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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 원전 반대 결실 맺다

일본 후쿠시마 재앙 뒤 첫 번째로 원전 완전 포기한 독일… 원전 반대운동과 대안에너지의 급성장, 녹색당이 밑거름 돼
등록 2011-06-09 19:42 수정 2020-05-03 04:26

일본 후쿠시마 원전 재앙이 일어난 지 두 달 반, 독일이 원자력발전 포기를 다시 한번 결정했다. 이미 2002년 사민-녹색 연립정부에서 입법한 사안이니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그래도 전세계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는데, 이유는 후쿠시마 사고 뒤 첫 번째 원자력 포기 천명이라는 것, 그 전까지는 원자력발전을 절반은 지지한 보수당 정권이 주도했다는 것 때문이다. 독일 보수당은 1998년 정권을 내준 뒤, 사민-녹색 연립정부의 원자력 포기 계획을 온 힘을 기울여서 저지했다. 의석의 다수를 점하지 못해 저지에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그들이 다시 정권을 잡으면 원자력 포기 결의를 되돌릴 것이라는 ‘기대’와 ‘우려’가 컸다.

민심에 놀란 보수 총리의 선택

이들은 4년간의 사민-녹색 대연정을 거쳐 2008년이 되어서야 온전히 정권을 되찾았지만, 이때는 원자력 포기를 되돌리기에 시간이 너무 흘러버렸다. 그동안 사민-녹색 정권에서 도입한 새로운 에너지 정책 덕분에 태양·풍력·바이오에너지 등 재생 가능 에너지가 급속히 확대돼 원자력 없이도 에너지 수급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이들이 시도한 것은 원전 가동 연한 연장이었고, 야당의 반대와 수십만 시민의 반대시위를 무시하고 지난해 9월 원전 폐쇄 기한을 12년 더 늘려주었다. 사민-녹색 정부의 결의에 따르면, 2023년께면 독일에서 원전이 사라진다. 여기에 12년이 더 주어졌으니 2035년께가 되어야 완전히 폐기되는 쪽으로 바뀔 것이다.

그러나 보수당 정권이 원전의 가동 연한을 늘려준 지 6개월도 안 돼 후쿠시마 재앙이 터졌다. 그 결과 원전에 대한 독일의 여론이 급격히 바뀌었다. 원전 폐기를 창당 때부터 핵심 강령으로 채택하고 주장해온 녹색당의 지지도가 급속히 상승했고, 보수당 안에서도 원자력은 이제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사면초가에 처한 듯했다. 즉각 총리의 권력 유지 본능이 작동했고, 그녀는 후쿠시마 사고가 일어난 지 사흘도 지나지 않아 가동 연한 연장의 효력 정지와 낡은 원전 7기를 석 달간 폐쇄한다고 발표했다. 그 뒤 그녀는 원전 폐기에 관한 윤리위원회를 구성했고, 위원회에서는 두 달간의 집중적인 토론 끝에 2021년까지 독일 원전을 폐기하자는 내용의 보고서를 메르켈 총리에게 제출했다. 이 보고서를 바탕으로 5월29일 밤 잠정 폐쇄 중인 원전 7기와 고장이 잦은 원전 1기를 영구히 폐쇄하고, 남은 9기의 원전 중에서 6기는 2021년까지 폐쇄하며, 나머지 3기는 경우에 따라 2022년까지 가동할 수 있다는 결정을 내렸다.

독일의 결정에 원자력발전을 하는 대다수 유럽 국가들은 불만을 표시했다. 프랑스 대통령 사르코지는 기자들에게 “독일 바이에른에서 지진해일이 일어나느냐”고 물음으로써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는 반응을 보였고, 1980년 최초로 원전 포기를 결정했지만 보수당이 정권을 잡은 뒤 이를 번복한 스웨덴은 신중하지 못한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원자력 발전을 하지 않는 오스트리아에서만 올바른 결정이라고 환영했을 뿐이다.

전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에서 의아하게 생각하는 원전 포기를 독일의 보수당 정부가 결정하게 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첫째는 독일인의 오랜 원전 반대 전통과 에너지 전환에의 광범위한 참여, 둘째는 원전 없이 에너지 전환이 가능하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해주는 민간 싱크탱크의 존재, 셋째는 원전 폐기와 에너지 전환을 핵심 강령으로 채택한 정당의 존재다.

