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3~4일 프랑스 칸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그리스 등 유로존 국가의 재정위기 해소를 위해 중국의 지원을 기대했지만, 중국의 대답은 ‘노!’(No!)였다. 회의 개막 전 서방 정치 지도자와 주요 언론들이 3조2천억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외환을 보유한 중국의 긴급 지원만이 해법이라며 중국의 적극적 태도를 주문했지만, 결국 그들만의 희망에 불과했다.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은 회의에서 “우리는 유럽이 문제 해결을 위해 필요한 모든 지혜와 역량을 갖추었다고 믿는다”는 말로 서방의 요청을 에둘러 거절했다.
G20에 대한 견해 차이가 근본 원인
중국은 유럽의 위기는 그들의 자구적 노력으로 극복해야 할 문제라는 태도다. 또한 중국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국제사회와 공조를 통해 위기를 극복하려고 노력해왔음을 상기시키며, 중국의 안정과 지속적 성장을 유지하는 것이 곧 세계경제에 대한 최대의 공헌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유로존 재정위기에 직접 지원은 없지만, 중국의 안정과 성장을 통해 세계경제의 안정에 기여하는 간접적 방식이 중국의 방침임을 분명히 했다. 중국과 서방국가 간에 이런 엇박자가 초래된 것은, 무엇보다도 국제적 경제위기에 대응하려고 결성된 G20이라는 회의체를 대하는 견해 차이가 근본적 원인으로 보인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중국의 일관된 방침은 위기 극복을 위해 국제사회와 공조하되, 이를 계기로 기존 세계경제 체제의 개혁을 강하게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국제금융 및 통화체제 개혁, 선진국과 빈곤국가 간의 발전 격차 축소, 브릭스(BRICs)로 대표되는 신흥 경제대국 및 개발도상국가의 발언권 확대, 보호주의 반대 등이 중국의 일관된 주장이었다. 선진국 중심의 주요 8개국(G8)에서 선진국과 신흥국이 함께하는 G20으로의 확대는 이런 중국의 주장을 반영할 최적의 무대를 제공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서방의 기대는 처음부터 다른 데 있었다. 세계경제 질서의 위기를 통제할 힘을 상실한 미국은 중국과의 책임 분담을 요구했다. 지난 20여 년간 세계화라는 큰 흐름에 편승하며 가장 큰 수혜를 본 중국이 세계적 경제위기 극복에 동참해달라는 것이다. 특히 미국은 자국 무역 적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대중국 무역 적자를 완화하려고 인민폐 절상을 집요하게 요구해왔다. 이는 상대적으로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영향력과 위상을 크게 제고시켰고 주요 2개국(G2)이라는 별칭으로 통하게 되었다.
중국이 G2라는 별칭에 강한 거부감을 보이는 이유는 자명하다. 중국의 국력은 미국 등 서방국가들이 기대하는 수준에 못 미친다는 것이다. 자칫 G2라는 찬사에 휘둘리면 월가 금융자본의 탐욕과 유럽 국가들의 방만한 국가재정에서 초래된 세계적 경제위기의 책임을 중국이 공동 분담해야 한다는 판단 때문이다. 물론 또 다른 측면에서 서방세계에서 여전히 위력을 떨치는 ‘중국 위협론’이라는 뿌리깊은 불신을 피하려는 의도도 있다. 중국이 스스로의 위상을 ‘개발도상대국’이라 규정하며, 국제사회에서 신흥국과 개발도상국의 이익대변자를 자처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중국, 세계 전략 고민 부족?
