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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굴 위한 ‘부자증세’인가?

미국 클린턴 행정부 이후 처음 이뤄진 ‘부자증세’에 반발하는 민주당 지지층…“노동계급 가정엔 별 도움 안 되는 상징적 승리”
등록 2013-01-11 10:08 수정 2020-05-03 04:27

‘절벽’은 없었다. 미국 경제는, 결국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았다. 누구도 ‘파국’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애초부터 ‘재정절벽’(Fiscal Cliff)이란 건 말도 안 되는 조어였는지 모른다. 그러니, 따져보자. 대체, 정체가 뭔가?
‘재정절벽’을 처음 말한 이는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지난해 2월 말 하원 금융위원회에 출석해 “급격한 재정지출 축소와 세금 인상이 맞물려, 미국 경제가 2013년 1월1일부로 ‘재정절벽’으로 추락할 수 있다”고 말했다. 뭔 소리일까?  
‘재정절벽’에 대한 우려 퍼져
조지 부시 행정부가 추진한 ‘부자감세’ 조처의 시효는 2012년 말로 마감됐다. 급격한 세금 인상은 자칫 소비 위축을 부를 수 있다. 여기에 천문학적으로 불어난 재정적자 축소를 위해, 2013년부터 국방·의료·복지 예산 삭감이 자동적으로 시행에 들어가도록 정해져 있다. 재정 축소와 조세 인상이 맞물리면, 경제위기로 가뜩이나 위축된 소비심리가 더욱 얼어붙게 된다. 이제 막 바닥을 치고 회복세로 돌아서기 시작한 미 경제가 다시 나락으로 빠져들 수 있다는 우려는 자연스럽기까지 하다.
괜한 소리가 아니다. 는 지난해 11월15일치에서 “(‘재정절벽’이 현실화하면) 미 경제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4%가량 위축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비슷한 시기 미 의회예산처(CBO)도 “(‘재정절벽’이 현실화하면) 2013년 상반기 중 미 경제가 2.9% 마이너스성장을 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자칫, 2008년에 이어 지구촌이 다시 한번 ‘미국발 경제위기’에 휘말릴 수도 있다는 얘기다.
열쇠를 쥔 것은 미 의회, 특히 예산권이란 연방정부의 ‘지갑’을 틀어쥐고 있는 하원이었다. 하원을 장악한 공화당은 한 치도 밀리지 않는, 그야말로 ‘벼랑 끝’ 협상을 진행했다. 지난해 대선에서 백악관 탈환을 ‘예감’했던 공화당으로선, 처음부터 녹록하게 나갈 리 없었다. 협상안은 상원을 89 대 8로 통과한 데 이어, 결국 해를 넘겨 하원(찬성 257 대 반대 167)의 고비를 넘겼다. 이로써 연소득 45만달러 이상 고소득층 가구의 소득세율은 현행 최고 35%에서 39.6%로 올라가게 됐고, 자본이득과 배당소득에 부과하는 세율도 현행 15%에서 20%로 상향 조정됐다. 빌 클린턴 행정부 이후 처음으로 이뤄진 ‘부자증세’다.
그런데, 어째 ‘반응’이 수상쩍다. 협상의 ‘승자’로 불리는 민주당 지지층의 반발이 생각보다 거칠다. 이유가 뭘까?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노동장관을 지낸 로버트 라이시 버클리대 교수(공공정책)는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부자에 대한 세금을 올렸다고 강조하지만, 실질적으론 별것도 없는 상징적 승리에 불과하다”며 이렇게 지적했다.
“공화당이 주장해온 재정적자 감축 목표치는 바뀌지 않았다. 결국 ‘재정절벽’을 피한 이후에도 공화당은 사회복지 예산 축소를 강조하며 민주당을 지속적으로 압박할 수 있는 명분을 유지하게 됐다. 연소득 40만달러 미만의 고소득층(개인)에 대한 ‘부자감세’ 조처는 사실상 영구화했다. 반면 자녀 양육비 등 중산층 이하에 대한 세제 혜택의 수혜 기간은 단 5년으로 명문화했다. 100만달러 이하였던 상속세 유예 상한선은 500만달러 이하로 높아졌으며….”  
중산층 기준 연소득 45만달러?
하원 표결에서 반대표를 던진 민주당 로사 드로로 의원(코네티컷주)은 진보적 시사주간지 과 한 인터뷰에서 “노동계급 가정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상원 진보파로 꼽히는 톰 하킨 의원은 반대 표결에 나서기 직전 내놓은 성명에서 “이른바 ‘재정절벽’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며 “(이번 합의는) 앞으로 미국에서 중산층의 소득 기준을 연소득 45만달러로 정하자는 꼴”이라고 꼬집었다. 이걸로 ‘부자증세’를 말하는가?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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