞으로 배달되는 신문을 떠올리면 쉽겠다. 그것도 ‘공짜’로 말이다.
14살에 RSS 실무진 참여한 ‘천재’
RSS는 1990년대 중반 본격적으로 선을 보이기 시작했다. 핵심은, 인터넷에 올라 있는 막대한 양의 정보를 좀더 쉽게, 좀더 많은 사람이 공유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게다. 그 초기 작업에 참여했던 앳된 소년이 있었다. 지난 1월11일 미국 뉴욕 브루클린의 크라운하이츠 지역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에런 스워츠다. 무엇이 이 천재적인 스물여섯 청년의 삶을 앗아간 걸까?
에런 스워츠는 1986년 11월 미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유대계인 그의 부친 로버트 스워츠는 소프트웨어 업체 대표였고, 스워츠는 어린 시절부터 컴퓨터와 인터넷을 장난감 삼아 성장했다. 13살 때 비영리 웹사이트 개설 경진대회에서 입상한 그는 부상으로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견학 기회를 얻었다. 그곳에서 그는 팀 버너스 리 등 ‘우리가 아는 인터넷’을 만들어낸 당사자들을 처음 만났다. 이후론 그야말로 ‘탄탄대로’였다.
스워츠의 천부적인 프로그래밍 능력을 눈여겨본 인사들의 추천으로 그는 14살 때부터 일찌감치 RSS 초기 버전 구성 작업에 실무진으로 참여했다. 또 인터넷의 기준을 마련하는 국제기구인 ‘월드와이드웹 컨소시엄’(W3C)에서도 자문 활동을 했다. 그는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의 초창기 멤버이기도 했으며, ‘카피레프트’ 운동의 상징 격인 ‘크리에이티브 코먼스’(CC)의 체계를 세운 인물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힌다.
고교 졸업과 함께 실리콘밸리의 명문 스탠퍼드대에 진학한 그는 1년 남짓 만에 학교를 떠나 ‘인포가미’란 소프트웨어 업체를 창업했다. 이 회사는 몇 년 뒤 현재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사이트의 하나인 ‘레디트’(Reddit)와 합쳐진다. 어린 나이에 최첨단 업체의 잘나가는 경영진이 됐음에도, 그는 이 무렵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던 것으로 전해진다. 정작 관심사가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정보 공유’에 대한 열정이었다.
공유는 빌리는 것인가, 훔치는 것인가
열정은 곧 행동으로 이어졌다. 스워츠는 2006년 미 의회도서관의 모든 서지 자료를 확보해, 인터넷 도서관인 ‘오픈 라이브러리’에 공개했다. 정부 자료는 저작권의 대상이 아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의회도서관의 서지 정보에 접근하려면 약간의 요금을 치러야 했단다. 2008년엔 대상을 연방법원으로까지 넓혔다. 그는 법원이 보유하고 있던 디지털 재판 기록 전체의 약 20%에 해당하는 막대한 정보를 내려받아 공개했다. 이들 자료 역시 일반인의 접근이 쉽지 않던 때였다.
2010년 스워츠는 기업체 생활을 청산하고, 하버드대에 딸린 ‘에드먼드 샤프라 윤리학센터’ 연구원으로 삶의 근거를 옮긴다. 본격적인 ‘운동가’로 나선 게다. 이 무렵 미국에선 저작권 침해 소지가 있는 인터넷 사이트를 정부가 일방적으로 폐쇄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온라인 저작권 침해 금지법안’(SOPA) 도입을 놓고 열띤 논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는 입법 반대운동의 최전선에서 미 전역을 누볐다.
업계의 막강한 로비에도, 법안은 결국 부결됐다. 스워츠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지난해 5월21일 워싱턴에서 열린 ‘접속의 자유 2012’ 행사에서 기조연설자로 나서 이렇게 강조했다.
