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베이징의 일상에 번지는 혁명의 잔물결

평범한 시민의 눈으로 본 중국의 ‘재스민 혁명’론…

아랍과 비슷한 실업난·빈부격차·장기집권에 불만 높지만 정부의 ‘관리 능력’이 변수
등록 2011-03-16 06:56 수정 2020-05-02 19:26

베이징에서 자영업을 하는 메이쥔이(41)는 지난 2월18일 점심 식사를 하면서 아내와 함께 스마트폰을 이용해 이집트에서 일어난 민주화 시위 관련 동영상을 봤다. 무바라크 퇴진을 외치며 거리에서 혈투를 벌이는 이집트인들을 보면서 메이는 아내에게 1989년 톈안먼 사건을 연상시킨다고 말했다. 입으로는 밥과 반찬을 우적거리고 두 눈은 스마트폰을 주시하면서 머리로는 ‘그때의 중국이나 지금 이집트의 상황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고 생각했다. 달라진 점이라면 이제는 밥상머리에서도 휴대전화로 남의 나라 혁명을 ‘구경’할 수 있다는 것. 식사를 마친 뒤 그는 아내에게 “우리나라(중국)도 많이 좋아졌어. 이제는 남의 나라 소식만이라도 자유롭게 알 수 있잖아. 1989년만 해도 톈안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는데. 이것(정보공개)도 혁명이야 혁명, 그렇지?”

중국에서 ‘재스민 혁명’ 시도는 정부의 철저한 통제 탓에 실패했다. 2월27일 상하이 도심에서 “재스민 혁명”이라고 외친 한 남성이 경찰에 끌려가고 있다.REUTERS/ CARLOS BARRIA

중국에서 ‘재스민 혁명’ 시도는 정부의 철저한 통제 탓에 실패했다. 2월27일 상하이 도심에서 “재스민 혁명”이라고 외친 한 남성이 경찰에 끌려가고 있다.REUTERS/ CARLOS BARRIA

검색 금지어 ‘모리화 혁명’

하지만 그날 저녁, 메이는 미처 낮에 못 본 이집트 관련 동영상을 다시 보려고 컴퓨터를 켰다가 큰 낭패를 겪었다. 점심때만 해도 볼 수 있던 외국 언론의 동영상과 일반인들이 찍은 생생한 동영상이 몽땅 사라졌기 때문이다. 여기저기 인터넷을 떠돌아다녀봤지만 국내에서 보도된 공식 뉴스 보도 영상만 남고 낮에 본 영상들은 감쪽같이 없어졌다. 마치 귀신에 홀린 것처럼 한참을 애먼 컴퓨터만 노려보다 피식 헛웃음을 치며 옆에 있는 아내에게 “그럼 그렇지” 하고는 미련 없이 컴퓨터를 껐다.

이틀 뒤, 광저우 출장길에서 우연히 보게 된 뉴스를 통해 메이는 자신이 본 이집트 시위 관련 동영상들이 왜 돌연 사라졌는지 알게 됐다. 과 등 주요 관영매체들은 2월20일 후진타오 주석이 베이징 중앙당교에서 한 발언을 주요 뉴스로 타전하고 있었다.

이날 후 주석은 전국의 고위 관리들을 모아놓고 향후 중국 사회 관리강화 방안을 논하면서 그중 하나로 인터넷 관리를 더 강화해야 한다는 취지의 담화문을 발표했다. 튀니지와 이집트 등 아랍권 민주화운동의 촉매제가 된 게 인터넷 소셜미디어라고 하니, 메이는 ‘정부가 좀 겁이 났겠다’라는 생각을 하며 또 한 번 피식 헛웃음을 쳤다.

다시 이틀 뒤, 여전히 출장 중이던 메이는 아내에게서 깜짝 놀랄 만한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며칠 전 베이징·상하이 등에서 소규모 시위가 벌어졌대. 그 내용이 중국에서도 튀니지나 이집트처럼 모리화(재스민) 혁명을 일으키자는 내용이래. 진짜 놀랍지?” 그런데 아내가 보낸 중국어 문자메시지 중에 ‘모리화’라는 단어만 유독 ‘jasmine’이라는 알파벳으로 적어서 보낸 게 의아했다. 며칠 뒤 베이징으로 돌아온 메이는 아내가 영어 단어 유식을 떤 게 아니라 그날(시위 발생일) 이후부터 ‘모리화’라는 단어가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전송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인터넷 검색 사이트에서도 ‘모리화 혁명’을 검색하면 내용이 열리지 않는 콘텐츠가 허다했다.

