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시작이다.”
11월12일 영국 런던 동남부 골드스미스대학 안 카페에서 만난 대학생 마타 줄린스(19·인류학)는 영국 대학생들의 등록금 인상 반대 시위에 대해 묻자 이렇게 답했다. “정부를 더욱 몰아붙인다면 등록금 인상을 막을 수 있기 때문에 계속 압박해야 한다”며 “학생과 교수가 공감대를 형성한다면 시위는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2003년 이라크 침공 반대 시위(7만5천 명) 이후 대학생 등이 주도한 시위로는 최대인 5만 명이 참여한 11월10일 런던의 대학생 시위는 끝났지만, 들끓는 학생들의 분노는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학생들의 시위를 이해할 만하다는 여론도 많다. 지난 11월3일 보수-자유민주당 연립정부가 발표한 등록금 인상폭이 ‘해도해도 너무하다’는 평가를 듣고 있기 때문이다. ‘가능한 한’ 2012년부터 허용할 것이라는 등록금 상한선은 9천파운드(약 1620만원)로, 올해 상한선인 3290파운드(약 592만원)와 비교해 세 배 가까이 높다. 정부가 긴축예산으로 대학보조금을 줄이면서 대학들의 등록금 책정 자율화 요구를 반영해 상한선을 크게 상향하는 방안을 내놓은 것이다.
비명문대·인문학 타격 클 듯
영국 정부의 긴축재정은 대학 보조금 지원 축소에 따른 등록금 인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11월10일 정부의 등록금 인상안에 반대하는 학생들이 런던 보수당사 본부의 유리창을 부수며 격렬한 시위를 하고 있다.REUTERS/ PAUL HACKETT
‘빚더미에 허덕이게 하려느냐’는 야유는 학생들의 철부지 엄살이 아니다. 빚이 그만큼 늘어나기 때문이다. 지난해 등록금 상한선인 3225파운드를 내고 입학한 학생의 경우, 영국의 일반적인 3년제 학부 과정을 졸업했을 때 학비와 생활비 대출을 포함해 2만3천파운드의 빚을 진다는 조사가 지난해 나온 바 있다. 이번에 나온 상한선 인상안대로라면, 여기에다 한 해 학비 대출금이 6천파운드 늘어나게 된다.
런던 북부에 있는 퀀틴키나스톤식스폼칼리지의 학생 로빈 켈리(17)는 대학 입학을 포기했다. 지난 11월9일 학교 앞에서 만난 켈리는 “졸업 뒤 남는 건 빚뿐이다. 정부가 일자리를 제공하지 않는 상황에서 갚을 도리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식스폼칼리지는 16~18살이 다니는 한국의 고등교육 과정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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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금 인상안을 놓고 이른바 ‘명문대’와 ‘비명문대’ 사이에 희비도 엇갈리고 있다. 영국의 자랑이자 세계적 명문인 옥스퍼드대학과 케임브리지대학은 빚을 내서라도 가고 싶어하는 대학이다. 한 옥스퍼드대 학생은 “많은 사람들이 교육의 혜택을 받기 원한다”면서도 “우리 대학은 진학률도 떨어지지 않고 외부 투자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등록금 인상이 진학률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반면 명문대 이외의 대학에서 강의하는 교수들은 박탈감이 크다. 고등학교 졸업 뒤 바로 취직하는 경우가 많아 가뜩이나 대학 진학률이 45% 수준인 상황에서, 명문대를 빼면 비싼 등록금을 내는 무리를 하면서까지 대학에 진학하려는 학생이 줄어들 게 뻔하기 때문이다. 이 대학들은 ‘빚 때문에 대학에 안 간다’는 학생들 때문에 인상된 등록금 상한선을 적용할 수 없는데다, 정부 보조금까지 줄어 대학 재정이 허리가 휠 지경이다. 런던 중심의 대학가인 블룸즈버리 지역에서 만난 토니 머레이 런던 메트로폴리턴대학 교수(영문학)는 “저소득층 또는 사회적 약자들이 우리 학교 학생 가운데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며 “정부는 (등록금 인상이) 교육을 위한 길이라고 하겠지만 입에 발린 말일 뿐이다”라고 불신을 표현했다.
