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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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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행정이란 이름의 인신구금

재판도 없이 감옥에 갇혔다 가족도 못 만날 곳으로 3년 유배당한 하나 샬라비…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저항운동 탄압 도구 ‘행정구금’으로 자치의원 24명 등 320명 갇혀 있어
등록 2012-04-13 16:15 수정 2020-05-03 04:26

팔레스타인 저항단체 ‘이슬람 지하드’의 활동가 하나 샬라비가 다시 수감 생활을 하게 된 것은 지난 2월16일부터다. 그날 팔레스타인 땅 요르단강 서안 지역 부르킨의 집에서 그는 이스라엘군에게 체포됐다. 이번에도 무슨 혐의인지는 이스라엘 당국만이 아는 ‘비밀’이었다. 그날부터 샬라비는 음식을 입에 대지 않았다. 43일 동안 이어진 단식농성 끝에 그는 석방과 추방을 맞바꿨다. 이스라엘 교도소에서 석방된 샬라비는 이스라엘이 포위한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로 추방됐다. 기한은 3년, 사실상 귀양살이다.

자국 안보 위해 ‘우려’만으로 마음대로 가둬
샬라비는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이스라엘 법에 따라 기소돼 재판받은 경험이 없다. 2년여 수감 생활 끝에 지난해 10월 이스라엘군 병사와 포로 교환 형태로 석방됐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점령된 땅에선 많은 일들이 이유 없이 벌어진다. 자국 안보에 위해를 끼칠 만하다고 판단하면, 누구나 기한 없이 일단 구금하고 보는 게 이스라엘 법이다. 짧게는 몇 달에서 길게는 몇 년씩, 그저 ‘의심스럽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마냥 붙잡아둘 수 있다. 이스라엘에선 이를 ‘행정구금’이라고 부른다.
행정구금은 기소나 재판 절차를 거치지 않고, 법률이 아닌 행정명령에 따라 인신을 구속하는 방식이다. 적어도 이스라엘 내에선 법적 근거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요르단강 서안 지역에선 ‘이스라엘군 군사명령 제1651호’에 따라 행정구금 조처가 단행된다. 2005년 이스라엘군이 ‘공식’ 철수한 가자지구에선 군사명령 대신 ‘불법무장요원 구금법’이 동원된다.
하지만 국제법은 이런 구금 방식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전쟁터에서 민간인을 보호하려고 점령군의 행동 방식을 규정한 1949년 제4차 제네바 협정 제78조는 △국가 안보가 심각한 위험에 처해 있을 때 △모든 수단을 동원한 뒤 최후의 수단으로 △임박한 위험을 제거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기간 동안 ‘행정구금’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제네바협정을 위반하는 행위는 흔히 ‘전쟁범죄’라고 부른다.
행정구금의 역사는 1967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땅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를 군사점령한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행정구금이 팔레스타인의 저항운동을 탄압하는 핵심 도구로 활용되기 시작한 것은 1989년 제1차 인티파다(민중봉기) 때부터다. 이스라엘 시민단체인 ‘점령지 인권정보센터’(베첼렘)가 펴낸 자료를 보면, 그해 11월5일 이스라엘 당국이 행정구금한 팔레스타인 주민은 무려 1794명에 이른다.
인티파다의 불길이 잦아들기 시작한 1990년대 초·중반 행정구금 대상자는 평균 100~350명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어 오슬로협정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립 등을 거쳐 1990년대 말에 이르면 행정구금 대상자는 두 자릿수까지 줄었다. 하지만 2000년 가을 제2차 인티파다가 촉발되자 행정구금 대상자가 다시 늘기 시작해, 2002년 말에 1천 명대를 돌파했다. 이후 행정구금이 다시 조금씩 줄어들어 2005~2007년엔 평균 750명 수준을 유지하다가, 2007년 11월 이후 줄어들어 2010년 8월엔 189명까지 떨어졌다. 지난 2월 말 현재 이스라엘 당국이 행정구금시키고 있는 팔레스타인인은 모두 320명이다.