원전 의존도 꾸준히 줄인 독일

독일인들은 1960년대 말부터 원자력을 반대하는 대규모 집회를 수없이 열었다. 원자력 정책에 항의해서 분신한 사람도 있었다. 1977년에는 독일 남부의 원자력발전소 건설 반대운동에 참여한 시민 27명이 원자력 폐기와 에너지 전환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려고 생태연구소를 설립했다. 그 뒤 1980년에는 녹색당이 출범해 원자력 폐기를 강령으로 채택한 정당이 활동을 시작했다. 이들의 40년 이상의 원자력 반대운동의 결실이 바로 보수당 정권의 원전 포기 선언으로 맺어진 것이다.

독일의 결정은 스웨덴의 원전 포기 번복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스웨덴의 보수당 정권은 지난해 여름에 1980년의 결정을 포기하고 새로운 원전을 건설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후쿠시마 사고 뒤에도 스웨덴 총리는 “어떤 에너지든지 환경에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는 말로 원자력 정책을 바꾸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두 나라의 이런 차이는 원자력 포기 이후의 상황에 대한 전망이 서로 크게 다르기 때문에 나타난다. 스웨덴은 1980년 원전 포기를 결의했지만 그 뒤 30년이 지난 지금도 원자력 의존도가 여전히 매우 높다. 1998년 47%에서 2008년에는 42%로 약간 줄어들었을 뿐이다. 당연히 재생 가능 에너지 비중도 거의 증가하지 않았다. 이에 반해 독일에서는 원전 의존도가 1998년 31%에서 2008년에는 23%로 줄어들었다. 그 이유는 재생 가능 전기의 생산량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전체 전기 소비 중에서 풍력·수력·태양·바이오 에너지 등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의 6.3%에서 2010년에는 17%로 증가했다.

이런 추세 앞에서 스웨덴의 국민과 정치가들은 원전을 포기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고 보고, 독일에서는 모든 정당과 대다수 국민이 원전 포기가 가능하고 바람직하다고 보는 것이다. 재생 가능 에너지의 생산방식도 크게 다르다. 스웨덴에서는 거대 전력회사들이 수력발전을 통해 전기를 생산한다. 전력회사들은 원전도 운영한다. 개인이 재생 가능 전기를 생산하는 데 직접 참여하는 일은 거의 없다. 반면에 독일에서는 수많은 개인이 자기 집에 태양광발전기를 설치함으로써, 또는 풍력발전기의 지분을 구입함으로써 재생 가능 전기 생산에 참여한다.

독일에서는 재생 가능 에너지 설비를 생산하는 많은 기업체의 설립을 원자력발전을 반대하는 시민들이 주도했다. 풍력발전기 생산의 선두주자인 에네르콘의 설립자 알로이스 보벤과 독일의 모범 기업으로 꼽히는 풍력발전기 회사 푸어란더의 사장도 모두 원자력발전에 대항하는 기술을 세상에 내놓겠다는 의지로 사업을 시작했다. 태양에너지 기업의 설립자 중에도 유사한 경력을 가진 사람이 많다. 이런 사람들이 조그맣게 시작한 재생 가능 에너지는 이제 큰 산업이 되었고, 여기에서 일하는 사람도 2010년 현재 36만 명이 넘는다. 이에 비하면 원자력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 수는 3만 명밖에 안 된다.

대다수 국민과 모든 정당 참여

메르켈 총리의 원전 포기 결정에 대해서는 비판도 있다. 주요한 내용은 지금 8기의 원전이 폐쇄된 뒤 2021년까지 10년간 폐쇄되는 원전이 없기 때문에 앞으로 10년 동안은 원전 폐기와 관련해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원자력 반대자와 원자력 포기에 비판적인 사람 모두 불만이다. 반대자는 10년 동안 원전이 차례차례 폐쇄되기를 원하고, 원전 포기 비판자는 남은 9기가 한꺼번에 폐쇄될 경우 전기 수급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 밖의 각론에서도 아직 풀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 그래도 독일에서 원전 포기는 이제 되돌릴 수 없게 되었다. 대다수 국민과 모든 정당이 참여해서 거의 만장일치로 결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필렬 한국방송통신대 교수·문화교양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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