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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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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공공의 적’과 식지 않는 민주화 열풍

전문가 대담… 빈라덴 사후 미국의 각국 역사.다양성 존중 여부와 이슬람 시민의식에 중동.아랍권의 평화와 민주화 미래 달려
등록 2011-05-11 15:55 수정 2020-05-03 04:26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라덴(왼쪽)이 미군에 사살된 뒤, 피로 얼룩진 그의 파키스탄 내 은신처가 공개됐다.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라덴(왼쪽)이 미군에 사살된 뒤, 피로 얼룩진 그의 파키스탄 내 은신처가 공개됐다.

알카에다의 최고지도자 오사마 빈라덴이 미군에 사살됐다. 그의 죽음으로 2001년 9·11 테러 이후 지속된 ‘테러와의 전쟁’의 상징적 아이콘이 사라졌다. 중동·아랍·이슬람권 전문가인 이희수 한양대 교수(문화인류학)와 서정민 한국외국어대 교수(국제지역대학원 중동·아프리카학)가 그의 죽음과 시민혁명이 중동에 끼칠 영향을 짚었다. 두 교수는 빈라덴이 테러와의 전쟁 구실로 활용돼 이슬람 세계와 서방의 갈등이 깊어졌으나, 빈라덴은 중동에서 이미 실질적 영향력을 상실한 인물이므로 그의 죽음이 끼치는 영향이 적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이번 사건을 계기로 미국이 벌여온 테러와의 전쟁 틀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민혁명이 진행되는 중동은 완화된 권위주의 체제를 거쳐 더디더라도 (이슬람식) 민주사회로 나아갈 것으로 내다봤다. 좌담은 5월2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세로토닌문화원에서 진행됐다.

과장·가공된 테러리즘의 아이콘

사회=오사마 빈라덴 사살의 의미를 평가하면.

서정민(이하 서) = 미국이 9·11 테러 이후 벌인 테러와의 전쟁에서 상징적 결과를 얻은 것이다. 알카에다로서는 상징적이지만 조직 지도부의 변화다. 테러와의 전쟁에 한 획을 그은 사건이다.

이희수(이하 이) =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막으려는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의 공조 체제를 계기로 알카에다가 탄생했지만, 걸프전 뒤 균열이 생겼다. 그 균열이 9·11 테러라는 극단적 반미 테러로 귀결됐고, 10년간 지속된 미국과 알카에다의 대결이 빈라덴의 사망으로 일단락됐다. 이슬람권에서도 한 극단적 정치세력의 시대적 마감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 빈라덴은 9·11 테러 이후 이슬람 세계와 서방 간 대결의 상징이었다.

= 알카에다는 실존하는 위협이라기보다는 9·11 테러 이후 반미·반이스라엘 세력을 알카에다와 연결해 미국의 국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됐다. 가공된 위협이 극단적 이슬람 정치세력의 과장으로 이어지고, 이슬람 세계를 공격하는 구실이 됐다. 9·11 테러 이후 과장된 알카에다와의 전쟁이 지속됐다. ‘가공의 인물’이 제거됨으로써 미국의 대중동 및 이슬람 정책 변화가 있을지 관심이다.





“알카에디즘과 과격한 행동주의가 결합해 세계 각지에서 자생적 단체들이 등장했다.
실질적 지휘권이 없는 알카에다의 상징적 지도자가 사라졌다고 해서 알카에다 와해나 미국의 대중동 정책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_ 서정민 교수(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중동·아프리카학)

= 지난 10년간은 문명 간 충돌이라기보다는 충돌을 정치화한 이념 대결이었다. ‘테러리즘이즘’, 곧 테러리즘을 정치화하고 미국이 이를 바탕으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점령하며 테러를 정치화했다.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WMD)가 있다는 주장은 거짓으로 드러났다. 한편 반서방 이념인 ‘알카에디즘’을 내세운 알카에다는 침공과 점령으로 와해되고 빈라덴도 은신에 들어갔다. 지난 10년간 주요 테러를 빈라덴이 직접 지시하거나 명령한 증거는 없었다. 알카에디즘과 과격한 행동주의가 결합해 세계 각지에서 자생적 단체들이 등장했다. 테러리즘이즘과 알카에디즘이 충돌하며 테러의 악순환이 반복됐다. 실질적 지휘권이 없는 알카에다의 상징적 지도자가 사라졌다고 해서 알카에다 와해나 미국의 대중동 정책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 알카에다와의 전쟁이 본질인데 테러와의 전쟁이 됐다. 가상의 카드가 사라진 지금,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 접근이 종래와 같은 패러다임이어선 안 된다. 좀더 전향적 변화의 시점이 되지 않겠나.

