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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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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계 대신 부자를 택한 공화당

등록 2012-09-04 19:55 수정 2020-05-03 04:26
박세균(41·청주시청)

박세균(41·청주시청)

미국 대선은, 말하자면 간선제다. 인구에 따라 주별로 할당된 선거인단을 직접 투표로 뽑으면, 이들이 모여 대통령을 선출한다. 주별로 득표율이 높은 후보가 해당 주에 걸린 선거인단을 모두 차지하는 이른바 ‘승자독식’ 방식이다. 간발의 차이가 승부를 가른다. 전국적인 득표율이 낮더라도, 인구가 많은 주에서 승리한 후보가 당선되는 사례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템파베이에서 전당대회를 연 까닭은

플로리다주에 걸린 대통령 선거인단은 모두 29명이다. 캘리포니아(55명)·텍사스(33명)에 이어 뉴욕주와 함께 세 번째로 많다. 게다가 ‘격전지’다. 민주-공화 양당 지지세가 박빙이다. 플로리다주 중에서도 최대 격전지로 꼽히는 두 지역이 있다. 세인트피터즈버그와 탬파베이다. 는 지난 8월25일 인터넷판에서 “특히 탬파베이와 맞닿아 있는 파이넬러스와 힐즈버러 지역은 전통적으로 공화당 강세 지역이었지만, 앞선 두 차례 대선에서 모두 민주당 지지세로 돌아섰다”고 전했다. 지난 8월27~30일 공화당이 대선 후보 지명을 위한 2012년 전당대회를 탬파베이에서 연 이유를 알 만하다.

올해 미 대선전은 과거와 비교해 크게 두 가지 점에서 도드라진다. 먼저 선거비용이다. 미 시민단체 ‘책임정치센터’(CRP)는 지난 8월1일 내놓은 보고서에서 “민주-공화 양당이 지난 7월 말까지 쏟아부은 선거자금이 무려 22억달러에 이른다”고 밝혔다. 이 단체는 이어 “지금까지 정치권에서 모금한 정치자금 규모와 지출 행태로 미뤄볼 때, 오는 11월 선거일까지 사용될 선거자금 총액은 58억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2008년에 견줘 7% 늘어난, 역대 최대 규모란다.

공화당의 선거전략도 과거와 사뭇 다른 모양새로 흘러가고 있다. 미 격주간 은 지난 8월27일 인터넷판에서 “공화당이 올 선거에서 백악관 탈환뿐 아니라 향후 4년간 의회를 장악하기 위해선, 전통적인 지지층뿐 아니라 반대 진영까지 끌어안을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역대 선거판을 들여다보면 그 이유를 쉽게 알 수 있다.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의 공화당은 끊임없이 외연 넓히기에 골몰했다. 1960년대 이후 민주당의 든든한 우군이던 남부 지역과 백인 노동자층의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도 그런 노력 덕분이다. 전통적 지지 기반인 기업인과 전문직 집단의 지지도 흔들림 없이 유지했다. 공화당의 ‘황금기’였다.

1990년대 중반부터 2008년까지 민주당이 장기간 의회를 장악할 수 있었던 배경도 엇비슷하다. 전통적 공화당 지지세력인 전문직 집단과 여성, 북부 지역 중산층이 공화당의 보수적인 사회정책 기조에 불만을 품고 ‘변심’을 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라틴계 이민자를 포함한 사회적 소수자층의 든든한 지원도 민주당의 ‘힘’을 강화시켰다.

그래서다. 2010년 중간선거를 통해 하원을 ‘탈환’한 공화당이, 다가오는 선거에서 백악관과 상원까지 장악하는데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는 자명해 보인다. 은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는 사회적 소수자들의 표를 잠식해야 한다. 그러자면 무엇보다 라틴계 이민자 집단이 중요하게 여기는 이민정책 등에서 전향적인 자세를 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례도 있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초선 도전에 나섰던 2000년 선거 당시, 기존 태도를 바꿔 이민법 개정을 적극 두둔했다. 공화당 의회의 복지예산 삭감 움직임에 제동을 걸기도 했다. 부시 대통령이 두 차례 대선에서 얻은 라틴계 지지율은 약 35%였다. 이는 역대 공화당 대선주자의 평균 지지율보다 5%포인트 이상 높은 수치다. 이 밖에도 부시 대통령은 2000년 대선 당시 ‘온정적 보수’를 기치로 여성과 전문직 집단의 표심을 자극하는 한편, 자신의 가장 강력한 지지 기반인 ‘기독교 우파’와 일정한 거리두기를 시도했다. 이런 그의 선거전략은 이라크전쟁 등 온갖 악재 속에서도 무난히 재선에 성공하는 기반이 됐다.

