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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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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시민의 쓰나미로 원전을 없애자”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주목받는 탈원전의 스승 안자이 이쿠로 리쓰메이칸대학 명예교수
“지금 원전 반대의 쓰나미 만들지 않으면 또다시 휩쓸려 간다” 호소
등록 2011-11-04 15:54 수정 2020-05-03 04:26
안자이 이쿠로  리쓰메이칸대학 명예교수. 황자혜 제공

안자이 이쿠로 리쓰메이칸대학 명예교수. 황자혜 제공

관동대지진의 45배, 한신 아와지 대지진의 350배라는 미증유의 3·11 일본 도호쿠 대지진과 거대한 해일로 원자로 4기가 동시에 폭발한 사상 초유의 후쿠시마 ‘핵재앙’이 일어난 지 7개월이 넘었다. 도쿄대 원자력공학과 1기생으로 반세기 동안 일본 정부의 원자력 안전 소홀, 기업 주도형 원전 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하며 핵재앙을 예고해온 안자이 이쿠로(70) 교토 리쓰메이칸대학 명예교수(방사선방호학·평화학)를 10월17일 도쿄도 시나가와에서 만나 ‘후쿠시마를 넘어 비핵·탈핵의 전망’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안자이 교수는 일본 원자력 전문가 1세대임에도 정부의 원전 정책을 끈질기게 비판해 학계에서 오랫동안 집단 따돌림을 받기도 했지만, 핵재앙을 겪은 뒤 그의 호소에 일본이 주목하고 있다. 리쓰메이칸 평화뮤지엄 명예관장이자 안자이 과학평화사무소 소장인 그는 3·11 이후 ‘제2의 후쿠시마 사태’를 경고하며 전국에서 100회 가까이 탈원전 평화 강연을 하고 있다.

안자이 교수는 과의 인터뷰에서 “탈원전은 불가능한 게 아니다”라며 “원전을 없애고 다른 에너지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원전 반대의 쓰나미를 우리가 만들지 않으면 또다시 휩쓸려간다. 한국도 마찬가지일 것이다”라고 일본인을 포함한 아시아인의 의식 전환을 주문했다. 또한 “아시아 나라들이 역사적 대립을 극복하고 공동으로 대처한다면 세계사를 바꾸는 큰 힘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11월 한겨레통일문화재단, 부산시 주최 국제심포지엄 기조연설을 위해 내한한다.

-방사능 오염은 현재 어떤 상태인가.

반감기 30년이라는 ‘세슘 137’이 정부 계산으로도 히로시마의 168배에 이르는 양이 유출됐다는데 이것도 과소평가된 것이다. 방사능 문제에서 “거리가 멀면 양이 적다”는 단순 계산은 착오다. 바람·비·지형 등에 의해 멀어도 상당한 양의 방사능이 쌓인다. 긴급사태 때 이를 파악해 피난하도록 해야 했지만, 정부는 못한 게 아니라 안 했다. 1986년부터 12억엔을 들인 ‘스피디’라는 프로그램에 따라 풍향·풍속·비·지형의 데이터를 활용해 15분 안에 계산할 수 있는데도 발표하지 않았다. 단지 동심원을 그려 피난 지시를 내리는 바람에 피난 가야 할 사람들이 제대로 가지 못하고, 서둘러 피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 혼비백산 피하며 혼란을 키웠다.

큰비로도 쓸려가지 않는 방사능으로 인한 외부 피폭이 심각하다. 후쿠시마시는 지금 1시간당 1μSv(마이크로시버트·1년간 가슴 엑스레이 150~200장을 찍는 노출 정도) 상태에서 28만 명의 인구가 일상생활을 하고 있다. 반면에 내부 피폭이라 할 먹거리의 방사능 오염은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후쿠시마의 오염된 흙을 조사해보니 이른바 ‘이온교환수지’(Ion Exchange Resin) 효과로 ‘세슘 137’이 흙에 꽉 잡혀 대량의 물에도 녹아나오지 않았다. 후쿠시마 논밭이 대량의 방사능에 오염됐음에도, 올해 수확된 벼들이 그대로 출하된 이유다. 하지만 논과 밭, 산과 들, 학교 운동장에 쌓인 방사능은 비가 와도 몇십 년 동안 남아 있다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외부 피폭을 막으려면 방사능 오염 제거 작업이 시급하다.

-후쿠시마는 진정된 것이 아니라고 하는데 ‘제2의 후쿠시마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는가.

