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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통령은 유대인이 뽑는다?

이스라엘보다 유대인 더 많은 ‘유대인 국가’ 미국… 대선 ‘이스라엘 변수’ 고려해 이스라엘에 구애하는 오바마·롬니
등록 2012-08-07 14:17 수정 2020-05-03 04:26

‘1232억200만달러.’ 미국의 저명한 중동문제 전문매체인 가 지난해 11월호에서 의회조사국(CSR) 등 공식 자료를 바탕으로 추정해 내놓은 액수다. 1948년 5월14일 ‘독립’을 선포한 이래, 미국이 이스라엘에 직접 지원한 예산을 현재의 화폐가치로 환산했단다. 지난 8월2일 환율(1달러=1131원)로 따져, 약 139조3417억4475만원에 이르는 천문학적인 돈이다.

유대인들, 전통적으로 민주당 성향 강해

이 매체는 “정부 산하 각 부처에 딸린 외곽 조직에 숨어 있는 예산도 엄청나다”며 “이 때문에 이스라엘에 대한 미 정부의 실제 지원금 규모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면에서 건국 초기부터 줄곧 미국은 이스라엘의 가장 강력한 우방이자 최대 후원국을 자처해왔다. 이유가 없을 리 없다.
이스라엘 통계청(CBS)이 내놓은 최신 자료를 보자. 건국 64돌을 앞둔 지난 4월 현재, 이스라엘의 인구는 788만1천여 명이다. 이 가운데 유대인은 593만1천여 명으로, 전체 인구의 75.3% 남짓이란다. 이스라엘 국적을 지닌 아랍인도 인구의 20.6%가량인 162만3천여 명에 이른다.
지구촌 전체로 무대를 넓혀보자. CBS의 자료를 보면, 이스라엘을 포함해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는 유대인은 모두 1374만6100여 명이다. 이 가운데 542만5천여 명이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 미국 국적을 지닌 채 이스라엘에 사는 인구도 20만 명을 헤아린단다. 미국은, 이스라엘에 이어 세계 2위의 ‘유대인 국가’란 얘기다. 미국 뒤를 이어 각각 3위와 4위를 차지한 프랑스(약 48만 명)와 캐나다(약 37만5천 명)의 유대인 인구 규모를 보면, 미국-이스라엘 관계의 ‘특수성’을 어렵잖게 가늠해볼 수 있다.
한 가지 더 훑어볼 자료가 있다. 미 코네티컷주립대 버먼연구소에 딸린 ‘북미 유대인 데이터 뱅크’는 지난해 내놓은 117쪽 분량의 ‘2011년 미국 거주 유대인 인구’ 보고서에서, 전국 50개 주에 살고 있는 유대인 인구를 촘촘하게 헤아렸다. 그 결과, 2010년 말 현재 미국에 거주하는 유대인 수는 전체 인구의 2.1%인 658만8천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했다. 보고서 내용이 정확하다면, ‘최대 유대인 국가’는 이스라엘이 아니라 미국이 된다. 선거철만 되면 미 정치권에서 이른바 ‘이스라엘 변수’(Israeli Swing Factor)란 용어가 심심찮게 거론되는 것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닌 게다.
미국의 정·관계와 언론, 금융권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유대인들은 전통적으로 민주당 성향이 강한 것으로 평가된다. 실제 1920년대 이래 적어도 60% 이상의 유대인들이 대선 때마다 민주당 후보에게 표를 던져왔다. 차이라면 지지율의 높고 낮음이 후보에 따라 약간의 편차를 보여왔다는 점뿐이다. 특히 현직 대통령이 재선에 도전했던 선거 때마다, 유대인 유권자들의 지지율 추이는 선거 결과와 정확히 일치해왔다. 사례를 찾아보면 쉽게 확인이 가능하다.
제럴드 포드 대통령(공화당)과 지미 카터 후보(민주당)가 맞붙은 1976년 대선부터 살펴보자. 당시 선거에서 유대계 표심은 단연 압도적으로 카터 후보에게 몰렸다. 유대인 유권자 71%가 카터 후보를 지지한 반면, 포드 대통령은 단 27%를 얻는 데 그친 게다. 하지만 카터 대통령이 재선에 나선 1980년 대선에선 상황이 표변했다. 카터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45%로 폭락한 반면, 로널드 레이건 후보(공화당)는 39%의 지지율을 얻어냈다. 카터 대통령은, 재선에 실패했다.