“바야흐로 인터넷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현행법 테두리 안에서 규정하려는 이들과 한바탕 전투를 벌이고 있다. 생각해보라. 파일 공유 사이트에서 동영상을 내려받는 것은 비디오 대여점에서 테이프를 훔치는 것과 마찬가진가, 아니면 친구한테서 영화 테이프를 빌려보는 것과 비슷한가? 특정 웹페이지에 접속해 계속 ‘새로고침’ 버튼을 누르는 것은 평화적인 연좌농성에 가까운가, 아니면 가게 유리창에 벽돌을 집어던지는 것처럼 폭력적인 행동인가? …새로운 기술은 우리에게 더 많은 자유를 주는 게 아니라, 그간 우리가 당연하게 누려온 가장 기본적인 권리까지 침해할 수 있다.”
2010년 말부터 2011년 초까지 스워츠는 또 다른 ‘실천’에 나섰다. 학술지 전문 데이터베이스인 ‘JSTOR’에 접속해 약 400만 건에 이르는 논문을 내려받은 게다. 물론 ‘공유’를 염두에 둔 행동이었을 터다. 앞서 그는 2010년 10월 일리노이주립대의 한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국 유수의 대학 학생이 된 덕분에 여러분 모두 온갖 종류의 학술정보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됐다. 미국의 주요 대학은 모두 JSTOR 같은 학술 전문 데이터베이스에 약정금을 내고 무제한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확보해둔다. 예를 들어 인도에 사는 대학생은 이런 정보를 접할 수 없다. 인류의 유산이라 할 막대한 학술적 연구성과에 대한 접근이 철저히 차단된 셈이다. 인류 모두가 공유해야 할 소중한 정보가 기업의 이윤 추구 대상으로 전락해버렸다. 이런 현실을 바꿔 누구나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자는 운동이 바로 ‘접속의 자유’, 곧 ‘오픈액세스’ 운동이다.”
그는 이내 해킹과 컴퓨터 사기 등의 혐의로 체포돼, 10만달러의 보석금을 내고 석방됐다. 그가 석방된 직후 비영리 단체인 JSTOR 쪽은 성명을 내어 “(스워츠에 대해) 어떤 민사상 책임도 묻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검찰은 기소를 밀어붙였다. 공소장에는 모두 13개 항목의 ‘범죄’가 나열돼 있었다. 유죄가 인정되면 최대 징역 35년형과 벌금 100만달러에 처해질 수 있는 중범죄다.
기소에 앞서 검찰 쪽은 유죄를 인정하는 대가로 징역 6개월형으로 감형해줄 수 있다는 제안을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의 재판은 오는 4월 시작될 예정이었다. 스워츠의 여자친구이자 동료 시민운동가인 태런 스타인브리크너 카우프먼은 1월17일 인터넷 대안방송 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다.
“JSTOR에 저장된 논문을 한 편씩 내려받는 것은 합법이지만, 한꺼번에 많은 논문을 내려받으면 불법이란 게 말이 되나? 도서관에서 책을 한꺼번에 너무 많이 빌렸다고 죄를 묻는 것과 같은 이치다. …설령 범죄란 점을 인정하더라도, 검찰의 제안처럼 기껏 6개월형이면 될 것을 최대 35년형까지 처할 수 있도록 기소한 이유는 대체 뭔가?”
“기껏 6개월형이면 될 것을…”
지난 1월15일 고향인 일리노이주 하일랜드파크의 한 유대교 회당에서 젊은 스워츠의 장례식이 열렸다. 은 “팀 버너스 리를 비롯해 인터넷 관련 법의 권위자인 로렌스 레식 하버드대 교수 등 거물들이 모여 고인의 넋을 기렸다”고 전했다. 그의 부모는 따로 성명을 내어 “협박과 기소권 남용으로 점철된 미국 형사사법제도가 애꿎은 죽음을 불렀다. 아들은 정부에 의해 살해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 하원 국정조사위원회는 이날 스워츠의 기소 과정이 적절했는지에 대한 의회 차원의 진상조사를 벌이겠다고 밝혔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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