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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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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복 군사독재’ 완성?



부정선거로 얼룩진 버마 총선…

군부의 영구집권 시나리오에 맞설 야권의 정치력과 민주 진영의 전술 부재 시험대 올라
등록 2010-11-18 11:01 수정 2020-05-03 04:26

“선거의 전 과정이 날조다. 이른바 ‘사전 투표’(부재자투표의 일종) 부정 때문에 (상·하원과 지방의회 전체 1159석 가운데) 16석밖에 못 얻었다.”
지난 11월7일 버마(미얀마)에서 20년 만에 치러진 총선에서 ‘최대 민주 야당’으로 주목받은 민족민주세력(NDF) 대표 킨 마웅스웨는 9일 밤 전화 인터뷰에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불과 이틀 전 투표가 진행 중이던 오후께만 해도 여유와 자신감을 보였었다.

“아시아권 최악의 부정선거”

버마 총선 직후 소수민족 반군과 정부군 사이에 교전이 벌어졌다. 11월7일 타이-버마 국경 인근 미아와디에서 버마 정부군이 삼엄한 경계를 서고 있다. 연합AP

버마 총선 직후 소수민족 반군과 정부군 사이에 교전이 벌어졌다. 11월7일 타이-버마 국경 인근 미아와디에서 버마 정부군이 삼엄한 경계를 서고 있다. 연합AP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민족민주동맹(NLD)이 총선 보이콧(선거 거부)을 선언하자 당을 깨고 나온 그는 NDF를 창당하고 선거에 참여했다. 그가 애당초 기대한 50~70% 당선률은 과대망상만은 아니었다. 취재 과정에서 접한 버마의 민심은 소수민족주를 제외하면 NDF를 찍겠다는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NDF지! 많은 사람들이 그 당은 미래를 위해 옳은 일을 할거라고 믿으며 좋아해.” 서른 중반의 랑군 시민 틴 마웅(가명)은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선거에 대한 기대가 컸다. “그 여사(아웅산 수치) 당은 출마를 안 했단 말이야! 그 당이 출마했으면 당연히….” NLD의 보이콧을 아쉬워하는 틴 마웅의 말엔 수치의 인기가 배어 있다. 결국 그가 찍은 NDF 후보는 출처를 알 수 없는 ‘사전 투표함’에 밀려 낙선됐다. 틴 마웅은 “매우 혼란스럽고 화가 난다”고 말했다. 또 다른 랑군 시민은 “군정이 미는 연방단결발전당(USDP)을 찍겠다는 이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하나같이 그 당을 혐오한다. 투표에 관심 있는 이들은 모두 NDF다”라고 말했다. 그는 시민들이 투표소가 어디 있는지 잘 모르고, 한 투표소에서는 투표를 진행할 공무원이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며 선거 당일의 풍경을 전했다.

대중의 열망을 결집시키지 못한 NLD

1990년 총선에서 NLD가 거둔 83%의 압승 기록에 도전하려는 군정의 권력 1인자 탄 슈웨(77) 국가평화발전평의회(SPDC) 의장의 야심은 익히 알려졌다. 최종 개표 결과는 공식적으로 발표되지 않은 채, 11월9일 오후 USDP는 ‘고참 당직자’라는 익명을 빌려 ‘80% 압승’을 언론에 흘렸다. 이 여당의 압승으로 탄 슈웨의 야심은 현실화된 셈이다. 1997년 이래 아시아 국가의 선거를 감시해온 아시아자유선거네트워크(ANFREL)의 사무국장 솜싯 하나눈타숙은 투명성·공정성·자유성 차원에서 이번 선거는 아시아권에서 최악이라고 평가했다. 아울러 “군정이 우리 감시단의 모니터를 허용했더라도 거부했을 것”이라는 그의 말은 NLD와 망명 단체들이 주도한 선거 보이콧이 국제사회에 미친 파급력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보이콧에 동참한 랑군의 변호사 우아웅탄의 말처럼 “‘군사헌법’이나 다름없는 2008년 헌법에 기반한 이번 선거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은 민주주의의 원칙에서나 군정 시나리오에 놀아나지 않는다는 원칙에서나 옳고도 남는다. 그러나 군부의 영구 집권 시나리오에 맞설 야권의 정치력과 민주 진영의 전술은 선거를 전후로 분열과 무기력 증세를 보이며 시험대에 올라 있다.

보이콧 진영을 들여다보자. 버마 내부에서 보이콧을 주도한 건 ‘세대물결’이라는 신생 조직이었다. 이 조직의 활동가 보보(가명)는 “페인트 스프레이로 ‘2010’이라 쓰고 그 위에 ‘×’를 그은 다음 바로 흩어지는 게릴라 전술”로 선거의 부당함을 알려왔다. 보이콧의 상징이던 NLD는 실상 선거를 전후해 카페·이발소 등에서 정치를 주제로 대화와 토론이 벌어지는, 전에 없던 기현상의 틈새를 파고들지 못했다. 보이콧을 ‘선언’만 했을 뿐 ‘캠페인’으로 상승시키지 못한 무기력은 선거 당일 랑군의 NLD 본부 앞에 걸린 현수막이 보여주었다. 이날 당사 앞에는 ‘보이콧’ 석 자나 군정의 부정선거를 고발하는 글자 대신 “5일 남았다. (아웅산 수치) 여사가 석방되기까지는”이라는 문구가 걸려 있었다.

