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14일 오후, 영국 런던 남동부 뎁트퍼드 지역의 한 시장. 한 남자가 휴대전화로 통화하고 있다. 레게머리에 아프리카 전통 상의를 입었다. 다가가 물었다. “위드(대마초) 있나?” 순간, 위아래를 훑어보는 그의 눈은 풀려 있었다.
“사람들이 다 보고 있잖아. 저쪽으로 걸어가.” 가리킨 방향으로 걸어가자, 그는 길 맞은쪽으로 20m 정도 따라 걷다가 다시 길을 건너왔다. 귀금속점 앞에서 “잠깐 있어”라고 스쳐가듯 말한 뒤 그는 근처 상점으로 들어갔다. 약 5분 뒤, 의심을 피하려는 듯 공무원들이 입는 형광색 외투를 입고 나왔다. 그는 진열장 속 귀금속들을 보며 “우리 엄마가 좋아하는 건데”라고 딴청을 부리면서 한 손으로 흰색 종이에 싼 물건을 슬쩍 건넸다. “1g 맞지? 20파운드(약 3만6천원)다.” 돈을 챙긴 그는 곧바로 옆 주방용품점 안으로 들어갔다.
두 번 적발되면 벌금형, 세 번째는 징역형
런던 G대 한국인 유학생 이승현(24·가명)씨는 “학교 주변에 있으면 종종 지나가면서 ‘위드 살 거냐’고 속삭이는 이들이 있다”며 “전화를 하면 딜러가 학교 앞으로 찾아와서 거래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G대학 근처에서만 거래가 있는 것이 아니다. 1월29일 밤 12시께 G대학 L기숙사 G동 4층 거실. 인도계 영국 학생 서니(24·가명)는 담배 종이를 펼친 뒤 분쇄기로 잘게 간 대마초를 긁어모았다. 거실은 록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드는 학생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은 와인과 위스키, 맥주를 마셨다. “오 마이 갓.” 서니에게 불붙은 대마초를 이어받은 대니(18·가명)는 환호했다. 캐서린(19·가명)은 다섯 모금 정도 피우다 침묵에 빠져 멀거니 한 곳을 응시했다. “나도 한번 하자.” 불붙은 대마초는 돌고 돌아, 춤추는 학생들 사이로 퍼져나갔다. 지난 2월18일 L기숙사 관리인에게 1월 말에 목격한 학생들의 대마초 흡입에 대해 말하자, “몰랐다. 3주 전에 일어난 일이라 어떻게 할 수 없다. 현장을 다시 목격하면 찾아오라”고 말했다.
영국에서 대마초는 ‘캐너비스’(Cannabis)라고 통칭하지만, 거래할 때는 ‘위드’ ‘스컹크’ ‘블로’ ‘그린’ ‘해시시’ ‘해시시 오일’ 등의 은어를 더 많이 쓴다. 제조 방법과 종류에 따라 달리 불린다. 대마초는 테트라하이드로카나비놀(THC·Tetrahydrocannabinol)이란 성분을 함유한다. 대마 잎과 꽃에서 얻어진 일반 대마초는 0.3~22%의 THC를 함유한다. THC는 의료용으로도 쓰이지만 환각작용을 한다. 거리에서 1g당 20파운드에 거래되는 대마초는 영국에서 ‘B급 마약’이다. 1971년 개정된 마약남용법에 따르면, 대마초보다 더 강력한 코카인·엑스터시·LSD 등이 A급 마약으로 분류되고, C급 마약은 더 순한 벤조디아제핀, 케타민 등이다. 영국에서는 대마초를 흡연하거나 갖고 있다가 경찰에 적발돼도 두 번의 기회를 준다. 첫 번째는 기록에만 남고, 두 번째는 벌금형이다. 세 번째 적발되면 최대 5년의 징역형을 받는다.
“대다수는 나이 들면 끊는다”경찰도 쉽게 출입하지 못하는 곳이 있다. 1월27일, 런던 중부 S대학 본관 안 호프집에서 만난 한 학생은 “이곳이 영국에서 가장 안전하다”고 말했다. S대 본관 출입은 재학생 또는 방문자 명단에 이름을 적은 사람에게만 허용되지만, 실외와 연결된 뒷문을 통해 잠입할 수 있다. 딜러 4명이 호프집 실내외를 활보했다. 10대 중반으로 보이는 한 딜러와 눈이 마주쳐 입 모양으로 ‘위드’라고 하자, 대마초 1g을 손에 쥐어주었다. 실외에는 “마약 복용 또는 거래시 이 공간을 폐쇄하겠다”고 쓰인 벽보가 붙어 있다.
