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당신에게 너무 비싼 아프간

오바마 대통령 3만 명 증파 계획 발표, 한 해 적어도 300억달러의 전쟁 경비 추가 부담
등록 2009-12-09 17:01 수정 2020-05-03 04:25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12월1일 아프간에 3만 명의 미군을 증파하고, 2011년 7월부터 철군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REUTERS/ SHANNON STAPLETON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12월1일 아프간에 3만 명의 미군을 증파하고, 2011년 7월부터 철군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REUTERS/ SHANNON STAPLETON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이라크가 아니라 아프가니스탄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선되면 이라크 전쟁을 매듭짓고, 아프가니스탄에 병력을 증파할 것”이라고도 밝혔다. 취임한 지 두 달여 만인 지난 3월28일 아프간 정책의 대강을 밝혔던 오바마 대통령은 8개월여의 숙고 끝에 12월1일 마침내 아프간 증파 계획을 발표했다. 이라크 병력 증파 계획을 내놓았던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의 2007년 12월 연설과 닮아 있다.

“미군이 아프간에 무한정 주둔하진 않을 것이다. 아프간 정부 스스로 치안을 책임질 준비를 해야 한다. …2010년 상반기까지 3만여 병력을 증파해 아프간을 빠르게 안정화시킨 뒤, 2011년 7월부터 철군을 시작하겠다.”

1인당 주둔비, 이라크의 2배

이제 아프간 정책을 둘러싼 논쟁의 무대는 미 의회로 옮겨갔다. 연일 이어지는 청문회에서 핵심 쟁점은 크게 두 가지로 모아진다. 첫째, 오바마 대통령이 ‘2011년 7월’로 거론한 철군 시기다. 발표 내용만 놓고 보면, 내년 상반기까지 아프간 주둔 미군 병력은 10만 명을 넘어서게 된다. 이미 주둔 중인 6만8천 명에 3만 병력이 추가할 뿐 아니라, 필요에 따라 의무·정보병과 폭발물 해체반 등 지원 병력을 따로 3천 명까지 증파할 수 있도록 군에 일임했기 때문이다. 10만 병력으로 1년6개월 만에 상황을 정리하고, 철군까지 할 수 있을까? 민주당 쪽에선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공화당 쪽에선 “철군 시한을 못박은 것 자체가 문제”라고 타박한다.

둘째, 전쟁 경비 문제다. 경제위기 속에 막대한 예산이 필요한 의료보험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조지 부시 행정부가 남기고 간 천문학적 예산 적자도 발목을 잡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병력 증파 계획이 나왔다. 미 의회는 2010년 아프간 전쟁 비용으로 680억달러를 편성해뒀지만, 병력 증파에 따른 추가 예산 편성이 불가피하게 됐다. 얼마나 필요할까? 미 싱크탱크 ‘전략예산평가센터’(CSBA)는 12월1일 내놓은 보고서에서 “미군이 주둔하는 기지와 각종 인프라 등 고정비용도 만만찮지만, 전쟁 경비의 핵심은 병력의 규모”라며 “아프간에 3만 명을 증파하면, 한 해 적어도 300억달러의 전쟁 경비를 추가 부담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CSBA의 자료를 보면, 지난 2005년 이후 아프간에 파병된 미군 1명에게 들어간 비용은 한 해 86만달러에서 153만2천달러 사이를 오갔다. 1인당 1년에 평균 112만5천달러가 소요된 셈이다. 같은 기간 이라크에 파병된 미군 1명에게 들어간 비용은 절반 수준이었다. CSBA는 “이라크 주둔 미군 1인당 한 해 45만8천달러에서 73만7천달러의 경비가 소요돼, 평균 55만6천달러를 쓴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아프간 전쟁이 이라크 전쟁보다 ‘고비용’인 이유는 두 가지로 설명된다. 첫째, ‘규모의 경제’다. 이라크에 파병된 미군 병력은 2007년(19만5100명)을 정점으로 줄어들곤 있지만 2009년 말 현재도 15만5천 명에 이른다. 반면 아프간 주둔 미군은 2005년 1만9850명에서 지속적으로 늘어나곤 있지만, 현재 6만8천 명 선에 그친다. 둘째, 산악 지형이 많은 아프간은 이라크에 비해 군사작전 수행에 어려움이 많은데다 도로 등 인프라 사정이 훨씬 열악하다. 병력 파견과 군수 지원에 추가 비용이 많이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CSBA는 “아프간 주둔 미군 1명에게 한 해 필요한 예산은 평균 100만달러 선”이라며 “3만 명을 증파하면, 300억달러의 예산이 더 필요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당선을 기뻐했던 평화단체 시위

뒤늦게나마 ‘공약’을 이행한 셈이니, 비판도 비껴갈 수 있는 건가? 12월1일 허드슨강이 내려다보이는 뉴욕주 웨스트포인트(육군사관학교)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증파 계획을 발표할 무렵, 워싱턴의 백악관 앞에선 그의 당선을 기뻐했던 평화단체 회원들이 팻말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우리가 믿을 수 있는 변화, 그건 거짓말이었다.’ 이날 미 전역에선 1400여 시민사회단체가 아프간 증파 계획에 반대하는 크고 작은 집회를 열었다. 12월10일 노르웨이의 오슬로 시청사에선 노벨상 시상식이 열린다. 아프간에서 전쟁을 키우기로 한 오바마 대통령은 ‘평화’의 이름으로 상을 받는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