= 미국의 전략보다 전술이 바뀔 것이다. 테러와의 전쟁은 두 트랙이었다. 하나는 빈라덴을 추적하려는 상징적 트랙이다. 다른 하나는 전세계에 등장한 연관 테러단체에 대한 실질적 소탕이다. 미국은 빈라덴 사살로 알카에다에 대한 상징적 목표를 달성한 단계여서, 소말리아 등 지역의 이른바 ‘과격세력’ 소탕에 초점을 둘 것이다.

사회=테러와의 전쟁으로 이슬람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강화됐다.

= 양쪽의 감정 대립이 오랫동안 쌓여 ‘문명의 충돌’이라는 패러다임이 축적되고, 반이슬람주의가 확산됐으며, 중동에서 반미주의가 거세졌다.

= 알카에다는 미국뿐 아니라 이슬람 국가에서 테러조직으로 인정하고 있다. 극단적 분파로 이슬람권에서도 공공의 적이다. 하마스·헤즈볼라·무슬림형제단 등 테러리즘과 거리가 먼 국제법적 조직까지 한데 묶어 동일시하는 데 대해 반미 정서가 확산됐는데, 빈라덴 제거 뒤 미국이 공공의 적인 반인류적 테러조직과 독립을 위한 무장단체를 구분하는 정책 변화를 추구하느냐가 중요하다.

서정민.이희수 교수(왼쪽부터)

서정민.이희수 교수(왼쪽부터)

더디더라도 반드시 민주화 이뤄낼 것

사회=알카에다의 보복 등 또 다른 테러 악순환이 커지고 있다.

= 알카에다의 네트워크나 활동은 과장돼 있다. 본격적으로 보복테러를 하리라 단정하기는 어렵다. 자생적 지역조직이 알카에다를 내걸고 모방 보복테러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지만 주류는 아니다. 알카에다 자체가 이슬람 주류에서 도태돼 빈라덴의 죽음이 이슬람 전체를 움직일 수는 없을 것이다.

= 알카에다가 만악의 근원으로 과장돼 있어, 그의 죽음이 급작스러운 보복의 계기는 아니다. 하지만 소수 맹종적 추앙 세력이 존재하고 빈라덴 사망이 단기적 테러 공격의 명분은 될 수 있다. 대규모 테러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높지는 않다.

사회= 중동의 민주화 시위로 독재자 2명이 축출되고 리비아에서는 내전이 계속되고 있다. 4개월여의 중동 민주화 시위를 평가하면.

= 민주화 시위는 진행 중이다. 중동의 시민혁명이 1980년대 말 동구의 도미노 현상처럼 단기간에 모든 나라로 확산되리라고 예상하지 않았다. 국가마다 정치체제와 문화가 다르다. 이슬람과 아랍 민족의 공통분모가 있으나, 중동은 다양성이 있다. 다만 유목문화에 바탕을 둔 가부장적 권위주의 문화가 무너지는 계기는 될 것이다. 공화정 국가에서 먼저 변화하고 입헌군주제, 절대군주제에서도 변화가 이어질 것이다. 튀니지와 이집트의 속도는 아니어도 변화의 역동성은 살아 있다. 인구 증가로 불만이 높아지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의 발달로 변화가 빨라져서 이를 통제하기 어렵다.

=아랍 22개국 가운데 1920년대부터 독립해서 80여 년이 지났지만 어떤 나라도 자유선거로 정권을 교체한 곳이 없다. 갑자기 민주화 시위가 일어났다고 서구가 원하는 민주주의로 간다는 전망은 지나친 비약이다. 21세기 글로벌 세계지만 아랍만이 유목사회적 구조나 이슬람과 결합된 독특한 이념체제 때문에 변화가 늦었다. 인간의 기본권 욕구를 수용할 만한 사회체제나 대안적 정치체제와 정치 경험이 없어 변화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아랍·이슬람 사회의 특성이 서구 지향적 민주제도로만으로 가지 않고, 독특한 패러다임에 바탕을 둔 이슬람식 민주주의가 될 것이다. 이제 첫 민주화 시험이다.

