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차기 미 대통령의 두 딸이 전학한 워싱턴의 학교로 첫 등교를 하던 날인 1월12일 오전 백악관 브리핑룸에선 조지 부시 대통령의 기자회견이 예정돼 있었다. 재임 기간 중 47번째, 퇴임을 일주일 앞둔 ‘고별회견’이었다. 백악관 공보실 쪽의 ‘기대’는 제법 컸던 모양이다. 는 1월13일치에서 “백악관 쪽이 회견 전날 출입기자단에게 ‘1사 1인만 참석이 가능하다. 지정석이 없는 언론인은 서서 취재해야 한다’는 공문까지 보냈다”고 전했다.
미 언론의 반응은 정작 신통치 않았다. 회견이 예정된 오전 9시15분까지 브리핑룸의 좌석 7줄 가운데 뒤쪽 2줄은 여전히 빈 채였다. 이 때문에 백악관 공보실 쪽은 급거 인턴들을 동원해 빈자리를 메우느라 부산을 떨어야 했단다. 9시17분께 부시 대통령이 들어섰다. 50분 남짓 회견하는 동안 그는 줄곧 농담을 던졌고, 연방 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백악관 누리집에 올라온 회견 동영상을 보면, 부시 대통령의 표정에선 어쩔 수 없는 쓸쓸함이 묻어났다. 그는 이미 ‘무대’에서 내려온 배우의 모습이었다.
‘기대’와 달리 좌석 2줄 비어“미 합중국의 헌법을 지키고….” 영국 〈BBC방송〉은 최근 인터넷판에서 부시 행정부 8년의 기록을 2분짜리 동영상으로 압축했다. 2001년 1월 취임식에서 선서를 하는 부시 대통령의 모습에서 출발한 화면은 9·11 동시테러와 아프간 침공, 그리고 2002년 연두교서에서 나온 ‘악의 축’ 발언으로 이어졌다. 이라크 침공과 사담 후세인 정권의 몰락은 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호에 올라 ‘임무 완수’를 선언하는 부시 대통령의 자신에 찬 모습과 겹쳐졌다. 그의 임기 중 ‘최고의 순간’이었을 터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이내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 이라크에서 유혈사태가 불을 뿜기 시작했다. 아부그라이브 교도소 수감자 학대 사건과 관타나모 포로수용소의 인권 유린은 미국의 ‘도덕성’에 치명타를 가했다. 그리고 2005년 여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뉴올리언스를 강타했다. 도시는 수장됐고, 사람들은 갇혔다. 대통령은 ‘공군 1호기’를 타고 상공에서 이를 지켜만 봤다. 잇따른 정책 실패에도 여전히 호의적이던 여론이 결정적으로 등을 돌렸다.
그리고 월스트리트에서 시작된 금융위기가 전세계를 덮쳤다. 2008년 한 해에만 250만 미국인이 일자리를 잃었다.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가 차기 대통령에 당선된 뒤 이라크를 방문한 부시 대통령은 성난 현지 언론인의 신발 투척에 황망히 몸을 피해야 했다. 그렇게 8년 세월이 숨가쁘게 지나갔다. 세계는, 역사는 그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경기침체는 내 임기 중 시작된 게 아니라, 전임자에게서 물려받은 게다.” 그는 당당했다. “재임 기간 중에 52개월 연속으로 고용성장을 이룬 일도 있다”고도 덧붙였다. 아부그라이브 교도소 수감자 학대 사건은 ‘실망스런 일’에 불과했고, 이라크에서 대량살상무기를 찾아내지 못한 것은 조금 더 큰 ‘실망’에 불과했다. 그리고 “세상사가 원래 계획대로 되는 건 아니지 않느냐”고 덧붙였다.
“절대 동의할 수 없다.” 이날 회견에서 부시 대통령이 가장 흥분한 것은 자신의 임기 중에 미국의 ‘도덕적 지위’가 훼손됐다는 지적이 나왔을 때다. “아프리카로 가봐라. 인도로 가봐라. 중국에 가봐라. 가서 물어봐라. …미국은 여전히 자유와 희망의 상징이다.” 거침없는 답변, 작심하고 나온 듯했다. 그는 “재임 기간 동안 쌓은 업적을 대변할 수 있는 기회를 줘 고맙다”며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 생각하며, 앞으로도 이를 지켜내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말로 회견을 마무리했다. 동의하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거침없는 입담으로 부시 행정부를 비판해온 〈MSNBC방송〉의 간판 프로그램 진행자 키스 올버만은 이날 저녁 방송을 이렇게 시작했다. “적어도 오늘은 아무도 그에게 신발을 던지지 않았다.”
스미스소니언에 초상화 내걸려지난해 12월19일 부시 대통령의 초상화가 역대 대통령의 초상과 함께 스미스소니언박물관에 내걸렸다. 설명문에는 “(부시 대통령의 임기 동안) 일련의 재난이 터졌다. 아프간과 이라크 침공으로 이어진 9·11 동시테러도 그중 하나”라고 적혀 있었다.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무소속·버몬트주)은 “이라크 침공은 9·11 동시테러와 무관하다”고 지적했고, 박물관 쪽은 이를 받아들여 문구를 수정하기로 했다. 하나의 역사는 이미 바로잡힌 셈이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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