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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니는 잊어라 라이언이 왔다

미 공화당 부통령 후보로 젊고 매력적이고 보수적인 폴 라이언 연방 하원의회 예산위원장 지명… 노인 의료와 빈민 식료품 지원 대폭 삭감한 라이언 예산, 민주당은 ‘45% 지지 대통령’ vs ‘10% 지지 의회’ 구도 반겨
등록 2012-08-25 15:24 수정 2020-05-03 04:26

밋 롬니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의 약점은 ‘밋밋하다’는 점이다. 롬니 후보를 빼고는 달리 본선에 나설 만한 인물이 없었음에도 당내 경선이 지루하게 길어진 것도, 따지고 보면 그 ‘밋밋함’에 대한 당 안팎의 불안감을 극복하지 못한 탓이 컸다. 후보로 확정된 이후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겨냥한 날선 비판을 쏟아내고 있지만, 차별성을 드러내는 게 쉽지 않았다. 돌파구가 필요했다.

가톨릭 교도로 무조건 낙태 반대
폴 라이언 하원의원은 젊다. 올해 42살로, 롬니 후보의 맏아들 태그 롬니와 동갑내기다. 그럼에도 1998년 위스콘신주 제1선거구에서 2년 임기의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된 이후 지금까지 의석을 지키고 있는 7선의 ‘중진’이다. 전국적인 지명도는 없지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하원 예산위원장이다. 는 8월14일 라이언 의원에 대해 “미 의회에서 가장 진지한 정치인”이라 칭했다.
이를테면, 라이언 의원은 ‘난자와 정자가 수정돼 자궁내막에 착상된 시점’부터 태아의 모든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떤 이유에서든, 낙태는 곧 살인이란 거다. 실제 그는 성폭행 등에 따른 임신일 경우에도 낙태를 금지하는 법안과 ‘시험관아기’ 시술마저 금지하는 법안을 공동 발의한 바 있다. 이념적으로, 그는 ‘밋밋함’과는 거리가 멀다. 지난 8월11일 롬니 후보가 라이언 의원을 ‘러닝메이트’인 부통령 후보로 지명한 이유를 알 만하다.
라이언 공화당 부통령 후보는 잘생겼다. 그의 후보 지명 사실이 전해진 직후 연예뉴스 전문매체인 <tmz>는 “역사상 가장 매력적인 부통령 후보”라고 전했다. 실제 그는 2008년 ‘미 의회에서 가장 잘생긴 인물 50명’에 이름을 올렸다. 젊고 유능한데다, 충분히 보수적이며, 매력적이기까지 하다. 공화당 우파로선 더 이상 바랄 게 없는 선택이었을 터다.
공화당 빌리 롱 하원의원(몬태나주)은 라이언 후보 지명 소식이 전해진 직후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벌써 여러 달째 라이언 의원을 ‘부통령님’이라고 불러왔다”며 반겼다. 보수 인터넷 매체 은 “라이언 의원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라며 “그를 통해 대선 과정에서 보수적 가치가 발산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또 는 “가톨릭 교도로서 라이언 후보는 우리 보수 진영이 싸워야 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꿰뚫어보고 있다”고 치켜세웠다.
보수 매체뿐이 아니다. 미시간주 주지사 출신의 정치평론가 제니퍼 그랜홈은 8월14일 진보적 인터넷 매체 에 출연해 “라이언 후보의 선거 유세에는 수천 명이 몰리지만, 롬니 후보 유세에는 수백 명이 고작”이라며 “이제 롬니 후보는 잊어도 된다”고 말했다. 앞서 은 8월11일 인터넷판에서 아예 “이제 공화당은 폴 라이언의 정당이 됐으며, 선거는 오바마 대통령과 공화당 의회가 치르게 됐다”고 지적했다. 공화당 보수파의 이념적 대변자 노릇을 해온 라이언 의원의 부통령 후보 지명이 대선판을 통째로 바꿔놓은 모양새다.

