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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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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는 한판의 승부가 아니다

개혁 더딘 이집트, 내전 겪는 리비아 등… 민주화의 멀고 험한 길 겪는 아랍 민중들 “우리에겐 꿈이라는 무기 있다”
등록 2011-07-21 19:04 수정 2020-05-03 04:26
이집트 수도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에서 7월12일 한 시위 참가자가 “정의가 아니면 총알을”이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 AP

이집트 수도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에서 7월12일 한 시위 참가자가 “정의가 아니면 총알을”이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 AP

민주화는 한판의 승부가 아니다. 그만큼 민주주의 실현은 멀고 험하다. ‘아랍의 봄’을 불태웠던 민주화의 열기도 딱 그러하다. 과일상 청년의 분신자살로 불타오른 ‘재스민 혁명’으로 1월14일 튀니지 벤 알리 대통령이 해외로 달아난 지 6개월이 지났다. 지금 그 뜨겁던 민주화 열기는 어느덧 뜨뜻미지근하게 식어가고 있다. 초기의 열기에 비하면 얼핏 용두사미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한편에선 느려터진 과거 청산에 분노한 민심에 다시 들썩이고 있기도 하다.

개혁 발목 잡는 이집트 군부

이집트가 대표적이다. 아랍의 맹주 이집트는 2월11일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이 집권 30년 만에 물러나면서 대변화를 예고하는 듯했다. 하지만 무바라크의 퇴진을 이끌어낸 18일간의 시위가 벌어진 바로 그 타흐리르 광장은 7월8일 이후 다시 들끓고 있다. 무바라크 퇴진 뒤 이집트를 이끌고 있는 군부가 무바라크 정권 인사 단죄 등 과거 청산과 개혁 요구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 무바라크 정권과 다르지 않다는 불만이 한계에 다다른 것이다. 7월12일 3만여 명 등, 7월8일부터 연일 연좌시위가 벌어져 수도 카이로 시내 교통이 마비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집트 2대 도시 알렉산드리아와 수에즈 등에서도 수만 명이 시위에 참여했다. 지난 1~2월 “무바라크 정권 퇴진을 요구한다”던 시위대의 구호는 “군사정부의 퇴진을 요구한다”로 바뀌었다. “우리의 주요 요구였던 자유와 정의, 평등이 하나도 충족되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타흐리르 광장에 왔다.” 한 시민이 아랍 위성방송 에 밝힌 이 말은 시위대를 다시 광장으로 돌아오게 만든 분노의 대상을 잘 보여준다. <ap>은 7월12일 “한때 군부를 동지로 여겼던 시위대가 이제는 무바라크 정권의 지난 30년간 권력 남용 및 경찰과 과거 정권 인사들이 법의 심판을 받는 것을 군부가 지연시키고 있다고 비난한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시민들은 무바라크 퇴진 뒤 최고 권력기구인 군 최고위원회(SCAF)의 무함마드 후사인 탄타위 최고사령관의 퇴진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무바라크의 최측근으로 국방장관을 지낸 그가 이끄는 군부가 무바라크와 전 정권 핵심 세력을 보호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임명 당시 국민의 환영을 받았던 잇삼 샤라프 과도정부 총리는 군부의 힘에 눌려 제 구실을 못한다는 비난을 받아 사임 요구가 커지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실망했다” “역사적 기회를 잃어버렸다”는 통탄도 나오고 있다. 한편에서 ‘제2의 이집트 혁명’을 촉구하고 있는 까닭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독재자를 쫓아내고 새로운 세상을 꿈꿨던 이집트 국민은 혁명의 달콤한 열매 대신 쓴 대가를 치르고 있다. 무엇보다 치안 불안이 심각하다. 지난 1월 36건이던 무장강도 사건은 5월에 208건으로 늘었고, 살인은 같은 기간 44건에서 145건으로 3배 이상 늘어났다. 이집트 국민은 무바라크 정권에 충성했던 경찰들이 의도적으로 치안 불안을 방치하고 있다고 여긴다. 관광지는 다시 문을 열었지만 최근 시위가 재발하자 주가가 잇따라 하락하는 등 경제 불안이 덩달아 커지고 있다. 무바라크 정권 시절 정부 관리를 지낸 인사들은 차기 총선에 출마할 준비를 하고 있다. 독재자는 물러났지만 그와 공생하던 기득권 세력은 온전한 것이다. 페이스북과 트위터가 혁명을 확산시켰을지언정 혁명을 완성시켜주지는 못했다. 영국 는 7월12일 “이집트 혁명이 뭔가 심각하게 잘못됐다”고 평가했다.