튀니지가 ‘재스민 혁명’에 성공한 뒤 그 불씨가 이집트와 알제리, 예멘, 요르단 등 아랍권 전체로 확산되는 양상을 보이면서 중국 관영매체를 중심으로 한 주요 언론매체의 논조는 ‘혁명의 배후에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이 있다. 그들이 중동 민주화 바람을 부채질하면서 뒤로는 자기들 잇속을 계산하고 있다. 하지만 튀니지가 성공했다고 해서 이집트나 다른 중동 국가들까지 넘어간다고 보면 오판이다. 비록 비슷한 문제들을 갖고 있지만 그들 통치 구조는 생각보다 강하다’는 게 주류를 이루었다.

사실 메이도 그렇게 생각했다. 상황이 다르긴 하지만 최근 중국 역시 그들 국가와 마찬가지로 살인적인 물가고와 실업난, 빈부격차 그리고 끝없는 부정부패가 잇따르고 있다. 물가 인상으로 인한 서민들의 생활고로 말하자면 튀니지나 이집트 등에 비해 결코 뒤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각종 식료품값이 하룻밤 새 껑충 올라 있고, 몇 년 사이 베이징의 아파트 가격은 일반 서민이 견딜 수 있는 수준을 훨씬 넘어섰다. 혹자는 베이징과 상하이의 부동산 가격이 이미 뉴욕이나 서울 등을 넘어섰다고도 말한다. 오죽하면 각종 회식 자리와 술자리에서 나오는 단골 주제가 ‘물가가 미쳤다’일까.

정부도 심각하게 받아들였는지 지난해부터 강력한 부동산 거품 빼기 정책을 발표하고 금리를 인상했다. 올 초부터는 급기야 한 가구당 집 두 채 이상 구매 금지라는 나름의 ‘폭탄’ 같은 정책을 쏟아냈다. 하지만 대부분의 서민은 한 채는커녕 지금 상태로는 월세방조차 너무 비싸서 다들 지하로 기어 들어가야 할 판이다. 왜 집을 10채, 100채씩이나 가진 사람들에게는 부동산 보유세를 물리지 않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도로가 막힌다고 자동차 번호판을 경매나 추첨에 부치며 자동차 구매를 제한했듯이, 집도 두 채 이상 못 사게 구매 제한을 하면 저절로 집값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한 청년의 죽음, 모순의 ‘압축 파일’

실업 문제만 해도 그렇다. 정부에서는 실업률이 항상 4%대라고 말하지만 그걸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실업통계를 어떻게 내는지는 몰라도 당장 신문이나 잡지 등만 봐도 취직이 안 돼 자살한 대졸자, 심지어 석·박사 소식을 흔히 볼 수 있다.

메이는 2009년 11월 상하이 소재 한 대학의 석사과정생이던 서른 살 양위안위안의 죽음이 생각났다. 양위안위안은 찢어지게 가난한 가정환경 속에서도 공부만이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죽기 살기로 공부한 그에게 돌아온 것은 갚지 못한 대학 학자금과 그로 인해 좌절된 구직의 꿈, 잇따른 경제적 불행이었다. 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노력해 다시 석사과정에 들어갔다. 그러나 그가 깨달은 것은 ‘죽는 수밖에 없다’였다. “산다는 건 아무 의미가 없어. 몇 년을 고군분투해서 인생을 변화시키고 싶었지만 결국 이 모양 이 꼴이잖아.” 어머니에게 이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그는 기숙사 화장실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 메이는 당시 관련 기사를 읽으면서, 서른 살 그의 인생 역정이 중국의 모든 사회 모순을 담은 ‘압축 파일’ 같다고 생각했다.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은 대학을 졸업하고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과일 노점상을 꾸리던 한 청년이 그 좀스러운 노점상마저 단속당하자 분노로 몸에 불을 지른 게 시발점이 됐다. 만일 그때 양위안위안이 혼자 고독하게 절망하며 자살하지 않고 튀니지의 그 청년처럼 분노로 몸을 불살랐다면 어떻게 됐을까? 메이는 문득 엉뚱한 곳으로까지 상상이 미쳤다.