기독교 우파는 환호하지만 유권자는?

하지만 이번 전당대회를 통해 극명히 부각된 올 공화당의 대선 전략은 이와는 판이하다. 지난 8월28일 전당대회장에서 통과된 정강·정책을 살펴보면 잘 알 수 있다. 이 전한 공화당의 새로운 정강·정책을 보면, △모든 형태의 낙태 금지 △동성결혼 금지 △노인의료지원제도(메디케어) 축소 △부유층 세금 감면 등을 뼈대로 하고 있다.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먼저 세금이다. 공화당은 “조세제도가 부의 재분배를 위한 도구가 되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경기 활성화를 명분으로 2001년과 2003년 부시 행정부가 각각 단행한 부유층 세금 감면 조처를 연장하겠다는 뜻도 분명히 밝혔다. 이 밖에 상속세와 기업세 폐지를 추진하는 한편, 어떤 형태의 세금 인상안에 대해서도 의회의 압도적 다수(3분의 2 이상)가 찬성해야 가능하도록 아예 헌법 개정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사회정책 측면에서도 ‘보수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태아에게도 침해할 수 없는 근본적인 권리가 있다’며 모든 형태의 낙태에 반대한다고 명시했다. 애초 밋 롬니 후보는 당내 경선 과정에서 “성폭행 등에 의한 임신과 산모의 건강이 위태로운 경우에 대해선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동성결혼은 금지해야 하며, 혼인을 남성과 여성의 결합이라고 명시하도록 헌법 개정에 나설 것’이란 조항도 포함됐다. 보수 진영이 ‘목숨’처럼 여기는 ‘총기소지권’에 대해서는 “이에 제한을 둘 수 있는 모든 형태의 입법에 반대한다”고 못박았다. 그간 환경파괴를 우려해 금해온 연근해 대륙붕과 북극권 생태보전지역 유전개발도 ‘에너지 자급률을 높여야 한다’는 명분으로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또 저소득층(메디케이드)과 노인층(메디케어)에 대한 연방정부 차원의 의료지원제도에 대해선 ‘지속 가능성이 없다’는 이유로 전면 축소하기로 했다. 이 밖에 애리조나·앨라배마 등 일부 주에서 도입해 인권침해 논란이 불거진 불법이민자 단속 강화제도에 대해서도 찬성 의견을 분명히 했으며, 불법이민자 자녀에게 학자금 감면 혜택을 주는 대학에는 연방정부 예산 지원을 중단하겠다고도 밝혔다. 진보적 시사주간지 이 8월29일 인터넷판에서 “정강·정책이 발표되는 내내 전당대회장에서 기독교 우파 진영이 기쁨의 함성을 멈추지 않았다”고 전한 것도 이 때문이다.

“롬니가 진정한 ‘보수적 공화당원’ 아니라서”
역대 선거 결과가 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지지층의 반발을 감수하고라도 반대 진영의 논리를 껴안아야 승리가 보장된다. 어느 쪽이든 적극 지지층은 어차피 돌아서지 않는다. 상대 후보 지지층을 조금이라도 이끌어내야 간격을 벌릴 수 있다. 그럼에도 이번 공화당 전당대회는 ‘보수 본색 드러내기’에 초점이 맞춰졌다. 이 “어쩌면 롬니 후보가 진정한 의미의 ‘보수적 공화당원’이 아니기 때문일 수 있다”고 비꼰 것도 무리는 아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퓨리서치센터의 최신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이번 전당대회에서 여론의 가장 큰 관심사는 롬니 후보(44%)와 폴 라이언 부통령 후보(46%)의 수락 연설이 아니었다. 공화당의 정강·정책을 첫 번째 관심사로 꼽은 응답자(52%)가 가장 많았다. 당의 정책 기조가 고스란히 후보의 것은 아니다. 다만 “전당대회를 통해 전세를 뒤집겠다”고 벼르던 롬니 후보의 처지가 옹색해 보인다. 이제라도 선거전략을 바꿔야 할까? 11월6일 본선까지는 채 70일도 남지 않았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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