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워싱턴 의회 의사당 서쪽에 나무로 짠 무대가 만들어지고 있다. 지난 9월부터 벌써 석 달째 공사 중이다. 무대 위에 마련될 객석에는 줄잡아 1500명이 앉을 수 있다. 미국에서 힘깨나 쓰는 사람들 대부분이 자리를 예약했을 터다. 그곳에서 2013년 1월21일 특별한 행사가 열린다. ‘사상 첫 재선 흑인 대통령’인 버락 후세인 오바마 미 제44대 대통령의 취임식 말이다.
역대 대통령 이름 딴 4가지 기부 방식
미 연방 선출직 공무원의 임기를 규정한 수정헌법 제20조를 보자. 대통령과 부통령의 임기는 마지막 해 1월20일 정오에 끝나는 것으로 돼 있다. 상·하원 의원의 임기는 1월3일 정오에 끝난다. 내년 1월20일은 일요일이어서,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 취임식은 이튿날로 하루 미뤄졌다. 역시 재선에 성공했던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1985년 취임식도 같은 이유로 하루 늦춰진 바 있다.
취임식을 참관하려면 입장권이 필요하다. 공짜다. 연방 상·하원 의원들에게 고루 할당되기 때문에, 지역구 의원실을 통하면 어렵잖게 구할 수 있다. 입장권이 없어도 행사를 아예 못 보는 것은 아니다. 당선자가 취임식장까지 거리행진을 하는 모습을 길가에서 지켜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일반인’이 접근할 수 있는 공식 행사는 아마도 여기까지일 게다.
미 연방정부가 예산을 대주는 취임식 공식 행사는 선서식과 취임기념 오찬이 전부다. 화려한 무도회와 각종 기념 콘서트, 거리행진 등 이 밖의 온갖 행사에 필요한 경비는 모두 당선자 쪽이 민간 모금을 통해 충당한다. ‘미국적’이다. 12월7일 ‘오바마 대통령 재선 취임식 준비위원회’ 명의로 전자우편 모금광고가 대량 발송된 것도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란 얘기다.
이번엔 어째 분위기가 달라 보인다. 2기 취임식 준비위가 내보낸 모금광고를 훑어보자. 역대 미 대통령의 이름을 딴 4가지 기부 방식이 ‘패키지 상품’처럼 소개돼 있다.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부터 4대 대통령인 제임스 매디슨까지, 기부금 상한액이 많게는 100만달러(개인은 25만달러)에서 적게는 10만달러(개인은 1만달러)까지 제시돼 있다. 금액이 커진 것 말고도 2009년과 달라진 점이 한 가지 더 있다.
“개인과 기관에 제한을 두지 않고 취임식 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기부를 받기로 했다.” 2기 취임식 준비위 쪽은 이렇게 밝혔다. ‘기관’에는 기업도 포함된다. 물론 외국계 기업과 로비스트, 공적자금 지원을 받은 뒤 상환을 마치지 않은 기업은 모금 대상에서 제외했다. 준비위 쪽 관계자는 12월10일 와 한 인터뷰에서 “박물관과 자선재단, 적십자 같은 구호기관도 모두 기업의 후원을 받는다. 이미 선거운동 과정에서 모금에 참여한 이가 많아, 취임식 행사 비용을 마련하려면 모금 대상을 확대할 필요가 있었다”고 말했다.
‘기업 돈 무제한 선거판 유입’ 허용 3년
오바마 대통령은 그간 “필요하다면 헌법을 개정해서라도 기업의 입김(돈)이 무분별하게 정치권으로 흘러드는 것을 막을 것”이라고 공언해왔다. 취임식이 열리는 1월21일은 미 대법원이 기업 등의 자금이 무제한 선거판에 유입될 수 있도록 허용한 이른바 ‘시티즌 유나이티드 대 연방 선거관리위원회’ 사건 결정을 내린 지 3년이 되는 날이다. 뭔가, 이건?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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