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21일 새벽 1시(현지시각) 미 상원은 의료보험 개혁안에 대한 토론을 종결했다. 표결이 다음 차례다. 100년 이상 요지부동이던 미국의 의료보험제도 개혁이 마침내 가시권 안에 들어왔다. 역사적 의미를 부여할 만도 한데…, 이튿날인 12월22일 미 전국간호사노동조합연맹(NNU)이 성명을 내어 상원 개혁안을 조목조목 비판하고 나섰다. 15만 회원을 거느린 NNU는 그동안 의료보험 개혁의 선봉에 서왔다. 이게 웬일일까?
“상원에서 논의되는 의료보험 개혁법안은 치명적인 결함을 안고 있다. 경제위기로 어려움에 빠진 미국민의 의료권을 되레 위축시킬 가능성마저 있다. 진정한 변화를 약속했던 정치권이 무정한 보험업계의 횡포에 힘을 실어주려 한다. 비극적인 일이다.”
진보적 시사주간지 은 12월22일 인터넷판에서 캐런 히긴스 NNU 공동위원장의 말을 따 이렇게 전했다. 히긴스 위원장은 “의료보험 개혁의 목적은 더 많은 이들에게 값싸고 품질 좋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어야 한다”며 “하지만 상원안이 그대로 통과된다면 이윤에 눈먼 보험업계의 입지가 더욱 강해지면서, 의료보험 개혁은 앞으로 더욱 어렵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NNU가 지적한 상원 개혁안의 ‘치명적인 결함’을 몇 가지만 훑어보자.
상원안은 우선 모든 국민에게 의료보험 가입을 의무화했다. 반면 보험료 인상폭 제한 등 업계를 규제하는 조항은 찾아볼 수 없다. 미 전역 94개 대도시에선 1~2개 업체가 사실상 보험시장을 독점하고 있다. 소비자의 선택권은 극도로 제한돼 있고, 경쟁은 전무한 형편이다. 보험 가입을 의무화하면서 별다른 규제 조처를 신설하지 않는 것은 개혁은커녕 업계에 ‘신규고객’만 유치해줄 뿐이란 게다.
앞선 ‘병력’을 이유로 보험 가입을 거부할 수 없도록 하는 규정도 ‘허점투성이’란 비판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를테면, 고혈압·당뇨병·고지혈증 등이 있는 이들에겐 보험료를 2배 이상, 나이가 많은 신규 가입자는 최대 4배까지 보험료를 더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또 보험 가입 당시 자신의 건강 상태에 대해 ‘거짓 또는 의도적으로 왜곡’한 경우, 급여 신청을 거부할 수 있다는 ‘독소 조항’도 고스란히 유지했다. 은 캘리포니아주 간호사협회의 자료 내용을 따 “캘리포니아주 상위 6개 보험업체는 지난 2002년 이후 보험료 지급 신청 건수의 20% 이상을 의료보험 가입 당시 건강 상태를 숨기거나 거짓으로 기재했다는 이유로 거부했다”고 전했다.
이 밖에 제약업계가 강력 반발해온 약값 상한제 규정도 미비한 상태고, 낙태 등 여성 건강권 관련 규정은 되레 후퇴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무엇보다 보험시장에 경쟁을 도입하기 위해 추진해온 ‘공공의료보험’(퍼블릭옵션) 도입을 업계의 반발을 의식해 제풀에 거둬들였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인터넷 매체 은 12월21일 “일부에선 ‘불가능한 최선에 집착해 차선마저 놓쳐선 안 된다’고 주장하지만, 상원안은 차선에도 미치지 못한다”며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은 ‘선제공격’을 말했지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업계의 반발을 지나치게 의식해) 지레 포기하는 ‘선제양보’에 골몰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표결 종결 임박하자 의보업체 주가 치솟아‘시장’도 같은 판단을 내린 모양이다. 2009년 10월14일 의료보험 개혁안이 상원 재무위원회를 통과했을 때 의료보험 업계의 주가는 하나같이 폭락했다. 하지만 같은 달 27일 조 리버먼 의원(무소속)이 “공공의료보험 조항을 삭제하지 않으면 의사진행방해(필리버스터)에 나설 것”이라고 엄포를 놓으면서 반등세로 돌아섰고, 표결 종결이 임박해서도 낙관론은 흔들림이 없었다. 10월27일부터 12월18일까지 거대 의보업체 콘벤트리는 주가가 31.6% 치솟았고, △시그나코어(29.1%) △에트나(27.1%) △웰포인트(26.6%) △유나이티드헬스(20.5%) 등도 모두 20% 이상 폭등했다. 같은 기간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와 첨단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는 각각 2.3%와 1.4% 오르는 데 그쳤단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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