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의 봄’이 순항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1월과 2월 튀니지와 이집트 정권이 붕괴하자 아랍의 ‘민주화 도미노’ 현상에 대한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이후 8개월이 지나서야 리비아 사태와 예멘 사태가 종결됐다. 반면 이집트에서는 ‘제2혁명’이라 불리는 반군부 시위가 유혈사태로 이어졌다. 3500명이라는 최대 규모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은 시리아 사태는 끝이 보이지 않는다. 1980년대 말 동구권 사태와 달리 아랍의 정치 변동은 장기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중재 통한 해결 선례 만든 예멘 사태
알리 압둘라 살레 예멘 대통령이 33년간 장기 독점한 권좌에서 물러나기로 했다. 살레 대통령은 11월23일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에서 압둘라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국왕과 나이프 왕세제가 지켜보는 가운데 자신의 퇴진을 규정한 권력이양안에 서명했다. 지속되는 반정부 시위와 국내외의 사퇴 압박에 굴복한 것이다. 이번 권력이양안에 따라 살레 대통령은 모든 권한을 압드라보 만수르 하디 부통령에게 넘겨야 한다. 하디 부통령은 야당 중심의 국민통합정부를 구성해 90일 안에 대선을 치르고 새 대통령을 선출하게 된다. 다만 살레 대통령은 차기 대선 이전까지 명목상의 대통령직은 유지하게 된다.
2월 초 시작된 예멘의 반정부 시위는 이로써 10개월 만에 종식되었다. 올해 초 시작된 아랍의 정치 변동 중 가장 장기화한 것이다. 걸프협력회의(GCC)가 중재한 권력이양안은 살레 대통령의 면책특권을 보장한다. 1500여 명의 시민이 희생된 것에 대한 책임을 면하게 된다. 반쪽 승리다. 살레 대통령은 곧 미국으로 향해 신병치료를 받을 것이다. 이 때문에 살레 대통령의 서명 이후에도 수도 사나에서는 형사처벌을 촉구하는 시위가 이어졌다. 실제로 권력이양 약속이 이행될지도 의문이다. 살레 대통령은 세 차례나 중재안 서명 약속을 어긴 바 있다.
살레 대통령의 권력이양안 서명은 또 다른 중요한 ‘선례’를 남겼다. 중재를 통한 사태 해결이다. 튀니지 대통령은 사우디아라비아로 망명했고, 국내에서 하야한 이집트 대통령은 수감돼 재판에 회부됐고, 끝까지 버틴 리비아 지도자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하지만 권력을 내놓은 살레 대통령은 ‘챙겨 떠나는’ 사례인 셈이다. GCC 국가 지도자들이 예멘 사태 중재에 노력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예멘 사태가 아라비아반도로 확대되는 것도 우려했지만, 주변 아랍국 지도자들에게 선택권을 부여하는 사례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이집트의 타흐리르 광장은 다시 반정부 시위대로 가득하다. 무바라크 정권을 몰아낸 시위대는 다시 군부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시위대와 군경의 충돌로 약 일주일간 4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난 2월 무바라크 정권이 붕괴하자 시위대는 군 최고위원회가 권력을 이양받은 것에 만족했다. 그러나 이후 무바라크 대통령의 사법처리를 요구해 관철시켰고, 이제는 이집트의 가장 큰 기득권 세력인 군부의 퇴진을 주장하고 있다. 다행히 11월24일 군부는 시위대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수십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것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시위대와 휴전에 합의했다고도 발표했다.
그러나 군부 퇴진 등을 촉구하는 ‘2차 혁명’의 물결이 약화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야권 단체들은 수개월 전부터 총선 이전에 제헌의회 구성을 위한 또 다른 선거가 필요하다고 강조해왔다. 무바라크 정권의 핵심 지지 기반이던 군부가 최고 권력을 행사하는 상황에서 총선을 실시하면 과거의 기득권 세력이 의회를 장악해 포괄적 정치 개혁이 어렵다는 주장이다. 또한 새로 등장한 수십 개 정당에는 군부의 영향력을 최소화하는 것이 자신들의 세력 확대에 필수적이다.
시리아 사태의 끝도 머잖아
결국 혁명에는 성공했으나 민주화 과정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민주화 경험의 미미, 시민사회의 경험 부족, 경제 회복 여건의 미비, 종파주의 등 여러 상황을 고려해볼 때 시민혁명 이후에도 시행착오와 혼란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결과적으로 이집트에서는 ‘신권위주의’의 등장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정권이 붕괴했지만 명확한 대안세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질서 회복과 사회 안정이라는 명분으로 새로운 권위주의 체제가 들어설 분위기가 마련되는 상황이다. 군부와 협력하는 세력이 새로운 정부를 구성하는 군부지배연합 체제의 등장 가능성이 크다.