멀어진 리비아·시리아·예멘의 민주화

국민이 군부를 비난하면서 양쪽은 민주화를 위해 손을 잡기보다는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이집트 군부는 시위대가 “국가 이익을 해치고 있다”며 일상으로 복귀할 것을 촉구하고, 국가 운영은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쫓겨난 무바라크는 홍해의 휴양지 샤름 엘셰이크 리조트에 머물고 있다. 그가 비밀리에 사우디아라비아로 이송돼 치료를 받았으며 미용사를 수도 카이로에서 리조트로 부르도록 허락받았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부패와 시위대 살해 혐의로 기소된 무바라크와 두 아들에 대한 재판이 8월3일을 시작으로 어떻게 전개되느냐가 향후 이집트 정국 전개에 고비가 될 전망이다. 7월13일 군부는 9월로 예고됐던 총선을 논란 끝에 일부 야당 등의 요구를 반영해 10월이나 11월에 치르겠다고 밝혔다. 이집트 군부가 성공적인 민주화 사례로 꼽히는 인도네시아의 길을 갈지는 아직 미지수다. 인도네시아는 수하르토 대통령이 1998년 경제위기 뒤 반정부 시위로 집권 32년 만에 물러난 뒤 군부 주도로 정치 개혁 등을 거쳤고, 군부는 점진적으로 역할을 축소하면서 민주화가 차분히 진행됐다.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에서 7월1일 카다피 지지자들이 카다피의 초상화 등을 들고 NATO군의 폭겨 중단 등을 요구하고 있다. 연합AP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에서 7월1일 카다피 지지자들이 카다피의 초상화 등을 들고 NATO군의 폭겨 중단 등을 요구하고 있다. 연합AP


무바라크가 무너질 때만 해도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대통령도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카다피는 서방의 폭격 등 군사공격에 견디고 있다. 리비아는 내전의 수렁에 빠졌고, 사태가 장기화되고 있다. 정치적 해결을 위해 카다피가 보낸 특사와 북대서영조약기구(NATO)군 사이에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리지만, NATO는 카다피의 퇴진을 요구하는 반면 카다피 쪽은 공습 우선 중단을 요구하는 등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반군 진영은 카다피와 그의 아들의 퇴진이 포함된 합의만 수용하겠다는 자세다.
대를 이어 40년 넘게 집권하고 있는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은 시위대의 요구에 강경 대응으로 일관해 희생자가 늘고 있다. 반정부 시위가 시작된 이래 최대 인파인 45만 명이 7월8일 하마에 모여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졌지만 사퇴 조짐은 없다. 지난 3월 반정부 시위가 시작된 이후 유혈 진압으로 1400명 이상이 숨진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7월11일 친정부 시위대가 미국과 프랑스 대사관을 공격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시리아는 이란의 지원을 받는데다 레바논 헤즈볼라와 연결돼 리비아처럼 서방의 개입이 쉽지 않다.
33년째 집권하고 있는 알리 압둘라 살레 예멘 대통령은 퇴진을 거부하다 반정부 부족세력의 공격을 받은 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그는 7월10일 존 브레넌 백악관 대테러담당 보좌관과 만나 권력 이양 등 평화적 사태 해결을 종용받았다. 하지만 그는 “헌법의 틀 안에서라면 여당과의 권력 공유를 환영한다”면서도 자신을 축출하려는 세력을 비난하고 7월17일 귀국할 계획을 밝히는 등 퇴진을 거부하고 있다.