=공감하지만 의견이 조금 다르다. 중동과 이슬람권이라고 인류 보편적 민주적 가치를 달성하기 어려우리라고 보지 않는다. 이슬람권도 서구식 민주주의로 갈 수 있다. 이슬람과 아랍의 문화가 민주화를 더디게 했을 뿐이다.

=서구가 원하는 방향으로 안 간다는 것은 이슬람식 가치를 포기하지 않고 서구제도와 접목·공존하며 협력하는 틀로 나아가는 실험 과정이라는 뜻이다. 인류가 추구하는 보편적 가치와 배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완전한 양성평등, 삼권분립, 대의민주주의를 아랍권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미국의 왜곡된 중동 정책이 ‘악의 씨’

사회=중동의 민주화로 알카에다 같은 과격한 조직의 활동 기반이 취약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

= 알카에다와 중동의 각 지역 및 런던 지하철 테러, 마드리드 등 유럽까지 확산되는 이슬람 과격세력과의 유기적 연계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 빈라덴 사망이 아랍권 과격세력의 변화나 전략의 이념 변화는 가져오지 않을 것이다. 빈라덴의 주적은 아랍 독재정권이었다. 제2의 적이 독재정권을 지지하는 미국과 서방이었다. 결국 민주화 시위 과정에서 과격세력의 영향력이 극미했듯이, 중동의 독재정권 붕괴로 알카에다의 명분이 사라지고 있다. 제1주적이 사라진 것이다. 중·장기적으로 알카에다의 이념 아래 생겨난 단체들이 활동 근거가 약해지는 긍정적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21세기 글로벌 세계지만 아랍만이 유목사회적 구조나 이슬람과 결합된 독특한 이념체제 때문에 변화가 늦었다.
인간의 기본권 욕구를 수용할 만한 사회체제나 대안적 정치체제 및 정치 경험이 없어 변화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이제 첫 민주화 시험이다.”

_ 이희수 교수(한양대 문화인류학)

사회=중동 민주화 시위에 미국 등 서방의 개입과 그 기준이 논란을 일으켰다.

= 리비아는 튀니지, 이집트와 다르다. 아랍 민주화를 하나의 틀로 묶는 것은 무리다. 튀니지와 이집트의 리더는 정통성 없이 권력에 무임승차했고 그 때문에 군부에 의존했다. 반면 카다피는 독립혁명 1세다. 리비아는 민주 대 반민주의 대결이 아니라 카다피와 반카다피의 투쟁이다. 초기부터 내전이었다. 왕정기가 내걸렸는데, 리비아의 국가 정체성을 인정하는 전제 아래 정권을 타도하자는 게 아니다. 내란과 국가 전복의 성격이 짙다.

= 중동을 한 덩어리로 개념 잡아서 이해하려니 혼란이 온다. 튀니지와 이집트는 민주화 시민혁명의 성격이 있으나, 예멘과 리비아로 넘어가며 부족주의 권력다툼 양상으로 변모된다. 이슬람 과격주의 위협을 이용하려는 다양한 변수가 작용해 나라마다 상황이 다르다. 중동의 민주화를 늦춘 게 서방의 개입이다. 말도 안 되는 독재정권을 서방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지원해 독재정권의 장기 집권이 가능했다. 외부 개입이 국민의 뜻에 바탕을 둔 체제 구축과 발전의 과정을 또다시 왜곡하는 것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왼쪽에서 둘째)을 비롯한 미국 행정부의 고위관리들이 지난 5월1일 백악관 상황실에서 비밀 작전팀이 위성송신한 빈라덴 제거 군사작전 실황을 지켜보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왼쪽에서 둘째)을 비롯한 미국 행정부의 고위관리들이 지난 5월1일 백악관 상황실에서 비밀 작전팀이 위성송신한 빈라덴 제거 군사작전 실황을 지켜보고 있다.

