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기농운동연맹(IFOAM)과 스위스 유기농업연구소(FiBL)가 지난해 2월 공동으로 펴낸 ‘세계 유기농 현황’ 보고서를 보면, 2009년을 기준으로 전세계 유기농산물 시장은 약 550억달러 규모다. 이 가운데 절반가량인 약 267억달러를 미국이 떠맡고 있다. 미국은 지구촌 유기농 시장의 선두주자다.
‘유전자 조작’ ‘화학용매제’ 유기농?
1990년을 기준으로 미국의 유기농 시장은 10억달러 수준에 그쳤다. 20년 새 20배 이상 성장한 게다. 1990년 11월 미 의회를 통과한 ‘유기농 식품 생산에 관한 법률’(OFPA)이 그 원동력으로 꼽힐 만하다. 법에 따라 미 국무부에 딸린 농업마케팅국은 1993년 10월부터 ‘국가 유기농 프로그램’(NOP)을 운영하고 있는데, 유기농산물 생산 기준과 인증 절차 등에 대한 결정 권한을 갖는 ‘국가유기농기준위원회’(NOSB)가 그 핵심이다.
위원회는 농무장관이 임명하는 15명의 외부 인사로 구성되는데, △농민(생산자) △환경운동가 △소비자 △과학자 등 7개 분야에 걸쳐 임명된 위원들의 임기는 5년이다. 외부 인사만으로 위원회를 구성한 것은 유기농 식품 생산과 판매·유통 과정에서 거대 영농기업의 이권이 개입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서였을 터다. 하지만 미국의 유기농업 전문 싱크탱크 ‘코누코피아연구소’가 최근 펴낸 보고서를 보면, 현실은 전혀 딴판으로 흘러간 모양이다. 농무부와 거대 영농업체의 유착 의혹을 제기하며 연구소 쪽이 지난 5월18일 내놓은 78쪽 분량의 보고서 제목은 ‘유기농 워터게이트 백서’다.
NOSB는 유기농 정책을 논의하려고 해마다 두 차례 총회를 연다. 지난해 가을 총회는 11월28일 조지아주 서배너에서 나흘 일정으로 개막됐다. 행사 마지막 날인 지난해 12월2일 오후 세션은 업계에서 제출한 청원서에 대한 표결로 문을 열었다. 그 가운데 하나가 해조류를 활용해 생산한 고도 불포화지방산의 일종인 ‘도코사헥사에노산’(DHA) 함유 오일을 유기농 분유와 유제품에 식품첨가제로 사용할 수 있으냐를 결정짓는 것이었다. 표결 결과, 근소한 차이로 ‘승인’ 결정이 내려졌다. 코누코피아연구소가 NOSB를 눈여겨보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보고서를 보면, 문제의 식품첨가제는 네덜란드에 본사를 둔 다국적기업 ‘로열 DSM·마텍 바이오사이언스’의 제품이다. 유전자조작된 해조류를 주원료로, 화학용매제를 이용해 생산한단다. 수입처는 미 최대 규모의 유가공 업체인 ‘딘푸즈’다. 유기농과 썩 어울리지 않는 ‘유전자조작’과 ‘화학용매’란 꼬리표를 달고도 ‘승인’ 결정이 내려진 것은 “두 거대 업체의 입김이 작용한 탓”이란 게 연구소 쪽의 주장이다. 실제 연구소 쪽이 공개한 NOSB의 전·현직 위원 명단을 보면, 이런 주장이 기우가 아님을 어렵잖게 느낄 수 있다.
줄줄이 밝혀진 X맨 리스트
2007년까지 ‘농민·생산자’ 부문 위원으로 활동한 케빈 오렐은 딘푸즈의 자회사 사장 출신이다. 같은 부문에서 2010년까지 활동한 제럴드 데이비스 위원은 세계 최대 당근 생산업체인 그림웨이팜스에서 일했다. ‘소비자·공익’ 부문 위원으로 지난해 말까지 NOSB 위원장을 지낸 트레이시 미데마는 연매출 150억달러에 이르는 거대 식품업체 ‘제너럴밀스’를 거쳐, 2010년부터 미 최대 유기농업체인 ‘어스바운드팜’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밖에 농민·생산자 부문에서 현직으로 활동하고 있는 존 포스터, 웬디 풀와이더 위원도 각각 ‘어스바운드팜’과 ‘오가닉벨리’(연매출 7억달러) 등 거대 영농업체 출신이다.
마크 캐스텔 코누코피아연구소 공동대표는 “농무부는 자발적으로 정부에 강력한 규제기준을 마련해 집행해달라고 요구했던 건전한 중소 유기농민과 소비자를 저버렸다”며 “특히 거대 영농기업의 이익을 위해 불법적인 방법을 동원해 입법 취지까지 어겼으니, (행정부가 의회의 권한을 침해했다는 점에서) ‘워터게이트 사건’에 견줄 만하다”고 강조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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