3·11 이래 나는 “숨기지 마, 거짓말 마, 과소평가하지 마”를 외치고 있는데, 이는 여전히 주요하다. 동북지방과 별도로 남부도 지진이 30년 이내 8할이라는 높은 확률로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하마오카 원전 등에서 문제가 일어나면, 도심부가 대지진 중심지라서 심각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원전 가동을 멈추었지만, 쓰나미 대책을 세우더라도 그걸 다시 운전할지, 원전에 계속 의존할지 아닐지의 판단을 국민이 해야 한다. 54기의 원전을 가진 나라에서 이처럼 심각한 경험을 한 이상, 원전을 없애고 다른 에너지로 전환해야 한다.

-원전 폐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며, 원전은 계속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는데.

탈원전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후쿠시마 사태 이후 일본은 80%의 원전 가동을 중단했지만 생활은 지속되고 있다. 전기는 소비의 순간 생산해야 하는 상품이라서 여름과 겨울은 소비가 집중되나 봄가을에는 남는다. 전력 소비를 1년 단위로 계획·조절하고, 태양광(열)·풍력 발전으로 전환도 가능하다. 하루 종일 통행량이 있는 고속도로의 진동으로 전기를 만드는 것이나 조력·화력·해수온도차 발전 등 다양한 대체 기술 개발도 잇따르고 있다. 국가의 장기적인 대체에너지 개발 추진과 적확한 예산 운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히로시마·나가사키의 핵지옥을 경험한 일본이 후쿠시마 재앙까지 입었다. 이런 사고가 일본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1954년 미국의 비키니섬 수소폭탄 실험(1발에 15Mt, 2차 세계대전 5회분) 때 일본의 참치선 선원이 피폭돼 사망한 것을 계기로 전국적인 원수폭 금지, 핵무기 폐기 운동이 있었다. 그러나 ‘핵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교묘한 언론의 선전과 정부 주도 기업 추진형으로 1960년대부터 원전이 하나씩 생겨나 54기가 됐고, 그걸 받아들인 결과 이번 사태를 초래했다. 따라서 전환은 국민적 인식과 행동에 달려 있다. 국민이 사태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주권자로서 탈원전 노선을 택한다면 국가는 변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일본은 이번 후쿠시마 교훈을 발판 삼아 새로운 미래를 만들 수 있을까.

이 나라가 왜 원전투성이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 학자들이 연구비를 받으려고 안전하지도 않은 원전을 안전하다고 해온 잘못된 역사를 알지 못하는 한 똑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전력회사는 원전 1호기를 만드는 데 5천억엔 정도의 돈이 움직이니까 달려들고, 미국은 농축우라늄을 일본에 팔아야 하므로 압력을 가한다. 그런 압력에 저항하며, 위험한 원전은 필요 없다고 밀어붙일 수 있는 시민의 힘, 파도가 필요하다. 원전 반대의 쓰나미를 우리가 만들지 않으면 또다시 휩쓸려간다. 이는 한국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 재앙이 극우 정치인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지사의 연임으로 이어지며 국가주의적·획일주의적 흐름이 강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는데.

도쿄만이 아니라 오사카, 지바, 사이타마, 가나가와현에서 모두 같은 양태를 보였다. 주권을 행사해야 하는 국민이, 강한 것에 몸을 맡기고 자신의 권리를 위임해온 것이 일본의 역사다. 그래서 침략의 역사에 대한 반성 없이 동맹국이라 불리는 미국의 뜻에 따라 이 나라의 갈 길을 정해왔다. 일본인은 ‘왜 일본에 원폭이 투하됐는가’를 생각하기 전에,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2천만 명을 전쟁에 휩싸이게 한 가해자로서 잘못된 행동이 있었음을 반성해야 한다. 군부와 천황이 나라 문제를 흥정하고, 일본인 스스로가 나랏일을 정할 수 없던 과거가 지금까지 이어지며 큰 변화가 없다. 그것을 변화시켜야 한다. 국민이 확실히 ‘우리가 정한다’는 관점에 서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일본만이 아니라 한국과 중국, 나아가 세계를 원전 없는 안전한 세상으로 바꿔가야 한다. 일본이 원전의 위험성에 대해 솔직히 의견을 공유하는 논의 환경을 만들어야 하는데도, 일본 정부가 전쟁에 대한 진정한 반성도 가해 행위를 인정하는 자세도 보이지 않고 있다. 일본·한국·중국을 포함해 아시아 나라들이 역사적인 문제에서의 대립을 극복하고 이 문제에 공동으로 대처한다면 세계사를 바꾸는 큰 힘이 될 것이다. 전쟁과 원전 안전 문제는 그런 면에서도 깊이 관련돼 있다.

