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3일 칠레에서는 약 900명에 달하는 사상가, 예술인, 교육자, 인문학자들이 세바스티안 피녜라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을 발표했다. 교육개혁을 요구하며 봄부터 계속된 학생시위를 종식시키려고 타협 지점을 고민한 흔적이 뚜렷하다. 그러나 공개서한은 피녜라가 지난 9월22일 유엔총회 연설에서 학생들의 요구가 “고귀하고 아름답고 정당하다”고 인정한 사실을 부각시켰다.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하지만 실제로는 태도에 별로 변화가 없는 피녜라의 이중적 태도를 꼬집으며, 교육의 공공성을 부르짖는 학생들 손을 들어준 셈이다.
교육을 시장에 맡긴 군사독재정부
돌이켜보면 초기에는 정부의 대응이 너무 안이해서 시위를 확산시킨 측면이 있다. 지난 5월12일 본격적인 시위가 시작됐는데도 7월5일에야 처음으로 정부안을 제시했으니 말이다.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되고, 중·고등학생까지 학교 점거에 나서고, 1990년 민선정부가 들어선 이래 최대 규모의 시위가 벌어지는데도 묵묵부답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교육부 장관을 교체하는 성의를 보이고, 좀더 진전된 내용을 담은 안들을 발표했는데도 오히려 시위가 확산 일로를 걸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가령 지난 8월1일 2차 정부안이 발표된 직후에는 구리노동자연맹·칠레노동자중앙회·원주민단체 등 40여 개 단체가 시위에 가세했고, 8월17일 3차 정부안이 발표된 직후에는 산티아고에서만 50만 명(정부 추산 10만 명)이 참여하는 최대 규모의 시민행진이 벌어졌다.
이는 정부와 국민 사이에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현재 칠레의 교육 시스템은 서슬 퍼런 군부독재 시대인 1981년에 국민적 합의 없이 마련되었고, 골자는 교육을 시장에 맡기겠다는 것이었다. 피노체트가 1973년 쿠데타로 집권한 직후 도입한 신자유주의 모델을 교육 부문에 적용한 것이다. 이에 따라 국립대학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12개로 묶여 있고, 오직 사립대학 설립만 허용했다. 그사이 대학생 수는 1990년 24만 명에서 2010년 94만164명으로 불었다. 등록금이 비싼 사립대학이 대학교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커졌다. 또한 일부 사립대학이 장삿속만 밝혀 대학생들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교육을 둘러싼 갈등에 다른 부문의 지지자와 단체들이 뛰어든 것도 이 때문이다. 교육의 공공성 외에 신자유주의가 훼손시킨 것에 대해 비로소 본격적으로 점검하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칠레 역사학자 세르히오 그레스는 말한다. 교육개혁을 둘러싼 논란 덕분에 드디어 칠레 사회운동의 새 아침이 밝았다고. 피노체트 정권에 대한 오랜 투쟁 끝에 등장한 콘세르타시온(중도좌파연합) 체제가 20년을 집권하는 동안 사회운동은 오히려 지리멸렬했다. 콘세르타시온 체제가 피노체트 시대의 가장 큰 잔재인 신자유주의 모델을 그대로 답습했는데도 민주정부라는 이미지 덕에 신자유주의 비판론자의 예봉을 수월하게 피해나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칠레 사회운동의 새 아침 밝았다”
물론 신자유주의에 대한 날선 비판은 계속 존재했다. 가령 사회학자 토마스 물리앙은 1990년대 칠레 사회를 ‘신용카드 사회’로 규정할 정도로 시장만능주의를 경고했다. 일각에서는 피노체트 시대에서 콘세르타시온 체제로의 이행을 민주화가 아니라 국가에서 시장으로의 이행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대두되었다. 권위주의 정부의 효용가치가 고갈돼, 신자유주의자들이 국가의 권력을 빼앗은 사건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지난해 2월27일 칠레 남부의 콘셉시온시에서 대지진이 발생했을 때, 시사평론가 로저 부르바는 이를 ‘사회적 지진’이라고 규정했다. 무한경쟁 시대에 생존하려고 발버둥친 건축회사들의 부실공사로 주로 서민과 빈민의 주택들이 많이 손상을 입고, 동네 상권을 죽여버린 콘셉시온의 대형 슈퍼마켓들이 지진 때문에 일제히 문을 닫고 구호물자 도착도 지연되자 굶주린 시민이 식료품을 ‘약탈’하게 된 사건이 신자유주의 시대의 치부를 고스란히 보여주었다는 의미에서다. 하지만 이런 비판은 칠레 국민을 완전히 설복시킬 정도는 아니었다. ‘신용카드 사회’ ‘국가에서 시장으로의 이행’ ‘사회적 지진’ 등의 개념은 배운 사람들의 말장난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더 많았다. 신자유주의 모델의 성공적 정착 덕에 ‘칠레의 기적’을 이루었다는 전 국민적 자부심에 비판의 목소리는 힘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하물며 그들보다 덜 배운 사회운동가들의 분노의 목소리는 들리지도 않았다. 학생시위로 비로소 칠레 사회운동의 새 아침이 밝았다는 세르히오 그레스의 진단은 이런 맥락에서다.
칠레에서는 이렇게 중요한 사건이지만 세계적 맥락에서는 그저 최근 전세계에서 들끓는 유사한 개혁 요구의 하나로 비칠 뿐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를 통해 저항이 세계화되고 있다고 진단하며 아랍 민주화운동, 스페인의 ‘분노하라’ 시위, 미국의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를 언급했다. 칠레는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그러나 칠레 학생시위는 적어도 한 가지 점에서는 전 지구적 의미를 띠고 있다. 칠레 학생운동 지도자인 카밀라 바예호는 영국
신자유주의로 잃어버린 30년
최근 필자가 속한 연구소의 학술회의에서 라틴아메리카의 1980년대가 ‘잃어버린 10년’이 아니라, 지난 30년을 통틀어 ‘잃어버린 30년’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주지하다시피 ‘잃어버린 10년’은 라틴아메리카가 극심한 경제위기를 겪은 1980년대를 지칭한다. 반면 그날 학술회의에서 ‘잃어버린 30년’은 ‘신자유주의 30년’을 지칭하려고 사용되었다. 지난 30년 동안 외부에서 주입된 신자유주의의 폐해가 오히려 컸는데, 1980년대의 위기를 놓고 라틴아메리카에만 책임을 뒤집어씌우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적어도 칠레 교육 시스템을 놓고 본다면 합당한 주장이다. 1981년 신자유주의 시장논리에 입각해 실시한 대학 정책이 2011년 오늘 교육의 공공성의 토대를 완전히 허물어뜨렸기 때문이다. 아마 월가를 바라볼 때도 금융자본의 탐욕에 분노하기보다는, 이 탐욕을 작동시킨 신자유주의가 과연 얼마나 오랜 세월을 잃어버리게 했는지 깊이 성찰해야 할 것이다.
우석균 서울대 라틴아메리카연구소 HK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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