롬니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

1988년 대선에서 유대계 유권자 38%의 지지를 이끌어낸 ‘아버지 부시’ 대통령(공화당)은, 1992년 재선 도전에선 단 11%의 지지를 얻는 데 그쳤다. 승리는, 유대계 표심의 80%를 얻은 빌 클린턴 후보(민주당)의 것이었다. 클린턴 대통령은 1996년 대선에서도 유대계 유권자 78%의 지지를 얻으며 무난히 재선에 성공했다. 2000년 대선에서 19%에 그쳤던 조지 부시 대통령(공화당)에 대한 유대인 유권자들의 지지율은, 2004년 대선에선 되레 24%까지 올랐다. 그 역시 재선에 성공했다.
2008년 대선 때는 어땠을까? 당시 버락 오바마 후보(민주당)는 유대계 유권자 78%의 지지를 얻어, 22%에 그친 존 매케인 후보(공화당)를 압도하며 무난히 당선됐다. 당시 대선의 평균 투표율은 57% 남짓이었지만, 유대계 유권자의 투표율은 80%를 훌쩍 뛰어넘었다. 재선 도전에 나선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유대계의 여론은 여전히 우호적이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갤럽이 유대인 유권자를 대상으로 실시해 지난 7월27일 내놓은 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68%가 오바마 대통령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밋 롬니 후보(공화당)에 대한 지지율은 25%에 그쳤다.
미 대선은 독특한 방식으로 치러진다. 인구 비율에 따라 각 주에 할당된 선거인단을, 해당 주에서 지지율이 높은 후보가 모두 차지한다. 전체 선거인단은 538명, 이 가운데 270명 이상을 확보해야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은 지난 7월24일 “전체 선거인단 가운데 127명이 몰린 뉴욕·캘리포니아·플로리다·뉴저지 등 4개 주는 미국 내에서 유대인 인구 비율이 높은 대표적인 지역이란 공통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유대계 인구가 전체의 8.4%(163만5천여 명)인 뉴욕을 비롯해 △뉴저지(5.7%) △플로리다(3.4%) △캘리포니아(3.3%) 모두 유대계 인구비율 평균치(약 2.1%)를 훌쩍 뛰어넘는다.
갤럽의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된 다음날, 롬니 후보는 영국을 거쳐 이스라엘에 도착했다. 이번 해외 순방은 그가 공화당 대선 후보로 확정된 뒤 처음 나선 외국 나들이다. 마음이 바빴을 터다.
“이스라엘의 1인당 국민소득은 2만1천달러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지역은 1만달러 수준에 불과하다. 경제의 활력 측면에서도 엄청난 차이가 있다. 칠레와 에콰도르, 멕시코와 미국처럼 이웃한 나라와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이 모든 차이는 문화가 만들어낸다.”
이스라엘 방문 사흘째인 7월30일, 롬니 후보는 예루살렘에서 최고급으로 손꼽히는 ‘킹데이비드 호텔’에서 열린 선거자금 모금행사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날 행사의 참가비는 1인당 5만달러, 참석자는 40명을 넘어섰다. 롬니 후보로선, 단 한 차례 행사로 무려 200만달러를 모금한 셈이다. 앞서 전날인 7월29일 유대인의 성지로 꼽히는 예루살렘의 ‘통곡의 벽’을 방문한 자리에서, 롬니 후보는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라고 강조한 바 있다. 역시 예루살렘을 향후 건설될 독립국가의 수도로 여기고 있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즉각 반발하고 나선 것은 당연했다.

오바마 “이스라엘 곁에 미국 함께할 것”

“롬니 후보는 무슨 짓을 하는 건가?” 사에브 에레카트 팔레스타인 평화협상 대표는 이날 등 외신들과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비판했다. 그는 “어제는 그간의 평화협상 기조를 저버리고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라고 주장하더니, 오늘은 아예 이스라엘의 문화가 팔레스타인보다 우월하다는 거냐”며 “이게 ‘인종주의’가 아니라면 대체 뭐냐”고 날을 세웠다.
롬니 후보의 발언은 사실관계부터 틀렸다. 세계은행이 지난해 말을 기준으로 집계한 자료를 보면, 이스라엘의 1인당 국민소득은 3만1천달러에 이른다. 반면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 등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은 1500달러 수준에 그치고 있다.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은 그간 “장기간에 걸친 이스라엘의 봉쇄정책이 중단되지 않는다면 팔레스타인 경제는 성장할 수 없다”고 여러 차례 지적했다. 그럼에도 롬니 후보는 이날 행사에서 이에 대해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하긴, 롬니 후보뿐이 아니다.
“미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이스라엘의 친구로서 이 자리에 섰다. …하마스는 민간인을 겨냥해 무차별적으로 로켓을 발사하고 있다. 이런 테러 행위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 미국은 이스라엘 국민을 위협하는 세력에 단호하게 맞설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린다. 이스라엘의 안보를 굳건히 하겠다는 미국의 결심은 흔들림이 없으며, 이제껏 그래왔듯이 이스라엘의 정당한 자기방어 노력을 적극 지지할 것이다. …이스라엘을 파괴하려는 적들과 맞선 이스라엘 곁에는 미국의 친구들이 언제나 함께할 것이다.”
누구의 발언일까? 2008년 7월13일 가자지구와 맞닿은 이스라엘 서부 스데로트 지역을 방문한 버락 오바마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가 내놓은 말이다. 그 역시 공식 후보로 확정된 직후 첫 외국 방문길에 이스라엘을 찾아갔던 터다. 정도의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맥락만 놓고 보면 롬니 후보의 발언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오바마 대통령 취임 직전에 터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침공 이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협상은 이제껏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다.
대선전이 본격화한 이후, 롬니 후보 쪽은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이후 단 한 차례도 이스라엘을 방문하지 않았다”는 점을 도드라지게 비판해왔다. 롬니 후보의 현지 방문에 앞선 지난 7월24일 이스라엘 영자지 는 오바마 대통령 선거캠프 대변인의 말을 따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면, 이른 시일 안에 이스라엘을 다시 찾을 계획”이라고 전했다. 뜬금없이 나온 소리가 아니었다.

오마바, 7천만달러 예산 추가 지원 서명

롬니 후보가 이스라엘에 도착하기 전날, 오바마 대통령은 다시 ‘비장의 카드’를 꺼내들었다. 백악관 집무실에서 보좌진에 둘러싸인 채, 7천만달러 규모의 예산을 추가로 지원하는 내용을 뼈대로 한 ‘미국-이스라엘 안보 강화법’에 서명을 한 게다. 전형적인 ‘물타기’였다. 11월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이스라엘을 향한 미 정치권의 ‘애정 공세’는 더욱 격해질 터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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