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두라스의 한지수(27)씨가 무죄를 선고받았다. 외교통상부는 최근 “온두라스 법원은 지난 2008년 8월 온두라스에서 발생한 네덜란드인 변사 사건과 관련해 살인 혐의로 기소된 한지수씨에 대한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고 밝혔다. 한씨는 다이빙 강사 자격증을 따려고 온두라스에 머물다 네덜란드 여성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한국인이다.
은 784호 줌인 ‘온두라스 감옥에 방치된 대한국민 한지수씨’ 등 세 차례 보도를 통해 외교 당국의 적절한 조력을 받지 못한 채 지난해 8월 이집트에서 체포·구금돼, 온두라스 라세이바 감옥에 수감되기까지의 과정을 집중 조명했다.
여론·언론·정치권에 떠밀려 유명환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은 지난해 11월16일 “(구명을 위한) 모든 방법을 강구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제 딸의 특채 비리로 사퇴한 그 장관이다.
한씨로선 석 달간의 구속과 보석 석방 뒤 가택연금 10개월 만에 얻은 ‘복음’이다. 그와 전화·전자우편으로 인터뷰했다. “사건 초기만 하더라도 결백과 억울함을 호소할 데가 없었다. 다행히 을 비롯한 , 한국방송 등에서 관심을 가져주었고, 보도를 접한 국민들이 제 사건에 관심을 보이면서 정부의 도움도 받았다. 이제 잘 마무리되고 있지만, 어딘가에 억울한 ‘제2의 한지수’가 또 있을지 모른다”는 그의 말엔 깊은 안도와 공포의 여진이 뒤섞여 있었다.
- 가장 힘들었던 과정은.이집트에서 체포된 지난해 8월부터 힘들지 않은 때가 없었다(한씨는 변사 사건 이후 별고 없이 귀국했다가 인터폴에 수배돼 여행 중 붙잡혔다). 현지에서 구금되고, 온두라스로 송환돼 감옥에 갇히고…. 이집트에서의 감옥 생활이 육체적으론 가장 힘들었다. 3주 동안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서 제대로 잠을 잔 적이 없었다. 철저히 고립됐다.
- 무리한 수사와 기소로 피해를 입는 국민이 국내에서도 늘고 있다. 온두라스는 어떤가.= 온두라스는 재판 전 3차까지 심리가 진행된다. 이 수사 단계에서 특별한 사유가 없는 피의자는 수감된다. 더 안타까운 건 재판까지 1~2년이 소요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점이다. 내가 머물던 감옥에도 미결수가 상당했다. 보석금은커녕 변호사 비용도 없는 일반 국민은 그 긴 기간을 감옥에서 보낼 수밖에 없다. 피의자 인권이 전혀 보장되지 않고, 범죄자와 동일하게 취급했다. 과연 이 나라에서 공정한 재판이 가능한가, 회의와 공포가 들었다.
- 정부의 역할이 얼마나 긴급하고 긴요한지 말해준다.= 지난해 12월 초 정부에서 전문가팀을 파견하고 검찰과 면담한 뒤부터 온두라스 쪽의 태도가 달라졌다. 이번 재판에선 온두라스 대법원장이 진행 상황을 한국 대사관에 알렸다. 한국 정부가 관심을 갖는 것만으로도 온두라스 사법 당국이 네덜란드(피해자 국가)와 한국의 입장을 고려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 실제 네덜란드는 개입이 대단히 빨랐다.= 이집트와 온두라스 사이에 범인 인도 협정이 없는데도 내가 송환된 것은, 네덜란드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했기 때문이다. 체포 과정에서 이집트 당국이 우리 영사관에 연락하지 않은 건 명백한 불법이다. 이집트에서 적절한 보호를 (전혀) 받지 못했다.
국가가 국민을 필요로 하는 만큼, 국민은 국가를 필요로 한다. 한씨의 무죄 소식을 알리는 외교통상부의 공치사는 야무졌다. “정부는 온두라스 당국이 신속하고 공정하게 재판 절차를 진행해줄 것을 한-온두라스 정상회담(올 6월) 등 여러 계기에 촉구해왔으며, 한지수씨 및 한씨 변호인의 재판 준비를 다각적으로 측면 지원해왔습니다.”
한씨는 말했다. “정부 지원이 조금 더 일찍 있었더라면 불안함에 떨며 지새웠을 밤이 조금 더 짧아졌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정부의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 (국민이) 인터넷 등에서 서명운동을 벌인 걸 봤습니다. 이런 노력이 정부와 외교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이끌어냈다고 생각합니다. 감사드립니다.”
최종 판결문이 나오는 11월5일부터 20일 안에 검찰의 항소가 없으면 무죄는 최종 확정된다. 바라건대, 올해 말 고국 땅을 밟는 것이다. 한씨는 “잃어버린 1년2개월의 기간과 희생을 적법하게 보상받고 싶다”고 말했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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