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자유, 민주주의.
북아프리카와 중동의 아랍권을 휩쓸고 있는 민주화 열풍의 핵심이다. 튀니지 ‘재스민 혁명’은 지난해 12월17일 과일 노점상 청년의 단속 항의 분신에서 시작돼, 23년째 집권한 엘아비딘 벤알리 대통령의 1월14일 해외 도피로 이어졌다. 독재 치하에서 배고픔에 시달리던 아랍 민중의 분노와 저항은 민주주의 혁명으로 번져나갔다. 알제리, 모리타니, 예멘 등에서 계속되는 반정부 민주화 ‘도미노 시위’는 굶주리는 국민을 나 몰라라 하는 독재에 대한 분노의 폭발이다. 1981년 이후 30년째 집권하고 있는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도 반정부 시위가 이어지자, 지난 2월1일 TV 연설에서 9월에 예정된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는 즉각 퇴진은 거부했지만, 미국이 즉각적인 정권이양을 논의하는 등 그는 이제 역사 뒤로 물러난다.
이집트가 지켜온 ‘차가운 평화’
안정과 평화.
이것은 이번 사태에서 빵과 민주주의 못잖게 지켜볼 키워드다. 무바라크의 퇴장이 이집트의 국내적 변화뿐 아니라, 대외적으로 중동 지역 평화에 불러올 변수 탓이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2월2일 “(이집트 사태가) 앞으로 수년간 역내 불안정을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스라엘 언론들은 “새로운 중동”이라는 말로 무바라크 이후 달라질 중동 질서를 걱정하고 있다.
세계의 화약고인 중동에서 평화의 핵심은 이스라엘과 아랍권의 관계다. 중동에서는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후 1948년, 1956년, 1967년, 1973년 네 차례의 아랍권 대 이스라엘 간 전쟁이 벌어졌다. 아랍권의 한복판인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 국가 이스라엘의 국가 수립은 피할 수 없는 분쟁의 씨앗을 뿌렸다. 아랍국가들에 둘러싸인 이스라엘이 그나마 손을 잡은 나라가 이집트였고, 그 이집트를 지난 30년간 이끈 지도자가 무바라크다.
이집트는 1978년 미국·이스라엘·이집트 3국 정상회담을 거쳐 캠프데이비드 협정을 체결한 뒤 1979년 이스라엘과 평화조약을 체결했다. 1948년 1차 중동전쟁 이후 아랍국가와 이스라엘이 체결한 최초의 평화조약이었다. 안와르 사다트 당시 이집트 대통령은 아랍의 통일과 단결을 강조하는 아랍민족주의보다 이집트의 민족적·사회적 단결을 중요시하는 이집트 민족주의를 내걸고 시나이 반도를 돌려받는 국익을 앞세워 조약을 체결했다.
이집트는 이 조약 체결 뒤 아랍을 배반했다는 비난을 받았지만, 1982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1987년과 2000년의 팔레스타인 인티파다(반이스라엘 저항운동), 2008~2009년 팔레스타인 가자전쟁 당시에도 조약은 지켰다. 이집트는 가자지구에서 상대적 온건세력이던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야세르 아라파트 의장을 지원했고, 마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 이끄는 최대 정파 파타가 급진 무장 정치세력 하마스와 맞서는 데도 후원했다. 무바라크는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1995년 이스라엘을 방문하기도 했다.