지난 2월27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시민들이 ‘중국 모리화(재스민) 혁명’이라고 쓰인 펼침막을 들고 중국 민주화 촉구 시위를 벌이고 있다.REUTERS/ NICKY LOH

지난 2월27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시민들이 ‘중국 모리화(재스민) 혁명’이라고 쓰인 펼침막을 들고 중국 민주화 촉구 시위를 벌이고 있다.REUTERS/ NICKY LOH

“아직은 거리로 뛰쳐나갈 용기 없어”

하지만 메이는 아직까지 한 번도 그런 문제 때문에 정부 혹은 체제가 전복될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런 모순에 대한 비판 의식보다 더 견고한 게 바로 ‘(중국) 정부의 힘과 능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튀니지에 이어 이집트까지 시위대에 함락되는 걸 보면서 메이는 어쩌면 자신의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주말 저녁, 메이는 모처럼 친구들과 식사 모임을 가졌다. 그날 식탁 위 화제는 튀니지와 이집트에 이어 또 한 번 강한 혁명의 회오리가 불고 있는 리비아였다. 다들 강 건너 불구경한다는 표정이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이런저런 ‘관전평’을 했다.

“튀니지와 이집트, 리비아 등에 관련된 기사에서 주어만 바꿔봐. 우리랑 완전히 똑같아. 고물가, 고실업, 부패정치 등에 화가 난 민중이 시위를 일으켰다고 하는데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잖아. 거기다 공산당 일당독재만 벌써 몇십 년이야. 아마 지금쯤 (당과 정부는) 굉장히 떨고 있을걸. 안 그래?”

“우리는 중동 국가들과는 상황이 달라. 그들처럼 체제 전복이나 혁명을 원하는 사람도 드물고. 대다수 중국인들은 지금과 같은 경제 발전과 국력 상승을 대단히 자랑스러워하잖아. 중국 인민이 원하는 건 아마도 최소한의 공평과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개혁일 거야. 어찌됐든 일당독재를 견제할 수 있는 정치개혁은 해야 할 거야.”

“중국은 언제든지 그런 일이 터질 수 있는 모순이 존재하고 체제에 불만을 품은 사람도 많아. 또 한편으로는 대다수 사람들이 먹고살기 바빠서 정치 문제 따위에는 관심이 없어. 이 때문에 지금 대도시 곳곳에서 재스민 혁명을 본뜬 시위를 벌이고 있다고는 하지만 솔직히 그건 극소수의 ‘정치게임’이라는 생각도 들어. 그런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는 뉴스를 접하는 것도 힘든 상황인데다 설혹 어떤 통로를 통해 안다고 해도 심리적 동조나 이해 외에는 별달리 참여할 방법이 없어. 당장 나만 해도 처자식과 직장을 다 내팽개치고 거리로 뛰쳐나갈 용기가 없거든. 그만큼 우리 문제가 심각한지도 아직은 잘 모르겠고.”

집으로 돌아온 메이는 TV를 켰다. 화면에서는 3월5일 개막한 전국인민대표대회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화면 속의 원자바오 총리는 인자한 할아버지 같은 표정으로 올해 ‘정부공작(업무)보고’를 발표하고 있었다. “올해 우리는 물가안정을 거시경제 조정의 제일 임무로 삼을 것이며 소비자물가지수는 4% 내외, 도농 등록실업률은 4.6% 내로 통제하겠습니다. 의료와 교육자원 등이 부족하고 불균등하게 분포돼 있으며 주택 가격이 지나치게 높다는 것, 그리고 불법 토지 수용과 철거, 식품 안전, 부패 문제 등이 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가급적 빨리 문제를 해결해서 인민을 만족시키겠습니다.”

인민의 절망을 다독이는 중국 정부?

요르단의 한 언론인이 튀니지 혁명을 두고 이런 분석을 했다. “이번 시위는 뿌리 깊은 절망에서 시작됐다. 장기 집권과 부정부패, 고물가, 고실업률 등 여러 문제가 겹친 가운데 혁명의 기폭제가 된 것은 서민 생계에 무관심한 지배층에 대한 분노였다.” 메이는 그날 TV를 통해 원 총리의 정부공작보고를 들으면서 역시 중국 정부는 중동이나 북아프리카의 무책임한 정부와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중국 정부는 최소한 서민 생계에는 무관심하지 않다고. 아직 ‘희망’은 있다고 생각하자 메이는 피식 또 헛웃음이 나왔다.

베이징(중국)=박현숙 통신원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