42년을 집권한 리비아 지도자 무아마르 카다피의 비참한 최후는 예멘과 시리아 정권에 큰 충격이었다. 후계자로 거론되던 차남 사이프 알이슬람마저도 체포돼 카다피 일가 모두가 사망 혹은 망명하거나 구금된 상태다. 따라서 카다피가 사망한 지 한 달 만에 예멘 대통령도 퇴진을 선언했다. 결국 국제사회와 국민으로부터 퇴진 압박을 받는 아랍 국가의 지도자로는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만 남은 셈이다.
30년간 집권한 아버지에게서 권력을 승계받아 11년째 집권하고 있는 아사드는 초강경 진압으로 3500명 이상을 희생시켰다. 공화국수비대를 이끄는 아사드의 막내동생 마히르 알아사드가 정권의 버팀목 구실을 하고 있다. 아사드는 다른 한편으로 국가비상사태법을 48년 만에 폐지하고 복수 정당을 허용키로 하는 등 유화책을 내놓으며 사태를 수습하려 애쓰고 있다. 그러나 반정부 시위는 수그러들지 않고, 최근에는 이탈병을 중심으로 한 반군조직이 북부 지역에 형성돼 내전 양상으로 향하고 있다.
이에 서방은 물론 아랍권도 시리아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상황이다. 시리아는 11월24일 아랍연맹(AL)이 제시한 감시단 파견을 허용하는 등 아랍권의 압력을 약화시키려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시리아 정권의 붕괴도 시간문제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리비아와 예멘 사태의 종식은 시리아 정권이 벼랑 끝에 있음을 시사한다. ‘시민혁명’의 성격을 보여준 튀니지와 이집트와는 달리 리비아와 예멘, 시리아는 부족 간 갈등 양상을 표출했다. 부족 전통에는 ‘승자 독식과 보복’의 원칙이 있다. 최대 부족 내 가장 강력한 가문이 사실상 모든 것을 차지한다. ‘패배하면 모든 것을 잃는다’라는 인식을 가진 지배 부족이 ‘벼랑 끝 전술’을 동원해 이 세 나라는 사태가 장기화했다. 그러나 리비아와 예멘 정권이 붕괴함에 따라 시리아 사태도 유사한 결말로 향할 것이다. 아사드가 카다피와 살레의 길 중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만 남아 있다.
다양한 아랍의 점진적 민주화
다른 아랍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바레인은 주변국의 도움으로 사태를 진정시켰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수백억달러를 풀어 국민을 회유하고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민주화 물결은 전 아랍권으로 확대될 것이다. 그동안 권위주의에 도전하지 못하던 아랍인들의 인식체계를 바꿔놓았기 때문이다. 다만 점진적이거나 순차적으로 진행될 것이다. 과거 동구의 ‘민주화 도미노’ 현상이 발생하지 않는 이유는 아랍의 다양성 때문이다. 공산주의와 이에 입각한 권위주의 정치제도, 국가 주도형 경제, 비슷한 경제 수준 등 과거 동구권은 상당한 동질성을 가지고 있었다. 이 때문에 빠른 시간 내에 모든 정권이 붕괴했다. 하지만 아랍권은 공화제·입헌군주제·절대군주제의 3대 정치체제가 존재한다. 더불어 경제적 편차는 더욱 크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천달러도 되지 않는 수단·소말리아·예멘 등 정권이 수만달러의 1인당 GDP를 가진 다른 산유국 왕정과 동시에 무너지기는 어렵다.
서정민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중동아프리카학과 교수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자존심 무너져, 나라 망해가”…야당 ‘김건희 특검’ 집회도 [영상]
‘윤 정권 퇴진 집회’ 경찰·시민 충돌…“연행자 석방하라” [영상]
이시영, 아들 업고 해발 4천미터 히말라야 등반
숭례문 일대 메운 시민들 “윤석열 퇴진하라” [포토]
“잘못 딱 집으시면 사과 드린다”…윤, 운명은 어디로 [논썰]
“비혼·비연애·비섹스·비출산”…한국 ‘4비 운동’ 배우는 반트럼프 여성들
“대통령이 김건희인지 명태균인지 묻는다”…세종대로 메운 시민들
불과 반세기 만에…장대한 북극 빙하 사라지고 맨땅 드러났다
명태균 변호인, 반말로 “조용히 해”…학생들 항의에 거친 반응
지구 어디에나 있지만 발견 어려워…신종 4종 한국서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