“과감한 선택, 패배할 가능성”
흥미로운 건 민주당 쪽의 반응이다. 애써 감추고 있지만, 라이언 후보 지명이 싫지 않다는 기색이 역력하다. 이유는? 격월간 는 8월11일 인터넷판에서 “민주당 처지에서 라이언 의원은 ‘가장 이상적인’ 공화당 부통령 후보”라며 이렇게 분석했다. “라이언 의원은 공화당이 주도해온 부자감세와 중산층·서민 대상 복지 프로그램 축소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다. 그가 부통령 후보로 지명돼 재선에 나선 오바마 대통령은 큰 시름을 덜게 됐다. 자칫 지지부진한 경기회복에 대한 심판으로 흘러갈 뻔했던 선거 구도가, 이념과 가치에 기반한 정책적 차별성에 대한 선택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공화당은 지난해 향후 10년 동안 연방정부 예산을 5조3천억달러가량 줄이는 것을 뼈대로 하는 예산안을 내놓고 오바마 행정부와 한판 전투를 치렀다. 이를 주도한 것이 라이언 후보다. 미 싱크탱크 ‘예산·정책 우선순위 센터’(CBPP)가 내놓은 분석자료를 보면, 이 가운데 2조4천억달러는 노령인구 의료지원사업인 ‘메디케이드’를 비롯해 서민층 의료·복지사업 삭감으로 해결할 방침이다. 또 1340억달러는 빈민층 식료품 지원사업 삭감을 통해 줄이기로 했는데, 시행되면 800만~1천만 명에 이르는 빈민층이 수혜 대상에서 제외될 것으로 전망된다. ‘선거의 해’에 유권자들 앞에 내놓을 만한 정책은 아니란 얘기다.
그래서다. 겉으론 반색하면서도, 공화당 내부에서도 라이언 후보 지명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아 보인다. 정치전문 인터넷 매체 는 8월14일 “모두들 이름을 밝히고 말하는 걸 꺼리곤 있지만, 공화당 선거전략가 절대다수가 ‘라이언 부통령 후보’ 카드가 위험한 선택이란 지적을 내놓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벌써부터 일부에선 라이언 후보와 ‘거리두기’를 하는 모습까지 엿보인다.
대선과 함께 치러지는 연방 상원의원 선거 출마를 선언한 16명의 공화당 후보 가운데 이른바 ‘라이언 예산’을 정책에 반영한 후보는 단 2명뿐이다. 특히 몬태나주에서 상원에 도전하는 데니 레버그 후보 같은 이는 아예 ‘노년층 의료지원사업 축소가 포함된 공화당 예산안에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밝히기도 했다. 조지 부시 대통령의 선거전략을 맡았던 마크 매키넌은 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라이언 부통령 후보 지명은 대단히 과감한 선택이다. 흥미진진한 상황이 연출될 것으로 보인다. 거대담론에 대한 토론의 장으로 선거판이 꾸려지게 됐기 때문이다. 이제 롬니-라이언 후보는 원칙에 기반해, 공화당의 실질적인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그리고 선거에선 패배할 가능성이 있다. 그것도 아주 큰 차이로.”

오바마의 상대가 의회라면
매키넌의 우려 섞인 전망을 뒷받침할 만한 지표가 있다. 지난 8월14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갤럽이 내놓은 ‘의회 활동에 대한 지지율’ 관련 조사 결과다. 이 기관이 지난 8월9~12일 실시한 조사 결과, 현재 미 의회의 활동에 만족한다는 응답은 단 10%에 그쳤다. 1974년 4월 시작된 이래 지난 38년 동안 실시된 230여 차례의 조사에서, 미국민의 의회에 대한 평균 지지율은 약 34%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갤럽이 조사한 오바마 대통령의 지지율은 45%였다. 오바마 대통령의 상대가 의회라면, 대선은 해보나 마나란 얘기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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