-후쿠시마 핵재앙을 겪은 당사자인 일본의 시민사회에서 반원전·탈원전의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는 걸 의아해하는 한국 사람들이 많다.

천황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전쟁,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이야기 못하는 전쟁, 그러고는 기업사회가 되어 회사를 위해 자신을 죽인 채 일하는 일본인이 돼버렸다. 자기 마음을 철저히 눌러야 했던 일본인은 한국인과 감정 표현 방식이 다르다. 젊은이에게 요구되는 것은 자신이 ‘정세를 바꾸는 주인공’이라는 인식과 행동하는 실천력의 체화다. 내가 대학에서 평화학을 가르치는 이유도 평화가 아닌 것을 이겨내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실천력을 키우기 위해서다. 젊은이들의 주체적 힘이 없다면 이 나라는 변하지 않는다.

-일본의 미래, 에너지 정책 변화에 대해서는 낙관과 비관 중 어느 쪽인가.

난 낙관적이다. 그러자면 앞서 이야기했듯 지금 직면한 사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젊은 층의 자각과 행동이 필요하다. 한국의 젊은이들로부터 자극을 받아야 한다. 중국을 보면 좀 걱정이 된다. 한국은 정치적 압력 속에서도 젊은이들이 사회적 불만의 목소리를 내고 정부를 바꿔내는데, 일본은 그게 없다. 이를 배워 서로 손을 잡아나가야 한다. 일본과 한국 학생들 간 상호 교류 및 공동 수업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본다. 나의 평화론 강연이 한국에서 이뤄진다면 좋을 것이다.

-신재생에너지로서의 정책 전환, 나아가 후쿠시마 사태 극복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일본인은 정부와 사회에 응당 요구하고 바꿔나가는 능력을 한국에서 배워야 한다. 국회가 마음대로 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탈원전’ 국민투표도 요구해야 한다. 이탈리아는 그만두게 만들었다. 일본은 민주당마저도 이런 복잡한 문제를 두고 “국민이 투표하는 건 익숙하지 않다”며 하지 않는다. 결과가 너무도 분명하기에 지금의 정부가 못하는 것이다.

-도쿄대 강상중 교수가 제안한 ‘동아시아 안전공동체’ ‘탈핵 네트워크’에 대해 어떻게 보는가.

그게 가능하려면 과거 전쟁에 대한 일본 국민의 반성이 선행돼야 한다. 한국과 중국은 일본이 마음 깊이 반성했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고, 교과서·위안부 등 다양한 문제로 불신감이 크기 때문에 그것을 불식시킬 필요가 있다. 1995년 국회에서의 문서적 반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진정한 반성 말이다. 국가 교육에서 일본이 과거 가해 행위에 대해 확실히 가르치지 않는다면 동아시아 공동체나 공동의 힘은 나오지 못한다. 특히 일본이 책임 있게 전쟁에 대한 반성을 해야 비로소 마음을 통하는 공동의 조건이 가능하다고 본다.

-학계의 노골적 차별과 정부의 탄압에 굴하지 않고 원전의 위험성을 주장할 수 있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하다.

원자력 전문가이기 때문에 원자력이 얼마나 무서운지 안다. 그런 위험성을 감추고 “원전으로, 원전으로”를 외쳐온 정부 정책에 의문을 품고 정책 비판부터 시작했다. 이 때문에 도쿄대 문부교관 조수(조교) 시절부터 집단 따돌림과 학문적 박해를 받았다. 강의를 못하고, 연구비가 끊기고, 강연마다 미행이 붙어 감시당했다. 학계의 집단 따돌림을 당하면서도 참을 수 있었던 건 나의 존엄성을 지키며 똑바로 걷고 싶었기 때문이다. 도쿄대 안에서는 늘 외톨이였지만, 대학 밖에는 같은 생각을 가진 과학자가 많았다. 학회에서 발표하면 젊은 연구자들이 지지해주었고 선거 때마다 학회 이사로 선출됐다. 마지막으로 1970년대 조수 생활만 17년간 하며 경제적으로 힘들 때, 박봉인데도 아이 둘을 키우며 묵묵히 격려해준 아내의 힘이 가장 컸다.

도쿄(일본)=황자혜 한겨레통일문화재단 평화연구소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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