사회=이집트 등에서 친미 정권이 무너진 상태에서 미국과 중동의 관계 변화가 예상된다.

= 중동에서 민주화나 정상적 삶이 더딘 것은 팔레스타인 문제 때문이다. 최강자 미국이 공정한 중재자 구실을 하지 못했다. 이스라엘의 안보와 석유 이권 확보, 이란 견제라는 세 개의 틀을 위해 독재정권이라도 무조건 끌어왔던 미국의 왜곡된 중동 정책이 아랍권에서 80년 동안 권위주의 정권을 유지시킨 ‘악의 씨’이자 본질이다. 미국의 중동 정책은 근원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안보를 포기할 수 없다는 게 미국의 태도다. 중동·아랍 지역에선 단기적으로 민주화 시위 이후 이슬람의 가치를 가진 또 다른 권위주의 정권이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 근본주의가 퇴색된 상황에서 근본주의 정권을 선호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미국도 중동 문제에서 좀더 공정한 중재자 구실을 해야 할 것이다. 미국이 악순환의 매듭을 풀어야 한다.

= 서방과 우리의 대중동 전략은 중동을 하나의 덩어리로 놓고 최고 권력자와 밀실 이해관계를 맺은 것이다. 이번 혁명을 계기로 중동은 사회·문화적으로 더 다양해질 것이다. 민주주의로 가는 나라도 있다. 다양성이 확산될 것이다. 중동을 한 덩어리로 대하는 기존 접근법은 수정할 수밖에 없다. 혼란은 있겠지만, 의회 기능이 강화되고 정당정치가 도입되고 시민사회가 강화될 것이다. 다원화·다양화 속도를 예단하긴 어렵다. 하지만 분명히 최고 권력자와의 밀실정치로 이해를 관철하는 일은 어려워질 것이다. 서방의 대중동 정책이 바뀌어야 할 역사적 순간이다.

하나 아닌 25개의 중동으로 대해야

사회=시민혁명 발생과 빈라덴 사망 등 정세 변화 속 중동 민주화의 미래를 내다보면.

= 당분간은 완화된 권위주의 정권이 지속될 것이다. 시민의식의 성숙도를 고려할 때 폭압적 권위주의로 회귀하기는 어렵다. 당장은 느슨한 권위주의일 가능성이 많다. 분명한 것은 처음으로 경험한 민주화 실험 이후 아랍 사회에 맞는 민주적 형태를 만들어가리라는 점이다. 밀도의 차이가 있어 당장은 터키 모델로 가기 어렵겠지만, 결국 그 방향으로 가지 않겠나. 군부 중심의 독재권위주의 정권뿐 아니라 절대왕정에 의한 권위주의도 문제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에서도 전근대적이고 낙후된 왕정들은 변해야 하고, 결국 변할 것이다. 우리도 경계가 모호해지는 반미 시아파 벨트와 친미 권위주의 벨트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 서구 중심적 시각으로 ‘악의 축’이라 규정한 시리아나 이란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25개 중동을 하나의 정치 덩어리가 아니라 개별 국가 단위로 정교하게 정리해나가야 한다.

=같은 생각이다. 시민혁명에는 성공했으나 민주화 혁명은 이제 시작이다. 최초의 아래로부터의 혁명이다. 무소불위의 권위주의가 아닌 누그러진 신권위주의가 등장할 것이다. 서방은 중동·아랍 사람들이 정치·사회적으로 진일보한 사회를 만들려는 노력을 지지·지원해야 한다. 중동을 시아파와 수니파의 틀로 보지만, 시민혁명 과정의 혼란을 보면 범아랍주의나 종파주의는 없었다. 종파보다 앞서는 부족 중심적 애국적 민족주의가 더 발달하며, 협력보다는 개별적 국익에 맞는 이합집산과 역동적 협력의 변화가 나타날 것이다. 중동의 정치나 질서는 역동성을 보이며 민주적 가치를 향해 나아갈 것이다. 미국은 중동 전체를 지키는 ‘경찰국가’가 아니라, 주요 걸프 산유국에 초점을 맞추는 ‘맞춤형 동반자’ 전략으로 방향을 틀 것이다. 우리도 국가별 맞춤형 전략을 짜내야 한다.

사회·정리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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