앰네스티 “수감자, 공정한 재판 받게 하라”
저항운동단체 활동가만 행정구금 대상이 되는 건 아니다. 비판적 지식인은 물론 팔레스타인 자치의회 의원 등 정치인들까지 표적이 된다. 이스라엘 당국이 본격적으로 팔레스타인 정치인을 겨냥하기 시작한 것은 2005년 9월께부터다. 그 무렵 이스라엘 당국은 이듬해인 2006년 1월로 예정된 자치의회·지방선거 출마를 준비하던 팔레스타인 정치조직 하마스 소속 정치인 450여 명을 무차별 체포·구금했다. 당시 체포된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옥중 당선’되기도 했다.
현역의원도 예외는 아니었다. 2009년 3~5월 이스라엘 당국에 구금된 팔레스타인 자치의회 의원은 모두 37명에 이르렀다. 전체 의석(132석)의 거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규모다. 지난 2월 말 현재 이스라엘 당국이 행정구금하고 있는 자치의원 수는 모두 24명이다.
행정구금의 실상은 어떨까? 팔레스타인 시민단체 ‘아다미어 수감자지원 인권협회’가 2010년 12월 펴낸 보고서 ‘점령된 땅 팔레스타인의 행정구금-법과 현실’에 등장하는 알리 자라다트(57)의 사연을 들춰보자. 작가이자 언론인인 자라다트가 보고서 작성 당시까지 행정구금된 기간은 총 11년여를 헤아린다. 오랜 기간에 걸쳐 붙잡혔다 풀려나기를 반복하는 새 그의 건강은 극도로 나빠졌다. 특히 2004년 5월 서안 지역 인근 오페르 교도소에 수감될 때는 관상동맥 폐색에 따른 협심증으로 수술까지 받아야 했단다.
2008년 4월 재차 수감됐을 때, 이스라엘 당국은 자라다트를 오페르 교도소에서 네게브 사막 지역의 케치오트 교도소로 이감시키려 했다. 하지만 현지 교도소 쪽 의료진이 자라다트의 건강을 이유로 이감을 거부했다. 자라다트의 상태가 심각해질 경우, 응급조처를 취해줄 만한 병원이 케치오트 교도소 인근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스라엘 당국은 이후에도 여러 차례 정기적으로 자라다트를 이곳저곳으로 이감시켰다. 인권협회는 보고서에서 “이감은 수감자에게 최대한의 고통을 주기 위한 한 방법”이라며 “수감 기간 동안 자라다트에겐 가족 면회도, 서적 반입도, 집필도 허용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스라엘 정부에 다시 한번 촉구한다. 하나 샬라비를 포함한 팔레스타인 수감자 전원을 즉각 국제적으로 공인된 범죄 혐의로 정식 기소해, 국제법이 정한 기준에 따라 공정한 재판을 받도록 하라. 그렇지 않다면, 이들 모두는 즉각 석방돼야 한다.” 샬라비의 단식이 30일을 넘길 즈음 세계적인 인권단체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은 성명을 내어 이렇게 강조했다. 성명에 대한 이스라엘 정부의 반응은 오피르 겐델만 총리실 대변인이 내놨다. 그는 이날 총리실 대변인 명의의 공식 트위터에 이런 글을 올렸다.
“하나 샬라비가 구금된 이유는 그가 유대인을 살해할 계획을 세웠기 때문이다. (프랑스) 툴루즈의 학살자처럼 말이다. 샬라비를 응원하는 사람들에게 묻는다. 툴루즈의 학살자가 당신들의 영웅인가?”

가자와 서안으로 ‘분리’된 가족
샬라비는 4월1일 해 질 녘 앰뷸런스에 실려 가자지구 들머리에 도착했다. 이스라엘에서 가자지구로 들어가는 관문인 에레츠 검문소에서 그는 가족들과 눈물로 이별을 했다. 에레츠 검문소는 이스라엘 병사들이 철통같이 지키고 있다. 가자지구에서 요르단강 서안으로 가려면 이스라엘 땅을 거쳐야 한다. 이스라엘 당국이 샬라비에게 자유롭게 이동할 자유를 줄 가능성은 없다. 샬라비 가족에게도 마찬가지일 게다. 샬라비는 앞으로 3년 동안 가족을 만날 수 없다.
“지난해 10월 팔레스타인 활동가 18명이 3년간 가자지구로 추방됐고, 146명은 영구 추방됐다. 41명은 아예 팔레스타인 땅에서 추방돼 외국으로 보내졌다. 점령지 주민의 강제 이주와 추방을 금한 제네바협정 제49조 위반이다.” 팔레스타인의 ‘아다미어 수감자지원 인권협회’와 이스라엘의 ‘인권의사협회’는 4월1일 공동성명을 내어 이렇게 비판했다. 21세기에, 귀양살이다. 점령된 땅에서.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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