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발효된 1994년 1월1일, 멕시코 남부 치아파스주에서 ‘사파티스타민족해방군’(EZLN)은 “우리는 500년 투쟁의 산물이다”로 시작하는 전쟁선언문을 발표했다. 1492년에 싹튼 스페인의 식민지배와 중남미를 ‘뒷마당’으로 취급해온 미국의 후원을 받은 독재정권을 거치며 착취와 억압을 겪어온 원주민의 울분이 폭발한 것이다. 중남미에서 한동안 잊혀졌던 게릴라 무장혁명 투쟁의 존재가 다시 드러난 순간이다. 2001년에는 EZLN 부사령관인 마르코스가 빈곤과 소외에 지친 원주민의 권리투쟁을 위해 16일간 수도 멕시코시티까지 3천km의 평화 대장정을 벌이기도 했다. EZLN의 투쟁은 ‘포스트 공산주의 혁명’ ‘신공화주의 혁명’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주목받았다.
1994년과 2001년 EZLN이 그러했듯, 중남미에서 ‘게릴라’라는 이름이 다시 뉴스에 오르고 있다. EZLN이 인터넷으로 여론전을 펼치는 게릴라 투쟁의 진화를 보여줬다면, 지금은 ‘게릴라 출신 대통령’의 잇따른 집권이 남미 좌파의 정치적 진화를 보여준다.
차베스보다 룰라에 가까운
가장 최근의 사례는 혁명을 꿈꾸던 도시 게릴라 출신인 지우마 호세프(63) 브라질 대통령 당선자다. 그는 1964년 쿠데타로 수립된 군사정권에 맞서 사회주의 정부 수립의 수단으로 무장투쟁을 선택한 ‘전국해방지휘본부’(COLINA)에 1967년 가입한다. 호세프가 21살 대학생이던 1969년 COLINA의 미나스제라이스 지부는 네 차례의 은행 강도와 두 차례의 폭파 등을 감행한다. 이후 그는 마르크스레닌주의 정치군사조직인 ‘방과르다무장혁명단-팔마레스’(VAR-Palmares)에서 노동자당 건립과 사회주의 정권 쟁취를 위해 핵심 지도부로 일했다. 호세프는 1970년 1월 체포돼 고문을 당하고 3년간 복역했다. 그는 1980년대 민주노동당(PDT) 자문관을 거쳐 1985년 브라질 남부 포르투알레그레시 재무장관으로 첫 관직을 시작한 이후 연방 에너지장관과 수석 장관을 거쳐 브라질 첫 여성 대통령에 당선됐다.
지난 3월 우루과이 대통령에 취임한 호세 무히카(74)도 게릴라 출신이다. 그는 1962년 결성된 좌익 게릴라 단체 ‘투파마로스’(Tupamaros)에 소속돼 사회주의 정권 수립을 위해 1960~70년대 폭탄공격·납치·강도를 저지르다 14년간 복역했으나, 취임식에서 과거의 “바보 같은 이데올로기”의 청산을 촉구했다. 대선 기간에 그는 자신이 ‘반미 선봉’인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보다는 ‘실용좌파’로 평가받은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과 가깝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무히카는 이제 대통령으로서 소득재분배와 빈곤 해소 등에 나서고 있다.
중미 엘살바도르는 좌익 게릴라의 정치적 진화를 보여준다. 지난해 3월 대선에서 게릴라 출신 세력들이 결성한 ‘파라분도마르티해방전선’(FMLN) 소속 마우리시오 푸네스(49)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1979~92년 내전으로 8만 명 가까이 희생된 이 나라에서 민주적 선거를 통해 게릴라 정부가 집권함으로써 중남미 정치사에 한 획을 그었다. 우익 군사독재 정권에 맞섰던 게릴라 투쟁을 접고 1992년 제도정치권에 진입한 뒤, 5개 좌파 게릴라 출신 정당과 공산당 그룹이 연합해 결국 대선에서 승리한 것이다. FMLN은 게릴라 출신이라는 이미지 탓에 ‘불안하다’는 딱지를 떼지 못하고 우파 정권에 거듭 패배했지만, 게릴라 경력이 없는 방송사 기자 출신의 푸네스를 대선 후보로 내세우는 결단 끝에 집권에 성공했다. 푸네스는 좌파의 상징이라는 붉은색 대신 흰색 옷을 즐겨 입고, 차베스보다는 룰라를 모범으로 삼겠다며 ‘색깔론’을 피해갔다.
중남미에서 게릴라 출신으로 널리 알려진 최고 지도자는 다니엘 오르테가 니카라과 대통령이다. 그는 1937년 시작된 소모사 가문의 독재에 맞서 1961년부터 ‘산디니스타해방전선’(FSLN)을 이끌던 게릴라였다. 18년간의 무장투쟁 끝에 1978년 소모사 정권의 44년 독재를 무너뜨리는 혁명에 성공하고 1984년 대통령에 올랐다. 하지만 오르테가는 1990년 대선에서 미국의 지원을 받은 중도우파에 패배함으로써, 비올레타 차모로에게 정권을 내주고 만다. 잊혀졌던 오르테가는 2006년 11월 대선에서 다시 대통령에 당선돼 돌아왔고, 차베스와 함께 반미 좌파 노선을 외치고 있다.
