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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쩍번쩍 취임식, 돈은 어디서?

오바마 2기 여는 취임식, 첫 번째와 달리 두 번째는 상한액 100만달러까지 높인 기업 기부금 받아 치러져
등록 2012-12-21 19:32 수정 2020-05-03 04:27

미국 워싱턴 의회 의사당 서쪽에 나무로 짠 무대가 만들어지고 있다. 지난 9월부터 벌써 석 달째 공사 중이다. 무대 위에 마련될 객석에는 줄잡아 1500명이 앉을 수 있다. 미국에서 힘깨나 쓰는 사람들 대부분이 자리를 예약했을 터다. 그곳에서 2013년 1월21일 특별한 행사가 열린다. ‘사상 첫 재선 흑인 대통령’인 버락 후세인 오바마 미 제44대 대통령의 취임식 말이다.
역대 대통령 이름 딴 4가지 기부 방식
미 연방 선출직 공무원의 임기를 규정한 수정헌법 제20조를 보자. 대통령과 부통령의 임기는 마지막 해 1월20일 정오에 끝나는 것으로 돼 있다. 상·하원 의원의 임기는 1월3일 정오에 끝난다. 내년 1월20일은 일요일이어서,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 취임식은 이튿날로 하루 미뤄졌다. 역시 재선에 성공했던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1985년 취임식도 같은 이유로 하루 늦춰진 바 있다.
취임식을 참관하려면 입장권이 필요하다. 공짜다. 연방 상·하원 의원들에게 고루 할당되기 때문에, 지역구 의원실을 통하면 어렵잖게 구할 수 있다. 입장권이 없어도 행사를 아예 못 보는 것은 아니다. 당선자가 취임식장까지 거리행진을 하는 모습을 길가에서 지켜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일반인’이 접근할 수 있는 공식 행사는 아마도 여기까지일 게다.
미 연방정부가 예산을 대주는 취임식 공식 행사는 선서식과 취임기념 오찬이 전부다. 화려한 무도회와 각종 기념 콘서트, 거리행진 등 이 밖의 온갖 행사에 필요한 경비는 모두 당선자 쪽이 민간 모금을 통해 충당한다. ‘미국적’이다. 12월7일 ‘오바마 대통령 재선 취임식 준비위원회’ 명의로 전자우편 모금광고가 대량 발송된 것도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란 얘기다.
<abc>이 12월8일 인터넷판에서 전한 보도를 보면, 2005년 조지 부시 대통령의 두 번째 취임식 때 타임워너·와코비아·홈데포·파이저 등 상당수 기업이 25만달러 이상을 기부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2009년 첫 취임식 때 기업의 후원을 금했고, 개인에 대해서도 5만달러로 기부금에 상한을 뒀다. 당시 조시 어니스트 취임식 준비위 대변인은 “기업의 돈이 취임식 행사에 한 푼도 사용되지 않는 것은, 워싱턴이 전과 달라졌음을 보여주는 증표”라고 강조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1기 취임식 비용은 모두 5300만달러였다. 그런데….
이번엔 어째 분위기가 달라 보인다. 2기 취임식 준비위가 내보낸 모금광고를 훑어보자. 역대 미 대통령의 이름을 딴 4가지 기부 방식이 ‘패키지 상품’처럼 소개돼 있다.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부터 4대 대통령인 제임스 매디슨까지, 기부금 상한액이 많게는 100만달러(개인은 25만달러)에서 적게는 10만달러(개인은 1만달러)까지 제시돼 있다. 금액이 커진 것 말고도 2009년과 달라진 점이 한 가지 더 있다.
“개인과 기관에 제한을 두지 않고 취임식 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기부를 받기로 했다.” 2기 취임식 준비위 쪽은 이렇게 밝혔다. ‘기관’에는 기업도 포함된다. 물론 외국계 기업과 로비스트, 공적자금 지원을 받은 뒤 상환을 마치지 않은 기업은 모금 대상에서 제외했다. 준비위 쪽 관계자는 12월10일 와 한 인터뷰에서 “박물관과 자선재단, 적십자 같은 구호기관도 모두 기업의 후원을 받는다. 이미 선거운동 과정에서 모금에 참여한 이가 많아, 취임식 행사 비용을 마련하려면 모금 대상을 확대할 필요가 있었다”고 말했다.
‘기업 돈 무제한 선거판 유입’ 허용 3년
오바마 대통령은 그간 “필요하다면 헌법을 개정해서라도 기업의 입김(돈)이 무분별하게 정치권으로 흘러드는 것을 막을 것”이라고 공언해왔다. 취임식이 열리는 1월21일은 미 대법원이 기업 등의 자금이 무제한 선거판에 유입될 수 있도록 허용한 이른바 ‘시티즌 유나이티드 대 연방 선거관리위원회’ 사건 결정을 내린 지 3년이 되는 날이다. 뭔가, 이건?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a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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