골드스미스대 교수들도 11월10일 시위에 대거 참여했다. 예산 삭감이 과학이나 공학 분야보다는 예술 디자인과 인문학 분야에 집중될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이 대학의 교수인 내털리 펜튼(44·미디어학)은 “정부 보조금 삭감으로 우리 학교는 3년 안에 5천만파운드의 재정 손실이 예상된다”며 “그런데도 정부는 인문학과 예술 분야에 대한 보조금을 100% 중단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고 소리를 높였다. 골드스미스대 이동영(31·디자인) 강사는 “강의비와 연구비가 줄어든 마당에 정년이 보장되지 않은 시간강사들은 고용불안에 못 이겨 시위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더라”며 “강의진 축소는 교육의 질적 저하를 초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영국 정부가 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건 아니다. 저소득층 학생의 대학 진입을 위해 생활보조비를 한 해 2900파운드에서 3250파운드로 늘리고, 1억5천만파운드의 장학금 제도를 약속했다. 정부는 취업 뒤 학자금대출 상환을 시작해야 하는 수입 기준도 현재 연봉 1만5천파운드에서 연봉 2만1천파운드로 상향 조정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대신 학자금대출 상환 기준이 되는 연봉을 받지 못해 대출금을 다 갚지 못하는 ‘미래의 저소득층’이 대출금을 더 이상 상환하지 않아도 되는 반환 면제 시점은 현재의 졸업 뒤 25년에서 30년으로 늦춰졌다.
대학생들의 분노는 교육정책의 최종 결정자인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아니라, 닉 클레그 부총리를 향해 있다. 대학생들은 10일 시위에서 클레그 부총리와 ‘영국 우파’의 상징인 마거릿 대처 전 총리, 조지 오스본 재무부 장관이 함께 있는 그림판을 들고 ‘거짓말쟁이 클레그’라고 성토했다. 자민당 당수이기도 한 그는 지난 5월 총선에서 ‘수업료 인상에 무조건 반대한다’는 친필 서명을 하는 등 선거 활동에서 여러 차례 인상안을 비판해 학생들의 지지를 얻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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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변심’은 영국 정부의 지향점을 드러낸다. 총선에서 승리했지만 과반을 차지하지 못한 보수당이 자민당과 극적인 연정을 했을 때만 해도 중도 좌파인 클레그가 우파적 정책을 견제해줄 것이란 기대가 컸다. 그러나 현실은 오스본 장관이 주도한 810억파운드(약 147조원)에 달하는 긴축예산 계획을 인정한 것이었다. 등록금 인상으로 이어진 대학 보조금 축소는 초긴축정책의 일부다. 이에 대해 마틴 스미스(49·정치학) 셰필드대학 교수는 “정부가 교육을 공익이 아닌 돈으로 생각하고 있다”며 시장주의 노선을 꼬집었고, 지난 12일 보수당 본부 근처에서 만난 한 시민은 “정부는 미국식이 아니라 덴마크나 스웨덴식 사회 모델을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런던(영국)=이승환 통신원 stevelee0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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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스미스대학 1학년 마타 줄린스(19·인류학)
시위 참여 대학생 인터뷰
“더 이상 빚지고 싶지 않다”
골드스미스대학 1학년 마타 줄린스(19·인류학)는 등록금 인상안에 따른 대출금 증가를 감당하기 어렵다며, 인상안 반대투쟁이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1월10일 등록금 인상 반대 시위에 참여했나.
그렇다. 정부의 어리석은 정책을 규탄하기 위해서였다. 최근 정부가 긴축재정 계획에 따라 교육보조금을 대폭 삭감하고 등록금 인상안을 내놨다. 다른 유럽 국가들과 비교해 가장 비싼 수업료다. 잘못된 일이다.
과격한 학생 200여 명이 보수당 본부를 점거했는데.
그들의 행동에 동의하지 않는다. 본부를 습격한 건 불필요했고, 폭력 시위는 더 많은 경찰을 불렀다. 경찰과 학생이 몸싸움을 벌이는 모습은 보기 역겹다.
인상 이전인 올해의 등록금도 만만치 않았는데 어떻게 냈나.
학비로 3290파운드, 생활비로 5천파운드를 대출받았다. 빚이 8290파운드 정도 된다.
대출금을 갚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나.
아니다. 졸업 뒤 정규직을 구하면 갚을 생각이다. 올해 정부의 무상 지원금 4천파운드가량을 받아 운이 좋은 편이다. 지원금을 받지 못한 많은 학생들이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등록금 인상은 가난한 학생들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들은 최악의 경우에도 부모에게 손을 벌릴 수 없기 때문이다.
석사과정에 진학할 계획인가.
하지 않을 듯싶다. 더 많은 빚을 지고 싶지 않다.
국제학생의 수업료가 공정한 금액이라고 생각하나.
괴로운 질문이다. 유럽연합(EU) 국가 출신 학생들보다 3~5배의 등록금을 낸다고 하는데, 정확히 얼마를 내는지 모른다. 우리와 같은 금액의 학비를 내야 하고, 또 모든 이를 위해 학비는 무료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국 정부나 언론이 국제학생의 높은 등록금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정권 교체 뒤 긴축재정이 등록금 인상으로 이어졌는데.
좌파냐 우파냐는 공공지출을 기준으로 가를 수 있다. 지금 정부는 분명한 우파고, 이번 인상안은 복지와 관련한 정부의 이념적 성향이 반영된 것이다.
학생들의 시위가 정부의 교육정책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믿는가.
쉽지 않겠지만 계속 압력을 가하면 가능하다. 싸움은 이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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