중국의 이런 태도는, 언젠가 중국이 ‘개발도상국’ 수준을 뛰어넘을 것을 고려한다면 중국의 장기적 국제전략은 도대체 무엇일까 궁금해지게 한다. 이에 대해 서구 강대국 흥망의 역사적 경험에 기초한 가장 간명한 주장은 결국 중국과 미국 간에 세계적 차원의 패권 경쟁과 충돌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은 이를 철저히 부정한다. 이른바 ‘평화적 발전론’이라는 수사를 통해 중국은 기존 세계 질서와 충돌하지 않으며 ‘부상’을 실현하는 새로운 길을 갈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실제로 최근 20년 동안 중국의 대외관계는 서방국가와의 충돌보다는 협력을 더 우선시하는 정책기조를 유지했다. 물론 향후 10~20년 뒤 중국이 지금보다 더 강한 국력과 국제적 위상을 확보한 뒤에도 이런 노선이 계속 유지될지는 알 수 없다. 바로 이런 불확실성 때문에 중국의 부상을 둘러싸고 중국 관방의 담론과 서방의 시각이 부딪치고 있다. 그런데 불확실성이 중국의 의도적인 ‘전략적 모호성’에서 기인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현재 중국 지도부가 자국의 미래 전략에 대한 명확한 그림을 그리지 못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중국의 상당수 전문가들은 중국 지도부가 세계 전략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고 지적하곤 한다. 중국의 대외전략에 대해 지도부에게 가장 적극적인 자문 활동을 하는 것으로 알려진 베이징대학 국제관계학원 왕지쓰 교수가 2011년 3·4월호에 실은 ‘중국의 대전략 탐색’(China’s Search for a Grand Strategy: A Rising Greater Power Finds Its Way)이라는 기고문에서도 이런 주장은 재차 확인된다. 왕 교수는 기고문에서 “국제관계 측면에서 중국의 국가 대전략은 아직 형성돼 있지 않다”고 전제하며, 현 지도부가 고려하는 국가 핵심 이익을 ‘영토와 주권의 보호 및 통합, 중국공산당 통치 안정, 경제성장의 지속’의 세 가지 문제로 규정했다. 세 가지 모두 대외관계보다는 대내적 통치 안정과 관련된 문제 영역이라 할 수 있다. 현 단계에서 중국 지도부의 고민이 대외전략보다 대내정치 측면에 더 큰 비중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중국은 이번 유로존 국가의 경제위기를 중국이 공동 책임을 져야 할 수준의 문제로 인식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서방에서 요구하는 ‘국제사회 책임론’에 대해 중국은 “현재로서는 중국의 안정과 성장이 곧 국제사회에 대한 기여다”라는 주장으로 회피하는 셈이다. 이런 인식은 중국 지도부가 더 중요하게 보는 국내 문제의 복잡성을 고려하면 당분간 쉽게 바뀌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지속 성장과 부작용 치유라는 이중과제
중국은 현재 지속적 고도성장과 지난 시기 압축적 고도성장의 부작용 치유라는 이중적 과제를 안고 있다. 극심한 빈부 격차, 기층에서의 빈번한 이익 갈등과 집단시위, 티베트와 신장 지역 소수민족의 분리주의 운동 등 사회 통합과 안정을 위협하는 많은 문제와 씨름하고 있다. 최근에는 물가 상승 압력, 부동산 시장 거품 붕괴 위기, 지방정부 재정난 등 경제적 난제도 심상치 않다. 여기에 국내 민심도 중국의 저임금과 열악한 복지 수준을 유럽 국가들과 비교하며 중국이 유럽을 지원하면 안 된다는 주장이 압도적이다. 또한 현재의 중국 지도부는 내년 가을에 임기를 마치고 새로운 지도부로 교체된다. 임기 말 지도부가 복잡한 국내 사정과 곱지 않은 여론을 거스르면서까지 ‘국제사회에 대한 책임’을 수행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중국 지도부가 대외관계에서 선택할 수 있는 정책적 유연성의 폭이 그리 넓지 않다는 것이다.
이문기 세종대 교수·중국학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공수처, ‘경호처장 강제구인’ 뒤 윤석열 체포영장 재집행 가능성
[단독] 윤, 국무위원들 계엄 반대 와중에 “발표해야 하니 나는 간다”
‘공수처와 관저 대치 의혹’ 군인들, 김용현 경호처장 때 배치됐다
[단독] 문상호 “1인당 실탄 10발 준비”…계엄 당일 지시
경찰, ‘윤 체포 방해 의혹’ 55경비단장에게도 출석 통보
[영상] 공수처 “군·경호처 200명 팔짱 끼고 체포 막아…일부 총기 소지”
김흥국 “박정희·전두환보다 윤석열이 더 잘해…오야붕 지키자”
버티는 윤석열에 보수언론도 “비겁하기 짝이 없다”
‘화살촉 머리’ 플라나리아, 국내서 신종 21종 발견
[영상] 바리케이드·군용차·버스·인간벽…윤석열 체포 위해 산길까지 뚫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