“한 사람에게 의존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분파 야당 NDF도 선거를 통해 제도정치권으로 들어가 변화를 모색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절감했을 것이다. 군정이 민주세력에 호락호락 공간을 내줄 리 없다.” 망명 언론 의 편집장 아웅 조의 지적이다. 11월13일 석방될 것으로 보이는 수치가 분열된 야권과 ‘민간복 군정’을 어떻게 상대할지는 물음표로 남아 있다.

기대한 득표율에 턱도 못 미친 민주 야당 NDF로서는 겹겹으로 둘러싸인 친군부 의회와 ‘배신자’라는 낙인 사이에서 무거운 짐을 지고 의회정치에 들어서게 됐다. 짧은 시차를 두고 가진 여러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대표 킨 마웅스웨가 다소 오락가락하는 발언을 한 건 종잡을 수 없는 작금의 버마 정치나 야권의 모습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싶다.

소수민족 저항으로 국경엔 ‘전운’

한편, 영구집권 시나리오로 집대성한 군정의 2008년 신헌법은 반세기 넘게 자치를 걸고 싸워온 소수 민족 진영에 지속적 반향을 낳고 있다. 신헌법 7장 338조에 따라 휴전 무장단체를 국경수비대로 전환해 버마군의 단일명령 체계하에 두려는 군정의 압박은 여러 해 잠잠하던 소수민족 무장단체들의 결집 현상을 낳고 있다. 선거 당일부터 사흘간 국경수비대 편입을 거부하는 소수민족 반군‘민주카렌불교도군(DKBA) 5여단’의 관공서 공격으로 타이-버마 국경 인근 미아와디 등에서 정부군과 치열한 교전이 벌어져, 버마인 2만여 명이 타이로 피난을 떠난 사태가 그 한 토막이다. 소수민족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버마 민주화도 분쟁 해결도 없다는 해묵은 공식이, 야권은 분열하고 소수민족 반군은 결집하는 복잡한 버마 정세 속으로 새삼 파고들고 있다. ‘민간복 독재 시대’로 향하는 버마 군정은 국경의 전운을 만나고 있다.

방콕(타이)=이유경 국제분쟁 전문기자 penseur21@hotmail.com


킨 마웅스웨(68) 민족민주세력(NDF) 대표

킨 마웅스웨(68) 민족민주세력(NDF) 대표


킨 마웅스웨 NDF 대표 인터뷰
“선거 보이콧보다 빈곤 해결이 우선”

킨 마웅스웨(68) 민족민주세력(NDF) 대표는 지난 11월9일 전화 인터뷰에서 아웅산 수치의 선거 거부를 비판하고, 의회에서 버마의 변화를 이루겠다고 강조했다.

-민족민주동맹(NLD)이 선언한 선거 보이콧이 어떤 영향을 미쳤나.
=소용없는 전술이었다. 시민들이 별로 귀담아듣지 않았다. 어느 시민이나 투표할 권리가 있다.
-국제사회는 대체로 보이콧에 동정하거나 찬성했는데.
=국제사회는 버마인이 직면한 빈곤이나 경제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더 염려해야 한다. 그게 버마인에게 더 이익을 줄 것이다.
-선거에 참여한 걸 후회하진 않나.
=전혀 아니다. 다만, 민주주의의 열망을 갖고 우리 당에 표를 준 유권자에게 미안할 뿐이다.
-군정에 유리한 헌법과 선거법하에서 선거에 참여하는 의미는.
=기나긴 터널을 지나지 않으면 민주주의를 이룰 수 없다. 국민의 이익을 위해 불공정하지만 현실을 받아들이고, 선거에 참여함으로써 민주주의에 다가갈 수 있으리라고 판단했다. 민주주의란 게 피상적인 주제가 아닌가. 빈곤 문제를 가급적 빨리 극복해야 한다. 앞으로 10년, 두 번의 선거는 지나야 급한 불을 끌 수 있을 것이다.
-의회에서 제기할 첫 번째 의제는.
=조건 없는 정치범 석방을 강력하게 밀어붙일 것이며, 첫 5년은 경제개발에 초점을 맞출 계획이다. 이 모든 건 민주주의를 향한 지난한 과정이다. 우린 더 이상 군사정부의 지배를 당하고만 있을 수 없다. 우리 스스로 수립해야 할 과제가 많다.
-또 다른 군인들의 정당인 민족단결당(NUP)과 같은 야당으로서 손을 잡을 수 있나.
=사안에 따라 그럴 수 있다. 정당 자체가 아니라 국민의 이익에 반하는 세력이 우리 적이다.
-아웅산 수치에게 기대하는 바는.
=그는 전 동료이자 민주주의의 상징이지만 내가 몸담은 정당의 지도부는 아니다. 민족 화해나 경제문제 해결을 위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싶다.
-거리시위 풍경은 이제 없어지는 건가.
=무엇을 위해 또 거리에 나서겠나. 많은 사람이 희생당했지만 별다른 변화를 낳지 못했다. 의회에서 현안을 해결하는 데 주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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