혼자 대마초를 피우던 톰(21·가명)은 11살 때 대마초를 흡연하다 경찰에 적발됐다 미성년자란 이유로 그냥 풀려난 적이 있다. 그는 “미국이든 어디든 갈 수 있다. 기록이 남지 않았거든”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얘기를 들으면 술에 취했는지, 대마초에 취했는지 헷갈렸다. 매일 대마초를 피운다는 그는 “위드 때문에 정신이 황폐해진 건 사실”이라면서도 “현대 삶의 일부 아니겠느냐. 잃는 것도 있지만, 대마초 흡연 자체가 얻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잃은 것’에 대해 “기억력이 감퇴했다. 우울증도 생겼고, 아주 게을러졌다”고 덧붙였다.
레바논 태생의 영국인 대학생 데이비드(22·가명)는 “대마초에 중독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1월22일 밤, 런던 동부의 한 아파트에서 그는 유학생 김동현(21·가명)씨와 대마초를 번갈아 피웠다. 데이비드는 “6~7년 전에 친구 집에 놀러갔는데 모두 위드를 피우고 있었다. 그때 경험한 첫 느낌을 잊을 수 없다. 그냥 황홀했다”고 말했다. 한 달에 한 차례 정도 대마초를 피운다는 데이비드는 굳이 대마초를 끊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술도 적당히, 담배도 적당히 한다. 자기 관리를 하는 사람이다.”
G대 학생 개리(37·가명)는 ‘관리’가 되지 않았다. 그는 “14살부터 33살까지 대마초를 거의 매일 흡연했다”고 털어놨다. 개리는 “대마초 없이는 잠을 잘 수 없었다. 망상증에 시달리는 등 정신분열도 일으켰다”고 고백했다. 결국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낀 그는 3년 전 늦깎이로 대학에 입학했다. 대마초의 금단증상에 대해 개리는 이렇게 경고했다. “잠을 잘 때마다 고통스러웠다. 밤새 악몽에 시달렸다.” 미술을 전공하는 유학생 박영준(27·가명)씨는 지난 1월 중순께 대마초를 처음 흡연했다. “아는 한국인 형 집이었어요. 주변에서 대마초 얘기를 많이 하기에 어떤 건지 궁금했습니다.” 그러나 첫 경험은 환각이었다. “앞이 갑자기 안개처럼 뿌옇게 변했어요. 소파에 앉아 있었는데 뒤에 구멍이 열리면서 검은 손들이 잡아끄는 거예요.” 그는 새벽 내내 토했다. 그는 두 번 다시 대마초를 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대마초가 왜 마약으로 분류되는지 알겠더군요.”
대마초는 영국에서 20대가 가장 선호하는 마약이다. 영국 내무성 자료에 따르면, 2006~2007년을 기준으로 대마초 흡연 경험이 있는 20~24살 젊은이의 비율은 46%이다. 2009~2010년을 기준으로 16~59살 가운데 대마초를 흡연한 사람은 215만2천 명인데, 두 번째로 많은 암페타민 복용자보다 7배 가까이 많다. 팀 커크엄 리버풀대학 교수(실험심리학)는 “대다수 복용자들은 나이가 들면 사회적 위치나 건강을 이유로 대마초를 끊는다”고 말했다. ‘대마초합법화연대’(LCA) 피터 레이놀즈(53) 대변인은 “대마초를 코카인 같은 강력한 마약과 비교하는 건 우유를 위스키에 비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며 “대마초의 금단증상은 수면장애 이외에는 없다”고 주장했다.
다른 마약과 함께 있는 대마초그러나 대마초가 있는 곳에 다른 마약이 있기도 하다. 일명 ‘비밀파티’다. 비밀파티는 주최 쪽이 페이스북의 특정 회원이나 지인에게 파티 관련 쪽지를 보내 통보하지만, 파티 장소는 당일 밤 9시 이후 주최 쪽에 휴대전화로 전화해야 알 수 있다. 지난 1월15일, 비밀파티 장소는 런던 남부 사우스 버먼 지역 부근 무허가 건물이었다. 건물 안에는 수백 명이 있었다.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예닐곱 남녀가 모여 앉아 코카인을 흡입했고, 한 남성이 헤로인을 복용하고 쓰러져 몸부림치자 주변에서 “너무 지나쳤어”라며 끌끌거렸다. 록 음악이 새벽 내내 울렸다.
런던(영국)=글·사진 이승환 통신원 stevelee0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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