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국민 몇십만 명을 열악한 환경에 무작정 가둬두는 게 말이나 되나?”
말레이시아 국회의원이자 페낭주 차관을 맡고 있는 라마사미 팔리나사미는 20여 년간 케방사안말레이시안대학(UKM)에서 역사와 정치를 가르친 저명한 학자 출신이다. 영국 식민통치 시절 인도 남부에서 건너온 타밀계 집안 출신인 그는 스리랑카 평화협상에 깊이 관여했고, 특히 타밀엘람해방호랑이(LTTE·이하 타밀호랑이)의 과도자치정부안(ISGA) 초안 마련에 참여하기도 했다. 지난해 말 쿠알라룸푸르의 의원회관에서 과 마주한 그는 “스리랑카 난민 문제에 눈감고 있는 국제사회의 행태에 분노할 수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타밀계 말레이시아 국회의원 라마사미
=국제사회의 압박과 (1월26일) 대통령 선거 때문이다. 난민 석방은 진작에 이뤄졌어야 한다. 자기 국민 몇십만 명을 무작정 가두는 게 도대체 용납할 수 있는 상황인가? 당장 시급한 건 난민들이 고향으로 돌아가 모든 걸 회복하고,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돕는 거다. 그런 뒤 타밀족 문제에 대한 정치적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한다.
-지난 몇 년간 킬리노치(스리랑카 북부 타밀호랑이 통치 지역의 수도)를 일곱 차례 방문했다. 2002~2009년 휴전 기간에도 그 지역에는 전기와 의약품이 부족했고, 경제 봉쇄도 가해졌다. 그때도 이미 재난 수준이었다. 전쟁이 끝난 뒤 물도, 식량도, 위생시설도, 화장실도 없는 처참한 난민캠프에 갇혀 몇십만 명이 여전히 고통받고 있다. 난민캠프가 아니라 나치의 강제수용소, 그것도 나치 시절보다 훨씬 군사화한 강제수용소다. 국제사회가 충분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에 분노한다. 특히 유엔의 행보에 화가 치민다. 반기문 사무총장은 스리랑카 정부가 대량학살을 벌이는 동안엔 사실상 눈을 감았고, 참사가 벌어진 뒤에야 난민캠프를 잠깐 둘러봤을 뿐이다.
=그렇다. 지금 스리랑카 타밀인들은 공포에 떨고 있다. 전쟁이 끝난 게 아니라 분쟁의 또 다른 장이 펼쳐지고 있다. 타밀호랑이 출신이라고 조금만 의심받아도 즉시 사살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타밀호랑이 출신으로 의심돼 분리 수용돼 있는 이들의 안전이 걱정이다. 그들은 전쟁포로나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도대체 난민캠프에 몇 명이 수용돼 있는지조차 파악이 안 된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도 알려지지 않는다. 교전 마지막 날 상황만 봐도 그렇다. (지난해 5월16일) 풀리델반이나 나데산 등 투항하는 타밀호랑이 간부와 그 가족을 스리랑카군은 전부 총살했다. 난민캠프에서 인권침해는 없는지 등에 대한 전면적인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
=동의한다. 유럽연합과 미국, 인도 등이 테러조직으로 규정한 게 타밀호랑이엔 치명적인 타격이었다. 스리랑카 주변국과 서구 강대국들은 타밀호랑이가 어떻게든 사라지기를 바랐다. 중국·파키스탄·인도·미국은 스리랑카 정부군에 무기를 대주는 한편 타밀호랑이 쪽으로 향하는 선박을 봉쇄하는 등 스리랑카 정부를 적극 지원했다. 그러니 작금의 상황에 대해 스리랑카 정부를 비판할 자격도 없다.
=개인적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전화를 계속 받고 있다. 말레이시아 국민 중에도 타밀족이 있다. 영국 식민통치 시절 인도 남부에서 건너온 이들인데, 난민으로 떠도는 동족 때문에 마음이 무거울 거다.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선 적극적으로 발언하는 말레이시아 정부가 타밀족 문제에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답답한 노릇이다.
쿠알라룸푸르(말레이시아)=글·사진 이유경 국제분쟁 전문기자 penseur21@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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