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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협약 꺾어버린 미국의 총기 사랑

총기 난사 사건에도 ‘총기 규제’ 여론 힘 못 얻는 미국… 유엔 차원 ‘무기거래규제협정’도 미국 반대로 지지부진
등록 2012-08-07 14:14 수정 2020-05-03 04:26
제주해군기지 반대 ‘강정평화대행진’에 함께한 참가자들이 순례길 둘째날인 7월31일 오전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 해변도로를 걷고 있다.

제주해군기지 반대 ‘강정평화대행진’에 함께한 참가자들이 순례길 둘째날인 7월31일 오전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 해변도로를 걷고 있다.

미국 콜로라도주 오로라의 ‘센추리16’ 극장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벌어진 것은 지난 7월20일이다. 영화 ‘배트맨’ 시리즈의 최신작 시사회 도중 벌어진 이날의 무차별 총질로 12명이 현장에서 숨지고, 59명이 다쳤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그리 낯선 일도 아니다. 건국 초기인 1789년 9월25일 작성된 ‘권리장전’에 등장할 정도로, ‘무기를 소지할 권리’는 미국인이 가장 오랫동안 지켜온 ‘시민의 권리’다. 총기 난사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총기 규제론’이, 얼마 지나지 않아 쉽게 무질러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전미총기협회, “총기 소지 헌법적 권리”

이번 참극 이후에도, 상황은 전과 다를 바 없었다. 콜로라도 현지 매체 는 지난 7월24일치 기사에서 “극장 총기 난사 사건 이후 되레 총기 구입을 원하는 이들이 큰 폭으로 늘었다”며 “사건 발생 일주일 전과 견줘, 총기 구입을 위한 신원조회 신청 건수가 무려 43%나 치솟았다”고 전했다. 신문은 “미국에서 (군경을 뺀) 민간인이 소지하고 있는 총기류는 무려 2억7천만 정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다”고 덧붙였다. 어디서 교훈을 찾을 것인가?

‘하루 2천 명이 총기 때문에 목숨을 잃는다.’ 의 보도가 나온 7월24일 뉴욕의 이스트 강변에 나무 판자로 만든 ‘비석’이 세워졌다. 7월2일 개막돼 7월27일까지 이어진 유엔 차원의 ‘무기거래규제협정’(ATT) 체결을 위한 협상이 지지부진해지자 평화·군축단체 활동가들이 항의 시위에 나선 게다.

ATT 체결을 위한 논의는 2006년 유엔 총회의 결의에 따라 시작됐다. 유엔 군축국(UNODA)이 펴낸 자료를 보면, 협정이 포괄하는 규제 대상은 소총 등 소형 화기부터 탱크·장갑차·대포·전투기·전투용 헬리콥터·군함·미사일 등 사실상 모든 ‘재래식 무기’를 망라한다. 이번 회의 기간에 마련된 협정문 초안은 “각국 정부는 무기 수출(판매) 또는 이전에 앞서 해당 무기가 인권을 유린하거나, 반인도적 범죄에 사용될 가능성이 없는지 면밀히 평가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인권탄압 국가와 만성적인 유혈 사태가 벌어지는 지역 등에 대한 무기 수출·이전을 중단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이룬 것이 가장 큰 수확이다.” 은 회의 폐막일인 7월27일 이렇게 전했다. 폐막에 앞서 170여 참가국 가운데 91개국 대표단이 공동 명의로 협정문 초안에 찬성한다는 뜻을 밝혔지만, 논의는 거기서 멈춰섰다. 그저 “오는 10월 유엔 총회에서 논의를 재개한다”는 선에서 회의를 마감했다. 이유? 미국 때문이다.

회의 기간 동안 벌어진 총기 난사 사건에도 미국 내 여론은 여전히 ‘총기 규제’ 쪽으로 다가서지 못했다. 미 3대 로비단체로 꼽히는 ‘전미총기협회’(NRA)는 ATT 회의를 겨냥해 내놓은 성명에서 “그 어떤 경우에도, 총기 소지라는 헌법적 권리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캔자스주 출신 제리 모랜 상원의원(공화당)은 아예 동료 의원 50여 명과 연대서명한 공개 서한을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에게 보냈다. 그는 서한에서 “미국의 주권과 국민의 권리가 유엔 때문에 침해되는 일이 벌어져선 안 된다”며 “개인이 총기를 소지할 권리를 앗아가는 그 어떤 국제협정도 상원의 비준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못박았다.

미국, 재래식 무기시장의 40% 장악

지구촌 재래식 무기시장은 한 해 600억달러 규모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약 40%를 떠맡고 있는 게 미국이다. 미 외교정책에서 ‘국익’은 언제나 인권에 우선한다. 외교안보 전문매체 는 7월27일 인터넷판에서 토머스 컨트리맨 미 국무부 국제안보·비확산 담당 부장관이 사실상 ‘거부권’을 행사하며 내세운 ‘논리’를 이렇게 전했다. “제출된 협정문의 핵심 조항에 대해선 전혀 이견이 없다. 다만 협정문을 꼼꼼히 살펴보려면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다.” 다급했나? 많이 옹색하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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