되짚어보면,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풀헨시오 바티스타 군사독재 정권에 맞선 수년간의 게릴라전 끝에 1959년 1월 혁명에 성공한 것은 중남미 좌파의 무장투쟁에 바람을 일으킨 대사건이었다. 만연된 빈곤과 착취는 점진적 개혁이 아니라 급진혁명을 통해야만 신속하게 해결될 수 있다는 확신을 불어넣었다.
냉전이 끝나도 전투는 끝나지 않았다1970년 페루에서 결성된 ‘빛나는 길’(SL· Sendero Luminoso)도 대표적 게릴라 조직 가운데 하나다. SL은 혁명 지도자이자 창시자인 대학교수 출신 아비마엘 구스만이 1992년 체포될 때까지 중남미 최대 게릴라 조직으로 활동하며 3만여 명이 숨지거나 실종되는 희생을 치르며 군부와 무장투쟁을 벌였다. SL은 백인과 백인에 동화된 혼혈 메스티소를 배제한 원주민 중심의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목적으로 삼았다. 과테말라의 ‘민족혁명연합’(URNG)도 1996년 12월 정부와 평화협상에 서명할 때까지 36년간 원주민 15만 명이 숨지고 4만5천 명이 실종되는 결과를 빚으면서까지 친미 정권에 맞서 저항투쟁을 벌였다. 이런 중남미의 무력투쟁은 군사정권의 폭력과 맞물려 1960~70년대 맹위를 떨쳤다. 소련은 쿠바를 통해 이들에게 자금과 무기 등을 지원했고, 쿠바의 사회주의 혁명 수출 저지에 나선 미국은 중앙정보국(CIA) 등이 반게릴라 작전에 적극 참여했다.
소련의 해체와 사회주의권 붕괴가 맞물린 냉전의 종식은 한때 중남미에서 게릴라 무장투쟁의 종언을 고하는 듯싶었다. 하지만 1996년 12월 페루 리마의 주일 대사관저에서 세계를 발칵 뒤집어놓는 사건이 벌어진다. ‘투팍아마루혁명운동’(MRTA) 소속 게릴라 30여 명이 일본 국왕의 생일을 기념해 열린 파티장을 덮쳐 외교관 등을 잡고 126일간의 인질극을 시작했다. 쿠바혁명과 니카라과 산디니스타 혁명의 영향을 받은 반제국주의·민족주의 성향의 무장투쟁 단체 MRTA는 부패한 정부를 전복해 노동자와 농민이 통치하는 공산주의 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MRTA의 인질극은 중남미 무장투쟁의 원인이 냉전시대 이념 대결뿐 아니라 빈부격차 등 사회적 모순에 있다는 분석이 힘을 얻게 만들었다.
이제 중남미에서 게릴라 무장혁명은 화석화되고 있다. 오늘날 체 게바라와 검은색 스키 마스크를 쓴 채 담배 파이프를 입에 문 EZLN 부사령관 마르코스는 티셔츠와 컵에 인쇄돼 팔리는 혁명의 낭만적 관광상품으로 전락했다. 따지고 보면, 1967년 볼리비아에서 게릴라로 활동하던 체 게바라의 죽음은 일찌감치 ‘농촌 기반 게릴라 전략’의 실패를 알렸다. 이제 중남미에서 좌익 게릴라들의 자취는 사라지고 있다. 정부 개혁과 부패 척결, 농촌 투자 등을 내걸고 1964년 조직된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만이 무장투쟁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 또한 최고 지도자들이 잇따라 사살되면서 정글 속에서 존망의 기로에 서 있다. FARC는 동남아시아에서 반정부 게릴라 활동을 하다가 마약조직으로 추락한 쿤사 조직처럼, 혁명이 아니라 생존 수단으로 마약 밀매를 하는 타락한 무장폭력단체로 전락했다. EZLN도 원주민의 권리를 쟁취하지 못한 채 잊혀지고 있다.
우경화와 쿠데타 사이의 길혁명을 꿈꾸던 중남미 좌익 게릴라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1995)에서 중남미 좌익세력의 조직적 퇴각과 민주화를 주장했던 멕시코 작가 출신의 정치인 호르헤 카스타녜다의 길을 따르는 듯도 보인다. 최근 10여 년간 중남미 국가에서 이어진 좌파의 집권은 신자유주의의 실패와 우파의 부패와 무능, 민주주의의 성장과 맞닿아 있다. 1980년대 중남미를 휩쓴 신자유주의 물결이 식민시대 이후 뿌리내린 빈부격차를 더욱 악화하면서 빈곤층의 삶을 황폐화한 데 대한 반동이 큰 이유였다. 좌익 게릴라가 떨쳐 일어났던 이유도 군사정권의 억압과 사회적 모순에 저항하는 내부적 요인이 컸다.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국립멕시코자치대학(UNAM)에서 철학을 공부한 라파엘 세바스티안 비센테가 EZLN의 부사령관 마르코스가 되게 한 것도, 체 게바라가 오토바이를 타고 남미를 여행하며 깨달음을 얻게 한 것도 중남미의 구조적 불평등과 모순이었다. 11월3일 언론 인터뷰로 새삼 관심을 모은 네덜란드 출신의 FARC 게릴라 탄자 니즈메이저(32)가 낯선 콜롬비아의 정글에 발을 딛게 만든 것도 대학생으로서 그가 목도한 라틴아메리카의 고질병인 극심한 빈부격차와 부의 불균등한 분배였다.