비록 이스라엘과 이집트의 평화조약이 ‘차가운 평화’라고 불릴 만큼 화기애애하지는 않았지만, 이스라엘로서는 평화조약 준수 자체가 감지덕지였다. 이스라엘이 다른 중동국들과 분쟁을 벌일 때 자국 남쪽에 국경을 맞댄 이집트가 군사적으로 개입하지 않을 것으로 믿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이집트와 평화협정을 체결해, 1970년대 국민총생산(GNP)의 23%에 이르던 군사비를 9% 수준으로 낮췄다.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다음으로 많이 만난 외국 지도자가 무바라크 대통령이다. 이집트는 이스라엘이 사용하는 천연가스의 거의 절반을 수입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그동안 이스라엘을 둘러싼 주변 정세는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더 적대적으로 바뀌었다. 지난 5년 사이 하마스가 가자지구를 차지했고, 레바논에서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가 성장했고, 이스라엘에 협조적이던 터키는 이란과 시리아 쪽으로 기울었다. 특히 터키는 지난해 5월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로 향하던 구호선에 탑승한 터키인 9명을 사살한 뒤 관계가 멀어졌다.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도 네타냐후에 비판적이다. 요르단은 1994년 아랍국가로는 두 번째로 이스라엘과 평화조약을 체결한 나라다. 베냐민 밀러 이스라엘 하이파대학 교수는 무바라크의 퇴장으로 “친서방·반이란 정책을 중심으로 이뤄진 사우디아라비아-이집트-요르단-이스라엘 동맹이 흔들리게 됐다”고 분석했다. 무바라크의 퇴장이 곧바로 1979년 평화조약의 취소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그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급진 이슬람세력 등장할까이집트-이스라엘 평화조약이 그동안 중동에서 중요했던 이유는 인구 8050만 명의 이집트가 아랍권의 ‘맏형’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아랍 최대 인구국이자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교차점이라는 전략적 위치에 자리한 이집트의 친이스라엘 정책은 다른 아랍 국가들을 자제시키는 효과를 발휘했다. 1979년 이란 혁명 이후 이란과 이슬람 근본주의의 확대를 두려워한 아랍 석유생산국들도 이집트의 맹주 역할을 인정했다. 아랍권은 맏형 이집트의 동의 없이 이스라엘과 전쟁을 벌일 수 없는 구조다. 무바라크는 아랍연맹을 이끄는 맹주로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협상 중재에 적극 나서 중동평화의 ‘중재자’ ‘균형추’ 등으로 불렸다.
이스라엘과 미국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친미 무바라크 퇴장 뒤 권력 공백 상태에서 이른바 ‘급진 이슬람 세력’의 등장 가능성이다. ‘모든 이슬람 조직의 어머니’로 불리는 무슬림형제단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통치하는 하마스, 헤즈볼라 등의 세력과 유대를 맺고 있다. 이집트에서 1928년 이슬람 국가건설을 목표로 창설된 무슬림형제단이 집권할 경우, 이스라엘이 강경한 반 이슬람 세력에 완전히 둘러싸이는 셈이다.
시리아·요르단도 변화, 터키·카타르 역할 주목이집트 최대 야권세력인 무슬림형제단은 이집트 반정부 시위에서 최전선에는 나서지 않고 있다. 하지만 무슬림 형제단은 2005년 총선에서 전체 하원의석의 20%를 차지하는 저력을 보인 바 있다. 필립 크롤리 미국 국무부 공보담당 차관보도 2월2일 무슬림 형제단에게 권력이행 과정에서 민주적 절차를 존중해달라고 요청하는 등 실체를 인정했다. 엘리 샤케드 전 이집트 주재 이스라엘 대사는 “무슬림형제단이 다수당을 차지하고 차기 정부에서 지배적 세력이 될 것”이라며 “이스라엘이 이집트와의 평화조약이 위협받아 대가를 치르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내다봤다. 유력한 야권 주자인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도 결코 이스라엘에 호의적이지 않다. 그는 지난해 여름 독일 시사주간지 과의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이 봉쇄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세상에서 가장 큰 감옥”이라고 이스라엘을 비난했다. 