군부의 ‘선택’이 주요한 변수

튀니지와 이집트는 군부가 정권에 등을 돌린 게 정권 붕괴의 결정타였다. 반면 시리아와 리비아, 예멘은 최고권력자의 아들과 동생 등 핵심 측근들이 군부와 보안세력을 장악하고 반정부 시위대를 진압해 민주화를 가로막고 있다. 튀니지는 재스민 혁명에 불을 붙였지만 단죄는 늦춰지고 있다. 벤 알리 대통령은 공공자금 유용 및 무기와 마약 불법 소지 혐의로 각각 35년형과 15년형을 선고받았지만, 혐의를 부인하고 공판에 참석하지 않았다. 애초 7월로 예정됐던 제헌의회 선거는 10월로 연기됐다.
왕정국가의 변화는 더 요원하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임금 인상 등을 통해 불만을 잠재웠다. 바레인에서는 수니파가 장악한 정부와 피지배 계층인 시아파 국민 사이에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는 7월10일 “모로코를 제외하면 아랍의 군주국가들은 민주적 변화를 할 것 같지는 않다”며 “요르단과 알제리도 정치 개혁을 시사했지만 실제 시행에 나설지는 불투명하다”고 내다봤다.
물론 민주화에 아무런 진척이 없는 것은 결코 아니다. 만수르 이사위 이집트 내무장관은 7월13일 시위대의 요구를 받아들여 반정부 시위 진압 과정에서 시민들이 목숨을 잃은 사태의 책임자 37명 등 경찰 고위 간부 669명을 파면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정부 시위 진압 과정에서 거의 900명의 시민들이 숨졌기 때문이다. 샤라프 이집트 총리는 조만간 장관 7~12명을 교체하고 7월 말까지 무바라크 측근 등을 퇴진시키기 위해 주지사를 대거 교체하겠다고 밝혔다. 예히아 엘가말 부총리의 사표도 수용했다. 이집트 법원은 부정축재 혐의로 기소된 구체제 인사 유수프 부트로스갈리 전 이집트 재무장관에게 징역 10년, 하비브 알아들리 전 내무장관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다만 이런 조처가 “달래기일 뿐이다”는 비난을 받을 만큼, 혁명을 일으킨 국민의 기대에 못 미친다는 게 문제다. 시리아는 파루크 알샤라 부통령이 7월10일 ‘국민 대화’에서 “이번 회의를 통해 누구나 국가의 미래를 건설하는 데 평등하게 참여할 수 있는 다당제 민주주의 국가로의 전환을 선언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7월 초 각료 9명을 교체한 요르단에서는 압둘라 2세 국왕이 총리와 각료를 직접 임명하는 등의 절대권력을 완화하고 선출된 의회 다수당이 내각을 꾸리게 하겠다고 밝혔다. 사우디 등이 요르단을 걸프협력회의(GCC) 회원국으로 받아들일지 검토하는 등의 움직임은 요르단의 변화가 주변국으로 퍼지는 것을 차단하려는 조처로 해석되고 있다.

“자유를 위해 무엇이든 할 것”

미국 외교협회(CFR) 리처드 하스 회장은 7월6일 기고에서 “시리아의 폭력 사태는 아랍의 봄이 길고 무더운 여름에 길을 내줬음을 보여준다”며 “불행하게도 권위적인 정부가 상대적으로 민주적인 정부로 대체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중동은 과거보다 덜 안정적이고 덜 번창하는 지역이 됐다”고 우려했다. 반면 <bbc>은 “아랍의 봄이 기력이 다했다고 말하기엔 시기상조며 그렇지 않다”고 분석했다. 애초 아랍을 휩쓴 재스민 혁명을 돌아보면 모두 똑같은 방식으로 혁명이 전개된 게 아니라 공화국과 군주제 국가, 군부의 성향, 종파의 분포, 군주제의 성격, 국가의 경제 상황 등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전개됐다. 사실 혁명으로 독재정권이 무너진 나라에서조차 강압 통치와 부패, 무능을 뿌리 뽑는 데 몇 세대가 걸릴지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아랍 민중은 수십 년 된 독재자를 쫓아낼 수 있는 자신들의 힘을 자각한 만큼 민주화 과정이 지난하더라도 억압적인 과거로 역사의 수레바퀴를 되돌릴 수는 없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이집트 활동가 사라 압델라만은 “우리는 자유를 위해 어떤 것이든 할 것이다. 우리는 꿈이라는 무기를 갖고 있다”고 에 말했다. 민주화는 한판의 승부가 아니다.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bbc></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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