이제 혁명 대신 정치적 민주주의를 통한 사회변혁의 길을 택한 게릴라의 종착지는 어디인가? 중남미의 불평등을 비판하던 종속이론의 대가 페르난두 카르도주는 브라질 대통령에 선출된 뒤 신자유주의 노선으로 돌아섰다는 비판을 받았다. 칠레의 살바도르 아옌데는 선거를 통해 최초의 사회주의 정부를 수립했지만, 미국의 지원을 받은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장군의 유혈 쿠데타에 무너졌다. 이제 최고 지도자로 변신한 과거의 게릴라들이 라틴아메리카 좌파 진화의 이름으로 진정한 혁명에 성공할 것인가?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콜롬비아 게릴라가 된 네덜란드인
게바라 혹은 희생자
귀고리를 한 어여쁜 젊은 여성은 하얀 치아를 드러내고 웃으며 말한다. 순간, 군복 차림에 M16 소총을 어깨에 걸친 모습이 그가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 게릴라임을 깨닫게 한다. 지난 11월3일 네덜란드 출신의 FARC 게릴라 탄자 니즈메이저(32·사진)의 인터뷰가 방송되자 이 ‘혁명을 꿈꾸는 이방인’에게 세계의 눈길이 쏠렸다. 그는 FARC에서 남미 출신이 아닌 유일한 인물로 알려졌다.
니즈메이저는 동영상 인터뷰에서 “나는 FARC 게릴라며, 승리하거나 죽을 때까지 계속 게릴라일 것이다. 되돌리는 일은 없다. 게릴라가 돼 인민과 동료 게릴라들 옆에서 권력 쟁취와 혁명을 위해 매일같이 일하는 게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8월 촬영된 이 인터뷰에서 “네덜란드 정부가 아직도 내가 납치됐다고 믿거나 그렇게 퍼뜨리려 한다면 여기에 와서 나를 구해보라. AK 소총과 바주카포, 지뢰 등 우리가 가진 모든 것으로 맞이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그의 암호명은 ‘엘렌’ 또는 ‘알렉산드라’. 1978년 네덜란드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그가 콜롬비아를 찾은 것은 2000년이다. 대학에서 로맨스어(라틴어에서 분화된 포르투갈·스페인·이탈리아어 등)를 전공한 그는 실습차 콜롬비아의 페레이라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이때 극심한 빈부격차에 충격을 받고, 정부가 국민을 어떻게 학살하는지 듣게 된다. 그가 네덜란드로 돌아갔을 때 혁명은 네덜란드가 아니라 콜롬비아에서 일어날 것임을 깨닫게 됐다.
니즈메이저는 2002년 11월 FARC에 참여한 뒤 2003년 수도 보고타에서 어린이 1명이 숨지고 16명이 다친 폭발 사건에 관여했다고 콜롬비아 정부는 밝혔다. 그는 지난 9월 정부군의 공격으로 숨진 FARC 지도자 호르헤 브리세노의 비서로 일하는 등 고위직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혁명을 꿈꾸며 정글에서 게릴라로 지내는 삶은 어떨까? 그는 인터뷰에서 “초기에 네덜란드 방송을 자주 들었는데, 국가를 틀어줘서 향수가 느껴졌다. …가족과 고향의 풍경을 생각하면 슬퍼진다. …이제 하루 종일 스페인어를 말하다 보니 많이 그립지는 않다. 하지만 치즈 같은 작은 것들이 그립다”고 말했다.
니즈메이저의 존재는 2007년에 널리 알려졌다. 정부군에 쫓겨 달아나며 버린 그의 일기장이 발견됐는데, 게릴라 생활에 대한 회의가 드러났다. 그는 “나는 FARC에, 사람들에, 공동생활에 지쳤다. …내가 무언가를 위해서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가치가 있을 텐데, 정말이지 더 이상 믿지 않는다”고 적었다. 그는 FARC 지도층의 특권 의식과 멀어진 혁명이념 등도 지적했다. 이 때문에 FARC에서 처형됐을 가능성까지 거론됐으나 탁월한 언어 능력 덕에 살아남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기 공개 당시 국방장관이었다가 지난 8월 대통령으로 취임한 후안 마누엘 산토스는 “일부 유럽인은 반군이 로빈후드나 체 게바라처럼 불쌍한 이들을 위해 싸운다는 로맨틱한 이미지를 갖다가 니즈메이저처럼 함정에 빠진다. 막연한 환상이 깨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FARC가 마약 밀매를 일삼는 무장테러단체로 여겨지는 현실은 산토스의 말이 크게 틀리지 않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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