무바라크의 퇴장으로 지정학적 세력균형이 깨지는 것은 물론 중동에서 가장 현대화된 이집트군과 이스라엘군의 무력충돌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무바라크 퇴진에 따른 이런 변수 때문에 미국 등은 아랍권의 독재를 비난하기보다는 이집트를 비롯한 아랍권의 점진적 변화를 희망했다. 미국의 관심은 독재에 시달리는 이들 국가의 국민이 아니라, 급진적 변화가 낳을 지역 안정의 붕괴와 급진 이슬람 세력의 부상이었다. 이 때문에 미국은 그동안 이스라엘과 평화조약을 체결한 이집트에 한 해 약 15억달러를 군사·경제적으로 지원하는 등 친미 정권을 중동에서 지원해왔다. 막스 부트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은 최근 기고에서 “무바라크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협상에 언제나 적극적이었고 미국과 군사훈련도 했다. 서방으로서는 다루기 쉬웠다”고 평가했다. 이를 두고 <ap>은 미국의 지도자들이 민주화 요구와 중동의 안정에 핵심으로 여겨져온 독재정권과의 전략적 안락함 사이에서 도덕적 갈등을 겪고 있다고 1월31일 전했다. 지금 아랍권의 시민혁명은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대외정책에 최대 시험으로 떠올랐고, 당장 중동 석유의 안정적 공급에 차질이 빚어지면 경제회복도 타격을 받게 된다. 미국이 즉각 민주화 시위 지지에 나서지 못하고 뒤늦게 ‘안정적 이양’을 요구하고 나선 배경이다. 미국은 1979년 이란의 이슬람 혁명 이후 ‘반미’ 이란의 등장으로 과거 독재정권 지원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고, 2006년 팔레스타인에서 치러진 총선에서 하마스가 승리한 뒤 가자전쟁 등 이 지역 정세 변화의 파장을 겪었다.
다만, 무바라크 이후 그의 최측근인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이 과도정부를 이끌면서 친무바라크 정권이 들어서거나, 2월4일 차기 대선 출마 의사를 시사한 아무르 무사 아랍연맹 사무총장 등이 집권할 경우 이집트의 중동정책 변화는 상대적으로 점진적일 것으로 전망된다. 군부와 국민의 신임을 받아 차기 대선후보 가운데 한 명으로 거론되는 사미 에난 참모총장은 미국과도 돈독한 관계를 맺어왔다. 엘바라데이는 2일 미국 〈CBS 방송〉 인터뷰에서 “이집트가 민주주의 국가가 되면 미국과 이스라엘에 적대적 태도를 취할 것이란 선전들이 있지만 거짓”이라고 일축하기도 했다. 터키와 카타르가 중동평화의 새로운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아랍권에서 도미노 민주화 시위가 확산되자, 압둘라 요르단 국왕은 물가급등 대책 마련과 정치개혁 등의 요구를 반영하기 위해 두 달여 전에 구성된 내각을 해산하고 새 내각 구성을 요청했다. 시리아 야당도 2월5일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 시리아와 요르단 등의 변화 역시 결코 이스라엘에 유리하게 굴러가지 않을 분위기다. 이런 상황은 미국과 이스라엘이 아랍권 친미정권과 손잡고 중동정세를 주무르던 시대의 폐막을 알리고 있다.
미국의 새로운 중동전략 요구돼
2004년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이자 상원 외교위원장인 존 케리 상원의원은 2월1일 기고에서 “아랍 세계의 자각은 미국에도 새로운 빛을 비추고 있다. 미국의 이익은 국민의 좌절과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지는 정부와 우호적 관계를 맺는 것도, 극단주의를 확산시키는 급진그룹에 권력을 넘겨주는 것도 아니다. 아랍 동맹국들이 국민들의 정치적·법적·경제적 필요에 부응하고 오바마 행정부가 이런 문제들을 다루는 것이다”라며 “이제 무바라크를 넘어 새로운 이집트 정책을 구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거스를 수 없는 도도한 역사의 흐름 앞에 새로운 중동전략을 모색하라는 주문이다. 도 4일 이집트 반정부 시위에서 미국에 대한 비난이 눈에 띄지 않는 것은 중동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쇠퇴한 증거이자, ‘미국 이후의 중동’에 대한 요구라고 분석했다.
지금 아랍권에 휘몰아치는 ‘민주화의 봄’은 케케묵은 독재자가 물러났듯 낡은 중동질서가 허물어지고 새로운 중동질서가 탄생한 것을 예고하고 있다.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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